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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한 끼 밥 보다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더 절실해요”

르뽀 : 무료급식현장을 찾아서

본문

 지난 해 말 우리나라가 국제금융관리체제에 들어간 이후 공원이나 역 주변에서 무료급식을 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전 같으면 일하기 싫어하는 부랑인들이나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이 무료급식을 한다고 여겼는데 경제상황이 나빠지고 구조조정과 함께 실직자가 대규모로 발생하면서 최근에는 할 수 없이 무료급식 행렬에 줄을 서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래서 무료급식을 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예년과 비교해 부쩍 높아졌는데 함께걸음은 실직자와 노인, 결식아동에게 무료급식 하는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오전 11시. 용산역 광장은 대규모 야외식당으로 바뀐다.

 역 광장 한켠에 서 있는 트럭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줄을 서 식판에 밥과 반찬을 받아 와 바닥에 주저 앉아 식사를 한다. 어느 덧 친숙하게 된 사람들끼리 동그랗게 모여 식사하는 사람도 있고 담밑 난간에 엉덩이만 걸쳐놓고 고개를 푹 숙인채 숨 돌릴 틈도 없이 단 몇 분 만에 얼른 해치우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하면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다정하게 나란히 앉아서 식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 앞에는 배고픈 비둘기떼가 ‘구구’거리며 머리를 땅에 박고 걸어 다닌다.

 혹 식판에서 먹다 남은 음식물이 떨어지지 않나 해서 주변을 맴도는데 워낙 시장했던 사람들인지라 설거지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식판을 비워버리기 때문에 비둘기 몫이 남을 리가 없다.



 용산역에서 만난 사람들

 음식을 나눠주는 사람들은 용산역 근처에 있는 기독교 선교단체인 ‘하나님의 집’(대표 유연옥)에서 나온 전도사들이다. 95년부터 용산역에 나와 비가 오는 날에도 비닐장판을 쓰고서 배식을 해 온 이들은 일주일 중 토요일만 제외하고 매일 오전 11시에서 12시 사이에 4백50명분의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급식이 거의 끝날 즈음 한쪽에서 실갱이가 벌어진다.

 “술 드시지 말고 오시라고 했죠. 오늘은 드릴 수 없으니 내일 오세요.” “내일? 내일은 나 안 올지 몰라. 밥 한 그릇 갖고 되게 그러네.”

 “저도 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술 드시지 말고 오세요.”

 오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온 남자가 밥을 달라고 하자 남자 전도사가 이를 저지하는 것이었다.

 이 곳에서는 밥을 나눠주는데 있어 한 가지의 원칙이 있다. 다름 아닌 술이다. 종교단체에서 급식을 하기 때문이어서만은 아니고 오랫동안 배식을 하다 보니 술을 마시고 올 경우에는 대부분 입맛이 없어 음식을 먹지 못하고 다 남기고 가거나 억지로 먹었다가 토해내는 게 보통이기 때문에 술을 먹고 왔을 때는 밥을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반찬을 조금만 더 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도 있다.

 “계란 하나만 줘요” “계란은 없으니 밥을 더 드세요.” “에이, 그러지 말고 하나만 더 줘요.  나 계란 좋아하는데.” “아저씨 하나 더 드리면 다른 사람도 다 달라고 하니까 안돼요.” “계란이 맛있으니까 그러지” “주일 날 계란 조림할테니 그 때 와서 드세요.” “난 조림은 싫어.”그러고는 휙 가버린다.

 이런 내용의 실갱이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일어나기 때문에 음식을 나눠주는 데에는 위엄도 있어야 하고 한 번 안된다고 한 것은 끝까지 안 된다고 밀고 나가는 배포도 있어야 한다.

 그런가하면 개중에는 자신들이 먹은 식판을 한 곳에 차곡차곡 모아 놓는 사람도 있다.

 목발을 짚고 있어 이동하기가 불편할 텐데 배식이 다 끝날 즈음 본인이 사용한 식판은 물론 다른 사람이 사용한 것까지 한 곳에 모아놓던 그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저 얻어먹기 미안하니까 이런 거라도 해야지요”하며 배식을 했던 한 전도사에게 고맙다는 악수를 청하기도 한다. 왠지 그에게 남모를 사정이 있을 것도 같아 그이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았다.

