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FTA, ‘콤비드’ 특허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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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만 생명을 볼모로 한, '콤비드' 특허
2006년 8월 7일, 방콕에 있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사 앞에서 태국 HIV/AIDS감염인 5백여 명이 에이즈치료제 '콤비드'(Combid) 특허신청을 취소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1997년에 영국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에이즈치료제 콤비드 특허권을 태국 지적재산권부에 신청했다. 콤비드는 기존의 '라미부딘(3TC)'과 '지도부딘(AZT)'을 혼합한 것이고, 1차 에이즈치료에 널리 사용하는 약이다 태국의 에이즈운동단체들은 콤비드가 위 2가지 약을 혼합한 것일 뿐 새로운 약이 아니기 때문에 특허를 인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해왔다.
현재 태국 국영제약회사는 현재 '질라비르(Zilavir)'라는 이름으로 같은 물질의 복제약을 생산하여 콤비드의 1/6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콤비드 특허를 인정하면 이 질라비르도 더 이상 생산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태국 국영제약회사가 생산하는 라미부딘, 지도부딘, 네비라핀의 3가지 혼합약인 GPO-vir 의 공급도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요건을 갖추지도 않은 콤비드 특허를 인정하면 태국 국영제약회사가 만들어 저렴하게 공급하는 질라비르와 GPO-vir 는 생산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콤비드 독점화로 가격은 더욱 비싸지고 태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가에이즈치료프로그램에도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태국에이즈환자들은 우려했다. 태국에는 70~80만 명의 HIV/AIDS감염인이 있다. 콤비드에 대한 특허는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다.
태국에서 시위가 있은 지 이틀 만에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태국 에이즈운동단체에 서신을 보내 콤비드 특허신청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태국에서 뿐만 아니라 콤비드를 판매하는 모든 국가에서 콤비드에 대한 특허와 특허신청을 취소하겠다는 것이다.
FTA, 영원한 특허가 목적
태국 콤비드 사례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한국에서도 '글리벡' 특허를 독점해, 백혈병 환자에게 한달에 3백~7백50만원을 강요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콤비드 사례에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새롭고 더 나아진 것이 아니어도 특허를 얻기 위해 초국적 제약회사가 무진장 용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똑같은 약이어도 용도가 바뀌거나, 형태가 물약에서 알약으로 바뀌거나, 혼합 했을 뿐인 경우에도 특허를 얻으려고 한다. 미국은 이런 경우 특허를 모두 인정하고 있고, 다른 나라에게도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미국식으로 바꾸라고 강요하고 있다. '새로운 것'의 범위를 계속 넓혀서 특허 범위를 확대하고, 복제약 생산을 막아서 독점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지금 미국 속셈이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한지 20년이 지나면 아예 특허기간을 20년에서 30년, 40년으로 연장하라고 직접 요구할 것이다.
콤비드 사례는 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전초전에 불과하다. 6차 협상까지 진행된 태-미자유무역협정에서 미국은 형태나 용도의 변화 등에 대해서도 특허를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어 특허의 영구화가 우려된다. 미국 요구대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콤비드는 다시 특허를 받게 될 것이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 것인가?
가격에서 뿐만 아니라 의약품의 연구, 개발에도 돈 없는 환자를 배제한다. 제약회사 애보트는 냉장보관을 해야 하는 에이즈치료제를 개발해 내놓았다. 대부분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 민중에게 냉장고에 보관하라니. 냉장 보관하지 않는 알약을 만들라는 의사와 환자들의 요구가 빗발치자 애보트는 그제서야 그렇게 했다. 물론 그 약도 비싸서 못 먹기는 매한가지지만 말이다.
에이즈환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 아프리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상식으로 생각해도 환자를 위한 치료제를 만들려면 에이즈환자가 제일 많은 아프리카 상황을 고려했어야 한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돈 없는 대륙이기 때문에 제약회사가 버린 땅이다.
어린이 에이즈치료제도 제약회사는 관심이 없다. 어린이가 먹기 쉽게 용량을 조정한 에이즈치료제를 생산하는 제약회사는 아직 없다. 2003년 아시아에서 에이즈 때문에 생긴 고아가 8천760만 명이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는 4340만 명이다. 하지만 북미와 유럽에 사는 에이즈 감염 어린이는 각각 5백 명이다. 초국적 제약사는 어린이 에이즈치료제가 선진국 시장에서 큰 이윤이 남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없다. 애보트 사례나 어린이 에이즈치료제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재정적 문제다. 제약회사가 기술이 부족해 개발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일 뿐이다. 즉, 초국적 제약회사는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지 결정하고 있다.
