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을 벗어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본문
사람들은 흔히 그들을 ‘영구’라고 부른다.
서울에서도 노원구 중계동과 강서구 가양동, 등촌동, 방화동에 주로 몰려 사는 사람들, ‘영구’는 바로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을 비하해 일컫는 말이다.
영구임대아파트는 1980년대 재개발 사업과 더불어 판자촌이 해체된 후 그 대체물로 등장했다. 건설 당시 정부는 단기간에 많은 주택을 짓기 위해 비교적 택지 확보가 수월했던 노원구와 강서구를 중심으로 영구임대아파트를 몰아서 건설했다. 그 결과 노원구와 강서구는 현재 서울에서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이하 수급권자)가 가장 많다고 손꼽히는 빈곤지역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이곳 영구임대아파트에도 어김없이 장애우들이 모여 산다. 현재 강서구 인구는 55만 명. 그 중 등록장애우만 1만9천명이 넘는다. 노원구 역시 등록장애우가 벌써 2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다른 구에 비해 저소득층과 수급권자가 많다보니 장애예산도 다른 구에 비해 배 이상 많이 배정되지만 그만큼 장애우도 많기 때문에 각 개인에게 돌아가는 지원 수준은 오히려 다른 지역에 비해 낮은 형편이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상 이곳 장애우가 겪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생계 문제다.
정부에서 생계비를 지원받는다고 하더라도 일단 아파트 관리비만 해도 10만원 내외의 돈이 들어가고 여기에 각종 공과금까지 합치면 1인 가족의 경우에는 이미 생활비의 절반이 날아가 버린다.
게다가 장애우 가구의 경우에는 장애 특성상 다른 가구에 비해 지출항목도 많고 추가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그러나 생계비는 이런 추가비용은커녕 최소 생계조차도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이고 그나마도 이러저러한 항목으로 삭감되어 나오기 일쑤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이들의 삶은 벼랑 끝에 선 것처럼 매순간 위태위태하다.
가족 중에 누가 아파서 수술이라도 받거나 몸져눕기라도 하면 당장의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된다. 또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일을 하러나가거나 저축을 했다가 어려운 형편에 오히려 생계비가 깎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암울한 하는 것은 이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현 복지체계는 노동과 수급권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수급권을 포기한 채 노동을 통해 빈곤의 벽을 넘기엔 이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도 적고 이들의 어깨에 놓인 짐은 너무 무겁다. 그리고…, 이들의 어깨에 놓인 짐은 다시 그들 자녀의 어깨로 옮겨가 결국 빈곤을 대물림하게 만든다.
빈곤의 벼랑 끝에 서있는 영구임대아파트의 장애우, 그들을 만나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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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복지관은 노인 중심의 프로그램을, 장애인복지관은 |
수급권 탈락의 위협,
자식의 성년을 축하할 수 없는 어머니
올해로 24살이 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장영옥(가명, 56, 지체장애1급, 서울 강서구 가양동) 씨. 그는 생활형편에 변화가 없는데도 단지 아들이 스무살이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수급권이 박탈될 위기에 처해있다.
95년 축대에서 떨어져서 8, 9번 척추를 다쳤다는 장씨는 96년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친척들과는 사고가 나면서부터 사이가 멀어져 6년 전 남편이 죽은 후로는 아예 왕래가 끊겼다.
이후의 생활은 말할 수 없이 어려웠다. 그래도 당시에는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 전이라 두 명의 생계비로 50만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아들이 공고를 졸업하긴 했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했는데도 동사무소에서는 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생계비를 지원 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동사무소에서도 아들이 소득이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나마 사정을 봐줘서 수급권이 완전히 박탈되진 않았지만 현재는 제 몫의 생계비만 나와요.”
생계비 37만2천원에 장애수당 10만원. 한사람 생계비로는 최대한 지원하고 있는 셈이지만 그 돈으로 두 사람의 생계를 해결한다는 것은 사실상 말이 되지 않는다. 관리비만도 10만원이 넘고 전기, 가스, 수도, 통신 등의 공과금으로 15만원이 나간다. 여기서 다시 아들 용돈으로 10만원을 떼고, 매달 나가는 약값 4만원을 제하면 남는 돈은 8만원. 이 돈으로 그는 두 사람의 한달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그러니 제대로 반찬을 해 먹을 리 만무하다. 그는 반찬이 없어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도 많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옷은 물론이거니와 그 외의 다른 생필품까지 사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빈곤을 대물림하게 만드는 의무부양제도
솔직히 장씨의 아들이 취직을 한 적도 있었다. 졸업하고 일년쯤 지나 취직을 했지만 공고를 졸업하고 보니 직장에 취직해도 월급은 80만원을 넘기 어려웠고 그나마도 안정적이지 않았다. 일단 한번 수급권이 박탈되면 다시 수급권자가 되기 어렵기 때문에 그는 아들의 수입이 안정적이 된 후에 신고하려고 지켜봤단다. 그러나 아들은 6개월쯤 다니다가 직장을 그만뒀고 그 후로는 취직을 하지 못했다.
