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와 장애우단체, 군가산점 위헌소송
본문
“가을이다. 올해도 많은 후배들이 군대에 갔다. 작년과 재작년 참으로 많은 친구들과 동기들을 역시 떠나보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많은 선배들이 학교로 돌아왔다. 온 세상을 어찔어찔하게 할 만큼의 알콜을 각각의 가슴과 위 속에 밀어 넣고 또 다시 신촌도로변에 값비싼 안주와 함께 깨끗이 게워냈다. 군대가는 동기들은.
그 때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취기와 눈물이 어린 그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평소에 보여지던 건강한 신체에 대한 우월감은 간데없고 부럽고 질시하는 듯한 그 눈빛. 그러면서 툭 던지는 한마디. “넌 좋겠다. 신의 아들이라서” 그렇게 나는 장애우라서 좋겠다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1년 뒤에 이렇게 나를 부러워한 친구들을 위한, 그들의 그 눈물을 닦아 줄 수도 있는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에 대한 법률,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군가산점 조항에 대한 헌법 소원을 냈다. 그들은 장애우인 나를 부러워했지만 난 군대를 갈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군대를 갔다오는 사람들은 그들의 피해의식과 박탈감, 그리고 빼앗긴 자아실현의 시간을 보상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정부는 그런 법을 제정하였다.
나는 바라고 싶다. 자의로 군대를 가고 싶지만 군대를 가지 못하는 장애우들의 피해의식과 박탈감 그리고 ‘군대’라는 거대동맹에 들어가지 못하는 소외감을 보상하는 법을 정부가 제정해 주기를 말이다.”
이상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며, 현재 7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 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김형수(뇌성마비)군이 군가산점에 대해 헌법소원을 하게 된 배경을 토로한 글이다.
평등권, 직업선택의 자유, 공무담임권에 위배
지난 10월 19일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98년 9급 공무원 시험에서 가산점제도로 낙방한 김정원 씨를 포함해 현재 7급, 9급 공무원 시험 응시를 준비하고 있는 5인(조경옥, 이유진, 박은주, 김은정, 김형수)을 청구인으로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률’과 동법 시행령에 대한 위헌청구신청을 했다.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률’ 제 8조 제 1항, 3항과 동법 시행령 9조가 헌법 제 11조 제 1항의 평등권, 제 15조 직업선택의 자유, 제 25조 공무담임권에 위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률’ 8조 제 1항에는 “같은 법 제 7조 제 2항에 의한 취업보호 실시기관 즉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국·공·사립교육기관, 20인 이상 상시고용의 공·사기업체 또는 공·사단체가 그 직원을 채용하기 위한 시험을 실시할 경우에 제대군인이 그 채용시험에 응시한 때에는 필기시험의 각 과목별 득점에 각 과목별 만점의 5퍼센트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가산하도록 하고 이 경우 취업보호실시기관이 필기시험을 실시하지 아니한 때에는 실기시험, 서류전형 또는 면접시험의 득점에 이를 가산한다”고 나와 있고 제 3항은 “취업보호실시기관이 실시하는 채용시험의 가산대상직급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법 시행령 제 9조는 “제대군인이 채용시험에 응시하는 경우의 가점대상 범위를 공무원의 경우 6급 이하 및 기능직의 모든 직급으로 하고 공기업을 포함한 민간기업의 경우 취업보호실시기관의 신규채용사원의 모든 직급으로 하며(제 9조 제 2항), 시험만점에 대한 가점비율은 2년 이상 복무자의 경우에는 5퍼센트, 2년 미만 복무자의 경우에는 3퍼센트로 하도록”(제 9조 제 1항) 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법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장애우는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공무원시험에 응시했다가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률에 의해 낙방한 김정원 씨와 정강용 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 사는 김정원 씨는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여성으로 올해 9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 채용시험에 응시해 평균 점수보다 높은 93점을 받았으나 합격기준점수가 군가산점인 5점을 포함해 95점까지 올라가 탈락되고 말았다.
왼손 사용이 불편한 정강용(왼손장애 3급 3호)씨는 88년 충남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일반 기업에 여러 차례 이력서를 냈지만 모두 면접에서 탈락되고 1993년 8월 충청남도가 시행한 행정직 공무원 7급 시험에 응시, 평균 점수보다 높은 78.33점을 받아 응시생 중 23등을 해 합격안정권에 들었다. 그러나 여기에 군가산점 약 5점이 더해지면서 합격기준점수가 82.22가 됐고 정 씨는 1백 33위로 밀려나 탈락하고 말았다.
정 씨는 이후 충청남도를 상대로 ‘충청남도 7급행정직 공채시험 장애우 불합격 처분 무효’에 관한 행정심판을 청구했으나 충청남도 행정심판위원회는 “공무원 임용시험에서 군복무를 필한 자에게는 국가유공자예우 등에 관한 법률 제 70조의 규정에 의거 가점비율을 적용하였으나 장애우로 병역을 면제받은 청구인의 경우 가점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기각했다. 정 씨는 다시 충청남도지사와 충남도인사위원장을 피고로 대전고등법원과 대법원에 소송을 냈으나 역시 기각되고 말았다.
