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장애운동의 성과와 한계
본문
어느덧 2005년도 달력 한 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 할지 고민되는 시기다.
‘2005년 장애계’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먼저 떠올릴까, 한 해를 보내면서 짚어보지 않을 수 없는데, 〈함께걸음〉에서 이러한 자리를 마련했다.
올 해 장애운동 현장을 누볐던 사람들과 함께, 이슈나 사안보다는, 장애운동의 흐름을 중심으로 2005년 장애계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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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현장투쟁이 가속화된 한 해
이태곤(이하 함께) : 안녕하세요. 2005년도 이젠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네요. 올해도 장애계는 참 다사다난 했는데요. 올 한해 장애계를 정리해보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사안이나 사건보다는 운동적인 측면에서 올 해 장애계가 어떻게 흘러왔고,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기룡(이하 김) : 작년에 이어서 올 해도 현장투쟁이 지속됐는데, 여기에 장애당사자 뿐만 아니라 더 폭넓은 운동계층이 합류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지역에서도 서서히 현장투쟁이 가속화된 한 해였습니다. 이러한 성과로 9월에는 전국 단위의 진보적 장애운동연대체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발족했죠. 이는 장애당사자들과 현장 활동가들이 지난 3,4년동안 이어온 현장투쟁을 체계적으로 조직해낸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박 현 (이하 박) : 저는 현실에서 가장 차별받는 당사자들이 현장투쟁에 나서면서 요구를 강화시켜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정립회관을 둘러싼 시설민주화 운동도 빼놓을 수 없겠죠. 저는 시설 투쟁 안에서 기득권층들이 중증장애우들을 대상화 시켜버리는 양상이 올해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들을 대상화시키는 사람들은, 예전에 장애운동을 하면서 중증장애우들에게 현장투쟁의 중요성을 역설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기득권을 갖게 되면서 입장과 태도가 달라진 것이죠. 현재 정부의 복지나 시설 정책이 협회나 기관에게 위탁 운영되고 있는데, 그것이 점차 사유화 되면서 이런 폐단을 낳고 있는 겁니다.
함께 : 올 한 해 장애계를 취재했던 이 기자는 어떠셨나요?
이철용(이하 이) : 저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을 비롯해, 장애계가 추진한 법들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서 몇몇 국회의원들에게 너무 후한 점수를 준 것 같다는 거죠. 장애계는 그들이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길 원했지만, 드러나는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올 한해는 그런 맥락에서 국회를 대상으로 하는 전략들이 실패했던 것 같습니다.
법안 제정에 올인, 장애우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현실 때문
함께 : 2005년도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가 장애계가 법안 제개정에 힘을 기울였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법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냐는 비판도 들리던데요.
김 : 2005년도에 장애계가 법안 마련에 힘을 쏟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국회에 들어간 장애의원들도 법안 제개정에 절치부심했죠. 국회에는 장차법이 표류하고 있고, 교육권연대는 새로운 교육지원법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립생활쪽에서도 자립생활지원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죠. 그래서 항간에는 장애단체들이 법안에 올인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법은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장애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기본적인 장치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것이죠.
저는 장애계가 법안 마련에 애쓰는 이유가 기본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법안 제개정에서 운동이 끝나면 안돼죠. 법이 만들어지면 추가로 관련정책까지 만들게 압박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예산확보 운동까지도 해야 합니다. 어쨌든 장애우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구조를 만들고 지원이 가능토록 해야 하니까요. 아직도 장애우들은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장애 관련법안 제개정 운동이 곳곳에서 나오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내년에도 법안은 중요한 이슈가 될 것입니다.
이 : 제가 좀 전에 국회를 대상으로 한 장애계의 전략이 실패한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잖아요. 물론 정치권이 장애 문제에 대해 특정의원에게만 의지하고 있는 것부터가 문제죠.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당이 지목하는 의원들이 장애 관련 정책을 잘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고 있어서 아쉬움이 있다는 겁니다. 의원들이 본인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만 정보를 듣고 있거든요. 그러니 정보수집에서부터 한계가 생기고, 게다가 현실적으로 정치적인 결정에 밀리고 있잖아요. 저는 장애계 목소리를 대표해 국회에 들어간 의원들이 현장에서 절실히 원하는 요구에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장차법이 극명한 예죠. 이들도 국회에 들어가기 전에는 과거 장애가 있는 의원들이 엘리트였다고 비판했고, 자신이 장애우로 살면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잖습니까? 그래서 우린 이들은 좀 다를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다른지, 의구심이 들죠. 당이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아무리 반대해도, 옷 벗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장애우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입법 활동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 우선은 장애계 목소리를 들어주는 국회의원들이 한정되어 있고, 그들에 대한 기대도 더 컸죠. 그래서 아쉬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이 : 저는 몇 몇 의원들이 장애계 현안과 관련된 법안을 쥐고 있다보니까, 장애계가 그들에게 강력히 문제제기를 못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법은 제정해야겠고, 장애계 목소리를 들을 의원은 별로 없으니, 이들에게 비판을 못하는 거죠. 또한 의원들도 바깥에서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요.
