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장애우들이 거리 투쟁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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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인도,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장애우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전면에는 ‘장애인들은 절규한다. 직업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비감에 찬 플랭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이 날 모인 숫자는 비록 1백여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장애우들은 한결같이 분노의 목소리로 정부의 장애우 고용정책을 성토했다.
장애우들은 이 날 배포한 성명서에서 ‘이대로 살 수 없다. 장애우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며 ‘우리가 거리로 뛰쳐나와 죽음을 각오하고 단식 농성에 돌입할 수밖에 없는 것은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대다수의 장애우들이 실직 상태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장애우들이 실직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은 곧 대다수의 장애우들이 빈곤 상태에서 허덕이며 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지금 상태라면 장애우들의 고통에 새로운 세기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에 주목하고자 한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리고 소외계층이라는 이유로 장애우들의 고통이 21세기까지 이어져야 한다면 이보다 더한 야만은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시위에 참석한 장애우들은 이어 “노동부는 저조한 장애인 고용률 뿐만 아니라 고비용 저효율의 장애우 고용정책 시행으로 장애우들을 울리고 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노동부는 지난 10년 동안 기업으로부터 장애우 미고용 부담금으로 천문학적 액수인 수천억 원을 징수했다. 기업이 내는 미고용 부담금은 장애우들의 실직 고통의 대가이다. 그런데 지금 그 돈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라고 의문을 제기한 후 ‘지금 노동부는 미고용 부담금 수백억 원을 직업센터 건립이라는 허울 아래 공단 청사 건립에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비대해진 공단을 유지하기 위해 인건비로, 운영비로 그 동안 수백억 원을 사용한 노동부 처사에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미고용 부담금 수천억 원을 직접 빈곤 장애우에게 생계비로 나눠줬으면 장애우들의 빈곤 상태가 조금은 개선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노동부가 실시하고 있는 고용촉진공단을 통한 단순 취업알선 정책으로 장애우들이 직업을 보장받기가 사실상 힘들다는 것을 절감하며 노동부는 지난 10년 동안 장애우들이 겪은 실직 고통에 대해 사죄하고 하루 속히 장애우 직업정책에서 손을 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장애우들은 ‘정부는 직업재활법 제정으로 약속을 지켜라’라고 목소리를 높인 후 ‘정권 교체로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 실직 장애우들은 큰 기대를 가졌다. 국민의 정부는 생산적인 복지를 국정 목표로 내세웠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장애우들에게 시혜적인 복지가 아닌 일할 권리 보장을 통한 복지정책 시행을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가 출범한지 2년째지만 열악한 장애우 현실은 변한 게 전혀 없다’고 지적한 후 ‘장애인직업재활법 제정은 김대중 대통령도 약속한 사항이다. 그런 법이 노동부의 반대로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대표적인 국정혼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정부가 직업재활법 제정을 통한 새로운 직업정책 시행으로 장애우의 생존권을 보장해줄 그 날까지 끝까지 싸울 것을 천명하는 바이다’라고 결연한 의지를 피력했다.
1시간 30분간 이어진 시위 끝에 장애우들은 국회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장애우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면서 국회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애썼지만 동원된 전투경찰들의 벽을 뚫을 수는 없었다. 국회 진출 시도가 전경들에 의해 좌절되자 장애우들은 이번에는 단식투쟁을 위해 천막을 치고 거점을 마련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천막을 치려는 시도 역시 전경들에 의해 좌절됐다. 현장에 있던 정보과 형사는 여의도는 천막설치가 절대 금지된 지역이라며 전경들에게 천막을 탈취할 것을 지시했다.
시위 목적이 단식투쟁을 위한 발대식이었기 때문에 장애우들은 할 수없이 자리를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우들이 천막을 치기 위해 선택한 다음 장소는 국내 최대 규모의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였다. 명동성당으로 가자는 일부의 얘기도 있었지만 국회를 상대로 투쟁을 하려면 여의도를 떠날 수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장애우들은 순복음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회땅에 천막을 치면 경찰의 단속을 피할 수 있겠다는 계산으로 순복음교회 건물 옆 공터에 도착했지만 천막을 치려는 장애우들의 시도는 교회측의 저지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교회측 경비원들이 천막을 못 치게 완강하게 막았던 것이다. 그러나 국회를 상대로 한 싸움에 거점을 마련하려는 장애우들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두 시간여 밀고 당기는 실랑이와 격렬한 몸싸움 끝에 마침내 장애우들은 순복음교회 옆 공터에 천막을 칠 수 있었다.
순복음교회는 보수적인 교회로 교회가 생긴 이후 외부에서 농성을 하기 위해 교회땅에 천막을 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이런 금기를 깨고, 마찰은 있었지만 장애우들이 교회땅에 천막을 친 것은 그 자체가 뉴스거리였다.