“벌써 24살이니까 결혼을 하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라도 취직이 돼야 해요. 하지만 막상 아들이 취직을 해도 걱정이에요. 취직하면 수급권이 박탈되는데, 그렇게 되면 생계비 지원만 끊기는 것이 아니라 의료보호는 물론 현재 복지관에서 지원 받고 있는 반찬서비스와 가사도우미도 끊기거든요.”
그는 일주일에 이틀 오전 오후에 오는 가사도우미가 없으면 목욕과 세탁은 물론 화장실도 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소변은 넬라톤이라고 해서 방광에 요도관을 삽입하여 뽑아내지만 대변은 화장실 구조상 그가 사용하는 수동휠체어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 일주일에 두 번 가사도우미가 왔을 때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문제 역시 만만치 않다. 다른 약은 보건소에서 받으면 그만이지만 척수장애로 인해 필요한 소변주머니와 혈액순환제는 구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의료보호를 받는 현재도 매달 4만원이나 들어가는데, 수급권이 박탈돼 의료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면 의료비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취직을 한다고 해봐야 월급이 뻔하잖아요. 오히려 직장에 다니면 옷도 사야하고 교통비에 식비도 들어가기 때문에 여기저기 지출이 늘어나는데 80만원으로 이런 것까지 감당하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수급권이 박탈되면 100만원 가까이 임대료를 더 올려줘야 이곳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거든요. 이 돈으로 어디 이사를 갈 수도 없고…. 그러니 아들이 취직을 한다고 해도 막막하죠. 아들에게는 부담이 될까봐 이런 상황을 말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막막해요.”
이런 상황은 장씨 가정만 겪는 일이 아니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서 비슷한 나이대의 자녀를 둔 가정은 대개 비슷한 갈등을 겪는다.
강서구청 생활안정팀에서 근무하는 김은주씨는 “이곳에 사는 아이들이 빈곤을 탈출하는 경우는 드문데 그것은 아이들에게 지워지는 부모에 대한 책임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라며 “특히나 부모에게 장애가 있는 경우는 의료비 부담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크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취업상담을 받고 있는 고용안정팀의 김옥란씨 역시 비슷한 지적을 했다.
“수급권자의 경우 구직등록을 할 때, 취업이 되고 나면 수급권이 박탈된다는 설명을 미리 해줘요. 그러면 등록하러 왔다가도 대부분은 그냥 돌아가요. 문제는 이런 현상이 부모들 세대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영구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자녀 세대에도 적용이 된다는 거죠. 취업을 해봐야 월급이 100만원을 넘기 어려운데 수급권이 박탈되면 생계비만 못 받는 게 아니라 의료혜택과 더불어 영구임대 거주 자격까지 사라지거든요. 자기 앞가림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부모님 생계비에 의료비, 100만원에 가까운 임대보증금 인상까지 생각하면 쉽게 취업하기 어렵죠. 직장생활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초기엔 오히려 손해가 되는 경우도 많고 그 기간 동안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도 애초부터 구직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김옥란 씨의 말이다.
그들의 어깨에 놓인 부양의무 때문에 노동도 수급권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자녀들, 빈곤의 대물림은 대개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큰방과 현관문 사이의 좁은 복다. 휠체어가방향을 전환할 공간이 없다. 돈 벌었어? 그럼 생계비 삭감!
이곳에 사는 장애우 중에는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노력했다가 오히려 생계비를 삭감당한 경우도 있다. 서울 강서구 등촌7단지에 사는 정수영(가명, 37, 뇌병변1급) 씨. 2000년에 지하철 매점을 배정받아서 일을 한 적이 있다는 정씨는 계약기간이 만료돼 매점을 정리하고 난 후로 소득이 전혀 없었지만 생계비는 계속 일부가 삭감되어 나왔다. 작년 여름에 아파트 주변에서 노점을 하다가 동사무소 직원에게 걸린 이후로는 “소득이 없다고 말해도 믿을 수가 없다”며 생계비를 깎아버렸단다. 그나마도 찾아가서 따지고 설명하고 해서 현재 두 사람 생계비 48만원과 아내와 자신의 장애수당으로 각각 10만원씩 총 68만원을 받고 있었다.
