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혹은 그 정도를 감수해야 가능한 꿈, ‘탈시설’
장애우 탈시설과 관련한 정부정책의 현주소
본문
‘지역 사회에서 살 권리’
어떤 동네의 주민으로, 어떤 이의 이웃으로 사는 것이야 당연하지, 안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뭐 이런 것도 권리인가, 싶을 정도로 기본적인 이 권리는 우리 사회 많은 장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언제든 시설로 내몰릴 위험에 처해 있고, 한 번 시설로 들어가면 사회로 다시 나올 확률도 별로 없다. 이는 복지부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복지부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전국 장애인 시설 현황을 분석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이 기간동안 입소한 장애인들은 2천2백여 명이 늘었는데, 퇴소자는 1천77명이 줄었다.(2000년; 1천452명, 2005년; 375명) 2005년 12월 기준으로 전국 장애인 시설이 331개소였음을 감안하면, 한 시설에서 1명 남짓 퇴소한 셈이다.
이 정도면 사회로 다시 나오는 장애인들이 거의 없다는 건데,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탈시설 하는 장애인들이 자립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사회와 분리된 채 살았던 장애인들은 탈시설하면 당장 먹을 것을 살 돈과 잘 곳부터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먹고 자는 것은 동물도 누리는 권리인데, 정부는 탈시설 하는 장애인들에게 인간이 누려야 마땅한 최소 의식주도 보장하지 않고 있다. 시설 생활을 하던 장애인들이 자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원은 생활비나 주거는 물론 활동보조, 교육, 취업, 여가 등 장애유형이나 정도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 중에서도 〈함께걸음〉은 탈시설 하는 장애인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정부 정책의 현주소를 심층 취재했다.
복지부가 내놓은 장애인 시설 퇴소자 통계(2000년~2005년)를 보면, 퇴소 유형을 ‘연고자 인도/취업/전원/사망/기타’로 나눠어 분석했다. 이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취업해서 퇴소한 장애인들에 대한 통계인데, 취업은 다른 퇴소 유형보다는 그래도 자립 가능성이 보이는 항목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러난 수치는 참담할 정도다. 2000년에는 취업해 퇴소한 장애인이 160명이었는데, 2005년에는 22명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취업해 퇴소한 장애인 수가 적을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예상한 바지만, 지난 6년 간 줄어든 수치는 눈을 의심할 정도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생계유지를 할 수 있는 직장을 갖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사회와 격리됐던 시설 장애인들은 그 가능성조차 없다고 봐야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들이 한가닥 희망을 걸 곳이 있다면 아마 기초생활수급비나 장애수당일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은 것이 지금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이다.
현재 생계비 지급 방식, 시설 장애인의 자립 의지 막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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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에서 만난 한 노숙 장애인. 찬 바닥에 양말도 없이 누워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구조적으로 배제하고 있어 이들이 자립하기는 쉽지 않다. | ||
현재 기초생활수급권자 1인 가구가 받는 생계비는 한 달에 대략 36만 원. 이에 비해 시설에서 ‘생계비를 받는 장애인’(이하 보장시설수급권자)에게 지급하는 생계비는 평균 12만원 정도다.
그나마도 생계비를 개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시설 운영비에 포함해 시설 통장으로 지급한다. 전북 완주군에 있는 장애인 시설인 ‘무지개가족’ 사례를 보면 생계비 지급 방식이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1984년에 설립한 무지개가족은 정부의 미신고 시설 양성화 정책에 따라 2005년 1월에 신고시설로 전환했다.
이 전환기에 무지개가족 일을 시작했다는 윤면재 사무국장은 “신고시설로 바꿨더니 시설 운영은 여러 모로 편해졌지만, 생활하는 장애인들이 자립할 방법은 더 막막해졌다.”고 밝혔다. 윤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미신고 시설이어서 장애인들이 개인통장으로 생계비를 직접 받았다. 우리 시설에서는 장애인들이 받은 생계비 중 일부를 생활비로 형편껏 내고, 나머지는 각자가 알아서 사용했다. 시설에서 산다고 자녀나 가족, 본인 등에게 돈을 사용하고픈 욕구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도 나름대로 상황이 다 있다. 자립을 원하는 장애인들은 자립자금으로 쓰려고 생계비를 조금씩 모았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모은 돈으로 자립한 장애인들도 있다. 정부 정책에 따라 신고시설로 바꿨더니, 생계비가 시설 통장으로 들어온다. 생계비라도 모아 자립하려고 했던 장애인들은 이젠 그나마도 못하게 생겼다. 그래서 관할 군청에 문의 했지만, 법이 그렇게 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소리만 들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시설에서 나가면 당장 먹고 잘 곳이 필요하지만, 탈시설 하는 장애인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시책은 거의 없다. 이제 시설 장애인들은 자립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대해 장봉혜림원 임성만 원장은 “시설 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서는 생계비를 직접 장애인들에게 지급해야 한다. 사실 생계비 자체가 개인급여 성격인데, 시설에 산다는 이유로 시설로 직접 주는 것 자체가 문제다. 우리 사회에서는 재화 지배력이 선택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이는 시설 장애인들도 마찬가지다.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도 재화지배력을 가져야 이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야만 복지서비스도 시장을 형성하고 서로 경쟁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생계비는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이 자립을 꿈꿔볼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지만, 시설에서 생활하는 한, 장애인들이 본인 몫의 생계비를 직접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써는 없다.
