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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장애를 이유로 퇴직 강요

삼성, 피도 눈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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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씨

 삼성의 장애우고용회피는 장애우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민간기업의 장애우 고용률이 1.08%, 30대 기업은 0.79%로 장애우 고용률은 대기업일수록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중에서도 삼성은 0.26%로 최악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말, 이러한 삼성의 장애우고용회피 행태를 보여주는 사례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접수됐다. 삼성에서 장애를 이유로 퇴직을 강요당해 장애판정을 받은 지 2주만에 사직서를 쓰고 나와야 했다며 한 사람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찾아온 것이다.
 당시 삼성 에버랜드 엔지니어링 사업부에서 건축영업팀장으로 근무 중이었다는 김경호씨.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어보자.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책상을 안주는 방법, 인사팀 앞에 책상을 배치하는 방법 등…. 그렇게 하면 안나가고 배길 수가 없거든요. 저도 외환위기 때 부하 직원들 정리해고 하면서 그렇게 했어요. 그걸 보통 ‘인사조치’라고 하죠. 그런데 저에게 7월 31일까지 퇴사하지 않으면 인사조치를 내리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장애판정을 받은 지 2주만에 제 손으로 사직서를 쓰고 나왔습니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사실상 강압이었어요.”

열심히 일한 대가는 강압적인 퇴사요구 뿐
장애를 이유로 퇴직을 강요당했다며 찾아온 김경호씨는 퇴사 당시 삼성 에버랜드 ENG사업부에서 건축영업팀장으로 근무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외환위기 초기 자기보직들이 없으니까 간부들은 영업을 하라고 해서 수주 영업을 시작했어요. 당시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았지요. 건축설계만 하다가 처음 해보는 영업이 쉽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그것도 열심히 하니까 대표이사 표창도 받고 그러게 되더라고요.”
김경호씨가 눈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그 무렵부터였다. 어느날부터인가 눈이 조금 흐려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병원에 갔는데 그는 그날 의사로부터 녹내장 같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원인은 과로와 스트레스 등의 복합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보이나 정확히 알 수는 없다는 것이 의사의 소견이었다.
하지만 그러고도 한참은 커다란 지장이 없어서 그냥 지나갔다. 퇴사 6개월 전인 2001년 말 의사가 그에게 ‘장애가 생길 것 같다’고 말했을 때도 그는 그것이 흔히 하는 의사들의 협박인줄 알았다.
“그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시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니까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도 어쨌든 회사일이 바쁘다보니 보이든 안보이든 일단은 그냥 일을 했죠. 그런데 그렇게 얼마쯤 지나고 나니 의사가 장애판정을 받으라고 권고하더라고요.”
당시 그의 눈은 자각이 될 정도로 나빠져 있었다. 그래서 장애판정을 받을 시기쯤 상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상담을 했는데 그저 눈 조심하란 말뿐 별다른 말은 없었다고.
그런데 6월 초 갑자기 상사의 태도가 돌변했다. 상사가 그를 불러서 퇴사 준비가 돼 가냐고 물었던 것. 좋게 돌려 말했지만 결국 ‘눈이 안보이니 나가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는 인사팀과 이야기가 된 것이냐고 물었으나 상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퇴사 20일 전. 그때부터 퇴사 문제로 상사와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가 시각장애 5급으로 장애판정을 받자 상사가 그를 또 다시 불렀다.
“상사는 인사팀이 난리니까 가보라고만 하더라고요. 그래서 인사팀으로 갔더니 인사팀장이 대뜸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눈이 나쁘시다니 나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괜히 다니시다가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강한 어조로 말하더라고요. 그게 정확히 퇴사 2주전이었어요.”
그때 심경은 말이 아니었단다. 회사를 나가고 안나가고를 둘째 치고 갑자기 장애를 갖게 된다는 것 자체가 낯선 일이었고, 장애에 적응이 되지 않으니까 일이 손에 안 잡혔다. 그리고 심신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의 자포자기 수준이었다. 나중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고. 그런 상황에서 인사팀에 불려가 7월 31일까지 퇴사할 것을 요구받은 것이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관두냐”고 하면서도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알았다 내가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 말했단다. 그러나 되돌아온 대답은 “7월 31일까지니까 알아서 해라. 7월 31일까지 퇴사하지 않으면 인사조치를 내리겠다.”는 말 뿐이었다.
그러고 있다가 보니까 종합검진 등의 스케줄이 전부 8월에 잡혀있고, 업무 인수인계도 제대로 안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인사팀에 전화해서 이러저러한 상황으로 7월 말에 퇴사하는 건 어렵겠다고 얘기했더니, “무슨 소리냐, 이미 인수인계해야 할 서류는 다 돌렸다. 당신이 나가든 안나가든 관계없다. 우리는 통보를 했으니 그렇게 알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퇴직 일주일 전이었죠. 말이 희망퇴직이지 사실상 강압이었어요.”
그는 일주일을 남겨두고 인사팀장에게 보직을 바꿔주면 업무에 지장이 없다고 하면서 보직을 바꿔달라고도 해보고, 나가기 직전에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휴직을 하는 건 어떻겠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인사팀장은 “눈이 나쁜데, 휴직도 안 된다. 퇴직하고 치료를 받아라”라고 할 뿐이었다.
결국 그는 7년을 일한 직장에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사직서를 쓰고 나왔다.

