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껍질을 깨고, 장애를 당당히 드러내자
본문
![]() |
|
| <함께걸음>은 그동안 감춰져왔던 장애를 당당하게 드러내보자는 취지로 2003년 8월호부터 표지사진을 통해 장애를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이러한 취지로 촬영한 표지들. |
세상의 많은 진실들 중에서 장애우, 특히 장애여성의 ‘몸’에 대한 진실만큼 단단한 껍질에 싸여있는 진실도 없을 것이다. 장애우의 몸은 그동안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감춰져온 진실 중 하나였다. 장애우의 몸이 드러나고 자세히 묘사되는 순간은 일상이 아닌 의료에 국한돼 있고, 그 밖의 장소에서 그 밖의 사람들에 의해 장애가 드러나는 일은 금기시 됐다. 그러는 동안 장애는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대상’으로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장애아동을 보면 알겠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자신의 몸을 가리고 감췄던 게 아니다. 장애가 있는 자신의 몸을 그저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인식했던 아이들이 자신의 몸을 감추게 되는 순간은 자신의 몸을 드러냈을 때 보이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경험하면서부터다. 딱히 말을 하지 않더라도 바라보는 ‘시선’에서 ‘감추라’는 메시지를 전달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메세지는 장애가 있는 사람만 전달 받는 것이 아니다. 장애우의 가족 역시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장애가 드러나지 않도록 옷을 입히고, 심지어는 장애가 있는 가족원이 눈에 띄지 않도록 아예 방안에 꼭꼭 숨기기까지 했다.
그래서 장애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수영장이나 목욕탕에 가보기는커녕 더운 여름날에도 옷조차 시원스레 맘껏 입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장애우가 자신의 몸을, 자신의 장애를 당당하게 드러냈을 때 당황하는 건 오히려 그 몸을 보는 상대방이다.
장애를 당당히 드러낸 <함께걸음> 표지, 어때요?
그동안 <함께걸음>은 이렇게 감춰져왔던 장애를 당당하게 드러내보자는 취지로 표지 사진을 통해 장애를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작업이 벌써 ‘장애 드러내기’ 다섯번째 프로젝트다.
장애우 4명이 냇가에 앉아 장애로 얇아진 다리를 드러내고 찍은 사진을 2003년 8월호 표지로 사용하면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2004년 6월,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조병찬(남, 뇌성마비1급) 씨가 한국 최초로 찍은 장애우 누드사진이 표지로 나가면서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9월에는 이태준(남, 뇌성마비3급) 씨가 상반신을 벗어 근육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을 드러내고 도도한 표정으로 표지 사진을 찍었고, 2005년 8월엔 어릴 적 교통사고로 왼팔이 팔꿈치 위에서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던 송희정(여, 지체급) 씨가 당당하게 절단된 팔을 드러낸 채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표지 사진을 찍기도 했다.
표지를 통해 장애를 드러낸 사진이 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병찬 씨의 작품은 ‘장애우 누드’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고, 태준 씨의 작품은 모 은행에서 ‘멋있다’며 사진을 사용하고 싶다는 연락이 오기도 했다. 희정 씨의 경우엔 일본에서 장애운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급진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뜨거운 관심을 모았을 뿐만 아니라 국내 모 여성지가 희정 씨 이야기를 취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경험이 쌓여도 장애를 드러내는 이 작업은 매번 우리를 긴장하게 만든다. 우리 역시 사람들의 시선과 예상치 못한 반응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될는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왜곡되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 특히 이번호 표지 사진은 ‘장애 드러내기’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부터 내내 머릿속에 그려왔던 일이고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모델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가 않아서, 결국 “오랜 세월 앉아서 생활하면서 휘어져버린 척추를 따라 장미 넝쿨을 그려 넣고 강인함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등 사진을 찍을 여성 모델을 구한다”는 입소문을 낸지 2년이 훌쩍 넘어서야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획하고 기다렸던 일인데도, 이번 작업은 다른 때보다 훨씬 긴장이 됐다.
몸을 보는 ‘색안경’을 벗어보세요
![]() |
|
| ⓒ정선아 객원사진기자 |
이번호 표지에 모델로 참여했던 김지수(여, 지체1급) 씨는 이번 작업을 하기 전은 물론이고 마치고 나서도 ‘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인터뷰 기사 참고).