콤비드 특허는 빙산의 일각
초국적 제약회사는 세계무역기구를 통해 의약품 특허와 20년간 특허보호기간을 전 세계에 강요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특허권으로 가격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과 미국에서 팔릴 수 있는 최대 가격을 요구한다. 하지만 초국적 제약회사는 떼돈을 벌기위해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지적재산권에 관한 세계규칙을 변화시키고, 의료시스템을 더욱 상업화하려 한다. 자유무역협정 특허권 강화뿐 아니라 각국의 의약품제도, 의료제도에 직접 개입하려고 하며, 제약회사가 정부도 직접 제소할 수 있는 권한까지 획득하고자 한다.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장담하건대 약값은 올라간다. 그런데 자유무역협정의 영향은 약값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유무역협정은 치료제를 만드는 능력까지 제거하려고 한다. 현재 에이즈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초국적 제약회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도, 브라질, 남아공,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짐바브웨 등 많은 국가에서 에이즈치료제를 국내에서 싸게 생산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공공제약회사를 통해서 혹은 강제실시를 통해서 혹은 인도의 값싼 복제약 수입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민사회단체들이 글리벡과 똑같은 약이지만 가격은 1/10도 안되는 인도의 복제약을 수입하기위해 강제실시를 청구한 바 있다. 그런데 콤비드 사례가 보여주듯이 초국적 제약회사는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값싼 약을 공급하고자 하는 정부와 국제기구의 노력과 환자들의 투쟁을 무력하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유무역협정은 의약품의 공급과 약가는 물론 의료제도에도 영향을 끼친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자유무역협정이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직접 흔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거짓 선전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나마 국민건강보험제도 때문에 글리벡의 약값이 비싸도 백혈병환자들이 글리벡을 복용할 수 있었다. 우리 나라는 국민건강보험재정에서 약제비 비중이 OECD국가들과 비교 하면 높은 편이다. 그래서 정부가 약제비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세우자, 미국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협상에 아주 도움이 되지 않는 발표'라며 한미자유무역협정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게다가 보험상품을 확대하라는 요구는 민간보험상품 활성화와 더불어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다. 민간보험을 활성화하면 에이즈환자, 백혈병환자, 장애우, 노숙인 등은 더욱 의료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된다. 지금도 에이즈 환자와 중증질환에 걸린 환자는 민간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노숙인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외에도 자본을 위한 다양한 무기가 자유무역협정 속에 있다. 한국 측 협정문 초안 제8장 투자조항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nvestor-state claims)'나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등에 대해 '비위반제소'를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런 조항은 한국 보건의료정책, 제도나 법적 판결 때문에 제약회사가 '투자상 손해' 혹은 '지적재산권 때문에 기대한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분쟁절차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생명포기각서를 쓸 것인지 말 것인지
일단 태국 민중은 승리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특허신청을 취소시켰고, 태국 에이즈환자의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태-미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콤비드 특허인정은 언제든 다시 쉽게 할 수 있다. 오히려 콤비드 특허는 자유무역협정의 파괴력에 비추어볼 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태국과 한국의 특허제도가 약간 다르긴 하다. 그리고 의료제도도 다르다. 하지만 미국이 들이민 자유무역협정문은 비슷하고, 초국적 제약회사가 바라는 것도 동일하다.
한국정부는 '일정부분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피해부분에 대한 보상대책을 수립하여'라는 단서를 달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생명을 내주는 마당에 피해를 일정부분 감수할 것이 어디 있는가? 이제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은 생명포기각서를 쓸 것이냐 말 것이냐 두 가지뿐이다.
글 권미란(공공의약센터)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장담하건대 약값은 올라간다. 그런데 자유무역협정의 영향은 약값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유무역협정은 치료제를 만드는 능력까지 제거하려고 한다.
그런데 콤비드 사례가 보여주듯이 초국적 제약회사는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값싼 약을 공급하고자 하는 정부와 국제기구의 노력과 환자들의 투쟁을 무력하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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