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강제노역 성폭행 등의 인권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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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시설의 인권침해 사건이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인권침해의 방법도 갈수록 교묘해져 그나마의 단속망조차도 빠져나가고 있다. 전북 전주시에 있는 ‘행복한 집’이 바로 이 경우다.
교회라는 공간에 장애우, 노인 등을 모아놓고 사실상 시설운영을 했지만, 전주시청 측은 교회 안에서 거주했다는 것 때문에 종교생활로 간주, 단속을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종교라는 이름을 빌린 인권의 사각지대 안에서 폭력에 저항할 수 없는 장애우와 치매 노인 등 생활인들은 강제노역, 성폭행 등의 인권침해를 고스란히 겪어야만 했다.
전주시 ‘행복한 집’ 사건을 〈함께걸음〉이 밀착 취재했다.
귀신 쫓는 목사와 성폭행 혐의 받고 있는 장로
“여기 와서 한 9개월은 그렇게 울더라고요. 아침에 눈만 뜨면 무조건 우는 거예요. 말도 잘 안통하지, 왜 우는지 도대체 영문을 알 수가 있나. 아무리 달래고 어르고 혼 내키고 해도 아침에 일어나기만 하면 우는 거예요. 그러다 얼마 전에 불쑥 얘길 하는데, 글쎄 성폭행을 당한 내용이었어요.”
전북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나영심 사무국장은 당시 A씨(26.여.정신지체2급)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고 성폭행을 당한 사람은 A씨뿐만 아니었다. C씨(24.남.정신지체3급)도 있었다. 나 국장은 “9개월 전에 C씨가 이곳에 왔을 때 잘 앉지도 못하고 걸을 때도 구부정하게 다녔거든요. 성폭행 때문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죠” 라고 말했다. A와 C씨는 모두 작년 7월 ‘행복한 집’에서 이 곳으로 옮겨온 장애우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 함께 생활하고 있는 A씨의 언니인 B씨(32.여.정신지체3급)는 “목사 아들 대소변도 받았다. 마늘 까느라 손이 아파 죽을 뻔 했다. 매일 신김치만 줬다. 교통사고도 당했는데 돈도 안줬다”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도대체 ‘행복한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전주 시청에 의하면 ‘행복한 집’이 발견된 것은 2002년경이라고 한다. 당시 복지부는 미신고시설 양성화지침 일환으로 전국 미신고 시설을 일제히 조사한 바 있다. 신 모 목사가 운영했던 행복한 집은 2003년 신 목사가 건물을 허물고 자진폐쇄 신청을 하면서 형식상으로는 존재 자체가 없는 시설이 되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신 목사가 근처에 교회(‘행복한 교회’-전북 전주시 완산구 삼천3동 소재)를 지어 1층에 ‘행복한 집’이라는 미신고 시설을 차린 것. 신 목사는 예배당에 장애우, 노인 등을 모아놓고 생활하면서 사실상 미신고 복지시설을 운영했다.
나 국장은 “행복한 교회 신 목사가 귀신 쫓는 목사, 질병 상담해준다는 플랭카드를 여기저기 붙였죠. 그게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A,B,C씨 경우도 고쳐보자고 부모나 친척들이 보냈다고 하더군요”라고 설명했다. 나 국장에 따르면 많을 때는 스물 대여섯 명의 장애우, 노인들이 교회 안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실제로 행복한 집에서 생활했던 D씨(남.시각장애1급)는 “여자들은 예배당 홀에서 자고 남자들은 예배당 안에 칸막이를 쳐 만든 방에서 잤어요. 반찬은 주로 오뎅, 단무지 김치였을 정도로 형편없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D씨는 “나는 몸은 건강한 편인데, 신 목사가 갑자기 간이 좋지 않다면서 안수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귀신을 쫓는다고 손가락으로 배를 누르더군요. 제가 맛사지를 10년 한 사람인데, 가령 아프다고 해도 그런 곳을 심하게 누르면 안되거든요. 제가 너무 아파서 반항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팔과 다리를 잡으라고 시키고는 엄지손가락으로 배를 심하게 눌러댔어요.
그 안에서 생활하던 장애우나 노인들도 모두 이런 식으로 안수기도를 받아야 했습니다.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병원에는 안 데려갔고, 대신 기도를 시키거나 안수기도를 강요했어요.”라고 증언했다. D씨는 참다못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한 달 만에 탈출했다고 말했다.
정신지체 장애우인 B씨는 “식당에서 갖다 준 찬밥 먹고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토했다. 신 목사는 약도 안주고 안수기도만 했다.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아파죽을 뻔 했다.”고 말했다.