 “일하다 다리를 다쳤어요. 그 다음부터 수입이 없어서 집안에만 있었는데 방세가 자꾸 밀리니까 집주인이 찾아와 자꾸 닦달을 하는 데 집에 붙어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얼마 전에야 장애우등록을 했는데 지체 5급이라 장애우수당도 받을 수 없고 겨우 영세민등록만 했는데 석 달만에 한 번씩 나오는 생활보조금만으로 생활하기가 너무 곤란해요. 그래서 이렇게 나와서 한 끼를 해결하는 거죠.”

 그러다 그이는 갑자기 무료급식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좀 전까지만 해도 본인도 몸이 불편해 무료급식을 받고 있다고 해놓고 무료급식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 앞 뒤가 맞기 않아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저야 몸이 불편해서 이 곳에서 밥을 타 먹지만 여기서 급식을 하는 사람들이 죄도 몸도 성한데 일을 하지 않고 공짜로 먹고 살려는 사람들이에요. 용역이라도 나가서 최하 3만5천원이라도 벌어서 생활하면 되잖아요. 공짜만 바라는 인생은 파리보다 못해요. 급식을 중단시키면 노숙자들이 범죄자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라구요.”

 희망의 집이다 부랑인시설이다 뭐다 해서 서울시가 노숙자들 보고 어디 들어가 살으라고 하지만 거기서 간섭받으며 받아먹는 것도 결국 하루 세끼지만 여기서도 자유롭게 나다니며 밥 세끼 챙겨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귀띔이다.

 무료급식소를 다 없애 버리면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거냐고 하자 “누가 2백2십만원만 빌려줬으면 좋겠어요. 그 돈으로 구두수선 점포를 하나 내서 일을 하고 싶어요. 다리가 불편해 다른 일을 잘 못하지만 구두닦는 일은 잘 할 자신이 있거든요. 그렇게 해서 매일 빌린 돈을 조금씩 갚으면 이런 떠돌이 생활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래서 그이는 2백2십만원을 빌려줄 사람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모님도, 아는 친척도, 보증을 서 줄 사람도 없는 그이에게 2백2십만원을 빌려줄 사람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닐터였다. 그래서 그이 나름대로 생각해 낸 방법이 간혼 언론에서 노숙자 관련 인터뷰를 하면 성실히 대답을 해주고 이렇게 자신의 바람을 덧붙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이에게 단 한끼의 식사를 대접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있어도 2백2십만원을 선뜻 빌려줄 사람은 쉽게 나타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이는 올 겨울도 계속 거리에서 식사를 할 수 밖에 없다.

 식사가 다 끝나고 배식차도 떠나버린 광장은 조금 전과는 달리 아주 썰렁하다. 날씨가 추우니까 식사를 마친 노숙자들도 지하도로 내려가든지 나름대로의 은신처에 몸을 녹이려 가버리는데 허름한 옷차림의 40대 남자가 이제야 어슬렁어슬렁 나타난다. 술을 마신 것 같지도 않은데 아무데나 앉아 주머니에서 담배꽁초를 꺼내 입에 물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순간 기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며 기자를 불렀다.

 “여기서 뭐 하세요?” “그냥 앉아 있어.” “무료급식 방금 끝났는데.” “알아, 조금만 더 일찍 왔어야 하는건데. 몸이 불편해서 말야.”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한쪽 다리를 바쳐 붕대로 감싸고 있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뭘 어떡해. 굶어야지. 이게 아침겸 점심인데. 지나가다 길거리에 부스러기 떨어진거 있으면 그거라도 주워 먹어야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남자가 정시병원에 강제로 입소됐다가 지난 해 퇴원을 한 사실과 그 후 계속 이렇게 떠돌아다니며 지난 해 비 오는 날 주민등록증과 유일한 재산인 숟가락을

잃어버렸다는 것. 역에서 잠을 자다가 다른 부랑인과 싸움이 붙어 지난 4월17일 경찰서ㅔ 끌려갔다가 경찰한테 맞아 다리가 부러졌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다친 데는 어디서 치료를 했냐고 하자 자신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킨 친척이 해줬다고 한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갈 거냐는 물음에 “글쎄, 어디로 갈지 잘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쉰다.



 어차피 하루 밥 끼니 해결하자는 일

 다음으로 노인들이 주로 식사를 하는 탑골공원에 가보았다. 날씨가 푸근해서인지 이른 아침부터 배식표를 받기 위해 늘어선 행렬이 오전 11시 30분쯤 되자 공원의 3분의 2를 둘러쌌다.

