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영세상인 울리는 서울지하철공사 자판기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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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말, 서울 지하철 1~4호선에는 새로운 과자자판기가 등장해 판매를 시작했다. 110개 역에 184대가 설치된 이 자판기는 지하철 승강장 안에 있어, 굳이 매점을 이용하지 않아도, 지하철을 기다리며 간식거리를 살 수 있다.
‘신우‘라는 회사가 서울지하철공사로부터 운영권을 낙찰 받아 가동 중인 과자자판기는 롯데의 껌, 초코렛, 과자 및 사탕 류 등을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자판기가 지하철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장애우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다시피 지하철의 매점이나 자판기, 복권 및 신문판매대는 저소득층의 소득보장 일환으로 이들이 우선 계약하게끔 되어 있다.
가뜩이나 살기 힘든 이들의 수입을 나눠먹겠다는 서울지하철공사의 자판기 사업에 대해 〈함께걸음〉이 짚어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먹고 살기 힘든데, 여기다 자판기를 또 놓다니 나원참 기가 막혀. 아니 장애우들 먹고 살라며 지하철 매점이랑 자판기 하랄 때는 언제고,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저 자판기만 보면 도끼로 찍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라니까요.”
지하철 4호선 한 역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상인은 이렇게 대답하면서 깊은 한숨을 뱉었다.
요즘 지하철 1~4호선에는 세련되고 편리한 과자 자판기가 설치,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자판기가 장애우들이 운영하고 있는 지하철 매점에서 그나마 좀 팔리는 껌, 초코렛, 과자 및 사탕 등을 똑같이 판다는 것이다.
서울의 지하철, 공공시설에 설치되는 매점이나 자판기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허가하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일반회사가 지하철 내에 자판기를 설치하게 된 것일까.
지하철 매점 운영하는 장애우들의 생계 위협하는 과자자판기
▲지난8월말부터영업을시작한과자자판기
현재 지하철 1~4호선에는 과자회사인 롯데의 껌, 초코렛, 과자 및 사탕 등을 파는 자판기가 새로 설치, 가동 중이다. 올 8월말부터 판매를 시작한 이 과자 자판기는 ‘신우‘라는 회사가 서울지하철공사로부터 운영권을 따내 지하철 1~4호선, 110개 역 승강장에 184대를 설치했다.
이에 대해 4호선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이렇게 장사 안 될 때 와서 물어보는 것도 기분이 나쁘다”며 “장애우들 하라고 허가해준 매점이며 자판기가 지하철 역내에도 많다. 지금은 장사도 안 되서 난린데, 저걸 또 들여놓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라며 반문했다. 덧붙여 “공무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저런 짓이나 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예민해 있는데, 사람들이 저 자판기 도끼로 부셔버린다고 이를 갈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 2호선 한 역에서 매점을 지키던 상인은 “나는 월급 받고 교대해주고 있는데, 내 인건비 받기조차 눈치 보여 죽을 지경이다. 어쩜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지.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기만 하는데, 장사는 안 되고. 없는 사람은 10원 한 장이 아쉬운 건데, 자판기까지 들여놓고 똑같은 과자를 팔아대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지하철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상인들은 새로 설치된 과자 자판기가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며 분노하고 있었다.
장애인복지법(38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기타 공공단체는 소관 공공시설 내에 식료품·사무용품·신문등 일상 생활용품의 판매를 위한 매점이나 자동판매기의 설치를 허가 또는 위탁할 때에는 장애인의 신청이 있는 경우 이를 우선적으로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서울시의 「서울특별시공공시설내의신문·복권판매대, 매점및식음료자동판매기설치계약에관한조례」에서는 “…서울특별시가 설치 관리하는 공공시설에 신문·복권판매대, 매점, 및 식음료용자동판매기(이하 “신문판매대 등”이라 한다)를 설치 계약할 때에는 장애인(장애인복지법 제 2조에 규정에 의한 자) 및 65세 이상 노인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 모자가정의 여성, 독립유공자유가족(이하 “장애인 등”이라 한다)가 우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필요한 사항들을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서울시 관할 공공시설 내의 “신문판매대 등”의 사업에는 “장애인 등”이 일반인보다 ‘우선 계약‘하도록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지하철공사, “적자 해소를 위한 신규사업이며, 향후 더 개발할 계획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장애인복지법과 서울시 조례에서는 저소득층 소득보장의 한 방법으로 공공시설 내의 신문·복권판매대, 매점 및 식음료 자동판매기(이하 조례시설물) 사업계약시 그들에게 먼저 기회를 주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가 관할하고 있는 공공시설에는 조례시설물에 우선계약 혜택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장애우, 노인, 모자가정, 독립유공자 등이 천5명이라고 한다. 그 중 장애우가 6백1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또한 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에만 8백5십여 명이 신문판매대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위 두 공사에 속해 있는 매점은 63개다. (2004.12.31현재)
그런데 신우가 이 매점 수의 3배에 달하는 2백 여 대 자판기를 새로 가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서울지하철공사(이하 공사)는 이번 계약으로 신우로부터 20억 8천여만 원의 임대료를 받게 된단다.