또한 신 목사는 생활인들에게 임금 한 푼 없이 강제 노역을 시켜온 것으로 드러났다. 신 목사는 교회 옆에 식당을 운영했는데 여성생활인에게는 식당 일을 시키고, 남성 생활인에게는 교회 신축 잡일을 시켜온 것이다.
정신지체 장애우인 A씨는 “식당에서 마늘 깠다. 손이 퉁퉁 부었다. 아팠다. 일을 못하면 미친년 죽어라, 하고 말했다.”고 전했다. 자매인 B씨 또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일했다. 그리고 교회에서 빨래도 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B씨는 장애가 심한 신 목사 아들의 신변처리까지 해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식당 일을 마치고 교회로 돌아오던 B씨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가해자로부터 받은 합의금은 신 목사가 중간에서 가로채고 B 씨에게는 단돈 10만원만 주었다고 한다.
관리자 없는 교회 안, 장로가 상습적으로 성폭행
이렇게 생활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보면 신 목사는 교회 안에서 시설을 운영한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신 목사는 생활인의 복지는 뒷전이고 사실상 돈벌이에만 급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생활인들에게 임금도 안주고 본인이 운영하는 식당일을 시킨 것과 교회 신축과 관련된 건설 잡무를 강제로 시킨 것만 봐도 그렇다.
뿐만 아니라 신 목사는 교회 신축과 관련해서도 사기를 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신 목사는 잠적 중이고, 행복한 집 생활인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진 상태다.
2005년 12월 7일자 새전북신문은 신 목사가 노부부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고 밝혔다.
얘기인 즉 이렇다. 2001년도에 신 목사가 치료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원선 씨(86)가 그를 찾아간 것이다. 신 목사는 재산이 좀 있는 이 씨에게 접근해 이 씨 부부의 부양을 책임지고 노인복지센터를 건립하겠다는 조건으로 이 씨가 소유하고 있는 전주시 삼천동 땅 240평(시가 2억4천만원 상당)을 무상증여 받았다. 그러나 1년 뒤 그 땅에 세워진 것은 노인복지센터가 아니라 교회였다. 이 씨가 뒤늦게 땅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신 목사는 잠적해 버렸다.
신 목사가 이렇게 사리사욕을 채우려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동안, 교회 안에서 생활하는 정신지체 장애우들과 치매노인, 정신장애우들은 관리자 없이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었다.
그리고 행복한 집의 이러한 상황은 다른 사람들에게 악용될 불씨를 제공한 셈이 되었다.
평소 목사가 자주 자리를 비우고, 교회 안 장애우들이 아무런 보호 없이 생활하고 있는 상황을 잘 알고 있던 교회 장로인 이 모 씨(59.남)가 이 기회(?)를 틈타 수개월동안 상습적으로 생활인들을 성폭행해온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피해자들은 이 씨가 협박해 교회 예배당과 교회 뒤편 솔밭, 빈 집 등으로 끌고 다니며 성폭행 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씨의 성폭행은 신 목사가 땅 사기사건으로 잠적해 행복한 집이 사실상 폐쇄되고, 피해자 A,C씨가 전북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로 옮겨 온지 9개월이 지나서야 드러났다. 피해자 두 명 모두 정신지체 장애가 있으며 가해자에게 심한 위협을 받아 꿈에서도 시달릴 정도였다고. 그러니 그 충격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 사건을 표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행복한 집에서 온 C씨를 보호하고 있는 나 국장은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C는 겁도 많은 편이예요. 이 씨가 피해자들을 외진 곳으로만 끌고 다녔더라고요. 이 씨가 사실을 말하면 죽여버리겠다고 말했대요.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었을 거예요. 정신지체 장애 특성상 협박이나 위협을 받는 상황이면 다른 사람 도움 없이 그 상황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합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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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피해자가 성폭행 장소로 지목한 곳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요청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적이 드문 후미진 곳이었다. |
‘교회’에서 생긴 일, 종교생활일 뿐이다?
기자가 만난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의 바램은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나 국장은 지난 1월 5일 전주 중부경찰서 형사가 찾아와 조사를 해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달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중부경찰서 담당형사는 지난 2월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성폭력 사건인지 아닌지는 더 수사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피해자들이 정신지체 장애가 있어서 이들의 진술만으로는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가해자의 실제주소와 거주지가 달라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번주 말에는 가해자를 불러서 조사를 해 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이 있는데, 당장 조사를 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가해자를 불러 볼 계획이라니. 게다가 피해자들의 보호자들은 신분이 드러날까 두려워 고발을 원하지 않고 있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보호자조차 없는 상황이다.