이렇게 대략 10만원 정도의 생계비가 삭감된 것은 추정소득 때문이다. 추정소득이란 신고소득 외에 수급권자가 벌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소득으로 현재 정부는 본래 지급해야 할 생계비에서 추정소득액 만큼을 삭감해 지급하고 있다. 보통 장애 1, 2급의 경우에는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추정소득이 부과되지 않지만 정씨의 경우에는 노동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추정소득을 부과한 것이다.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2000년에 목숨을 끊었던 최옥란 열사 역시 추정소득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이유도 정씨와 비슷하게 노점상을 했던 ‘경력’ 때문이었다.
“억울하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노력한 건데 지원은커녕 오히려 불이익을 주는 법이 어디 있어요? 이건 장애우는 애초부터 노동할 생각 말고 조용히 집에나 있으란 말밖에 안돼요.”
그는 생계비 68만원 중 관리비(15만원)와 각종 공과금(20만원)에 벌써 절반이 넘는 돈을 지출하고 있었다. 의료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아내가 간질로 고생하고 있는데다 두 번이나 임신중절 수술을 받아 몸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은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서, 다른 한번은 태아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해서 수술을 했다는 그의 아내는 몸이 약해서 병원에 자주 간다며 의료보호에 해당되지 않는 약값과 검사비가 20만원 가까이 나오기도 해서 의료비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의 또다른 걱정거리는 전동휠체어다. 전동휠체어가 없으면 전혀 이동할 수 없는데, 한번 고장이 나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수리비가 일단 5만원이 넘고 보통은 30만원 안팎의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전동휠체어가 없으면 혼자서 이동할 수 없으니 수리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니 이것은 장애우에게 부가되는 또 다른 경제적 압박이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저축이라도 해두고 싶지만 매점을 운영하던 시절에 300만원짜리 적금을 들었다가 곤욕을 치른 뒤로는 더 이상 은행에 저축하지 않게 됐다.
“없는 형편에 조금 더 나은 삶을 꿈꾸면서 아끼고 아껴서 저축한 건데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와서 대뜸 ‘정수영 씨, 돈 많네?’ 하더라고요. 그 말에 어찌나 기분이 상하던지…. 어쨌든 전산망을 통해서 적금을 든 사실을 확인한 동사무소에서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바람에 결국 만기를 몇 달 앞두고 손해를 보며 해약했어요. 몇 달만 더 버티면 3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해약하면서 겨우 160만원만 받았죠. 게다가 돈을 찾아 놓으니까 그마저도 흐지부지 사라졌어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사는 박동기(가명, 39, 지체장애1급)씨 부부의 경우엔 청약부금만 자신의 이름으로 들어놓고 목돈을 모으는 예금통장은 아예 다른 가족 앞으로 명의를 돌려놓았다. 자신의 이름으로는 돈을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전동휠체어를 이용하기 때문에 조금 더 넓은 국민임대주택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요. 그 꿈을 이룰 때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박동기 씨의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족이 있고, 그 가족의 삶이 팍팍하지 않은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그와 비슷한 형편이라면 그가 어렵게 모아놓은 돈에 손을 댈 수도 있고, 그렇게 됐을 때 그 돈을 찾을 방법도, 억울함을 하소연 할 길도 없기 때문이다. 박씨 옆에 그런 믿을만한 가족이 있다는 것은 박씨로서는 다행한 일이지만 대신 그 때문에 간주부양비 명목으로 그 역시 생계비를 삭감당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수급권자로 살아가는 장애우의 삶이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 없어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사는 김동성(가명, 46, 지체장애1급)씨의 경우엔 생계비가 삭감이 되더라도 일을 하고 싶다는 경우다.
필리핀에서 온 아내와 함께 6살짜리 딸과 4살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는 그는 현재 생계비 94만원에 장애수당 10만원을 추가로 받고 있다. 그러나 이 돈으로 네 가족이 살기는 버겁다. 문제는 아이들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아이들에게 드는 돈이 월 40만원. 보험료 27만원. 여기에 관리비 13만원, 각종 공과금 10만원을 내고 나면 주부식비는 대략 10만원 안팎에서 쓸 수밖에 없고 다른데 돈 쓸 일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카드를 사용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결국 한달 생활비는 적자가 될 수밖에 없단다.