시설 장애인, 자립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보장시설수급권자인 장애인이 탈시설 했을 때, 생계비를 바로 받아 의식주를 마련할 수 있을까. 지역 사회로 나온 장애인들이 생계비를 바로 받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선 생계비를 받으려면 관할 지자체에 거주지, 즉 주소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탈시설한 장애인들에게 거주지가 있을 리 없다. 불법이지만, 지역 사회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서, 신청 서류에 적을 주소라도 확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시설 생활을 오래한 사람일수록 이미 사회 관계가 단절됐을 확률도 높다. 탈시설한 장애인들의 사정이 이러한 데도, 관할 지자체는 중복 신청 등을 이유로 최소한 1달은 해당 지역에서 거주했다는 것을 확인해야 생계비를 지급한다.
그렇다면 다시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데, 시설 안에서는 자립 자금을 모을 수 없는 형편이니, 결론적으로 자립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 지금 시설에서 사는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재활지원팀, “문제는 알지만, 대책은 없다.”
그렇다면 탈시설한 장애인들에게 정부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복지부 재활지원팀 담당 사무관은 “영구임대주택 입주자격 부여, 복지관 프로그램 이용, 직업재활시설 우선 이용, 지하철 이용비나 통신비, 공원이나 박물관 이용 등 각종 할인과 감면 시책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담당 사무관이 제시한 방안들이 과연 탈시설한 장애인들에게 현실적인 지원책일까,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국민임대나 영구임대주택을 규정하고 있는 ‘주택공급에관한규칙’(건설교통부)을 보면, 국민주택 등을 10% 할당해 특별 공급하는 대상자가 있는데, 여기에는 장애인 외에도 국가유공자, 북한이탈주민, 공무원 등 사회 10개 분야 대상자가 더 있으며, 강제규정도 아니다.
탈시설한 장애인들도 영구임대주택 신청 할 수는 있지만, 우선 선정 순위(아동복지시설 퇴소자, 기초생활수급권자, 청약저축가입자 순)에는 들어 있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지역에 사는 장애인들도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최소 2~5년은 기다려야 한다고들 하는데, 당장 며칠동안 잘 곳이 급한 탈시설 장애인들에게 영구임대아파트는 너무 먼 얘기라는 점이다. 그리고 당장 의식주를 마련해야 하는 절박한 현실에서 복지관 프로그램이나 전화비, 공원 무료 입장 등이 도대체 무슨 도움이라는 것인지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자, 재활지원팀은 “현재 탈시설한 장애인들이 기본적인 의식주를 보장받을 수 있는 지원책은 없다.”고 시인했다. 그리고 “탈시설 후 행정 공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라는 것은 알지만, 현재 대책은 없다.”고 털어놨다.
아동복지팀, 아동 시설 퇴소자 자립 지원을 위해 아동복지법 개정 중
탈시설하는 다른 취약 계층들의 자립 지원 현황도 이 지경일까.
기자는 장애인 시설처럼 입소기간이 길고, 탈시설 후 자립이 중요한 아동복지 자립 지원책을 찾아봤다. 올해 1월, 복지부 아동 복지팀은 관계부처 합동으로 아동복지시설에서 퇴소하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사람들이 해야 할 자립을 지원하는 대책들을 확대,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우선 정책 시행을 위해 아동복지시설 퇴소자와 퇴소 예정자(2003년~ 2009년) 5천 여 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시설 생활 중에 자립 준비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일상생활, 경제적 개념, 대인관계, 직업 및 사회적응 등)을 단계별로 확대하고, 시설마다 전문 인력을 배치해 입소부터 자립 시까지 관련 정보 제공과 취업 연계까지 하겠다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현재 운영중인 자립지원센터(전국 16개소)를 강화해 주거·취업·상담 등 자립에 대한 종합서비스를 제공하고, 대상자도 넓혀 당해 퇴소자로 한정했던 것을 퇴소 후 3년인 사람도 포함했다. 그리고 퇴소 후 이용할 수 있는 자립지원시설(혹은 자립생활관, 일종의 자립 체험홈, 전국 13개소) 거주기간도 1년 더 연장했다. 현재 퇴소시 지급하는 100~500만원(지자체별로 다름) 자립정착금도 증액해 현실화할 예정이며, 자립시 일정기간동안 의료급여도 받을 수 있게 지원할 계획이란다.