그건 <함께걸음>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표지 사진을 찍기 전보다 찍은 후에 더 걱정이 됐다. 작업이 만족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델이 ‘여성’이기에 우리가 의도했던 것과 달리 사회적으로 덧씌워질 많은 것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온 신경이 곤두설 만큼 바짝 긴장이 됐다. 모델이 남성이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우리가 ‘장애여성의 몸’을 특집으로 기획하게 된 건 그런 이유다.
표지 사진만 나가거나 ‘표지 이야기’ 수준으로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겠다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특집을 통해 ‘장애여성의 몸’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다루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기획하고 준비하고 고민하는 동안, 그리고 이를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우선, 우리 개개인이 사회가 머릿속에 심어준 이상적인 몸에 얼마나 기대 있었고, 그 때문에 그 ‘이상(理想)’에서 벗어난 자신의 몸에 대해 얼마나 열등하게 느끼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여성의 몸’이라는 말을 들으면 장애가 있든 없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아닌 사진에나 등장하는 이상적인 몸을 머릿속에 떠올렸고, 거울을 보면서는 우리 혹은 우리 주변 사람의 몸이 아니라 매스컴을 통해 세뇌된 이상적인 몸과 자신의 몸을 비교했다.
그러나 ‘장애여성의 몸’은 이러한 ‘36-24-36’으로 대표되는 상업화된 몸의 기준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 때문에 ‘장애여성의 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과정은 오히려 이러한 상업화된 몸의 기준에 대해 찬찬히 뜯어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내 삶을 기억하는 몸, 잣대를 들이대지 말자고요
그리고 이번 작업을 통해 장애여성의 몸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발견하면서 기존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들이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장애가 있는 몸’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른 몸을 바라보는 시각까지도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당신이 이번 기획을 통해 장애우의 몸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장애우에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 당신에게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 사회가 강요했던 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당신의 몸이 지닌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눈을 떴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루벤스나 렘브란트의 그림에 등장하는 잔뜩 부풀어 오른 듯 풍만한 여성의 몸을 보면서는 아름답다고 느꼈지만 자신의 풍만한 몸에 대해서는 콤플렉스만 느꼈던 당신이라면, 이제는 풍만한 당신의 몸에서 그림 속의 여인처럼 여유롭고 따스한 아름다움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 |
||
|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마다 달랐다. 루벤스나 렘브란트 등의 화가들이 활동했던 바로크시대(17세기)에는 잔뜩 부풀어 오른 듯 풍만하고 건장한 여성의 몸을 아릅답게 여겼다. 44사이즈의 마른 몸을 선호하는 지금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림은 왼쪽부터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부엌의 하녀'(1660년경)와 렘브란트 반 레잇의 '밧세바'(1654년)다. | ||
아이를 임신하고 낳아 기르면서 행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예인 누구누구가 아이를 낳고 몇 개월만에 예전의 몸매를 회복했다’는 기사를 보고나면 우울해졌던 당신이라면, 이제는 소위 ‘망가졌다’고 여겨지는 당신의 몸을 보면서 오히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곤 기분 좋아할지도 모른다.
당신의 몸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당신만의 기쁨과 슬픔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기록해온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은 사회가 강요했던 몸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때만 가능하다.
‘장애’는 수많은 정체성 중 하나일 뿐
이번 작업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하고 저지른 실수 하나를 알게 됐다. 그동안 우리는 장애를 드러내는 이 작업을 통해 ‘장애가 아름답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장애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데 치중하는 동안 중요한 사실을 잊었다. 정작은 ‘장애가 아름다워야’ 했던 것이 아니었다. 장애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장애에 가려 그 사람이 지닌 다른 것들이 부정되면 안 된다는 게 더 중요했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
언젠가 레즈비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도 되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레즈비언이라고 말하기 전에 나는 약간 터프하고, 좋고 싫음이 분명한 성격이며,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는데, 사람들에게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걸 밝히면 그 순간 내 다른 모든 정체성들은 사라져버리고 레.즈.비.언.이라는 사실만 남더라. 더 이상은 인간 000가 아니라 레즈비언 000인 거지.”