 그 중 한 쪽 팔에 기브스를 하고 계신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필동에 산다는 이 분은 올해 나이가 60세다. 몸도 불편하신데 집에서 식사하시지 여기까지 나오셨냐고 하자 “새마을 봉사회에서 목요일마다 침을 놔주기 때문에 침도 맞을 겸 나왔다가 겸사겸사 식사도 하고 갈 거”라고 하신다. 계단에서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단다. 젊어서 일을 많이 해서 손가락이 말을 잘 안듣는다는 할아버지는 현재 할머니랑 두 분이 사시는데 팔이 부러져서 직장도 못 다닌다고 속상해 하셨다. 슬하에 자식은 없냐고 하자 “있지만 따로 살아. 생활비? 죽지 않을 만큼만 대 줘. 사는 게 뭔지 몰라. 죽는 게 낫지. 약국가서 죽는 약 달라고 했는데 안 줘. 할멈도 친정에 갔어. 추워서.” 할머니마저 친정에 가버리시자 손수 점심밥을 차려 먹기가 그랬던지 할아버지는 이 곳에 나와서 드신다고 한다.

 그러나 탑골공원에 나온 모든 어르신들이 다 줄을 서서 배식표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집안에만 있자니 심심해서 소일할겸 나오시는 분들도 많다.

 올해 77세라고 하시는 할아버지는 멀리 일산에서 여기까지 오셨다고 한다. 일산이 집이면 집도 먼데 가서 식사 하시지 왜 안하시냐고 했더니 “이런 거 줄서다 카메라에 찍힌 거 손자들이 보면 어쩌겠어. 자식들, 손자들 체면이 있지. 체면 때문에 줄 안 선다”고 하신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무료급식에 불만이 많으신가보다. “생활이 넉넉해도 줄 서는 사람이 있어. 저기 봐. 가죽잠바 입고 잘 차려입은 사람도 아침부터 줄 섰잖아. 이런 거 외국기자가 와서 보면 수치야. 대한민국에 맨 거지만 있다고 하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은 통반장 통해서 조사해서 도와줘야지. 이렇게 하면 골고루 먹여주지도 못하고 먹은 사람만 또 먹고 창피해서 못 먹는 사람도 있고. 차라리 현금지원이 낫다고. 정부에서 잘 못하는 거야.”

 중풍으로 다리가 불편하시다는 또 한 할아버지는 배식표를 받자마자 불편한 다리를 끌며 탑골공원 밖을 빠져나갔다. 탑골공원 바로 옆 횡단보도를 건너면 새마을 운동 서울시지부 건물이 나오는데 그 곳 1층에서 무료 급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식사시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분들이 많았다. 팔백명 이상이나 되는 많은 인원에게 한꺼번에 식사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공원 안에서 몇 명씩 배식표를 나눠주면 그걸 받은 사람이 차례로 식당에 와서 식사를 하고 나가는 것이다.

 올 3월까지만 해도 밖에서 배식을 했기 때문에 노인들도 공원 안에서 그냥 쭈그리고 앉아 식사를 했었는데 날씨도 추워지고 밖에서 식사하는 것이 위생상 좋지 않다고 해 올 3월부터 이 곳으로 이전한 것이다.

 안에 들어가 보니 작은 조리실이 있고 식탁이 십여 개 정도 놓여 있다. 조리실 앞에서 덩치가 좋은 한 남자분이 일일이 밥을 퍼 주도 있다. 밥 퍼주는 사람이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대표 김금복 씨라고 하는데 너무 바빠서 무료급식이 끝나는 1시 30분 까지 쭉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주로 노인분들이 식사를 해서인지 용산역과는 달리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조용히 줄을 섰다가 밥을 주면 조용히 먹고 바로 자리를 비웠다.

 시계가 1시를 가리키자 젊은 사람들도 한두 명씩 보였다.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난 실직자들이 갈 곳이 없으니까 이 곳 탑골공원까지 와서 식사를 하는 것인데 이 중 비교적 젊은 한 일용직 근로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노인들 먼저 드시고 저희 같이 젊은 사람은 12시 40분 이후에나 식권을 받죠. 건설업이 죽으니까 작년 같으면 일당 7만원에서 12만원을 받았는데 올해는 3만5천원도 받기 힘들어요. 그 중 5천원은 소개비로 내고 입회비 1만원을 내면 2만원밖에 남지 않지만 그나마 일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죠. 새벽 5시에 서울역, 종묘공원, 영등포, 용산, 효창공원에 가면 여기만큼이나 줄이 서 있어요.

 다들 일자리를 구하는데 선착순이다 보니 신문지 깔고 아예 밤을 새는 사람도 있어요. 피 튀기는 경쟁이죠. 오늘 일 못 나가면 밥 굶는 건 둘째 치고 찬 데 잠을 자야 하니까요. 그나마 여유 있는 사람은 근처에 방을 얻어서 꼭두새벽부터 줄을 서기도 하는데 돈 없는 사람은 그러지도 못하죠.”

