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생활시설 생활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발표회
본문
지난 2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장애인생활시설 생활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토론회’가 열렸다. 작년 8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실태조사는 전국 22개의 양성화된 장애우 시설을 대상으로,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던 744명 가운데 총 235명의 생활인과의 1:1 면접조사로 이루어졌다.
특히 이번 조사는 현재 장애우 시설에서 살고 있는 생활인들의 삶을 단적으로 드러낸, 첫 실태조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 날 토론회는 ‘사회복지시설생활인인권확보를위한연대회의’(이하 시설인권연대)의 김정하 활동가의 조사과정 및 결과 발표와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남구현 교수의 생활인 인권보장을 위한 개선 방안 발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 |
강요로 인한 시설 입소, 77.8%
시군구 사회복지관계자 만나본 적 없다, 93.2%
이번 조사를 실행했던 시설인권연대는 “시설 생활인의 자기결정권 침해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고,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사람으로 존중받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입소부터 시설 안에서의 생활, 퇴소까지 전 과정에서 생활인이 가지고 있는 결정권은 거의 없음을 보여주는 상황이 드러나고 있었다.
스스로 입소를 결정한 사람은 22.1%에 불과했고, 시설 내에서 일과를 본인이 정하는 경우 6.5%, 원할 때 식사를 할 수 있는 경우 5.1%, 개인의 취향에 따라 문화생활을 하는 경우 5.0%, 자유롭게 근린시설을 이용하는 경우 6.8% 등, 시설 측은 생활인의 기호와 욕구, 일정 등에 대한 고려를 거의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시설에 입소한 이유로 장애나 가족, 생계 문제로 인한 입소가 84.5%나 되며, 특히 한창 사회적 활동을 할 시기인 20대~40대에 입소한 장애우들이 160명(68%)에 달했다. 더구나 이들 중에서 129명은 시설에서 5년 이상 생활하고 있었다. 이는 부모 사후 부담을 지게 된 가족들이 시설 외에 선택 가능한 서비스가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정부의 복지정책 부재가 성인 장애우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사된 22개의 시설 생활인들 744명 중에서 수급권자는 모두 539명, 72.%에 달했다. 그러나 본인이 수급권자임을 알고 있고 스스로 통장관리를 하는 경우는 겨우 7.7%였고 나머지는 대체적으로 시설장이 일괄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시설인권연대는 “이는 개인 재산이 시설장에 의해 유용 또는 전용되거나, 생활인의 신분증 등이 악용되어도 그 사실을 생활인들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는 무엇보다도 생활인의 퇴소나 외출 등을 스스로 결정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며, 생활인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직업활동을 했음에도 임금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경우가 69%에 달해, 사실상 시설에서 생활인을 대상으로 한 노동력 또는 임금착취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이번 조사는 시설에서 생활인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여실히 확인시켜주었다. 생활인들의 52.1%가 하루 종일 가만히 있거나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으며, 시설 내의 각종 잡무(가사노동, 농축산업, 다른 생활인의 활동보조인 역할 등)를 하는 경우도 27.2%로 드러났다. 그리고 외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경우는 3.3%였다. 따라서 대다수 생활인들은 프로그램 없이 방치되거나 시설의 대체인력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지역사회와의 교류 없이 고립되어 있었다.
또한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 폭력과 폭언을 당해본 경험이 있는 생활인들이 전체 48%에 달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가해자가 누구인가에 관한 것인데, 시설장이나 총무, 방장등이 가해자인 경우가 50%에 달했다. 이러한 권력관계에서 생활인들은 무방비 상태로 폭력에 노출될 수 밖에 없으며, 폭력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러하지만, 시설 생활을 하면서 중앙정부나 시군구 사회복지관계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는 응답이 93.2%였다. 사실상, 시군구가 시설 생활인들이 처한 환경에 대한 기본적인 점검조차 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사는 생활인 면접조사 뿐만 아니라, 시설 운영자와의 면담과 시설환경조사도 동시에 진행됐다고 한다. 조사 대상이 대부분 신고 시설로 전환되어 있는 상황이었지만, 생활인 명부 작성, 관리나 운영규정의 비치·적용 등과 같이 매우 기초적인 시스템도 없는 곳이 많았단다.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곳이 적을 정도였다니 주먹구구식 운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될 것이다. 그리고 가족으로만 종사자를 꾸린 시설이 50%이며 자격증이 없는 시설장도 50%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설인권연대 측은 “이들은 불쌍한 장애우들을 볼보고 있다는 자부심에, 종교적인 신념으로 무장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시설 운영자들에게 인권 인식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시설에서의 인권침해가 구조화 될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일부 시설에서 생활인들을 시설 운영자와 연계된 정신병원 등에 장기 입원시키는 경우가 많이 포착돼, 시설과 병원 간의 거래에 대한 의혹도 불거졌다.
또한 조사됐던 시설의 대부분이 보편적인 주거 환경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드러났다. 10개소의 시설이 외부에 잠금장치를 해 놓아 언제든지 감금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편의시설이 적절히 설치된 곳은 단 2곳뿐이었다.
시설인권연대는 가건물을 숙소로 쓰거나 심지어 농장 내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으며, 화장실과 샤워실의 남녀구분과 칸막이 등의 설치가 적절한 곳도 겨우 2곳이었다고 발표했다.