이에 대해 공사 관련 담당자인 최봉한 과장은 “이 사업은 지난 5월 20일에 계약 됐으며 최고가를 써낸 신우가 5년 동안 영업할 권리를 낙찰 받았다. 공사가 받은 임대료는 장소제공에 관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임대료에 관해서는 “조례시설물 사업에 관한 임대료는 지하철 각각의 위치마다 감정평가를 받아 금액을 산정해왔다. 이번 계약은 일반회사를 상대로 한 것이어서 그 평가금액보다 더 상향조정해 계약금을 산정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최 과장은 “조례시설물을 이외의 다른 사업들은 공사의 신규사업개발 혹은 적자 보완책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매점과 일부 품목이 겹치는 것이 있다고 해도 매점은 개찰구에 있고, 자판기는 승강장에 있어서 이용자가 다르니 문제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 과장은 “서울지하철공사의 지하철은 다른 곳보다 매출에 있어 분명 매력이 있는 곳이다. 그동안 분명 장애우들에게도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사 측에서는 작년 신문가판대의 경우 (불경기나 무가지 등 때문에) 임대료를 깎아주기도 했다. 그러나 공사의 계속되는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부단히 신규사업을 개발해야할 처지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지하철이 공공시설이니 자판기를 일반회사가 운영토록 허가해 준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 과장은 “서울시로부터 유권 해석을 받았다. 서울시청에서 이번 과자 자판기는 조례시설물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혀왔다. 그러니만큼 사업 시행에 문제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서울시에 사는 장애우들의 어려운 형편을 헤아려야 할 서울시청은 공사에 도대체 어떤 유권해석을 해준 것일까.
서울시청, “과자자판기는 조례시설물에 해당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시청은 “서울시 조례에 적용을 받는 자판기는 ‘식음료용‘으로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공사의 과자자판기는 위법 사항이 아니므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장애인복지법 제38조에 명시된 내용도 단지 ‘권고사항‘일뿐이라나.
서울시청 직업재활팀 이수용 팀장은 “2004년 2월, 공사로부터 이 내용에 대한 질의가 왔었다. 그래서 서울시의 자문변호사에게 의뢰를 했다. 그 결과 조례에서 규정하고 있는 ‘식음료용‘은 ‘식(食)용‘+ ‘음료용‘이 아니라, 먹을 수 있는 음료임을 강조한 것이다라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즉 차와 음료를 파는 자판기가 조례시설물이지, 이 과자자판기는 그것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현재 지하철에서 가동 중인 과자 자판기는 음료수를 파는 것이 아니니, 장애인 등과 우선 계약할 의무가 없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현재는 문구적인 해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법을 제정했던 95년과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 따라서 이 조례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검토가 필요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장애인 등에게 우선 주는 것이 타당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조례를 개정하기 전에는 다르게 적용할 수 없다. 사실 신문판매대도 무가지가 돌면서 상황이 얼마나 열악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도 통제 못하고 있는 처지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조례시설물 사업 현황을 관리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보건복지부 재활지원과 곽순현 사무관은 “처음 듣는 얘기”라면서 “장애인복지법에 있는 장애인 등에게 신문판매대 등 사업을 우선 계약할 기회를 주라는 것은 권장사항일 뿐이다. 서울시가 그렇게 나와도 강제로 어떻게 할 방법은 없다. 어쩔 수 없다.”라는 입장이었다.
곽 사무관은 “조례시설물 사업을 저소득층에게 우선 허가해 주는 것을 지자체 평가사항으로 하자고 행자부에 요구하고는 있지만, 사실 청사의 자판기도 보안 때문에 행자부가 운영하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공사는 장애우나 노인들의 무료승차 때문에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며 할인율만큼의 돈을 줄 것을 복지부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사 측에 자판기 얘기를 하기는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곽 사무관은 “하지만 조례시설물에 대한 이행을 지자체에게 강제 할 정도의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관련 시민단체들이 공공 기관들이 권고사항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압박하면 된다.”라고 밝혔다.
