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사는 세상, 그 안에 정신지체인 자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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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된 인격체로서 삶을 살아가는데 독립생활은 논할 가치조차 없을 만큼 당연한 것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이 스스로 독립해 살아가기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함께걸음>은 ‘시설에서 독립하기’라는 제목으로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이 독립하기 위해 필요한 주택마련 방법과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체험에 대해 소개했다.
또 ‘삼녀삼색의 독립 이야기’라는 주제로 3명의 장애여성들이 독립생활을 하면서 얻은 삶의 노하우, 어려운 점 등을 소개한 바 있다.
앞서의 취재과정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독립생활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의 ‘독립생활’에 대해선 확신하지 못했다. 바로 ‘정신지체장애인의 독립’이다.
불행하게도 장애계 내부에서조차 정신지체인에 대한 인식은 지극히 의존적인 존재로 보는 게 사실이다.
진정 정신지체인은 돌봐줘야 할 사람인가, 독립생활은 불가능한 것일까.
광주광역시 우리이웃자립생활센터(이하 우리이웃)에서 일하고 있는 정광석(정신지체 2급)씨는 지난 2002년, 19년간 생활해오던 시설을 떠나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광석 씨가 시설에서 나오겠다는 의사를 피력했을 때 시설은 물론 그의 부모도 반대했다고. 이들은 과연 광석 씨의 현 상황이 밖에서 살아가는 게 가능할 것이며, 설사 생활한다 하더라도 힘들 텐데 그게 과연 행복하겠냐며 반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광석 씨의 어머니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생활하며 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나랑 같이 사는 것 보다 낫다.”고 이야기 할 정도다.
▲광주 우리이웃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정광석 씨 ⓒ 전진호 기자
정신지체인의 인지 방식에 대한 이해 필요해 우리이웃 주숙자 소장은 “센터 내에서는 광식 씨를 정신지체인이라고 생각지도, 구분 짓지도 않는다. 회의할 때나 이야기할 때나 똑같은 구성원으로 대하는 것은 물론 그가 원하는 교육이나 집회에도 함께 한다. 물론 가끔씩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이해할 마음이 중요한 거지 이해하려고 생각하면 별 문제될 게 아니다.”라고 설명하면서 “언젠가 광석 씨와 함께 다른 단체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는데, 광석 씨가 잘 이해 안 되는 이야기를 하니 피식 웃더라. 정신지체인을 바라다보는 그런 의식들이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힘들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광석 씨가 우리이웃에서 하는 일은 우체국 등기업무를 비롯해 사진인화, 복사, 물품구입 등 사무보조 업무.
휴무일인 매주 목요일이 되면 시내로 나가 영화 감상을 하고 커피를 마신다.
주 소장은 “통장관리를 비롯해 생활하는 모든 것을 광석 씨 스스로 알아서 한다. 우리이웃에서 해주는 건 그가 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면서, 풀어나갈 수 있도록 도움 주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또 “광석 씨가 사물을 인지하는 방식은 우리와 다소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버스노선을 가르쳐 주기위해 숫자를 암기토록 강요하면 잘 못한다. 하지만 광석 씨는 자신만의 방식인 시각적인 인지능력을 발휘해 그림으로 버스노선을 이해하고는 충분히 타고 다닌다.”며 “광석 씨가 인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해서 설명하고 이해시키면 본인 스스로 할 수 있다. 이를 자기 방식에 맞춰 지식을 습득하도록 강요하고는 ‘지적능력이 떨어져서 못한다.’고 단정 짓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낙인이 정신지체인 독립 가로막아
주숙자 소장의 말처럼 정신지체장애인라는 사회적 낙인이 사라졌을 때의 변화는 엄청나다. 이런 사례는 sbs의 ‘긴급출동 SOS24’에 방영된 이향균(정신지체 1급) 씨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당시 목포의 한 섬에서 10년간 갇혀 지내며 하루 14시간씩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학대당했던 향균 씨의 모습은 사회적인 충격을 던져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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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의 한 섬에서 노동착취 등의 학대를 당해sbs의 ‘긴급출동 SOS24’에 방영됐던 이향균 씨 ⓒ 전진호 기자 |
그를 만나기 위해 찾은 곳은 목포시에 위치한 한 목욕탕. 단골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능숙한 손길로 욕탕정리를 하고 있는 향균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초기 독립생활을 지원했던 허주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남지소장은 “섬에서 나온 후 우리 집에서 한 달가량 생활하면서 독립생활을 준비했다. 향균 씨를 학대했던 이가 법적처벌을 면하기 위해 준비한 합의금으로 거처를 마련하는 데는 그리 큰 어려움이 없었다.”며 “초기에는 그가 일자리를 얻고 혼자서 잘 생활할 수 있을까 우려했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 소장은 향균 씨가 독립생활을 원만하게 꾸려나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오가는 목욕탕에서 동등하게 자신을 대하는 이들과 부대끼다보니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 그 결과 정신지체장애가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만큼 사회성이 향상됐기 때문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허 소장은 “공과금 납부를 비롯해 생활하는 모든 것은 향균 씨가 알아서 하고 있다. 단 예전과 같은 학대상황 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연구소를 주축으로 주민자치회, 복지관, 동사무소가 관심을 갖고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그가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함께 이야기하면서 해결방안을 찾고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제도 마련 시급
앞서 소개한 2명의 사례를 통해 알수있는 시사점은 뭘까.
혼자서는 생활하기 불가능하고, 누군가가 옆에서 봐주고 챙겨줘야만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부정적인 인식이 이들의 독립생활을 가로막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희선 인권센터 팀장은 “정신지체인이란 걸 모를 경우 별 탈 없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신지체인들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데 방점이 찍혀 있는 사회적 인식이 이들의 독립생활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김 팀장은 “정신지체인의 독립생활에서 살 곳만큼이나 중요한 게 일자리 문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이들이 할 수 있는 직종개발이 너무도 안 되어 있다. 기존의 직종군에 꿰맞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할 게 아니라 이들의 특성에 맞는 일자리에 대한 제대로된 연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법률 역시 이들이 스스로 독립해서 생활할 수 없다는 데 무게중심을 둬 여러 가지 것들을 제한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 보다 능력을 개발하고 키워나갈 수 있도록 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는 사람’또는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을 깨는 것은 우리 전부의 몫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변화를 위해 선결되어야 할 것은 사회적 시스템 마련이다.
전무하다시피 한 정신지체인을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은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가장 기본적이며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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