시설증후군 부추기는 복지정책부터 바꾸자
시설인권연대는 정부가 2002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미신고복지시설 양성화 정책에 대해서 “시설 외형에서의 일정한 성과를 제외하고는 시설생활인의 인권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며 “양성화 정책은 장애우들을 사회로부터 배제시키는 기능하고 있다. 국가의 이러한 시설 정책이 근본적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현재의 인권침해 상황을 더욱 고착화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사 결과를 발표했던 김정하 활동가는 “상황이 이렇지만, 시설 생활인의 만족도는 의외로 높았다. 이것은 시설장의 끊임없는 주입식 교육과 자기결정권이 심하게 박탈된 상황이 계속돼 욕구가 너무나 억눌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시설을 아무리 잘 지어도 시설이 갖는 폐쇄성 때문에 이러한 시설 증후군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발표회에는 시설에서 자립을 준비하고 있는 생활인 두 명이 본인의 얘기들을 공개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현재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점옥 씨(46)는 “현재 있는 시설이 법인화 하면서 생계비가 시설로 들어가고 있다. 예전엔 생계비를 모으면서 자립을 준비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시설에 나가서 생계비를 받는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 그러니 시설에 몇 억씩 지원하지 말고 생활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현실적으로 지원해주었으면 좋겠다. 자립하려면 방이라도 한 칸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는 청약부금조차 들 수 없고 주소지가 시설로 되어 있어 임대아파트 분양도 신청조차 할 수 없다.”며 자립을 막고 있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윤복희 씨(42) 또한 “시설에서 나와 자립할 수 없게 만드는 현 사회가 더 문제다. 우리는 실패하더라도 도전해보고 싶다. 내 힘으로 내 삶을 살아보고 싶다.”며 자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이번 발표회에서 복지정책 전반에 걸친 대안을 제시한 남구현 교수는 생활시설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원인으로 ▲시설의 폐쇄성 ▲생활시설의 기능과 역할의 모호성 ▲시설의 대규모화와 설치기준의 무분별한 완화 ▲시설 운영자의 비전문성·비도덕성 ▲인권침해에 대한 상시적 감독 시스템의 부재 ▲시설환경의 반인권성과 생활인 수급액에 의존하는 시설운영 ▲시설종사자의 열악한 처우를 지적했다.
또한 남 교수는 “시설생활인의 구체적인 인권확보를 위해서는 ▲생활시설에의 입·퇴소권 보장 ▲복지서비스의 다양화와 관리감독체계 확립, ▲바우처 제도 및 현금 급여의 도입과 구체화 ▲생활인 인권의 절차적 보장 ▲시설 서비스의 최소기준 법제화 등이 필요하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또한 현행 신고제인 시설허가를 특허제로 전환할 것과 시설운영자의 자격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생활시설 설치를 비롯하여 입소자격의 보편성, 보호단가의 차등지원과 공법상 계약제도도 도입 등의 방안도 제안했다.
시설생활인의 인권에 대한 실태조사가 전무했던 현실에서 시설인권연대의 이번 조사 연구는 앞으로 시설정책에 관한 기초연구 자료로써 상당한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관련 활동가들이 전국을 돌며 생활인들과 1:1 면접조사를 했고, 보편적인 주거공간이라는 기준으로 시설환경을 조사했으며, 운영자들의 인권의식의 현주소까지 점검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복지부는 올해 385억원을 시설 증개축에 더 투자할 예정이다. 이에 반해 자립생활관련 예산은 6억만 책정해 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시설중심의 복지정책이 가져오는 폐해를 경험한 선진국들은 탈시설화하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시설을 강화하는 복지정책을 기조로 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시설인권연대의 활동이 시설 중심의 복지정책을 뒤흔들 단초가 될 수 있을지, 이들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 ![]() |
| ▲방안에 가재도구 하나 없거나 심지어는 청소하기 쉽다는 이유로 방바 닥과 벽을 타일로 붙여버렸다. 대형화한 어떤 시설은 한 공간에 몇 십 명을 수용하고 있다. |
![]() |
| ▲성별이나 연령조차 고려되지 않고 생활인들에게 주어진 신발들. 시설은 생활인들의 위생을 위해 종사자를 더 고용하기 보다는 강제적 으로 짧게 머리를 잘라놓고 있으며, 개인물품 또한 보장해주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
![]() |
| ▲한 시설에는 전동휠체어를 기증받기는 했지만, 위험하다며 생활인들 에게 주지 않고 전시만 해놓았다. 생활인들이 보장구 지급요청해 본 적이 없는 경우가 63.6%에 달했다. |
![]() |
| ▲의료처치를 받지 못해 심해진 욕창을 보여주고 있는 생활인의 모습 정기적인 의료검진이 아예 없는 경우가 70.4%에 달하고, 대부분 민간 자원봉사에 의존하고 있었다. |
![]() |
| ▲복지부가 지원한 돈으로 신축했다는 한 시설의 예배당. 시설 안에 예배당을 비롯한 종교적인 상징물이 있는 경우가 77.3%로, 이는 생활 인들에게 어떤 특정한 종교가 강요될 수 있음을 암시할 정도로 높은 숫자다. |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