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처럼 대해서 18년간 양계장서 강제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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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송사에서 소개한 지적장애인 학대사례가 보도된 이후 이들의 그늘진 삶이 사회적 이슈가 됐다. 그러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이들 중 본인 스스로 통장 관리하기 어려운 지적장애인, 독거노인 등을 대상으로 통장 소유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 팀에 접수된 지적장애인 학대 및 수급비 횡령사례만 여럿. 전국적으로 신고 안 된 사례를 따져본다면, 그 수는 천문학적일 것으로 추정된다.
허나 신고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들의 학대사례가 발견된 이후다. 지적장애인의 후견인 존재 유·무, 사회복지담당공무원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이들 삶은 또 한번의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게 된다.
똑같은 실태조사에 의해 노예 같은 삶이 고발됐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결돼가고 있는 두 사건을 보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많은 지적장애인이 처했을 현실과 문제점에 대해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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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진호 | ||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 이들의 삶을 20년간이나 짓밟아 왔음에도 가해자의 태도는 너무도 당당했다.
지적장애인 부부를 데려다 18년간 양계장 일을 시켜놓고 임금은커녕,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을 갈취하고 악취와 벌레가 우글거리는 환경에서 생활하게 하며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온 주인이 경찰에 고발됐다.
장씨에게 지급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비를 비롯해 장씨 부부와 둘째아들에게 지급된 장애수당을 14년간 횡령해 임의로 사용했으며, 자신의 양계장에서 18년간 일을 시키고도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이유로 근로기준법 위반, 수급비 횡령혐의로 고발된 것.
장모(58, 지적장애 3급), 박모(46, 지적장애 3급)부부가 경북 상주시 남적동에 위치한 한 박모(65)씨의 양계장
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88년 3월. 장씨의 친척과 친분관계가 있던 박씨가 "월급 줄 테니 우리 농장에서 일하라"고 제안해 따라나섰다고.
그 큰 양계장에 일꾼이라고는 달랑 이들 부부가 전부. 눈뜨자마자 계분을 치우고 차에 싣는 일을 비롯해 양계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잡일과 버섯재배 등 비장애인들도 버티기 힘든 중노동을 해왔다.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명절이나 되어야 쉴 수 있는 생활을 무려 18년간을 지속해 왔으나 이들 부부에게 돌아온 것은 고된 육체노동으로 망가진 육신과 무능력한 부모라는 낙인.
박씨는 제대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인의 특성을 이용해 생활비 명목으로 임금을 지급한 것처럼 속인 것도 모자라 부부 몰래 이들을 기초생활수급권자를 만들어 생계주거비와 장애수당, 거택구호비, 월동비 등 지난 1992년부터 지금까지 3천300여만 원을 횡령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 부부와 지적장애 2급인 막내아들(22)의 명의로 핸드폰을 개설해 수년 동안 요금 할인혜택을 받아왔으며,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로 심한 욕설과 폭행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의 만행이 수면위로 드러나게 된 것은 수급비 통장과 관련한 일제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수급권 통장을 박씨가 관리해온 것을 알게 된 북문동사무소는 시정조치를 내렸고, 박씨는 장씨의 큰 아들(23)에게 통장을 넘겼다.
장씨의 큰 아들에 따르면 "부모님과 동생의 이름으로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처음으로 알았다. 부모님의 임금에 대해 따져 묻자, "그 동안 너희 가족이 먹고 산 게 다 월급에서 나간 것이다. 다만 그간의 정도 있고 하니 네가 부모님을 데리고 나간다고 하면 집이라도 한 채 지어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박씨 밑에서 머슴과 같은 삶을 살아왔던 장씨 가족의 삶이 부모의 무능력함 때문이 아니라 갈취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장씨의 아들은 이 같은 사실을 인권단체에 제보하게 되며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박씨 부부가 가로채간 장씨 부부의 수급권 통장 ⓒ전진호
가족처럼 대한 게 이 모양이라고?지난 7월 13일, 상주시청·북문동사무소 사회복지담당공무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활동가 등과 찾은 장씨 부부의 삶의 터전은 처참했다.
가족처럼 생활했다는 박씨의 말과 달리 양계장 옆, 계분 처리장 바로 옆에 마련된 3평 남짓의 숙소는 몰려드는 파리 떼와 고약한 악취로 앉아있기 힘들 지경이었다. 방안 가재도구라고는 낡은 냉장고와 텔레비전, 선풍기가 전부. 제대로 된 가구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낡고 헤진 옷가지가 한곳에 쌓여있었고, 이불이 놓여있는 곳은 언제 도배를 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썩어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장씨 부부의 삶이 어땠으리라는 것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일.
그러나 박씨의 태도는 너무도 당당했다.
