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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성전환자들의 호적성별 변경 허가판결

성전환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확인받았다는 데에 큰 의미있어

본문

지난 6월 22일 대법원은 한 성전환자가 호적상 성을 남성으로 바꿔달라며 낸 개명․호적 정정신청 재항고 사건에서 성별 정정을 불허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 보냈다. 성전환자들의 호적성별변경을 허가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그동안 고통받아왔던 성적 소수자들의 행복추구권을 인정했다는 측면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환영할만 하다. 이에 〈함께걸음〉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바라보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아보았다.


"형님,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너무 수고하셨어요."
"그래 무지야, 너도 수고 많이 했다. 내 지난 오십 평생이 꿈을 꾼 듯 스쳐지나가는구나. 내 이것만을 보고 이제껏 달려왔나 싶은 것이 허탈하기까지 하다."
떠들썩한 언론의 가운데에, 대법원 당사자 A씨라고 소개되는 그와의 통화 내내 울컥대는 가슴에 고개를 주억거리다 결국 눈물 몇 방울이 흘렀습니다. 주민번호 뒷자리 숫자하나가 바뀌는 것뿐인데 그것을 위해 달려온 그의 오십 평생이, 그동안 이겨내야 했을 고통과 슬픔에 가슴이 쓰라리다 못해 먹먹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성별이 노출되는 신분증, 성전환자들에 대한 차별 가중시켜
일반적으로 '성전환자' 혹은 '성전환증자'는 생물학적 성과 정신적 성, 사회적 성(Gender Identity) 이 일치하지 않는 '성주체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GID-Gender Identity Disorder)' 을 일컫습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는 경우를 MFT(male to female)라고 하며,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는 경우를 FTM(female to male) 이라고 합니다.
그 원인에 있어는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두 주장이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주체성장애를 가진 성전환자들은 신체적 성과 정신적 성의 불일치에서 오는 성별위화감에 고통을 받으며, 남성과 여성이라는 절대적인 양성구분을 토대로 형성되어 있는 사회 속에서 여러 가지 내외부적인 억압을 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성별위화감의 정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첫 번째로 타고난 신체적 성의 상징들을 혐오하면서 시작됩니다. 보통 2차 성징으로 인해 나타나는 뚜렷한 신체적 성의 특징은 자신의 몸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워할 정도 당사자에게 커다란 혼란과 혐오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화장실의 불을 모두 꺼둔 채로 샤워를 한다거나, 극단적으로는 수술을 받지 않아 군대를 가게 된 MTF(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는 사람)가 극한에 치달아 자신의 성기를 자르는 예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성별위화감은 사회 생활하면서부터 더욱 커지기 시작 합니다. 가슴에 붕대를 감고 생활한다거나, 남녀공용화장실을 찾아 헤메고, 병원에 가지 못한다거나 (여성병동에 입원하는 압박감으로 암 진행을 검사받지 않고 죽어간 예) 하는 등 그 정도가 더 심해집니다.
특히나 성전환증의 1차적인 치료에 해당되는 호르몬 주사나 일부수술을 끝낸 사람들은 그 외형과 호적상의 성별의 불일치로 인해 직업 찾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성별이 표기된 신분증은 구직활동은 물론 혐오범죄의 대상자가 되기도 해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특히나 혐오범죄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예로 필자가 학원 강사로 일 할 때에 우연찮게 신분증이 노출되어 친하게 지내던 동료강사 둘에 의해 치명적인 성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또 한번은 성전환자인 사실을 모르고 사귀었던 여자친구에게 신분증을 들킨 뒤 그 주변사람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한 적도 있었지요. 구타에 의한 몸의 고통보다는 제게 폭력을 가했던 형과 후배들, 그들과 조심스레 쌓아왔던 우정과 시간들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그 허탈감과 배신감, 그리고 이렇게 태어난 내 존재 자체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저를 더 힘들게 하였습니다. 사실 성전환자라 불리어지는 이들 모두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닐 테지요.)