사실 몇 개의 법을 만드느냐는 실적 위주로 국회의원을 평가하다보니, 그 폐해가 장애계에도 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장차법이 크게 소용돌이치고 있지만, 장애계의 목소리로 들어간 사람들이 이것을 제쳐놓고 다른 법안을 하고 있는 경우가 나타나잖아요.
한 의원이 다양한 분야의 많은 법안을 짧은 시간에 할 수는 없습니다. 장애계의 목소리로 들어간 사람이니 장애계의 요구부터 우선순위로 담아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함께 : 생각해보니,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김기룡 사무국장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 : 아까 지적하셨던 것처럼 희소성 때문이지 않을까요. 장애계 의견을 잘 받을 수 있는 국회의원들이 많으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압박하고 공격도 할텐데, 현재 한 당에 1명 밖에 없으니까요. 이 사람들이 그나마 국회와의 소통매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조차도 잃어버릴까 조심스러워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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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법,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함께 : 올 한해 장애계에서 시설민주화 투쟁은 빼놓을 수 없는 얘기일텐데요. 정립회관 투쟁을 계속하고 계신 박 현 씨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박 : 어떻게 보면 시설 이용자로만 치부했던 중증장애우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죠. 장애계 시설민주화 운동의 대표적인 예로 에바다 투쟁을 들 수 있는데요, 현재 정립회관 투쟁은 에바다와는 내용이 많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에바다의 경우 인권유린이 명확하게 드러나 투쟁을 했지만, 정립회관 사안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죠. 현재 소위 말하는 절차를 밟아 이완수가 다시 이사장이 됐기 때문에.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폐쇄성, 중증장애우 배제화, 그리고 문제제기한 노동자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탄압하는 등, 어쨌든 회관 측은 이 둘을 미묘한 갈등으로 몰고 있거든요.
함께 : 그래도 어쨌든 정립회관 투쟁에 중증장애우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이들의 힘이 가시화되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는 것 같은데요.
박 : 최근 장애운동에서 중증장애우들이 중심이 되었다고들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투쟁현장에는 중증장애우들이 나서고 있지만, 그 뒤에서 기득권을 잡고 가는 것은 거의 경증장애우들이기 때문입니다.
장차법에 대해서도 막상 노무현 정부가 입장을 나타내고 이 법이 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정립회관 문제를 핑계로 운동판에서 단체들이 발 빼는 모습을 봤을 때, 저는 이들이 앞에서는 중증장애우들의 차별을 이야기 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기득권을 더 강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앞으로 그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질 겁니다. 이에 대해 저는 각자 입장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가장 차별 받는 당사자인 중증장애우들이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고, 또 이를 바탕으로 장애운동에서 전반에서 정치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 지금 장차법에 관한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요. 올 해 장차법이 참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죠. 그야말로 아쉬운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결과만을 놓고 보자면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애를 썼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김 : 저는 장차법이 법제정에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제정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장차법은 장애우들의 정치적인 힘을 강화시켜내는 내용도 담고 있기 때문에 과정도 중요합니다. 장차법은 국가가 장애우 문제만 별도로 다루는 실질적이고 독립된 기구를 만들고, 여기에 장애우 당사자를 포함한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가자는 것이잖아요.
이것 자체가 장애우의 입지를 강화시키고, 장애 문제에 대한 국가적인 책임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가 큽니다. 그치만 어쨌든 올 해 법을 만드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법이 제정될 때까지 싸워야죠. 장차법은 그야말로 누가 어떻게 주도적으로 잘 할 것인지에 따라서 달라질테니까요.
장차법은 법을 제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할 단계는 지났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만들 것이냐를 고민하면서 투쟁해야죠.