 결국 돈 없는 이 남자는 경쟁에서 밀려나 며칠째 일을 못나가 돈도 다 떨어져서 아침은 굶고 점심을 먹기 위해 이 곳에 왔다고 한다. 형편이 이래서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는 이 사나이는 집도 없어서 일을 해서 그 날 번 돈으로 여관방에서 자다가 일이 없으면 노숙을 한다고 한다. 혹시 희망이 집에 들어갈 생각은 없냐고 하자 싫다고 한다. 추운 겨울 날 동사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하자 그래도 희망의 집에는 들어가기 싫단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어딘가에 수용된다는 그 자체가 맘에 안 들고 자유가 없어서”라고 한다.

 1시 30분. 대충 일이 다 마무리된 듯 해 김금복 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1993년 12월 당시 경찰관이던 김금복 씨는 근무중 만난 노인들이 너무나 어렵게 사는 모습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대형버스를 구입하고 식당차로 개조해 탑골공원에서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일 년 만에 경찰직을 사직하고 사랑채 양로원을 열어 갈 곳 없는 노인들을 돌보고 있다.

 이 때부터 시작한 탑골공원 내 무료급식은 현재까지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뤄져왔다.

 최근 IMF로 인해 실직자가 급격히 늘면서 다른 단체에서도 좋은 일할 기회를 나누자고 해 수요일과 일요일은 다른 곳에서 배식을 하고 있다. 그래서 수요일은 예수사랑선교회에서, 첫째 둘째주 일요일은 한국노점상연합회가 둘째, 넷째 주는 조계사 청년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5년째 매일같이 7,8백 명에게 직접 밥을 퍼주다 보니 이제는 뱃속을 훤히 다 들여다본다는 김 씨는 얼굴만 봐도 며칠을 굶었는지 얼마만큼 주면 남기지 않고 다 먹을지 가늠할 수가 있다고 한다. 좀 전에 무료급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분의 얘기를 해드렸더니 김 씨는 “여기 와 식사하는 분들 중에는 돈 많은 분들도 계세요. 그런 분들은 탑골공원에 친구랑 대화하러 오시는 거죠. 매일 사줄 수는 없으니까요. 또 노인들은 뭔가 갖고 있어야 든든해하세요.”

 그리고 자식들이 볼까봐 줄을 서지 못하는 노인이 있다고 했더니 ‘얻어먹는게 아니죠. 저희는 거지는 식사 안 드려요. 노인 분들한테 만 대접하는 거예요. 그분들 덕에 우리가 지금 이만큼 사는데 작게나마 대접해 드리는 거죠. 저 혼자 대접하면 하루 이틀 몇 분이나 대접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정부와 다른 분들의 후원으로 이렇게 대접할 수 있는 거예요. 그 분들은 대접받을 권리가 충분히 있어요. 당당하게 와서 잡숫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김금복 씨는 이 일 말고도 사랑채 정보센터를 운영중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푸드뱅크도 운영하고 있다.

 올 초부터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푸드뱅크가 좀 더 활성화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눌 수 있을 테지만 아직은 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푸드뱅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는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식품회사에서는 기한이 다 됐거나 팔리지 않은 제품을 대량 제공하겠다는 전화를 자주 해요. 그렇지만 개별단체로서는 타이탄 트런 열 대 분이나 되는 음식물을 받아 올 운임이 없어 포기하게 돼죠. 그래서 대부분 소규모로 이루어지는데 그러다 보니 푸드뱅크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데 한계가 있어요. 정부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지원을 과감히 해야 하는데 권장만 하고 실질적인 지원을 안 해주니 안타깝죠.”

 

 신나게 뛰어 놀아야 할 결식아동들

 그런가 하면 최근 굶주리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 정부에서는 89년부터 생활보호대상자, 결손가정 등 빈곤가정의 학생들에게 중식지원을 해 왔다. 올해는 IMF의 영향으로 실직자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결식 학생도 많이 늘어나 98년 11월 현재 전국 초, 중, 고등학교에서 중식지원을 받고 있는 학생의 수는 총 13만 1천3백33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 학생은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저녁식사를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가정불화가 심해 집에 들어가는 것조차 꺼려하기도 한다. 자칫 잘못하면 잘못된 길로 빠질 가능성이 높아 대책마련이 시급한데 정부에서 아직 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몇몇 민간 종교단체에서 임시방편으로 팔을 걷어 부쳤다. 봉천동에 있는 ‘빛나라 신나는 집’ (대표 전천우)이 바로 그런 곳 중 하나다.