만약 피해자가 비장애 여성이고 끝까지 항의를 할 보호자라도 있다면 경찰들이 이렇게 느긋하게 대응했을까, 의문스러웠다.
그렇다면 교회 예배당에 스무 명이 넘는 장애우, 노인 등이 생활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관할 공무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전주시 삼천3동 동사무소 측은 “행복한 집은 미신고 시설이라서 동사무소 관리 대상이 아니다. 전주시청에 전화해보라”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기자와 통화 당시 담당 공무원은 행복한 집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몇 명이 있는지 정확한 숫자도 모르고 있었다.
전주시청 장애인복지과는 “행복한 집은 3년 전에 건물을 허물면서 폐쇄된 시설이다. 미신고 시설은 법적으로 허가받은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시설장이 안하겠다고 하면 별다른 절차 없이 그냥 문 닫는 것이다. 당시에 행복한 집은 미신고 시설이어서 지원해준 것도 없었고 따라서 관리 대상도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신 목사가 교회 안에 장애우, 노인들을 모아놓고 생활했던 것을 몰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알고는 있었지만, 신 목사가 사람들을 모아 했던 것은 종교적인 일이다. 교회 안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행정적인 업무로 인한 종교 간섭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잘못했다간 종교 탄압했다는 말 듣기 십상이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행복한 집에서 벌어졌던 성폭행 사건에 대해 묻자 “들리는 풍문으로 교회 안에서 뭔 일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행정적으로 관여할 일이 아니다. 만일 혐의가 사실이라면 사법기관에서 판단할 것이다.”라고 못 박았다. 기자가 행복한 집에 기초생활수급자도 있었다고 하자, “그것은 관할 주소지의 동사무소가 관리할 몫이다.”라며 책임을 돌렸다.
한마디로 관련 공무원들은 서로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행복한 집이라는 미신고 시설이 사실상 교회 안에서 계속 운영됐지만, 장소가 교회였다는 이유만으로 종교생활로 치부해버렸던 것이다.
고통받는 피해자들,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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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신 목사는 잠적했고 행복한 교회는 문을 닫은 상태다 |
이번 전주시 행복한 집 사건은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들을 시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들이 있다.
복지부는 2002년 미신고시설 양성화지침을 발표, 이 시설들을 신고시설화하기 위해 신고시설 기준을 완화했고, 로또기금으로 건물을 지어주는 등 여러 시책들을 집행해왔다. 그런데 여기에 종교시설은 예외였다. 그래서 지침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기도원 등은 제외되었다.
이번 ‘행복한 집’ 사건은 이 틈새를 악용한 전형적인 사례다. 아무런 법적 기준이 없는 미신고 시설을 맘대로 운영하다가 여의치 않자, 교회를 지어 장애우들을 불러모았다.
사실상 교회 안에서 시설을 운영했음에도 종교를 빌미로 단속망을 교묘히 피해갔던 것이다. 교회 주변 사람들에 의하면 교회 1층에는 생활인들이 2층에는 신 목사 가족과 친척들이 살았 단다. 그리고 교회로 들어온 각종 후원물품은 가족 및 친인척들이 나눠썼다고 하니, 이는 장애우들 팔아서 생활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여진다.
담당 공무원들의 낮은 인권의식 또한 문제다. 이들은 분명 교회 안에서 장애우들이 생활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회 안에 전문적으로 돌봐줄 사람도 없이 장애우들이 단체로 생활했고, 여성생활인들이 무방비 상태로 예배당 홀에서 숙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공무원은 없었다.
전주시청 장애인복지과 담당 공무원은 “연말연시에 불우이웃돕기 물품도 가져다주곤 했다. 가끔 교회를 가긴 했지만, 신 목사는 거의 자리에 없었고, 낮엔 생활인들도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장애우들을 돌봐야할 관리자가 왜 늘 자리를 비우는지, 보호를 받아야할 생활인들이 왜 없는지, 공무원들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어도 금방 드러났을 일이 아닌가.
종교라는 테두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생활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느냐일 것이다.
그리고 또한가지 놀라웠던 것은 장애를 ‘귀신들린 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장애인식은 이정도인가 싶었다. 정신지체나 정신 장애 등을 기도로 고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를 이용한 신 목사의 사기가 가능했다.
기자가 만난 피해 여성은 아직도 그 때의 상황을 쉽게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해자로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았던 피해자들이 있고, 이들은 아직도 그 악몽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 정책의 허술함과 관련 공무원의 인식부족 때문에 생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이들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은 도대체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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