이 : 장애계의 노력으로만 보자면, 장차법은 올해 최소한 상정은 됐어야 하죠.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노무현 정부의 도덕성을 짚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차법은 대통령이 공약을 하고, 국회에 나와서 국민을 상대로 약속을 한 사안인데,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되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이 정부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정책을 발표하는 정부인가, 싶은 거죠. 장차법에 대해서 정부를 포함한 장애계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의견들과 입장이 있는데, 정부가 이를 공개적으로 조율할 생각은 하지 않고, 뒤에서 쑥덕거리다가 이리저리 법안을 돌렸잖아요. 이것은 결국 정부가 장애우들을 국민으로 대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현 정부의 도덕성이 의심스러울 수밖에요.
그리고 현재 정부관료들이 복지에 대한 경험이나 전문성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지관련 자리는 좀 머물다가는 곳으로 치부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복지부 정책입안자들은 단체장들의 의견에만 귀를 기울이고, 단기간에 성과만 내려고 건물 짓는데만 골몰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장애계가 정책결정자들의 마인드를 바꾸는 작업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예가 교육권연대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죠. 전담기관인 교육청 관련자들을 설득하고 이들을 압박해서 결과물을 만들고 있잖아요.
장차법과 정립회관, 입장때문에 갈라서는 장애계 보여줘
함께 : 정부도 문제지만, 이에 대응하는 장애계의 태도도 바람직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장차법이 표류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장애계 내부의 입장 차이를 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이 장애계 전체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계가 또다른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단체들이 각자 추구하는 이념이나 목표가 너무나 뚜렷이 달라서 갈라서는 상황이 아니라, 단지 입장차이 때문에 분열되고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감정이나 추구하는 이익 때문에 분열되고 있는 것이 같기도 하고요.
박 : 정립회관 투쟁에서 서로가 등을 지게 된 몇 가지 이유들이 있죠. 그 중에서 특히 정립회관 쪽에서 회관의 몇몇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정립회관의 비민주성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갈등했던 것이 아닙니다. 이태곤 국장이 말한 것처럼 현재 장애 단체들이 뚜렷한 이념 차이에서 갈라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 때문에 나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분열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장연의 활동이 어떤 식으로 나아가는냐에 따라서 그 골이 더 깊어지겠죠.
함께 : 이에 대해서 이철용 기자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 제가 보기에도 장애계 어떤 단체들에게는 자신들의 입지와 영향력을 위해서 이슈 화이팅을 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물론 포장이야 장애우들을 내세우지만, 현안을 중심으로 장애우 단체들이 각자의 입장 때문에 나눠지는 것이 아쉽죠. 인권을 부르짖던 사람들이 다른 사안에 있어서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이슈를 내놓고 판을 깨는 잡음들이 현재 있거든요.
나의 조직이나 입장에 앞서 장애대중의 문제를 생각해야죠. 그런 맥락에서 보면 장애계가 힘을 합해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진보를 내세우고 있는 단체에도 문제점은 있습니다. 어쨌든 포용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정당성은 있지만, 그들만의 운동으로 비춰질 수 있는 한계가 있지 않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운동을 모두 함께 할 수 없는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는 거죠.
그리고 최근 몇 년동안 자립생활센터들이 우후죽순으로 많이 생겼는데, 문제는 이들이 정부지원금을 나눠먹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정립회관조차도 자립생활 이념을 도입한 공로가 있지만, 회관을 둘러싼 각자의 입장이 달라 이를 꽃 피우지 못하고 있잖아요. 최근 만들어지고 있는 자립생활 단체들이 중증장애우들의 자립생활에 관해서 얼마나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증장애우의 자립생활은 그야말로 전문성과 대중성이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그렇지만 단체들이 정말 중증장애우들의 현실적인 요구에 부응하고 있을까요. 사실 자립생활지원 관련 예산은 다른 정부지원금에 비해서 받기 쉬운 항목이죠. 이 쪽 예산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확률이 크고요. 현재 지원금을 받고 있는 자립생활 단체들은 예산을 지원받았다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더 많은 책임이 있음을 통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계, 중증장애우들의 욕구에 더 많은 관심 가져야
함께 : 이철용 기자가 중증장애우들의 욕구를 얘기했는데,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과연 운동이나 투쟁의 과정에서 이들에게 당장 절박한 우선순위가 무엇이가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되는지 궁금합니다. 중증장애우들의 입장에서는 장차법이 느낌이 잘 오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거든요. 그보다는 자립생활지원법이나 연금이 시급하지 않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듭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이 현실적으로 중증장애우들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현실에서는 점점 이들이 노동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잖아요. 이러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 : 저는 진보적인 장애운동이 장애우들의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이동권이야 말로 현실적인 권리니까요. 그렇지만 뭔가 놓치고 가는 것 아닌가, 반성은 합니다. 현재 자립생활에 대한 중증장애우들의 욕구는 대단히 큽니다. 그렇지만 자립생활 쪽을 대표하는 단체들조차 양분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어느 쪽도 자립생활에 대한 명확한 목표와 설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철용 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앞으로 점차 복지부의 자립생활 지원 예산은 늘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단체 지원금액도 확대되겠죠. 그래서 자립생활 관련 센터들이 선점하듯이 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자립생활의 현주소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직도 자립생활이 운동이냐, 서비스냐, 사업이냐라는 것을 놓고 논쟁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증장애우들의 문제에 대해서 센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느냐, 의문이죠.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와 대립각 세워 따낼 수 있는 곳은 몇 군데가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자립생활 관련단체들은 거의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형편인데 말이죠.