 신나는 집과 인접해 있는 한 초등학교의 재적 학생수가 5백57명인데 이 중 교육부의 무상급식 지원을 받는 아동 수는 87명이나 된다. 그래서 봉천동에서 희망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전천우 목사는 부스러기선교회와 후원인의 도움으로 신나는 집을 개원해 아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여름 신나는 집을 개원해 여름방학 중 점심을 먹지 못하는 아동들에게 중식을 제공했는데 총 1백25명이 이용했고 누계로 따져보면 1천3백명의 아동이 다녀갔다. 그러나 중식제공이 결식아동의 근본대책은 아니기 때문에 전 목사는 가정방문도 직접 나섰다.

 그 과정에 알게 된 초등학교 6학년생인 수미와 여섯 살인 수희는 한 자매다. 어머니는 2년전 노름을 하다가 가출을 했고 아버지는 허리디스크로 노동력을 상실해 지난 9월 생활보호대상자로 의료보호 혜택을 받고 있다. 최근 수미의 아버지는 친구와 트럭행상을 시작했는데 채소를 받으러 지방에 내려가면 늦게 귀가하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썰렁한 집에 들어가기 싫어 오락실을 배회하다 저녁밥도 거르기 일쑤였다. 또 수희를 혼자 놓고 학교에 가기가 걱정된 수미는 학교도 곧잘 빠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애들 아버지가 곧 허리 수술을 받게 될 거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더더욱 없어지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철수는 어머니가 계모다. 아버지는 실직을 해 일용노동을 하고 계시는데 이유 없이 자주 집을 비운다. 어쩌다 집에 있을 때면 철수를 심하게 때리기도 한다. 그 영향 때문인지 철수는 학업성적이 떨어지고 정서가 불안해 읽기 쓰기도 잘 못한다. 그리고 무척 산만하다. 학교에서도 적응을 못하고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집에 가면 맞을까봐 들어가기를 꺼린다.

 그런 철수가 그나마 맘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이 신나는 집이다.

 신나는 집에서도 철수는 가장 산만한 아동이다. 식사 후 후식으로 나눠주는 과일을 허락도 받지 않고 꺼내 먹다가 다 먹지도 않고 던지거나 전기스토브 근처에 가서 제지를 하는데도 자꾸 만지려고 한다. 그렇지만 신나는 집의 어른들은 철수를 혼내거나 때리지 않는다. 그 곳 사회복지사들은 다른 아이들한테 철수가 지금 아프니까 철수를 이해하라고 하고 심리검사를 받도록 복지관에 데리고 가기도 했다. 철수는 거기서 그림을 여러 장 그렸는데 그림 속에는 항상 더러운 것(침, 쓰레기)을 그렸다. 심리치료사는 그것이 철수가 느끼는 자신의 삶에 대한 표현이고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려고 자꾸 이상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여자에 대한 원망과 두려움을 갖게 되고 정서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신나는 집에서는 철수를 매주 어린이보호회에 통원 치료하러 보내기로 했다. 그 곳에서 그 곳에서 철수는 놀이치료를 하는데 전보다 많이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그림도 더러운 것을 표현하는 빈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신나는 집에는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있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인 수정이는 농촌에서 살다가 이 곳으로 이사를 왔다. 농사일이 싫다며 어머니는 집을 가출했고 아버지는 몇 년 전 소여물을 주다가 오른손을 잘린 이후 서울로 이사를 왔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만 알콜중독이 되어 수정이는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수정이는 방과 후에 신나는 집에 와서 사회복지사 언니와 함께 얘기를 하거나 숙제를 하곤 한다.

 때마침 교육부에서 지난 11월 겨울방학기간 중의 중식지원 대책으로 교육청과 시군구청을 중심으로 지역협의체를 구성하여 학생의 가정형편을 조사해 한시적 생활보호자로 책정해 지원하고 지역설정과 가정형편의 곤란정도에 따라 학교 또는 거주지 인근 식당을 이용, 주 부식 재료 또는 부식재료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아이들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이 해체되지 않도록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안정적인 일거리를 제공하고 가족 구성원 스스로간에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곧 겨울방학이 찾아온다. 이 아이들이 방학동안 또 얼마나 굶주리고 방황하게 될지 그건 순전히 우리 사회 어른들의 몫이다.

‘빛나라 신나는 집’에 나오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작성자노윤미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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