전신마비의 몸으로 21년 만에 걸어보다
본문
“제가 21년 만에 걸어봤습니다.
비록 첨단기술을 힘입어서 걸어봤지만 너무 감격스러워 여러분과 이 장면을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꼭 올림픽 금메달 먹은 것 같이 이야기하네요. ㅋㅋㅋ)
재활공학의 기술이 황우석박사보다 더 빨리 저를 걷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3월 말, 기자에게 한 통의 반가운 메일이 왔다.
미국 피츠버그재활공학센터 책임연구원인 김종배 씨에게서 온 것이었다.
‘전신마비 장애인인 김종배 씨가 걸었다니, 어떻게?’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김 연구원이 보내준 동영상과 사진을 보자 곧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김 연구원은 <함께걸음> 2006년 10월호에서 만난 바 있으니, 이번이 두 번째다.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차별 여부에 따라 겪는 것”이라고 말하던 김종배 연구원이 보내온 두 번째 이야기를 소개한다.
전신마비가 된지 16년만에 미국에 유학 길에 오르다
사고로 경수(목뼈 속의 중추신경) 5번을 다쳐서 전신마비의 몸을 갖게 된지 16년, 다치면서 석사과정 공부를 그만 두어야했으니 공부를 중단한지 16년, 나이로는 만 40에 2001년 6월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종교의 힘이 아니었다면, 감히 저지를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불모지인 재활공학을 제대로 공부해서 한국의 재활복지환경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유학을 결심할 때, 나는 미국 유학으로 성취할 세 가지를 놓고 기도했다.
첫째는 나이 들어 제대로 준비도 없이 가지만 박사과정을 성공적으로 잘 마치게 해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내 스스로 운전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며, 셋째는 어떠한 모습이라도 전신마비가 된 내 몸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는 연구결과를 내 몸에서 실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4년 만에 박사학위를 마쳤으니 유학의 주된 목적 첫 번째는 그런대로 잘 이루어진 것 같다.
사실 미국은 나 같은 장애인이 공부를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한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공부를 중단해야 했는데, 미국 학교의 모든 건물에 당연히 접근권이 다 보장돼 있고, 모든 시내버스에 다 휠체어용 램프나 리프트가 있으니 이동권도 보장되어 있다.
학교에는 다기능 휠체어와 컴퓨터 보조장치 등의 최첨단 재활공학보조기기뿐 아니라 공부하는데 불이익이 없도록 최대한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던 공부를 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신나고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제일 먼저 이루어질 것 같던 자가운전의 꿈은 오히려 박사학위를 받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나는 먼저 기계적인 구조의 운전 보조장치로 훈련을 받았는데, 훈련도중 핸들을 잡은 손이 핸들손잡이에 자꾸 빠져 나와서 훈련사가 포기하고 돌아가고 말았다. 그때 나도 ‘운전은 도저히 안 되는 모양이다’ 하고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최첨단 재활공학제품인 전자 운전보조장치를 사용한 운전에 다시 도전하여 면허까지 취득한 뒤, 이 장치를 갖춘 차량까지 미국 직업재활국의 지원으로 갖게 됐다.
그런데 전자 운전시스템을 갖춘 내 차를 가지고 처음으로 운전하여 도로에 나간 날, 보조운전시스템이 내 몸에 제대로 안 맞추어진 부분이 있어서 운전을 하다가 핸들을 놓쳐버려 차를 도로 옆 콘크리트 벽에 박고 말았다. 다행히 문제점을 보완해, 이제는 과속을 안 하려고 조심해야 할 만큼 편안하게 운전을 하게 되었다.
얼마 전 황우석 박사가 한국에서 척수손상인을 대상으로 임상실험까지 하겠다고 나올 때는 수술 받으러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가야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미국으로 오기 전 한국에서 1995년부터 신경재생연구에 관하여 외국의 연구들을 번역하여 한국의 척수손상인들에게 소망을 주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미국에 가면 어떠한 방법으로든 내가 손이라도 좀 더 쓸 수 있고 다리를 좀 움직이는 정도라도, 이 치료불가능이라는 전신마비의 굴레를 깨트리고야 말겠다는 소망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황우석 교수 사건이 헤프닝으로 끝나고 말아, 줄기세포에 의한 신경재생의 꿈을 당장 실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첨단 재활공학 기술, ‘LOCOMAT’
![]() |
|
| ▲ 첨단 재활공학 기술 ‘LOCOMAT’의 모습. 사진출처: |
지난 여름 나의 주된 연구분야인 ‘가상현실과 원격진료기술을 이용한 재활공학’과 관계있는 주요 학술대회가 뉴욕에서 열려 참여한 적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로봇기술을 이용하여 나 같은 전신마비인을 트레드밀 위에서 걷는 운동을 하게 하는 ‘LOCOMAT’ 라는 최점단 장비에다 가상현실기술을 접목시켜 그 운동의 효과를 증대시키는 연구를 발표하는 것을 보았다.