그런데 2005년 장차법 투쟁을 되돌아보면, 내년에 추진될 자립생활지원법과 교육지원법 제정이 왠지 올해 장차법 꼴 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됩니다. 왜냐면 현재 장차법 내용에 대해서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부도 장차법은 필요하다고는 하는데, 사실 받기는 부담스러워하잖아요. 자립생활지원법도 장차법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예산과 국가의 의지가 필요한 것이고요. 장차법과 상황이 비슷하지 않나요. 아마 정부가 받지 않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장차법만은 놓지 말고 끝까지 싸워야한다는 겁니다. 장차법 흐지부지되면 자립생활지원법이라든지 중증장애우의 삶과 밀접한 관련법안들도 흐지부지 될 가능성 많기 때문입니다.
장애계 지역운동, 신흥 운동세력과 기존 세력의 갈등 심화될 것
함께 : 아까 박 현 씨가 말한 부분에 이어서 말을 좀 더 해보자면, 1988년 이후 초기에 운동을 했던 그 사람들이 어느 새 기득권을 가진 그룹이 된 것 아닌가 싶은데요. 그런데 문제는 장애운동으로 직업이나 생계유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아래서 치고 올라오는 운동에 대해 방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지역운동에서도 나타나고 있나요?
김 : 장애계에 있어서 지역운동이 가장 활발한 쪽은 교육권 연대 활동일 겁니다. 그런데 지역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자기 지분을 갖고 지자체와 일정정도 협력을 해오던 단체들이 있더라고요. 운동권 쪽에서는 잘 알지 못했던 그런 단체들이 모여 연대를 만들어 점거하고 정부와 협상도 맺고 그러더군요. 인천이 대표적인 예죠. 저희가 인천 교육청 앞에서 부모들과 농성하고 있는데, 찾아와서 왜 당사자들이 아닌 사람들이 와서 투쟁하고 있냐, 우리가 이런 장애우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관련기관과 협의하고 있다며 나가라고 하던데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지역 유지들의 지분이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부산이나 대구도 마찬가집니다. 기존 세력과 신흥 운동 세력이 충돌하고 있는 거죠. 이런 현상을 보면 어쨌든 지역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단체들의 투쟁에 대해서, 지역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입지를 강화시키려는 기존의 장애단체들이 긴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예요. 이들이 위기의식 때문에 신흥 장애운동 단체에 대응하는 것 같아요. 좀 수준이 저급하죠. 저는 이러한 상황들을 보면서 장애운동의 건전하고 객관적인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에 기존의 장애운동 세력이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함께 : 제 생각으로도 교육권연대의 활동에 대해 지역에 있는 보수 관변단체들은 좀 당황했을 것 같습니다. 기존 큰 단체들이 신설 단체들의 투쟁에 대해서 위기의식을 느꼈을 수도 있고요. 어쨌든 사회복지 예산도 지방으로 넘어갔으니, 앞으로 이러한 갈등양상도 심화되겠군요.
이 : 그렇죠. 경남의 경우, 지자체가 지원하는 장애 관련 단체들에 대한 감사를 갑자기 실시하고 잘못된 부분에 대한 환수조치도 한 일이 있어요. 제 생각으로는 이러한 것이 진보진영의 운동을 통해서 시발된 것 같아요. 이들이 장애계 내부를 민주화시키고 개혁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내부를 정화하고 연대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장애우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파이를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한동안 거세질 것 같네요.
