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 자녀를 위한 미국 부모들의 적극적인 미래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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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능력에 장애를 가진 아동의 부모들이 궁극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는 하나, “나 죽으면…”이다.
이러한 미래에 대한 대책으로 경제적인 능력을 키우려는 부모도 있고 ‘자녀의 노후를 위한 시설’을 마련하는 부모도 있지만, 이 물음에 대해 명쾌한 해답은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애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하게 되는 이런 걱정과 고민은 국경을 초월하는 문제이기에 <함께걸음>의 두 번째 기고에서는 미국 장애우의 부모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자녀의 미래대책은 전 세계 장애우 부모의 공통적 과제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민은 주보호자인 부모가 늙고 병들어 자녀를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거나 사망했을 때 자녀의 생활의 질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있다. 생활시설이나 요양시설 등에서 의식주의 최저생활은 보장받을 수 있겠지만 부모와 함께 살았을 때만큼의 건강과 안전, 삶의 질을 보장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이런 삶의 질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것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녀를 위해 도대체 얼마만큼의 물질을 축척해야하는지 가늠하기도 어렵고, 개미처럼 벌어도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에 충분한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또한 재산을 물려준다하더라도 부모들은 애매한 재산 때문에 자녀가 정부의 지원 자격을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는 딜레마에 부딪히게 된다. 실제로 집 한 칸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수급권을 얻지 못하는 경우들이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질적 측면이 갖춰진 경우에도 부모들은 또다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데, 바로 “누가 이런 물질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장애자녀의 욕구에 맞춰 지원해줄 수 있느냐”이다.
결국 재산이 있어도 문제이고, 없어도 문제인 것이 장애우 부모들이 처한 현실이다.
이런 문제들을 미국의 부모들은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미국 부모들 중 일부는 ‘신용기금(Trust)’ 등을 통해 이런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하고 있었다. 미국도 일정한 자산과 소득을 넘지 않아야 정부로부터 사회보장제도(SSI)나 의료보장제도(Medicaid)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이런 신용기금을 활용할 경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삶을 보충할 기회를 보장받으면서도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러한 기관은 미국 전역에 40여개 있다고 한다. 미국연수기간동안에 이 기관 중에서 최초로 장애자녀를 위한 기금을 조성해주고 운용하기 시작했다는 기관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주)라이프즈플랜(Life"s plan)’을 방문해 이런 특별한 신용기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를 알아봤다.
신용기금(Trust)을 통한 자녀를 위한 특별한 재정 계획 및 관리대책
‘(주)라이프즈플랜(Life"s plan)’은 “내가 죽으면 장애를 가진 가족을 누가 도와줄까?”라는 장애우 가족의 가장 어려우면서도 보편적인 질문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 미국 일리노이주 ‘레이그레함(Ray Graham)’이라는 지역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우의 부모들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6년 비영리기관으로 ‘(주)라이프즈플랜’을 설립한 것이다.
이후 1986년에 재정계획과 재정후견인 역할을 하는 기금회사로 재정비되었으며, 1993년에는 연방정부에서 관련 법률이 최종적으로 통과되어 지금과 같은 운용체계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주)라이프즈플랜’이 제공하는 특별한 재정계획 및 관리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제3자에 의한 보충적 신용기금(The Third Party Supplemental Trust)’이고 다른 하나는 ‘자가적립 환원기금(Self Funded Payback Trust)’이다.
‘제3자에 의한 보충적 신용기금’은 장애를 가진 사람의 가족, 친지, 친구들이 장애우당사자의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도록 조성하는 기금이다. 이 기금은 주로 레저, 활동, 의료클리닉, 이동 등의 개인적 욕구 충족에 사용되기 때문에 장애우당사자가 부모가 있을 때와 마찬가지의 삶의 질이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계약의 수익자인 장애우가 사망했을 때 남아있는 기금은 10%는 자선기금으로, 15% 다른 회원을 위한 사회복지 서비스비용으로, 나머지는 기금을 조성한 회원의 계획에 따라 배분한다.
한편 ‘자가적립 환원기금(Self Funded Payback Trust)’은 장애우당사자의 부동산투자수익금, 보험수당, 사회복지수당, 유산상속, 개인의료나 사고 보상금 등으로 기금이 조성된다. 그리고 기금의 수익금은 제3자에 의한 보충적 신용기금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추가적인 욕구를 충당하는데 사용된다. 장애우당사자가 사망했을 때 남아 있는 돈은 15%는 행정비로, 10%는 자선기금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사회보장수당으로 환원된다. 즉 개인을 대신하여 주정부에 지불되는 시스템(Payback)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시스템은 1993년 연방법 규정에 의거해 마련되었다. 이 기금은 일리노이 DHS(Department of Human Services: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 해당)의 관리, 감독을 받는다.
결론적으로 두 가지 모두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을 자격을 유지하면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보충적인 재정으로 삶의 질을 확보해주는 것이 특징이며, 다만 기금이 누구로부터 출연되느냐와 수익을 받을 장애우당사자가 사망했을 때 기금이 어떻게 처리되는가에서 차이가 난다.