보험료? 낯설겠지만, 그는 아내와 자녀들 앞으로 보험을 들었다. 이것은 의료보호에 해당되지 않는 질병과 장래 아이 교육비를 위한 대비책인데, 그는 아이들이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에 당장 힘들더라도 보험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엔 그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결혼 전에도 장애가 있었지만 첫째 둘째를 날 때만 해도 걸어 다녔는데 몇 년 전 척추가 눌리면서 마비가 왔고 결국 지금처럼 전동휠체어를 이용하게 됐어요. 당시엔 수술을 받으려고 했죠. 걸어 다녀야 한푼이라도 더 벌 수 있으니까. 근데 돈이 있어야죠. 병원에 갔더니 담당자가 한다는 얘기가 ‘이 수술 의료보호 안 되는 거 아시죠?’ 하더라고요. 백방으로 알아보다 병원 사회사업과를 통해 어떻게 수술을 받을 기회가 생기긴 했는데, 폐활량이 적어서 위험하다는 말에 아내가 말려서 결국은 관뒀어요.”
그는 아이들만큼은 의료보호가 안돼는 상황이 오더라도 치료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보험을 든 것 같았다. 어쨌든 이 일로 인해 그는 오랫동안 해 오던 일을 관둬야 했다.
“그 전엔 양복이나 한복 만드는 기술이 있어서 그 계통 일을 했어요. 그땐 많이 벌면 200만원 가까이 받았는데 이렇게 된 후로는 다림질도 서서해야 하고, 미싱도 다리를 써야 하는 거라 일을 못하게 됐죠. 그 후로 장사도 생각해봤지만 자본도 없는데다 해봐야 노점상인데 이 몸으론 단속을 피할 길이 없잖아요. 결국 취업밖에 없는데 장애우 초봉에 100만원을 주는 곳이 없어요. 복지관에서는 80만원을 이야기하더라고요. 100만원이면 수급권도 박탈되기 때문에 안 된다고….”
그렇게 취업을 하면 생계급여 94만원에서 80만원 깎고 14만원만 받게 되는 걸 알면서도 그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아이들은 계속 커가고 앞으로 돈도 더 많이 들텐데 모아 놓은 돈도 없이 그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희망을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적어도 네식구가 살기 위해선 최소한 150만원의 수입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런 그의 책임감 때문일까? 가족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그는 가장으로서의 느끼는 압박감이 심했다. 그러나 장애가 있는데다 나이도 많은 편인 그가 그정도의 수입을 보장하는 직업을 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이렇게 생계에 쪼들리면 사람들은 수급권을 유지한 채 돈을 벌기 위해 4대보험 없고 소득이 잡히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한다. 그러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 일단 막노동이 안 되는데다가 화장실 등의 장애인편의시설은 둘째치고 접근이라도 돼야 하는데 이런 직장들은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지하나 2층인 경우가 많고 지역적으로 일산이나 부천 등 서울 외곽에 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은 접근이 되질 않고, 콜택시는 비용도 문제지만 제 시간에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서울 외곽에 위치한 직장은 다닐 수가 없다.
북부장애인복지관에서 직업재활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조윤경 팀장도 “수급권자 대부분이 그렇지만 장애우도 수급권자인 경우에는 4대보험이 안되고 소득이 들어나지 않는 곳을 소개해 달라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런 일자리는 많지 않은데다 장애로 인해 업종도 제한이 있기 때문에 실제 연결되는 것은 많지 않단다.
이렇게 장애우는 편법을 쓸래야 쓸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더 상황이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없는 형편에 청구된 몇백만원의 입원비,
관리비 연체로 이어져 퇴거 위기
▲가옥명도소송이진행되고있음을알리는안내문
정신지체2급에 청각장애2급의 중복장애가 있는 형(61)과 함께 살고 있는 이수찬(가명, 56, 지체장애1급, 강서구 가양동)씨는 의료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다.
93년 입주했을 땐 결혼도 하고 없는 형편에 차도 구입했었다. 그러나 정신지체장애가 있는 형 때문에 생긴 갈등으로 아내는 결국 결혼 1년만에 가출을 했고, 그 후로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다.