장애 역시 비슷한 메커니즘이 있다. 그래서 장애가 있으면 장애 이외의 모든 정체성이 무시되고 장애가 있다는 사실만 남는다. 이제껏 이 점을 비판해왔으면서도 우리 역시 똑같은 실수를 하고 있었다. 그의 다른 모든 정체성을 무시한 채 ‘장애’에만 초점을 맞추고 거기에서만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다른 많은 아름다움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낀 데에는 장애만 있지 않았다. 다른 모든 것이 어우러져 그 사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장애를 통해서만 그걸 읽어내려 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이 그제야 느껴졌다.
몸에 대한 새로운 담론 만들어 봐요
이번 특집은 우선 ‘장애여성의 몸’을 특집으로 기획하면서 우리가 했던 고민을 정리하고, ‘수다방’의 형식을 빌려 장애여성이 말하는 ‘장애여성의 몸’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을 중심으로 기획됐다. 특히 수다방은 장애 유형과 나이, 그리고 결혼과 출산 경험 등을 고려해 구성해 보다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담아보려고 노력했다.
또 ‘정신지체 여성의 몸’은 다른 장애 여성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돼 만화 형식으로 따로 꾸몄다. 특히 정신지체 여성의 경우 사전 취재 과정에서 ‘몸에 대한 이미지’를 묻자 성폭행, 원치 않는 임신·출산, 불임수술 등이 1, 2위를 다투며 쏟아져 나왔다. 매스컴의 영향이리라.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가 굳어지면 결국 정신지체 여성의 몸은 ‘보호의 대상’ 이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고민을 만화에 담아봤다.
그리고 최근 장애여성의 몸, 성과 사랑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이 제작돼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이 영화는 장애여성의 인터뷰를 엮었지만 ‘장애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비장애우의 시각 또한 잘 드러나 있다고 판단돼 간단한 영화 소개와 함께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지막으로 장애가 있든 없든 우리는 옷을 살 때 사회가 요구하는 몸과 내가 얼마나 다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장애여성의 경우엔 이러한 스트레스가 더욱 심하다. 이런 의미에서 제1회 반성폭력페스티벌 ‘포르노포르나’(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주최)에서 열었던 장애여성 패션쇼는 어찌 보면 이러한 획일적 몸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행사를 기획했던 김선미 씨와 당시 이 패션쇼 참가자들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편견에 도전하는 당신을 지지합니다
여성학자 정희진 씨는 “기존의 지배 규범,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렌즈를 착용했을 때 느끼는 눈의 이물감처럼 이러한 새로운 언어가 우리를 불편하게 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새로운 언어가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지지해줄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이번 작업 역시 기존의 ‘상식’에 도전하는 일이다. 우리의 머릿속에 세뇌된 ‘여성의 몸’의 이미지에 도전하고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에 저항하는 일, 그렇게 ‘장애여성의 몸’에 대해 새로운 언어를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혹여 당신의 눈에 낯설고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은 우리의 몸에 대해 바라볼 새로운 렌즈를 갖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불편함이 익숙해질 무렵이면 우리는 장애우만이 아니라 비장애우까지도 스스로 자신의 몸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타인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을 통해 ‘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장애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는 일은 아직 초기 단계이며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번 기획이 여기에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기획을 통해 당신 역시 우리가 깨달은 것들을 함께 느끼고 공감할 수 있기를, ‘장애여성의 몸’에 대한 건강한 담론이 더 활발해지기를 소망한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윤근영님의 댓글
윤근영 작성일이런 기사를 처음 접하내요. 그래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애독자가 될 것 갔습니다.
보테슈머님의 댓글
보테슈머 작성일
당당한 삶의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울적해지더군요...
많은 용기를 주어서 감사.....
문 형기님의 댓글
문 형기 작성일
오늘 MBC스페셜에서 보았어요...
김지수님의 당당한 삶의 이야기를~~~
많은 용기를 복돋어줍니다!
더욱 열심이 살아야겠습니다.
홍순일님의 댓글
홍순일 작성일
그동안 저도..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저.. 동정이라는 이름의 값싼 시선만을 .. 그들에게 보냈을 뿐..
중요한 건.. 그들을 향한.. 마음 그 자체임을 깨닫습니다..
오정훈님의 댓글
오정훈 작성일드디어 봤네요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