적합한 일자리를 알아본다며 2년을 끌어
퇴직 후에는 정신이 없었다. 막상 나오고 나니까 취업이 전혀 되질 않았던 것.
“입사할 때마다 종합검진을 하는데 거기서 제 시각장애가 드러나니까 취직이 안 되더라고요. 그 때문에 취직했다가 한 달 만에 나온 적도 있어요. 그렇다고 취업할 때부터 시각장애가 있다고 밝히면 ‘아, 그러냐’고 말하고는 다시 연락이 안와요. 그러니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을 못하고 그동안 일한 경력이 있어서 알음알음으로 임시직을 전전하면서 일을 해야 했죠.”
게다가 뇌성마비장애가 있는 큰 아이에게 갑자기 경직이 오면서 두 차례에 걸친 큰 수술을 치러내야 했다. 그러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거기에 항의하러 다닐 심신의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이 수술이 끝나고 어느 정도 정신이 들 무렵인 2003년 5월에 그는 본사에 그의 사정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그러나 답이 오지 않았고, 2004년 2월에 다시 대표이사에게 편지를 쓰자 비로소 해고당시 인사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2004년 3월쯤 해고당시 인사팀장이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진작오시지 그랬냐, 적합한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겠다’면서 무척 좋게 얘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고맙다고 악수까지 하고 나왔단다. 그런데 정작 적합한 자리를 알아보겠다던 말은 수회에 걸친 전화통화에도 불구하고 1년이 넘도록 ‘알아보는 중’이라는 똑같은 대답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2005년 3월 그는 다시 삼성그룹 회장에게 청원서를 제출하게 된 것이다.
“그땐 이전과는 다른 어조로 강하게 써서 보냈어요. 그 이전에는 선처를 구하는 형식으로 썼는데 그때는 내가 뭐 다른 잘못을 했던 것도 아니고 성실하게 업무를 하는 도중에 눈에 장애를 입게 된 건데 선처를 구하는 방식으로 쓸 필요가 뭐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강한 어조로 써서 보냈죠. 공식적인 답변은 그 때 처음 받았어요.”
삼성인력관리위원회에서 온 공문에는 “김경호씨께서 재직 중 보여주신 업무능력과 일에 대한 열정은 에버랜드 재직 당시의 동료들로부터 잘 들었습니다. 에버랜드를 포함하여 그룹 내 전 관계사에 김경호씨의 경력에 부합되는 직무를 찾고자 면밀히 검토하였으나 적합한 직무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러한 대답에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4월에 다시 청원서를 제출했다.
“당시엔 좀 화가 나서 이제까지의 일을 가감 없이 그대로 관련단체 및 언론에 알리겠다고도 했어요. 그랬더니 바로 인사팀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처음엔 ‘윗선에서 만나고 싶어 한다’며 인사팀 대리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보니까 제 밑에서 근무하던 친구더라고요. 그래서 윗선이 누구냐고 했더니 자세한 건 잘 모르고 심부름만 하는 거라면서 보자고 해요. 그래서 시간약속을 하고 삼성 본관에서 만나기로 했죠. 근데 약속시간 15분전에 연락이 와서 본관으로 오지 말고 밖에서 만나자는 거예요. 그러더니 그 친구가 나와서 얘기를 좀 하자면서 원하는 게 뭐냐고 묻더라고요. 한 때 부하 직원이었는데 말하기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서 뭘 아냐고 물었더니 아는 건 없고 위에서 제가 하는 말을 듣고 오라고 했다더군요. 그래서 다른 말은 안하고 일하길 원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회사에선 지금 제 일자리로 분사를 알아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니면 치료비나 뭐 그런 걸로 보상을 해주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거절을 했어요.”
그를 만나고 며칠 후에 또다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나갔더니 이번엔 ENG사업부 인사팀 과장이 나왔는데 담당업무가 사회공헌파트더라고. 그는 다른 이야기는 안하고 굉장히 불쌍하게 생각하면서 “회사에서 눈을 수술해드릴까요, 아니면 아이들 학자금을 지원해드릴까요?”하더란다.
그래서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일자리를 원한다. 그러니 당신 빠져라”라고 했더니 “회사와의 대화 창구는 나”라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을 통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며 자기로서는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고 말해 결국 계약직의 형태로라도 삼성에서 일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러한 삼성측의 입장을 확인한 김경호씨는 관련단체가 됐든 언론이 됐든 권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전했고, 이에 인사팀 과장은 “해봐야 도의적인 책임은 있어도 법적 책임은 없다.”고 대답한 상태다. 이후로도 몇 차례 더 연락하고 만났으나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이다.
김경호씨는 “삼성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데만 거의 2년을 끈 셈”이라며 “그것도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담당자가 바뀌고 회사엔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매번 밖에서만 만나니까 지쳤다. 앞으로는 보다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호씨는 현재 이 문제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한 상태다.

이 사례의 상담을 맡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국 박숙경 팀장은 이 사건이 “장애를 이유로 한 전형적인 고용차별사례”임을 분명히 하고 “다만, 회사측이 희망퇴사라고 주장하고 있고 당시의 상황을 입증할 자료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팀장은 또 앞으로 법률적 자문과 함께 언론 및 단체의 지원가능성을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자원을 연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산인권센터에서 삼성 노동자의 인권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박진 간사 또한 이 문제에 대해 “회사 내에서 명시적으로 사직서를 쓰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직서를 쓰게 된 강압적 상황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이 사례에 대해 법률적으로 검토해보고 싸움을 벌여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측 관계자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경호씨의 경우는 건강의 악화로 인한 자발적 퇴사일 뿐 강압은 없었다”고 주장했으며, “중도장애인지 이미 장애를 가지고 입사를 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조은영 기자

작성자조은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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