그런데 장애우들이 단식투쟁에 돌입한 이 날은 마침 농성에 대한 준비가 채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장애우들은 천막 안에서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떨며 추운 밤을 보내야 했다.
일권련 회원들이 주도
17일 오후부터 직업재활법 제정을 위한 단식 투쟁에 들어간 장애우는 이상영 박희철 박호경 박인선 장수호 박성현 안경화 허유성 등 8명으로 모두 지체장애우였다. 이들 중 부산에서 상경한 장수호 씨를 제외한 나머지 장애우들은 모두 IMF 이후 생겨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부설 장애우실직자모임터를 모태로 지난 2월 만들어진 장애우 자조모임, 장애우일할권리찾기연합(이하 일권련) 회원이다. 즉 실직장애우 당사자 모임의 주도로 단식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직업재활법 제정을 반대하는 강기철 씨가 회장인 지체장애인협회는 평소 모든 지체장애우들은 직재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다른 장애우도 아닌 지체장애우 당사자들이 직재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투쟁이라는 극한적 인 방법을 선택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권련에 따르면 애초 일권련은 ‘일할 권리를 찾기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할 권리를 보장해 줄 유일한 법인 직업재활법 제정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득권층에 의해 좌절되는 것을 묵과할 수 없어 단식 투쟁이라는 극한적인 방법을 택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다음날인 18일 오전부터 일권련 장애우들은 단식 상태에서 국회 앞 피켓 시위를 시작했다. 일권련 회원들은 국회의원들이 출근하는 시간인 오전 8시 30분에서 9시 30분까지 국회 정문 앞에서 직업재활법을 제정하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는데 이 시위는 투쟁기간 내내 계속되고 있다.
피켓 시위가 끝나면 장애우들은 국회를 방문했다. 18일에는 15명에 이르는 국회 법사위 의원실을 일일이 방문해 직업재활법 제정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부탁했다. 하지만 정쟁에 몰두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직재법 제정에 관심을 가질 리 없었다.
모두 ‘알았다’는 형식적인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몇몇 의원실에서 법사위에 직재법이 상정될 경우 적극적으로 제정을 검토해 보겠다는 답변을 이끌어낸 것은 일권련 회원들에게는 큰 수확이었다.
토요일일 11월 20일 오후 2시에 국회 앞에서 다시 직재법 제정을 위한 집회가 열렸다. 50여 명이 모였지만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바로 단식을 하고 있는 장애우들이 집회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장애우들의 핼쓱해진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직재법 제정으로 장애우의 일할 권리를 보장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한국장애인총단체연맹 관계자와 나눔의 집 송경용 신부를 비롯한 학계,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참석해 지지발언을 하기도 했다.
탈진해서 쓰러질 때까지 투쟁하겠다
일권련 장애우들이 단식투쟁을 벌이면서 가장 염려했던 것은 여론의 향배였다. 단식투쟁 사실이 사회에 알려지지 않을 경우 일권련의 단식투쟁은 일권련 내부만의 투쟁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자. 하지만 일권련 장애우들의 걱정은 기우였음이 곧 드러났다. 월요일인 22일 한겨레신문 기자가 농성장을 찾아와 취재해서 ‘장애우들 여의도서 단식 농성’ 이라는 제목 아래 보도했으며 24일에는 기독교방송에서 직업재활법 제정을 주제로 1시간 생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일간지와 방송국에서 농성 사실을 속속 취재해 갔다.
마침 얼마 전에 장애우의 70%가 실업자라는 한국갤럽의 조사발표가 있은 후여서 일권련 장애우들의 단식투쟁은 더 언론의 관심을 모으는 듯 했다.
물론 일권련 장애우들이 힘들어하는 부분도 있었다. 천막농성이라는 열악한 환경보다는 무엇보다 단식농성으로 직재법 제정이 표면으로 떠오르면서 잠복해 있던 장애계 내부의 분열 양상이 극명하게 다시 드러난 것이 일권련 장애우들을 괴롭혔다. 일권련 장애우들은 장애계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거기다 일부 단체가 자신들의 투쟁을 비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매우 허탈해했다.
그래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장애우 중 일부는 현 상태에서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대안없이 무조건 직재법 제정을 반대하고 자신들을 매도하는 단체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을 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일일이 대응하기 보다는 무시하자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해 일권련 장애우들의 대응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다.
11월 24일 현재 일권련 장애우들의 직업재활법 제정을 위한 세기말 단식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탈진해서 쓰러질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의지이다.
글/ 이태곤 사진/ 김학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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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실직장애우 결의문]
한국 사회에서 장애우는 대표적인 소외계층이다. 현재 대부분의 장애우들은 직업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곧 경제적인 궁핍으로 이어지고, 결국 장애우들은 동정의 대상과 기생계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장애우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져서 최저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장애우들의 부지기수인 상태이다. 1999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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