이씨는 생계비로 60만원을 받고 형과 자신의 장애수당으로 각각 10만원씩 총 80만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살기 나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결핵을 앓고 있는 형이 지금도 한 달에 두 번씩 병원에 가는데다 입원이라도 한 번 하면 의료보호를 받지 못하는 항목들 때문에 몇백만원씩 병원비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액수는 정부에서 나오는 생계급여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형이 한 번씩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대신 관리비를 연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5개월까지 관리비를 연체했다가 복지관의 도움으로 후원을 받아 병원비와 관리비를 청산한 적이 있지만 의료비 부담은 그 후로도 계속됐다.
이수찬씨는 결국 형의 의료비로 인해서 또다시 4개월째 관리비를 연체했고, 지금은 주택관리사무소 가양관리소장으로부터 가옥명도 소송을 통고받은 상황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비워줄 것을 요구하는 이 소송은 판결이 내려지면 현재 거주자를 강제로 퇴거시키고 거주자에게 강제퇴거에 들어간 비용까지 청구할 수 있게 된다. 그가 받은 소송 통고장에는 “1월 17일까지 그동안 밀린 임대료 및 관리비를 완납하지 않으면 명도소송 판결에 따라 강제퇴거시키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미 연체된 관리비 외에도 생활비가 모자랄 때마다 조금씩 쓰기 시작한 카드빚이, 유예된 상태이긴 하지만 어느새 8천만원이 넘었기 때문에 그는 가옥명도 소송 통고장에 적힌 기한이 넘어가도 쫓아내면 쫓겨나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다고 했다. 형만 아니라면 시설에라도 들어가고 싶지만 현재로서는 형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며 그는 한숨을 내쉴 뿐이다.
이씨처럼 의료비로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한 둘이 아니다. 장애 때문인지 이번 취재 중에 만난 사람들은 모두 한두 가지 이상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고, 병원비로 곤란을 겪은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이를 피할 방법을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쁜우리복지관 사회재활부 이세민 사회복지사는 “의료보호 1종에 해당되는 수급권자의 경우 간단한 진료는 무료로 받을 수 있지만 의료보호에서 보장하지 않는 큰 병의 경우에는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대학병원의 의료사회사업과에 연결해 비용을 지원받거나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할부 형식으로 분할납부를 하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치료를 받는단다. 그러나 수급권자가 평소에도 빠듯한 생계비 지원금을 가지고 분할납부까지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돈이 없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빌리거나 아파트 관리비를 연체하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간병비용만 46만원이 드는데 42만원을 지원하면서 최저생계비를 지급했다고??
마지막으로 소개할 최란(가명, 59, 지체장애1급) 씨는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장애우 가운데 가장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최란 씨의 경우를 보면 정부가 말하는 최저생계비가 얼마나 어이없는 금액인지, 그것이 보장한다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본래 노점상을 해서 먹고 살만큼 경증의 뇌성마비 증상만 있었다는 최란씨가 지금처럼 누워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은 10년 전의 일이다. 3, 4번 척수에 염증이 생기면서 마비 증상이 왔고 이제는 누가 앉혀주지 않으면 혼자서 앉을 수도 없게 됐다.
그런 최씨가 현재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은 생계비 32만원에 장애수당 10만원을 합해 총 42만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중에서 14만원은 관리비로 지출되고 있었다. 최씨의 문제는 간병비용이다. 그는 혼자 앉을 수도 없기 때문에 복지관에서 도시락 배달을 받더라도 누가 앉혀주고 도시락을 앞에 가져다주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가 없다. 따라서 가사도우미가 없으면 잡다한 가사일은 물론이고 밥을 먹을 수도 목욕을 할 수도 소변주머니를 갈 수도 없다. 누가 손이 닿는 곳에 물을 떠놓지 않으면 물조차 마실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에게 가사도우미는 생명과 직결된다고 할만큼 절실했다.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가사도우미 서비스는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두 시간만 이용할 수 있을 뿐 저녁시간에는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저녁밥을 먹고 소변주머니를 갈려면 누군가를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최씨는 현재 후원을 연결 받아 저녁시간 동안 그의 신변처리와 가사 일을 돕는 사람을 고용하고 있다. 후원을 통해 그가 가사도우미에게 지불하는 돈은 무려 46만원. 그가 지원받는 한 달 생계비보다 무려 4만원이나 많은 금액이다. 그러니 그가 받는 생계비로는 도저히 충당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달 말이 되면 지금 받고 있는 후원마저 끊기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전에는 개인적으로 25만원을 지급하고 도우미를 불렀어. 근데 그 사람이 다른 직장을 구했다면서 그만 뒀지. 언니가 한명 있지만 살림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본인도 나이가 많이 들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형편인데 날 어떻게 도와주겠어. 언니랑은 가끔 전화 통화하는 게 전부야.”
