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호 특별기획 (4)| 다시 들춰보는 함께걸음 역대기자들의 취재수첩 ②
본문
97년 4월, ‘다시 돌아보는 빈민장애우의 현실’
▲97년 4월 특집으로 한혜영 기자가 쓴 "다시 돌아보는빈민장애우의 현실"에 실린 사진. 이 기사를 공중파 방
송에서 받아서 다룬 후 보건복지부는 무호적 장애우를
없애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내놓았고, 실제로 경북
도에서는 6개월간 한시적으로 호적 만들어주기 사업
을 실시하기도 했다.
장애우 복지 관련 주간지에 이어 두 번째로 일하게 된 함께걸음.
들어가서 얼마간은 주간지 때보다 더 긴 호흡으로 하나의 주제를 놓고 집중 취재를 할 수 있어 보람과 재미를 느끼며 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장애’라는 것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사람 사는’ 생활 전반의 모든 요소에서 나타나는 데다, 차별이 일상화된 우리의 사회 환경으로 인해 ‘장애’가 충분히 여러 가지 요인의 ‘문제’가 되는 만큼 취재거리는 널려 있었다. 물론 나 스스로의 나태함으로 열정적인 취재활동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대 사회적인 파급력이 다소 떨어지는 군소 월간지에 불과했지만 내 기사가 기존 언론을 움직이고, 현실 정치인을 직접 움직이고, 그래서 법과 제도의 개선을 불러오게 됐을 때 수치로 잴 수 없는 큰 보람을 느끼곤 했다.
그 점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1997년 4월호 특집으로 다룬 ‘다시 돌아보는 빈민 장애우의 현실 - 복지의 현주소, 호적 없는 사람들’이다.
거리를 떠돌거나 시설에 있는 장애우 가운데에는 어렸을 때 가족에게 버려져 자신의 본래 이름이나 가족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거나 정신지체 등의 이류로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못해 현재 호적이 없는 사람의 비율이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운 좋게 몇몇 사람만 호적을 새롭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천사의 집에서 생활하는 29명 가운데 1/3가량인 9명이 호적이 없었다. 대부분은 교회 앞에 버려졌다가 교회 관계자들이 어쩌지 못하고 그 시설에 오게 된 사람들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원래 호적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증 정신지체장애우의 경우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 연고자나 이전의 행적을 추적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며 천사의 집에서 살아갔던 것이다.
고양시에 위치한 또 다른 미신고 시설이던 "사랑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뇌성마비장애우 김재석 씨의 경우는 어쩌면 상황이 더 좋은 편이었다. 심한 언어장애가 있어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렵지만 그래도 머리가 또렷해 어느 정도까지는 지난날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와 사랑의 집 이성혁 총무의 말을 토대로 기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서류상으로 그는 78년도에 마리아 수녀원에서 향림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 후 향림원이 없어지는 관계로 다시 81년 9월에 다니엘학원으로 옮겨져 94년까지 생활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을 토대로 그의 나이가 서른 살쯤 되지 않았을까 추정만 하고 있다.
호적이 없다는 것은 쉽게 말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하나씩 주어지는 주민등록번호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교육대상자가 될 수 없고 성인이 되어도 각종 국가시험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 수표 한 장 쓸 수 없고 각종 선거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죽은 뒤에도 문제다. 신원미상이라는 딱지가 붙여진 채 초라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단적으로 말해 사회적인 관계를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면 모를까 호적이 없으면 기본적인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김재석 씨는 사랑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걷겠다는 꿈을 갖게 됐지만 실현여부는 불투명했다. 신학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검정고시 준비를 해봐도 시험 볼 자격조차 그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정신지체 장애우의 결혼, 지상최악의 결합?
또한 개인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접근했던 것은 바로 정신지체인의 결혼과 임신 문제였다. 1997년 4월호에 실린 ‘축복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결혼, 그리고 불임수술’이라는 특집기사는 시설 내에서 결혼해 가정을 꾸미고 있는 정신지체인 여섯 쌍의 살가운 일상의 모습을 담은 한 방송프로그램을 보고 기획됐다. 방송에서는 그 여섯 쌍의 정신지체인 부부들을 지켜보고 돌보는 사회복지사(안동 애명복지촌)들의 시각에서 미담 형식으로만 그들의 일상을 공개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들의 평범한 행복이 지극히 특별한 사례로 받아들여지게 만드는 참담한 현실이 놓여 있었다. 그야말로 ‘지상최악의 결합’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정신지체인 부부의 결혼. 재가 장애우들 중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양가 부모(특히 여성 쪽)들이 육아 부담을 지고, 거기다 별다른 직업이 없을 경우 생활비 지원도 해줘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이들은 시설장애우들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인지 모른다.
이용시설 뿐 아니라 대다수의 수용시설에서도 결혼한 커플을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충남 보령정심원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33쌍의 정신지체장애우 부부가 원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에게 피임 혹은 불임은 결혼의 전제조건이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기사를 보고 함께 얘기하던 중 이 사실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고 추가 조사를 한 뒤 대대적으로 이슈화하여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함께걸음을 떠나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 현재 상황은 얼마나 변했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뿌리 깊은 우리 사회의 장애우 차별의식과 몇 십년 간 그다지 변함없는 복지정책과 제도들을 볼 때 오늘날에도 많은 정신지체인들은 그저 영원한 어린아이로 늙어갈 뿐이라는 걸 다만 짐작만 할 뿐이다. 더 많은 정신지체인들이 진정한 어른으로 인정받을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함께걸음이 그야말로 함께 걸을 것을 믿는다.
글 한혜영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함께걸음에서 기사를 썼습니다. 함께걸음 200호!! 감회가 깊네요.
지금은 (사)한살림 홍보팀에서 근무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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