발표자는 논문발표 시 그 장비를 이용하여 걷는 운동을 하는 모습을 비디오로 보여주었는데, 나 같은 전신마비 장애인이 트레드밀 위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걷고 있었다.
충격! 그 자체였다.
나도 저 기기를 이용해서 걷는 운동을 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잊고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연구실 앞의 재활의학과 외래진료 접수창구 앞에 그 ‘LOCOMAT’의 사진이 나붙은 것이 아닌가. 내가 일하는 피츠버그대학교의 대학병원에서도 이 기구를 이용한 물리치료서비스를 한다는 광고였다.
나는 당장 재활의학과 주치의의 진료예약을 하고, 주치의를 만나서, “나도 ‘LOCOMAT’로 운동할 수 있게 처방을 해달라.”고 했다.
나와 같은 건물에 근무하는 그는, 환자와 의사 관계를 넘어서, 내가 연구하는 ‘가상현실을 이용한 원격접근성 평가시스템’에 관심도 많은 편이여서 친하게 지내는 터인지라, 두말없이 처방을 해주었다.
나는 그 처방전을 들고 그 옆에 있는 물리치료센터로 가서 접수를 했다.
그랬더니 며칠 후 물리치료사에게 연락이 왔다.
이 ‘LOCOMAT’ 치료는 연구 결과가 척수손상인 중 불완전마비인(마비등급이 ASIA C와 D등급) 사람들에게 기능회복과 건강증진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완전 마비(ASIA A와 B등급 같이)에 가까운 사람에게는 운동 효과가 별로 없다고 보고됐다는 것이다.
때문에 마비등급이 ASIA B인 나는 의료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의료비가 워낙 비싸서 의료보험 적용을 못 받으면 어지간히 돈이 많지 않고는 개인 비용으로 치료받기는 힘들다.
다행히 그 물리치료사도 같은 건물에 근무하는 사람으로 나를 알기에 내 주치의와 상의해서 비공식적으로 한번만 해보게 해주겠다고 의사를 밝혀왔다.
전신마비가 된 지 21년만에 걷다!
나는 드디어 미국 온지 거의 6년, 다친 지 거의 21년 만에 ‘LOCOMAT’라는 로봇기술의 최첨단 재활공학 장비를 이용하여 트레드밀 위를 걸었다.
내 상체에 견인장치를 입혀서 공중에 내 몸을 달아 올림으로 내 몸무게를 받쳐 올리게 하고, 고관절, 무릎, 발목 부분에 로봇시스템을 부착시켜 작동을 하면 내 다리가 보행동작으로 움직이면서 내 밑의 트레드밀이 로봇에 의한 보행동작과 동기화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LOCOMAT’가 나를 서서히 그 트레드밀 위에 내려놓으면 나는 그 트레드밀 위를 걷게 되는 것이다. 발바닥이 땅을 밟아 밀치는 느낌을 느낄 수 있지만, 내 몸무게를 위로 받쳐서 걷게 하는 것이니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걷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걸었을 때 받은 신체적 느낌은 물론, 21년 만에 발을 디디는 정신적인 감동이란, 마치 말 그대로 ‘달 표면을 걷는’ 것 같았다.
세 번째 기도가 아직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그 응답을 맛보았다고 할까?
내 몸의 마비상태는 21년 전 다쳤을 때와 지금 조금도 변함이 없다. 열 손가락을 전혀 움직일 수 없고, 팔꿈치를 펼 수도 없고, 가슴 이하 전신을 전혀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어찌됐든 걸어보았다. 두 가지 소원이 완전하게 이루어졌듯이 세 번째 기도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나는 소망한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