살기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고가 유권해석보다 먼저
그렇다면 왜 공사는 하필 올 9월을 영업 시작 시점으로 잡았을까.
서울시 조례시설물에 관한 계약 기간은 3년이다. 현재 지하철 매점의 계약 종료 시점은 내년 6월 30일이며, 다른 사업들은 올 12월 30일이니, 매점의 경우 8개월 정도의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셈.
기자가 만난 한 상인의 말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애매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과자 자판기 때문에 장사를 포기하자니 다른 생계수단이 없고, 대부분의 매점들이 관내 지하철 역의 눈치를 보는 형편이라 항의를 하는 것 또한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이는 기자에게 “다만 8개월 동안만은 저 자판기가 많이 대중화 되지 않기를, 아니면 판매가 신통치 않아서 다른 역으로 옮겨지기만을 바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리를 해보자면 서울지하철공사와 서울시청은 이번 일에 대해 서울시 조례에 적용받지 않는 과자자판기이니 별 무리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보건복지부는 이와 관련된 장애인복지법 제38조도 다만 권고조항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태도였다.
정말 법에 명시된 것에 저촉되지만 않으면 괜찮은 것일까.
공공기관이 앞장서 법의 빈 곳을 이렇게 저렇게 악용할 속셈이라면, 장애인복지법 38조와 서울시의 「서울특별시공공시설내의신문·복권판매대, 매점및식음료자동판매기설치계약에관한조례」는 도대체 왜 만든 것일까.
이에 대해 서울시 의회 박시하 의원은 “이렇게 하는 것은 선의의 조례 제정 취지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지하철 매점을 하라고 줬는데, 공사가 그들에게 피해를 줘가면서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저소득층과 매출을 나눠먹겠다는 얘기가 아닌가. 공사가 적자를 그런 방식으로 메꾸겠다는 것은 문제다. 공사가 공공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영리만 추구하고 있다. 뭔가 다른 방향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서울시청의 유권해석도 다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며 “계약 절차상 문제는 없었는지, 그리고 현재 매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피해를 줄일 방법은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공사 측은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히 늘어난 무가지와 계속되는 불경기 때문에 신문판매가 어려워져 이들의 임대료를 깍아줬다고 했다.
어렵게 사는 이들의 전후 사정에 그렇게 밝은 공사가 지하철 매점에서 파는 품목을 취급하는 자판기를 왜 신규사업으로 벌이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럴 때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을 해야 하나.
무섭기는 서울시청도 매한가지다. 관련 조례까지 만들어 놓은 서울시가 유권해석 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괜찮다니, 어떤 사람은 생계가 달려있는 문제인데 말장난이나 하자는 것인지. 과자자판기가 조례시설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자문변호사들의 입장을 서울시가 별 고민 없이 그대로 받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관내에 사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먼저 헤아리는 것이 이들이 할 일이 아닌가. 서울시가 살기 팍팍한 이들을 먼저 생각했다면, 공사의 이번 사업 때문에 타격받을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대책이라도 마련했어야 한다.
서울지하철 공사의 이번 자판기 신규 사업은 지하철 매점을 운영하는 영세 상인들의 호주머니를 뜯어 적자를 메꾸겠다는 꼴이다. 공사가 이번 사업 시행 전에 이 점에 대해 얼마나 고민 해봤는지 의문이다.
어쨌든 서울시청이나 공사 모두 지하철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영세 상인들의 몫을 나눠먹기 한 것에 대해서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손놓고 있는 복지부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그리고 이번 일이 벌어지게 된 이유 중에는 하나는 관련 법령이 현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도 있다. 서울시 조례를 제정할 95년만 해도 커피와 음료수 자판기 외의 다른 자판기를 흔하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회의 저소득층에게 우선으로 부여하는 소득보장책이니 만큼 어떤 자판기라고 일부러 한정을 지을 이유는 없다. 더 적극적으로 이들의 생계수단 방법을 더 늘려야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유권해석이 아니라, 어렵게 사는 국민들 속사정부터 헤아리는 것이 먼저다.
글 사진 최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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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이면 장애우들의 생계수단을 제가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 역에는 상, 하행 승강장에 그 과자 자판기가 다 있어요. 더군다나 우리 매점에서 그나마 좀 팔리는 껌이며 과자들만 골라서 갖다 놓았던데요. 그럼 이중으로 장사를 하는 건데, 우리 보고 죽으라는 겁니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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