군가산점 없으면 만점 받아도 떨어질 판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률’이 제정된 배경을 보면 국토방위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전역한 제대군인의 사회복귀를 돕고 그 인력의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병역의무를 자진하여 이행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한편 병역의무 이행으로 인한 불이익에 대한 보상을 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12월 31일 제정한 것이다. 그리고 올 8월 21일 동 법에서 취업보호를 받을 장기복무 제대군인의 구체적인 범위 등을 정한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 시행령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률 제 8조와 시행령 9조는 벌칙조항이 없는 권고조항으로 민간기업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의무는 없다. 다만 공무원의 경우는 국가공무원법 제 42조(국가유공자의 우선임용)에 따라서,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 제정 이전부터 이 법 조항이 실시되어 왔다.
한편 병무청은 1998년 7월 14일 ‘공익근무요원의 근무기간 확립방안을 비롯한 제반 병역제도 개선(안)’을 마련하여 입법예고하였다.
입법예고한 병역법 개정(안) 중에는 군복무를 마친 사람을 신규 채용할 때 의무복무기간을 호봉, 승진에 있어서 실제근무기간으로 산입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서 복무기간을 마친 사람이 채용시험에 응시한 때에도 필기시험의 각 과목별 득점에 3퍼센트의 가산점을 배점한다고 나와 있다. 적용범위는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률과 동일하다. 그리고 위 내용을 이행하지 아니한 고용주에 대해 3백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형사처벌조항도 신설하였다.
그러나 병역청의 이러한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10월 19일 규제개혁위원회는 군복무 기간을 호봉산정 승진심사에서 근무기간으로 인정, 제대군인에게 혜택을 주는 병역법 개정안 주 경력인정 조항을 유보키로 했다. 제대군인에 대한 특례조항이 남녀차별, 장애우차별의 소지가 있고 능력급, 성과급제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이같이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공개경쟁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군가산점 인정 조항은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어 여성계와 장애계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여성계의 경우, 제대군인 가산점제도를 인정하면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남녀고용평등의 달성과 함께, 여성의 공직참여촉진 정책목표 달성은 상당히 지연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장애계에서는 장애 등으로 인한 사회적 약자인 장애우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1991년 제정된 장애인고용촉진등에관한법률이 시행하고 있는 시점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의 경우에만 병역면제 장애우에게 장애우 채용시험 실시제도를 적용하고 있어 7급의 경우는 장애우를 또 한 번 차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헌법소원을 신청한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제대군인에 대하여 채용시험단계에서 시험만점의 5% 내지 3%의 가산점을 주도록 하는 규정은 제대군인의 지위에 설 수 없는 여성 및 장애우들에 대한 합리적 근거없는 차별 즉 성별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을 주고 있다. 더욱이 7급 및 9급 공무원채용시험의 경우 합격점이 평균 80점을 훨씬 상회하고 있고 불과 소수점 이하 몇 점차로 합격여부가 좌우되는 상황에서 제대군인에 대하여 시험 과목별로 3점 또는 5점을 가산하는 것은 사실상 시험에 응시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최악의 경우 가산점 혜택을 받지 않으면 경우에 따라 만점을 받고도 불합격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군대를 제대하고 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남성들과 대다수의 일반 남성들은 군복무기간에 대한 보상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고, 그 의견에 동조하는 사회 일반 인식도 비교적 높은 편이긴 하다.
호봉가산제도만 인정하자
그렇다면 장애계와 여성계에서 동의할 수 있는 제대군인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은 과연 어떤 것인가?
그 실마리를 풀어가기 위해 몇몇 시민단체들은 지난 9월 16일 ‘군경력에 대한 채용·급여·승진 3중 혜택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긴급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이 날 발제를 맡은 김태홍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제대군인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책을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으로 나누어 제시했다. “공공부분의 경우 채용가산점 제도의 시행은 현행 가산점제도에서 가산점 점수를 단계적으로 낮추면서 종국적으로 폐지하고 임금 측면에서 병무의무자에 대한 권익을 보장하고 호봉가산제도는 현행과 같이 계속해서 실시하고 임금체계가 호봉이 없는 연봉제로 바뀌면 수당으로 지불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자고 했고, “승진경력 인정은 기존의 인사조직에 상당한 혼란을 줄 것이므로 실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민간 부문의 경우는 “채용가산제도의 권고조항을 적용범위에서 제외시키고 호봉가산제도와 승진경력 인정은 현재와 같이 자율에 맡기고 다만 군경력 우대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제도를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현재 장애계와 여성계 대부분은 제대군인에게 가산점과 승진경력은 인정하지 말고 호봉가산제도만 인정하자는 김 연구위원의 의견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밖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끌려가는 징병제를 여성과 남성이 연대해서 모병제로 하자는 의견과 함께 군대가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게 교육프로그램도 제공하고 급료도 제대로 주고 자격증도 취득하게 하는 등 근본적으로 군대문화를 개선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러한 의견들은 직접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해도 군가산점 논란을 불러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여성계와 장애계가 제시한 이 대안을 제대군인 당사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장에우권익문제연구소가 낸 헌법소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 노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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