당시에 지금 수준의 생계비를 받고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한달에 관리비 14만원과 간병비로 25만원이 나가면 단지 3만원이 남는다. 이 돈으로 식비를 비롯해 모든 비용을 처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는 가사도우미가 절실하기 때문에 식비를 비롯해 다른 모든 비용을 줄였다. 그래서 전화와 텔레비전 외에는 방에 아무것도 없다. 하루 종일 가사도우미 외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일주일에 한번 보건소 방문간호사와 천주교 신부님이 방문할 뿐이다. 대화할 사람도 없이 하루 종일을 누워서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외롭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건조한 목소리로 “외롭지. 외롭지만 참는 것 밖에 다른 방도가 없잖아.” 하고 말할 뿐이었다.
가사도우미가 와서 방을 치워준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지내면서 소변주머니로 소변을 받아내고 있기 때문인지 생활시설에서 날법한 독특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는 외출은 생각도 안한다고 했다. 당장 저녁 두 시간도 와 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외출에 필요한 것들을 챙긴다는 게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지원받은 전동휠체어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작은 방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에 시설은 생각해보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최씨는 “시설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야. 자유가 없잖아”라며 잘라 말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지 자신을 돕는 일에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익근무요원이라도 사회복지서비스에 배치해서 서비스를 해줬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법이 정의한 것처럼 최저생계비가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이라면 최란 씨에게 최저생계비는 적어도 생존에 필요한 간병비용 46만원을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어야 하지 않을까? 최란씨는 정부가 말하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집을 개조해 방 한 칸 비우고 스쿠터를 보관하고 있다. 장애우는 이래저래 공간이 좁을 수 밖에 없다. 최저생계비 의미 없다
살펴본 사례들은 영구임대주택에서 살아가고 있는 장애우의 삶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결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위에서 자세히 적지는 않았지만,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장애우 중에 하루 세끼를 챙겨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식비가 생활비 중에서 가장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항목이라 생활비가 모자라면 가장 먼저 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두끼. 그것도 변변한 반찬도 없이 먹거나 한끼는 아예 라면이었고, 그나마도 복지관의 도시락 혹은 반찬 배달 서비스에 의존하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고 있었다.
장애 때문에 직접 요리를 할 수 없는 사람의 경우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식당에서 한끼만 배달시켜 점심과 저녁으로 나눠먹거나 복지관에서 배달받은 한끼 분량의 도시락을 반으로 나눠 두끼를 모두 해결하기도 했다.
취업을 하면 오히려 불이익을 받거나 수급권이 박탈되는 문제도 있지만 장애로 인해 취업자체가 어렵다. 그렇다고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각 단지마다 들어선 지역사회복지관은 대부분 노인 중심의 프로그램만 운영하는데다 장애인복지관은 조기예방과 치료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서 성인장애우의 경우에는 복지관에 와도 할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일상은 외롭고 무료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지내다 큰 병이라도 나면 어떻게 손써볼 도리가 없이 생계의 위협을 받는다.
취재 도중 만난 한 장애우는 “200만원 안팎의 영구임대아파트 보증금으로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갈 수도 없고, 실제 영구임대주택에서 돈을 벌어 이사를 나갔다는 사례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변화도 희망도 없다”고 말했다. 등촌3동 김재중 사회복지팀장의 말처럼 로또당첨이라도 되지 않는 한 이곳은 이들 인생의 최종지였다.