김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자체의 권한이 커져 있는 상황에서 지역에서 투쟁을 하려면 지자체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이냐가 중요질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기존의 보수관변 세력의 반발이나 저항도 생길테지요. 실제로 올해 경북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졌죠. 경북장애인교육권연대 사람들이 경북도청에서 농성하고 있는데, 기존의 관변세력들이 와서 나가라고 난리를 쳤다니까요. 안나가면 오히려 처들어가겠다고(?) 협박하고.
과연 우리가 무슨 요구를 하는지, 무엇 때문에 농성까지 결의하고 있는지 우선 얘기라도 좀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서 동의가 되면 행동을 같이 하고,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정확한 비판을 하면 돼죠. 서로 협력하면 상당히 많은 문제들을 함께 해결할 수 있을 텐데, 풀어야할 현안도 많은데 말이죠. 사적인 욕심 때문에 뭉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많이 놓치고 있어서 안타깝죠.
2006 장애계, 170만 장애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함께 :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현재 국회에 대한 비판은 있는데,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올 해 장애계가 너무 큰 사안만 좇았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예를 들어 복지부는 내년 예산 중에서 385억을 들여 시설을 짓겠다는 발표를 내놨습니다. 장애관련 예산은 장애우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중의 하나인데, 이에 대한 관심과 비판이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 장애우들이 170만 명에 육박하는데, 과연 장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당사자들의 낮은 의식도 문제지만, 과연 장애계가 이들을 추동해내고 있느냐도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좁은 장애계 안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장애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운동을 하고 있지만, 여기에 동참하지 않는, 혹은 동참하지 못하는 장애우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들을 과연 어떻게 설득해서 함께 갈 것인지 장애계가 고민해야할 것입니다.
2005년도를 정리하는 자리이니, 참석자 여러분들이 장애계에 바라는 기대는 무엇인지 들어봤으면 합니다.
김 : 개인적으로 활동가의 일이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연대의 범위도 넓어지고 이슈도 다양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사안이 터지면 시간을 들여 토론과 고민을 하고 나름대로 최적의 대안을 찾아 투쟁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많고, 연대가 커지다보니까 전문성과 체계를 세우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복지문제는 정부에 의해서 포섭되거나 지지하는 세력들에 의해서 예산이 편성되고 집행되어 왔고, 장애대중도 국가주도의 복지정책에 순응해온 측면이 있습니다. 내년에는 이러한 성역 같은 곳까지 장애우들의 힘이 미칠수 있도록,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집중해서 싸워야겠는 것입니다.
박 : 저에게 올해 가장 큰 아픔은 정립회관 사태였습니다. 함께 운동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모두 그 끝을 같이 할 수는 없는 거겠죠. 하지만 정말 말로만 들었던 그 상황, 동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대립적인 상황에서 만나고, 그들에게 무시당하는 중증장애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습니다. 정립회관 문제는 논리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다 떠나서, 그 안에 상처와 아픔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정립회관의 문제가 꼭 해결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장애문제가 법으로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장애문제는 기본적으로 세상의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어내고 변화시켜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장투쟁을 통해서 이런 것들을 만들어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립생활운동도 지역에서 많이 활성화되고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힘들이 모여 장애계의 진보적인 바람을 일으켰으면 좋겠습니다.
이 : 내년에 지자체 선거가 있죠. 풀뿌리 장애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장애계는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할 것입니다. 바람직한 장애정책을 펴는 지자체에는 힘을 실어주고, 그렇지 못한 지자체에게는 설득과 압박을 해야겠죠. 사회복지 예산의 지방이양으로 이제 지자체는 장애대중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리고 장애계가 이제는 폭을 좀 넓혀서 특정 국회의원이나 정당만 바라보지 말고, 국회를 설득해 장애문제에 귀 기울이는 국회의원들을 더 많게 배양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당이든 장애대중이든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큰 틀에서 함께 가는 장애운동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함께 : 올해 장애계가 뚜렷한 성과라고 내놓을 것은 없지만, 향후 장애운동에 있어서 나타날 문제들의 조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장차법 추진과정에 내포되어 있는 문제들, 이에 연관된 국회와의 문제, 지역에서의 문제들도 다시 장애계가 짚어봐야 할 듯합니다. 때문에 내년 장애계에는 상당한 변화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어쨌든 올해도 거리에서 많이 싸운 장애우들에게 박수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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