박씨는 장씨 부부에게 초기 10년간 60만원을, 4년 전부터 70만원을 월급으로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장씨에게 월급을 지급한 증거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수급비 횡령과 관련해서는 "수급권 통장을 내가 관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돈 전부가 이들 생활하는 데 들어갔으며 두 아들 모두 고등교육까지 시키는 데 필요한 돈을 내 사비까지 털어서 썼다. 대학교까지 보내줬는데..."라고 주장했다.
박씨의 주장대로라면 장씨 부부는 수급비 등과 월급을 합쳐 대략 월 100여 만원의 돈으로 생활해온 것이 된다. 그러나 성한 옷가지 한 벌이 없고, 차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사람의 인기척을 느낄 수 있는 양계장에서, 쉬는 날도 없이 밤늦게까지 일을 해온 이들이 저금액 한푼 없이 모조리 이 돈을 써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다. 또 박씨의 말과 달리 두 아들의 학비 전액은 국가에서 지급됐으며, 대학교에는 다닌 적이 없었다.
폭언과 폭행 등 학대행위에 대해서 박씨는 "내가 정말 그랬으면 감방에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북문동사무소 사회복지담당공무원 역시 "가정방문 때 비슷한 질문을 했지만, 그때는 그런 일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일관성 없이 대답하는 이의 말만 믿고 판단할 수 없었다"며 박씨의 주장을 두둔했다.
박씨와 사회복지담당공무원의 말대로 장씨 부부가 폭언과 폭행에 시달려왔는지를 알 수 있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비장애인의 경우라 할지라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고용관계에 놓여있으며, 가해 당사자 옆에서 이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솔직하게 고백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의 수준 아닐까?
14년간 정부 지원금 새나갔으나 담당관청 "나 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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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이 악화될듯 싶자 합의하려 했으나 이 태도는 며칠도 지속되지 못했다 ⓒ전진호 | ||
하지만 그의 마음이 바뀌는 데는 불과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북문동사무소는 수급비 통장에서 빠져나간 1천 8백여만 원의 환수조치를 취했고, 이에 따라 지난 7월 15, 16일 두 차례에 걸쳐 이들 부부의 통장으로 1천7백80만원이 입금한 후 태도가 돌변했다. "나 역시 선의의 피해자이니 알아서 하라"는 것.
이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대리인의 자격으로 경북지방경찰청 상주경찰서에 "횡령 및 근로기준법위반"으로 박씨를 고소했다. 고소 후 경찰과 찾아간 장씨 부부의 숙소는 예전과 달리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고.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담당 관청은 속수무책으로 바라만보고 있었다. 오히려 상주시청 사회복지담당공무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그 동안 가족처럼 데리고 살아온 장씨의 아들이 이렇게 까지 나오는 데 박씨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다"말하는 등 누구보다 피해자를 대변해야 할 담당 공무원이 오히려 가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했다.
박씨가 2000년 3월부터 국민기초생활수급법에 의해 지급된 생계 주거비, 장애수당 등을 횡령한 액수만 1천8백여만 원. 이외에도 수급권 통장이 만들어지기 이전인 지난 1992~2000년까지 생활보호법에 의해 거택구호비, 월동비 등으로 지급된 돈 1천5백여만 원역시 박씨에 의해 추가 횡령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박씨는 18년간 장씨 부부를 데리고 있으면서 3천3백여만 원의 정부보조금과 4억1천7백만 원에 이르는 임금을 횡령했으나 어떤 제재도 받지 않은 채 지역유지로 떵떵거리며 생활해왔다.
한편 장씨 부부는 양계장에서 나와 모처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있다. 양계장에 있을 때와 달리 몰라보게 편안한 얼굴로 변했다고.
장애우 바라보는 지역민·담당 공무원 인식개선 절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혜영 활동가는 "장씨 부부나 sbs TV "긴급출동 SOS24"등에서 보여진 사례처럼 정신지체장애우는 세상 속에서 철저하게 외면된 삶을 살아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관심 갖기 보다, "자신의 의사표현도 못하는 이를 데려다가 먹이고 재워준 것 만으로도 어딘데" 라며 가해자를 마음씨 좋고 정 있는 사람으로 추켜세우는 사회적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씨 부부의 경우도 지역 사회복지담당공무원이나 동네주민들이 이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 같은 일은 조기에 막을 수 있었다는 것.
이 활동가는 "가해자의 말만 듣고 판단하려는 공무원들의 태도도 어이없었지만, 피해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시키는 등의 조치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상황을 보고 화가 났다. 이런 처참한 상황에 수십 년 간 노출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태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담당 공무원들은 명백한 직무유기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사실 현행 법규상 담당 공무원의 역할은 "수급권 통장이 다른 이에게 넘어가 있을 경우 이를 본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끝이다. 횡령한 사람을 고발조치 한다거나, 학대상황을 인지해 피해자를 데리고 나와 쉼터 등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법 밖의 책임인 게 현실. 하지만 지적장애인의 인권을 누구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위치에 있는 이들이 사실확인 작업보다 손쉽게 가해자의 이야기만 듣고 판단한 점에서 도의적인 책임까지 무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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