최란씨는 시설로 들어가면 자유가 없다고 말했지만, 과연 지금 그녀가 누리는 자유가 무엇일까? 할일 없이 무료한 일상,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안보이고, 이곳을 탈출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격리된 지역. 결국 영구임대아파트는 가난한 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동사무소와 지역사회복지관을 통해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거대한 복지시설 이상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혹시 영구임대주택이 거대한 복지시설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글 사진 조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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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임대아파트 어떻게 만들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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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권 박탈우려, 구직 포기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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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청의 구인정보 게시판. 구직자는 40대가 많지만 구인정보는 모두 30세 안팎의 젊은 사람
만을 원할 뿐이다.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장애우들이 구직등록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나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장애우만 따로 파악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장애우뿐만 아니라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인 경우 취업되면 수급권이 박탈되기 때문에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취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 단지 생계비 지원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료 등의 다른 혜택까지 사라지기 때문에 쉽사리 수급권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구청은 모르겠지만 수급자가 고용안정센터에 구직등록을 하는 경우는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자활훈련이 목적이기 때문에 실제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급권을 포기하고 취업하는 경우는 없나
수급권을 포기하는 경우보다는 4대보험을 내지 않는 아르바이트를 연결해 달라는 요청이 있다. 수급권이 박탈될 정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단 소득이 발생하면 생계급여에서 발생한 소득만큼을 제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로로 취업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소득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4대보험이 되지 않는 사업장은 연결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곳에 취업 현황이 어떤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장애우를 고용하겠다는 업주가 있나
장애우를 고용하겠다고 먼저 나서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업체가 구인등록을 할 때 장애우도 상관없냐고 묻는데 아주 경한 장애라도 꺼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인업체와 상담을 하다가 연결하려는 구직자가 장애우라고 하면 애초부터 들으려고도 안한다. 장애인고용장려금제도가 있어도 차라리 벌금을 내고 말겠다는 경우가 많아서 현장에서는 고용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장애6급으로 비장애우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을 구직 연결한 적이 있었는데, 면접을 보도록 업주를 설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면접에서 결국 채용하지 않았다.
직업훈련을 받는 경우는 많은가
직업훈련의 경우 한달에 최고 31만원까지 훈련수당을 주기 때문에 취업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당에 목적을 두고 훈련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경우 결국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작년부터는 훈련수당이 중복급여라고 해서 훈련수당을 받으면 해당 동사무소에 통보해서 그 금액만큼을 생계급여에서 제하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취업훈련마저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훈련을 받겠다고 신청을 했다가도 이러한 설명을 해주면 훈련을 포기 경우도 종종 있다.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가장 큰 문제는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자녀들도 취업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취업이 되면 월급이 빤하다. 월 100만원 내외에 불과한데, 수급권이 박탈되면 생계비 지원을 물론이고 의료 등의 혜택과 더불어 영구임대아파트의 거주자격이 사라진다. 200만원 전후의 영구임대아파트 보증금으로 서울의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갈 수도 없기 때문에 대부분은 보증금을 올려주고 계속 산다. 그렇게 100만원 가량 임대 보증금을 올려주고 초기에 직장생활에 들어가는 비용 등을 따지면 취업하는 게 취업 초기에는 오히려 손해가 되는 경우가 많고 그 기간동안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조차도 애초부터 구직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취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문제로 안정된 취업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빈곤을 벗어나기 어렵다.
강서구청의 구인정보 게시판. 구직자는 40대가 많지만 구인정보는 모두 30세 안팎의 젊은 사람만을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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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화장실 이용할 수 없어" 영구임대아파트는 건설 초기부터 정책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장애우에게 더 많이 제공되었다. 이로 인해 장애우생활시설을 제외하고는 한 지역에 이렇게 많은 장애우들이 집중적으로 사는 경우가 드물다고 할 만큼 많은 수의 장애우들이 영구임대아파트로 입주했다.
전동스쿠터를 이용하는 L(37, 뇌병변1급)씨가 바로 집을 개조한 경우다. 그 역시 그동안 잡고 올라갈 것이 없어서 혼자서 변기를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집을 개조하면서 화장실 변기 옆 벽에 지지대를 설치했다. 그러나 화장실 내벽은 속이 비어있는 공벽이라 힘을 받을 수 없었고 결국 자신의 몸무게를 버틸 수 없게 된 지지대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그 밖에도 집이 좁아서 스쿠터나 전동휠체어 등의 보장구가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든가 욕조의 높이가 높아서 이용할 수 없다든가 싱크대의 높이가 맞지 않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심지어는 휠체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다리가 불편한 장애우에게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3층을 분양한 경우도 있었다. 현재 대부분의 장애우들은 정책적으로 구조변경이 쉽지 않은데다 시설을 개조할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몸을 집에 맞춘 채 살아가고 있다. 아파트만 분양하고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을 갖춰주지 않는 것, 이는 분명한 인권 침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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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 작성일
올 한해 하시는일 번창하시고 건강하세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비번 : 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