이러한 기금은 일정정도의 가입비와 인건비, 사무비, 은행수수료 등을 위한 연회비를 받는다. 은행을 통해 개별적으로 신탁을 해도 되지만 이런 신용기금을 활용하게 되는 경우에는 공동투자이기에 적은 돈으로도 기금조성이 가능하고, 공동재정관리이기에 개별적인 회계사나 변호사 등을 고용하는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
최저생활이 아니라 장애우당사자 삶의 질을 유지
이러한 ‘(주)라이프즈플랜’의 프로그램에는 두 가지 주목할만한 부분이 있다.
하나는 이 프로그램이 최저생활이 아니라 ‘장애우의 삶의 질’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모든 것을 떠나 지적능력에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가장 절박한 문제이다.
두 번째는 우선적으로 정부 지원을 하고 이후 이것을 환급(payback)받는 시스템이다. 더욱이 이런 시스템이 장애우부모들의 제안에 의해 받아들여졌다고 하는데, “내 돈으로 내 자녀의 삶의 질을 확보하겠다”는 부모들의 의지와 전략도 놀랍고, 그것을 받아들인 미국정부의 탄력성도 놀라운 일이다.
이런 재정관리프로그램으로 제공되는 첫 번째 서비스는 ‘의료서비스’다. 미국의 의료서비스인 메디케이드(Medicaid)나 메디케어(Medicare)로 충분치 못한 의료장비나 보장구 등을 구입하는데 사용된다.
두 번째는 정부 보조로 충분치 않은 레저나 활동, 고비용 생활용품 구입에 사용된다. 예를 들어 지역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비용이나 교통·이동비용, 여행비, 애완동물을 위한 지출비용, 의료나 VCR, 가구 등의 구입비용 등 개인적인 취향이나 욕구를 충족하는데 지출된다.
세 번째는 후견인 활동이 원활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하는데 사용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후견인 논의가 활발하지만 먼저 시작된 미국에서는 후견인들이 적절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비용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출되도록 하고 있다.
네 번째는 옹호서비스인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그 사람의 욕구를 점검하고, 욕구에 맞는 정보와 서비스를 연결해주기도 하며, 부모 사망과 같은 경우에는 정서적인 안정과 지원책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기록으로 남겨 후견인이나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권고하기도 해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장애우당사자에게 더 적절한 지원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장애를 가진 사람의 장례서비스 등에 사용된다.
이런 서비스들은 초기의 계약에 의해 체결되며, 장애우당사자에게 비용이 전달되는 형태이기보다 개인의 욕구가 접수되거나 지출명세서 등이 기관을 통해 접수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재정관리후견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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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달장애우노령화에 대한 재활연구 및 훈련센터"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
발달장애우 고령화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와 조사
우리가 주목해야할 또 다른 기관이 있는데, 바로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대학내 부설연구기관인 ‘발달장애우 노령화에 대한 재활연구 및 훈련센터(RRTCADD)’이다.
이 기관은 발달장애우의 노령화에 초점을 맞춰 서비스와 정책을 개발하고 있는데, 발달장애우의 노령화에 대한 관심이나 대책이 전무한 우리나라 현실에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최근 미국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1930년대 장애우의 평균 수명은 19세였으나 1970년대는 59세, 1993년에는 66세로 점차 증가되고 있다고 한다. 다운증후군의 경우에도 1993년에 이미 평균수명이 56세에 달해 빠른 시일 내에 장애우의 평균 수명이 비장애우와 거의 유사해 질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이 기관은 바로 이런 추세에 발맞추어 정신지체와 같이 지적능력을 가진 발달장애우들의 건강한 노령화를 촉진하고 발달장애우 당사자 뿐 아니라 가족 그리고 가족이외의 보호자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연구한다. 이 기관의 궁극적인 목적은 노인과 장애우에게 친숙한 지역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 활동으로 우선 다양한 주제의 연구활동을 하고 있으며 발달장애우 당사자, 가족, 가족외 보호자들의 훈련 및 기술적 지원, 옹호활동 등을 하고 있다. 또 정보센터를 통한 정보 제공도 지원하고 있다.
장애와 관련된 전문적인 연구기관조차 없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발달장애우 문제에 국한된 전문적인 연구와 조사기관을 희망한다는 것이 너무 먼 이야기 같지만 이 연구기관은 단순한 연구를 뛰어넘어 발달장애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까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녀와 가족의 노령화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우선
이상 ‘(주)라이프즈플랜’을 통해 미국 장애우부모들의 자녀를 위한 특별한 재정계획 및 관리대책과 발달장애우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RRTCADD라는 연구소를 소개해보았다.
이 두 가지 모두 한국에 실현시킨다고 할 경우에는 한국토양에 맞는지, 적절한 것인지는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다만 이제 의료기술의 발전과 환경개선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점차 연장되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미국 사회에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발달장애우들의 노령화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단지 개인적인 노력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적인 관심으로 확장시켜나가고, 막연하게 고민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고 행동하는 부모들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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