그렇다보니 이들을 이해하는 '마음씨 좋은' 회사를 운 좋게 만나지 않는 이상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는 일을 찾아 헤메게 됩니다. 그래서 주위의 성전환자들을 보면 공무원과 같이 신분증을 드러내지 않거나 드러내도 지장이 적은 직업을 가지지 않는 경우라면 성매매, 신문 돌리기, 배달직, 공장노동자, 일용직에 종사하거 있거나 노숙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종종 불법으로 호적을 취득하거나(아는 사람의 신분을 빌리는 등) 위조하여 취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에 노동도중 사고를 당하게 되어도 보상조차 받을 수 없는 현실에 취하게 되고 결국 빈곤에 빈곤을 거듭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성전환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필요해
성별이 표기된 신분증을 내미는 것이 관례가 된 이 사회에서 성전환자들은 신분증을 요구하는 모든 상황들(예를 들어 취업, 입학, 관공서업무, 은행, 선거 등, 하다못해 술자리에서 흔히 하는 신분증검사까지) 때문에 사실상 사회활동이 불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싼 가격에 수술을 해준다는 병원에 가서 검증되지 않는 수술로 의료사고를 당하고, 강간을 당해도 강간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는 등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지경에 놓여 있습니다.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내야 하는 성전환자가 성별위화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체적 성을 정신적 성에 일치시키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미 한국 의학계나 외국의 입법례를 통해 검증된 사실이지만, 한국에서는 성전환자를 위한 의학계의 명확하고 안전한 가이드라인조차 없습니다. 또한, 의학적 조치를 받아 어느 정도까지 신체적 성과 정신적 성이 일치한 자들에 대한 입법적 고려도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와중 지난 5월 18일 성전환자라 불리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수년전 호적정정을 신청했으나 하급심에서 패소한 성전환자 3명이 각각 대법원에 재항고를 했고 그렇게 계류되어 있던 3건 중 한건인 50대의 FTM에 대한 심리가 열린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사실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 허가는 전적으로 재판장의 재량에 달려있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부산 지방법원에서 호적정정 결정이 잘 나오더라' 하면 그 지방법원을 찾아가는 식이었고, 허가가 될지 안 될지도 불확실한데에다 변호사 선임비용, 정신과 진단서, 의사 소견서 등 성별변경을 하려면 최소 2천만원 이상 소요됩니다.
그나마도 조금씩 허가 판정이 나던 것이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는 3건으로 인해 기각되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열린 이번 심리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문제에 관한 일종의 지표와 기준이 마련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작년 10월부터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 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가 꾸려지고 수차례의 수정과 회의 끝에 법 초안이 완성되어 있던 상황이어서 갑작스런 대법원의 심리 결정에 잔뜩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름,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리고 6월 22일 대법원의 판결이 나던 그날, 저는 직업훈련을 받고 있는 상태라 현장에 있지 못했습니다. 수업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던, 땀이 촉촉하게 맺힌 손을 꼼지락거리며 혀를 달싹거리고 있던 2시 10분 52초가 지나가던 무렵, 한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한무지씨, 소식 들으셨습니까? 대법원에서 허가 판정이 났답니다. 일단 소감한마디 말씀해주시죠." 가슴 깊숙한 곳에서 밀려오는 기쁨 때문에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열악한 현실에 처해있는 성전환자에 대해 대법원이 성별을 정정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관련 법률조차 없는 현실에서 제도적으로 성전환자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전환자들의 생존권, 행복추구권 등의 헌법상 기본권을 확인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 받아들였다는 것에서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성별이 성염색체로만 결정되어 질 수 없다는 의학적 판단과 세계적인 추세를 받아들이고, 한국의 여러 소수자에 대한 인식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판결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헌법도 명시되어있는 기본권을 철저하게 박달당해 왔던 성전환 당사자들에게 실로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결정이었다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결문은 성전환 당사자들에게 많은 우려와 아쉬움도 주었습니다. 그것은 성전환증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의사만능주의, 그리고 성전환자들의 현실적인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음이 곳곳에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미 의학계에서는 성전환증을 정의하면서 그들의 성정체성을 돌리기보단 정신적 성에 일치하게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는데, 법원에서 이것을 정신질환의 일환으로 본 것은 성전환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외부성기'를 명시하며 '성기재건수술'까지 요구를 했다는 지점은 더욱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하는 경우 외부성기의 성형까지 마치기 위해서는 더욱 거액의 수술비가 들어갈 뿐만 아니라, 아직 의학기술이 발달되지 않아 완전하지도 못하고 시술이 가능한 병원도 적으며 예후도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첫걸음을 시작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현실들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 많은 활동과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저는 어찌된 일인지 벌써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겨우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는데 말입니다.
화장실 앞에 쭈그려 앉아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다며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던 후배, 왜 하필 내가 이렇게 태어났는지 모르겠다며 혹 아냐고 이유라도 알면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겠다며 서럽고 긴 울음을 토하던 선배의 얼굴들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사실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신체적 성과 정신적 성이 일치하지 않아 고통 받고 극복하기 위해 수술을 받는다는 것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다를 것 이 없는 이들입니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이들입니다.
욕심일까요? 아니요. 욕심을 부려야겠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성전환자들을 비롯한 모든 소수자들이 조금 만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틀리고 옳지 않은 것이 되어버리는 현실에서 조금 만 더, 아니 성큼성큼 한 백발자국은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무지개축제 때에 쓰였던 한 문구가 생각이 납니다.
"친구! 난 네가 행복해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글 한무지(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대표)
작성자한무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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