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편의증진법을 아시나요?”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표지이야기] “편의증진법을 아시나요?”

장애우, 노인, 여성단체, 편의증진법 실천 촉구 캠페인 개최

본문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인가.’ 스핑크스가 냈던 이 수수께끼의 정답은 알려졌다시피 ‘사람’이다. 유아기에 네 발로 기어 다니고 자라서는 두 발로 걷다가 다시 늙어서는 지팡이에 의지해서 걷게 되는 사람의 일생이지만 그 답을 쉽게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들은 두 다리로 걷는 시기만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손잡이도 없이 이어진 무수한 계단들과 짧기만한 횡당보도의 파란불 신호, 3분마다 멈추게 만드는 울퉁불퉁한 도로의 턱들은 바로 그렇게 눈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짧은 생각이 만들어낸 거리환경이다.


장애우, 노인, 임산부 등 이동약자들의 외침

이렇게 거리를 ‘걷는 일’에서부터 어려움에 맞부닥친 노인과 장애우, 임신을 했거나 유모차를 끌어야 하는 여성들을 위해 지난해 3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져 올해 4월 1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법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기나 하는지, 알고 있다면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당사자들이 직접 법의 실천을 촉구하고 나선 이색적인 캠페인이 진행됐다.

지난 10월 24일 이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장애우권인문제연구소,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한국노인의 전화, 이 세 단체의 회원들과 시민들은 종로2가 탑골공원에서 종묘공원까지 도보와 버스, 지하철로 행진하며 법의 제정 정신과 환경 개선의 필요성을 알렸다.

2시부터 탑골공원에서 진행된 이번 캠페인은 그 세 가지 유형의 도로체험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임산부, 장애우, 노인체험도 병행됐다. 주로 여성단체 회원들은 풍성한 옷을 입고 배를 불룩하게 만들기 위해 옷 속에 무엇인가를 집어넣고 또 다른 사람들은 직접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나왔다.

또 노인체험을 위해서 파랗게 색을 입힌 안경을 써서 노안으로 인한 백내장이나 색깔 구분의 어려움, 흐리게 보이고 시야가 좁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어느 정도 무게가 나가는 추를 담을 조끼를 입어 허리가 굽어지면서 나타나는 자세의 변화 및 그로 인한 머리의 압박, 시야가 좁아지는 것도 체험하기도 했다. 장애우체험은 노인과 장애우들이 모두 사용하곤 하는 휠체어로 대체되었다.

행진에 앞서 참가자들은 역사깊은 탑골공원에서 법률 실천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전략)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상기 법률(편의증진법)은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7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있어 현실적으로 즉각적인 시행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률 실행의 유예기간 이후에도 편의시설에 대한 보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이나 과태료 등 처벌이 가해지도록 되어 있으므로 관련 단체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을 보다 대중적으로 알리고 이 법률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관계 당국 및 본 법률의 적용범위에 포괄되는 시설들이 즉각적으로 편의증진 보장 시설 설치를 적극 시행에 옮길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후략)”


함께걸음 대행진 이후 4년간의 변화

선언문 낭독 후 주위 시민들에게 ‘함께 하는 세상만들기’라는 문구가 새겨진 풍선을 나누어주고 또 손에 손에 풍선을 들고 휠체어를 밀고 끌며,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날 도보 행진은 인도 위에서 진행되었고 시종 신호를 준수하며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인도 위에는 많은 노점들과 토요일 오후에 모여든 사람들 행렬 때문에 원활하게 행진이 이루어지지는 못하고 대열이 자주 멈춰서야 했다.

한편 주로 지하철내 교통환경을 체험하기 위해 휠체어와 유모차를 끌고 간 참가자들은 종각에서 종로3가역까지 이동했는데, 그 두 역은 엘리베이터 없이 휠체어 리프트만 설치돼 있었으나 평소에 장애우 혼자 이동하기에는 아무래도 불편함은 그대로 남아있는 듯했다.

다시 목적지인 종묘공원에 모인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들이 체험한 것을 발표하는 것으로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휠체어를 타고 도보로 행진했던 한국여성단체연합 지은희 대표는 “처음에는 즐거운 마음이었지만 중간 중간에 걸리는 장애물이 너무 많아 휠체어를 미는 것이 너무도 힘겨웠다”며 “휠체어에도 그에 맞는 엔진을 달아 거침없이 쉽게 나아갈 수 있는 기기가 개발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정열 소장은 또 “나도 장애우지만 휠체어에 앉고 보니 그 눈높이에 있는 또 다른 세상이 보였고 휠체어 장애우들의 심정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의정부에서부터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유모차를 끌고 와서 무척 힘겨웠다는 김정애 씨는 “사실 주위 주부들을 보면 아이가 그야말로 독립적으로 다닐 수 있을 때라야 마음껏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수 있을 것이라며 주로 아이와 집안 주변에서만 지내는 모습을 많이 봐왔고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자주 외출을 하는 다른 여성을 보면 심하게 말해 극성맞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사회 환경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서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김정애 씨는 아이와 유모차를 타고 처음으로 휠체어 리프트를 사용해봤다며 유모차를 타고 있는 아이도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박옥순 부장은 “함께걸음 시민대행진 행사를 통해 지하철 편의시설문제를 제기했던 94년도에 비해 4년여가 지난 지금은 계단에 휠체어 리프트가 설치되고 지하철 역무원이 편의시설에 대한 생각이나 친절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노인이나 장애우와 같은 이동약자들의 근본적인 불편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모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이동약자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960년도에 전체 인구의 2.9%에 불과했던 것이 97년에는 6.3%로 증가했다. 이 추세라면 2천년에는 7.1%, 2023년에는 14%가 넘어 고령화 사회로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특히 노인인구의 비율이 7%에서 14%로 늘어나는 기간이 프랑스는 1백15년, 미국은 75년, 일본이 26년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23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여성의 경우 임산부가 됐을 때 몸이 무거워지고 자신의 발끝이 잘 보이지 않게 되는 등의 신체적 변화에 따라 빨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거나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다니게 될 때나 어린아이를 안거나 걷게 하여 많은 계단을 오고 갈 때의 불편은 누구나 쉽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목발과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장애우의 경우 그 불편의 정도가 훨씬 더 크게 된다.

그러하기에 “장애우나 노인, 임산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이들은 다름아닌 우리 자신임을 누구라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이날 캠페인에서 여러 번 반복되었다.


글/ 한혜영 기자

작성자한혜영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