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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머슴, 임금도 못 받고 생계비도 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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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유지가 한 정신지체 장애우를 7년 동안 데리고 있으면서 농사일을 시킨 다음 임금을 한 푼도 주지 않고 거기다 더해 장애우가 받는 기초생활 생계비를 가로챈 사건이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현대판 머슴으로 전락해서 혹사당했던 한 정신지체 장애우의 아픈 사연을 공개한다.
  


 
사라진 꿈
한 달에 한 번 용돈 천원 받았다 대답
전남 강진군 신전면,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이 곳에 올해 25세인 정신지체 2급 장애우 김희선씨가 살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김씨는 아버지가 사망하고 형 누나가 외지로 떠나면서 혼자 마을에 남겨지게 됐다. 그 때가 지난 98년.
이때부터 김씨는 지역유지인 한모(64세)씨와 같이 살게 된다. 한 씨는 버려진 김씨를 자신이 거둬서 키웠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황상 내막을 유추해 보면 부족한 일손을 메꾸기 위해, 즉 농사일을 시키기 위해 사실상 김씨를 고용하는 형태로 데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측이 빗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정황은 한 씨가 노인이고, 자식들은 모두 외지에 나가 있고 부부 단 둘만 살고 있으며, 그에 어울리지 않게 2만평의 논농사와 함께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두절미하고 먼저 피해자인 김희선씨를 만나보자. 김씨는 정신지체 장애우였지만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일 잘해요? 라고 물어보자 김씨는 “무거운 것도 잘 들어요. 나락가마니도 들어요.”라고 대답했다.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어보자 “논에서는 모 갖다가 이양기에 옮겨줬고, 정미소에
▲그의 머리에는 말을 듣지 않는다고
몽둥이로 맞은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서는  왕겨를 가마니에 담는 일을 했다.”고 대답했다. 

사장님이 월급 줬어요? 라고 물어보자 김씨는 “밥만 먹여줬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용돈은 줬냐고 물어보자 “한 달에 한 번 천 원 줬다.”고 대답했다. 머리에 난 상처를 가리키며 누가 때렸어요? 라고 물어보자 “아줌마가 말 안 듣는다고 때렸어요. 몽둥이로 맞아서 토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희선씨가 살고 있는, 창고를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골방은 차디찬 냉방이었다. 겨울에 사장님이 기름 넣어줬느냐고 물어보자 “보일러가 고장 났어요.”라고 김씨는  대답했고, 그러면 추워서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어보자 전기장판을 가리키며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견뎠다.”고 대답했다.

사장님 집에 방이 많은데 잠을 왜 따로 자느냐고 물어보자 “사모님이 냄새 난다고, 같이 못 잔다고 그래서 따로 잔다.”고 김씨는 대답했다.
희선씨 앞으로 정부에서 생계비 나오는 거 아느냐고 물어보자 김씨는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설에 마을 사람들에게 세뱃돈 받았는데 아줌마가 가져갔어요. 용돈 모아서 장가보내 준다고 했어요.”라고 대답했다.

생계비, 한씨의 공제보험으로 자동이체 시켜

김 씨가 사는 창고 방. 연탄보일러조차
가동되지 않아 지난겨울 그는 전기장판
하나로 견뎠다.

가해자인 한모 씨는 지역 라이온스 클럽 회장과 지역 자치회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유지였다. 재산을 묻는 질문에 그는 “10억이 넘는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거액의 재산가인 그가 김희선씨 앞으로 나오는 생계비와 장애 수당을 단 한 푼도 김씨에게 주지 않고, 그것도 단순 저축도 아닌 한모씨 자신의 이름으로 된 보장성 보험인 농협 공제 보험 계좌로 자동 이체시켜 놓고 있었다.

확인된 통장 사본에 따르면 김희선씨의 생계비 수령 통장에서 매월 26만9천5백원이 한모씨의 농협 공제보험 계좌로 자동이체 형식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김희선씨가 98년부터 받은 생계비와 장애수당이 대충 따져봐도 2천만원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데 김희선 씨 이름으로 된 통장에는 잔고가 없었다.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자 한씨는 “나는 장애우를 돌봐준 대가로 정부에서 훈장도 받았다. 희선이한테 돈을 주면 다 써버리니까 내가 가지고 있다가 논도 사주고 결혼도 시켜주려 했다.”고 대답했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김희선씨를 돌볼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면사무소에서 김씨를 모른 체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전면 면장과 사회복지사에 따르면 조그만 마을이어서 김씨를 자주 보지만 “희선씨가 말을 하지 않아서 학대를 당하고 생계비가 한씨 통장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면장은 오히려 버려진 희선씨를 돌보고 있는 한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식의 표현을 내비쳤다.

하지만 분명하게 확인되는 것은 한씨는 암묵적인 보호자일 뿐이지 희선씨의 법적인 보호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씨가 희선씨를 아들같이 생각했다면 양자로 호적에 입적시키는 방안도 있는데 한씨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명백하게 일꾼으로 희선씨를 부려먹기 위해서였다고 단정지을 수 있다. 그러면 임금이라도 지급하고, 최소한 생계비라도 횡령하지 말았어야 할 것 아닌가.

현재 이 사건은 면사무소와 전남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한씨를 횡령죄로 고발해 경

▲전남 강진군 신전면에 하는 한 씨의 집.
10억 재산가라는 한 씨는 김 씨에게 월급은 커녕,
생계비까지 가로챘다.

찰이 수사를 하고 있다. 희선씨는 연구소의 주선으로 전북에 있는 장애우 공동체로 옮겨졌다.

정리해 보자. 좀체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특히 농어촌 마을의 경우 정신지체 장애우가 혼자 남겨졌을 때 주민 중 한 사람이 후견인을 자처하며 데리고 있겠다고 하면, 사실상 일을 시키려는 속내 때문에 붙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민은 자선가 대접을 받으며 주위의 칭송을 받는다.

하지만 내막은 장애우는 현대판 머슴일 뿐이다. 장애의 특성상 시키는 일을 잘해내고, 먹여주고 재워만 줘도 전혀 문제 제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일꾼이 없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갈 곳이 없어 현대판 머슴으로 혹사당하고 있는 장애우들이 또 얼마나 많을 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온다.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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