정부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주거 문제인데, 올해 8월 ‘주택공급에관한규칙(제31조)’을 개정해 아동복지시설 퇴소자에게 영구임대주택 입주 자격 1순위를 줬다. 그룹홈이나 전세자금지원사업 신청자격도 새로이 부여했다. 아동복지팀은 위와 같은 자립지원서비스 제공을 위한 법적인 근거를 마련을 위해 아동복지법을 개정할 예정이며, 현재 국회에 개정안이 계류 중이라고 한다.
정부, 장애인 탈시설 할까봐 전전긍긍?
이렇게 아동복지시설 퇴소자 자립 지원책과 장애인 시설 퇴소자 자립 지원책을 비교해보면, 정부가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18세가 되면 법적으로 무조건 탈시설 해야 하는 아동복지시설과 장애인 시설 상황을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18세 이상 비장애인들은 강제로라도 탈시설 시켜 자립 지원을 한다. 아마도 성인인 비장애인들이 시설에 계속 머무르는 데 발생하는 비용과 폐해를 막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은 성인이어도 탈시설에 따른 자립을 지원하지 않는다. 현재로써는 당사자가 자립을 원해도 구조적으로 막고 있는 상황이어서, 오히려 탈시설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이에 대해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박옥순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쓸모 없는 사람, 무능력자로 인식하기 때문에 사회 한쪽에 수용해서 최소한 의식주만 해결해주면 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학교 이태수 교수(사회복지학)는 “복지시설 입소와 탈시설에 관해서는 아동과 장애인이 핵심적인 영역”이라고 전제 한 후 “우리 사회에서 탈시설화 진전이 더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정부는 행정 편리성과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 시작한 시설을 중심으로 하는 복지정책을 이젠 버릇처럼 진행하고 있다.
정부도 큰 틀에서는 탈시설에 동의한다고 말은 하지만, 편리성과 효율성 때문에 시설 중심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공급자인 시설운영자도 탈시설을 적극적으로 막는 장애요인이다. 시설 운영자들은 본인이 가진 사회 지위나 경제 때문에 시설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수요자인 시설 생활인들은 시설 안에서 탈시설에 대한 기회나 정보를 받은 적이 전무하기 때문에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운동 주체로 서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탈시설과 장애인권, 복지 정책의 지향점으로 세워야
취재 결과, 현재 정부는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에게 “탈시설 하려면 죽거나, 아니면 그 정도를 각오하라”라는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유독 장애인들의 탈시설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는 건 알지만, 대책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정부가 장애인의 탈시설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이에 대해 이태수 교수는 “현재 관련 정책 입안자들에게 탈시설에 대한 신념이나 장애인권 인식이 없거나 약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 인식 있다고 해도 수준이 미약해서 예산 범위를 넘거나 관성적인 정책 집행방식을 뚫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애인들이 탈시설 하기 위해서는 시설 안팎에서 자립과 관련한 여러 지원이 필요하다. 우선 시설 안에서는 급격히 변하는 사회와 늘 소통할 수 있어야 하며 특히 자립과 관련한 정보를 언제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자립자금이 필요하니 이를 위해서는 생계비를 장애인에게 직접 지급하던가, 장애수당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현재 시설 안에서는 자립자금 마련할 수 없게끔 해놨으니 탈시설을 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자립지원금을 지원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탈시설 하는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사회적응을 위해 중간 단계가 필요한데, 현재 아동복지시설 퇴소자를 위해 운영하는 자립생활관 같은 지원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간단계가 주거지일 수는 없다. 따라서 아동복지의 예처럼 탈시설하는 장애인들에게 영구임대주택 1순위 자격을 주고, 거처를 마련할 동안만이라도 주거를 지원하는 시책들을 펼쳐야 한다. 그리고 장애가 중증인 사람들을 위해 현재 시행을 앞둔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대폭 늘려 탈시설 해 자립을 하려는 장애인들에게도 현실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들이 바라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의식주만이라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정부가 현재 시행 중인 선례도 있어서, 맘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한 것들이다. ‘탈시설’은 장애인 생계와 직결하는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강요받는 의식주를 박차고 지역사회로 나오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자립은 누구나 갖는 기본적인 욕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사회 구성원으로써 자립하겠다는 사람들을 독려하기는 커녕,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 이것이 탈시설하는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정부 정책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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