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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끝나지 않은 싸움, 성실정양원 폐쇄 그 이후

시설이여! 영원하라?

본문

벌써 2003년의 일이 되었다. 성실정양원에서 탈출했다는 이모씨가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방송국을 알려달라고 했던 일이.
이모씨는 방송국에 알리고, 우리나라 전역에 이 사실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사설감옥에서 억울하게 3년을 살았고, 간신히 도망쳤노라고.
 

    되풀이되는 "사회복지범죄"
이씨의 이야기와 조사한 결과를 모아보면, 성실정양원은 처음 "성실기도원"으로 시작했다가 미신고복지시설로 바꾸면서 "성실정양원(성실정신요양원의 준말)"이 되었다.

이곳은 알콜중독자들이 약 150여명,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약 50여명, 가족들과의 불화등으로 이상하게 이곳에 갇혀지낸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대문은 2중 철문과 큰자물통으로 채워져 있고, 문밖에서는 감시하는 사람들이 무전기를 들고 상주했다. 창문에는 쇠창살과, 담벼락마다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딱 봐도 감옥과 흡사한 ‘ㅁ’자 구조는 사람들이 도망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의 4번의 예배를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고, 방장(시설생활인중 중간관리역할을 하는 운영자들의 측근)의 말을 듣지 않으면 맞거나 감금당하기 일쑤이며, 정신질환자들의 약은 운영자들이 알아서 투약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권자들의 통장은 물론 운영자가 압수하여 일괄 관리했으며, 운영자는 이들의 국가생계비가 들어오는 통장에서 현대자동차로 천이백만원이나 출금시키는 과감한 용기(?)를 보이기도 했다.

생활인들은 농번기에 시설장의 강요에 따라 자원봉사확인서에 날인을 하고 지역에 농사일을 나갔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일당은 담배 5가치와 콜라, 이들은 답답한 시설안에 있는 것보다는 일이 고되도 바람이라도 쐴 수 있으니 일을 나간다고 했다.

더욱이 이들은 집으로 전화를 할 때도 원장측이 감시를 했고, 편지도 3중의 검열을 받았다. 가족이 면회를 와도 원장측이 동석한 자리해서 해야 했으니, 이들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권리는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밖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인권침해를 제외하고도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여기까지 말하면, 사람들은 "거기가 도대체 뭐 하는 곳인데?"라고 어이없어 한다.

여기? 여기는 바로 "복지"라는 간판을 붙인 미신고"복지"시설이다. 그럼 사람들은 더 황당해하며 묻는다. "아니, 그런 곳을 정부가 그냥 나둬?"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조사를 가기 전 관리감독자인 경기도지사는 이곳에 후원금을 낼 정도였다. 경기도지사외에도 각종 교회와 지역유지라는 사람들의 후원금이 들어오는 곳이었으며, 조사당일 갑작스럽게 불려나온 감독책임자인 양평군보건소장은 자신이 온지 얼마안되어 상황을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복지시설안에서의 "사회복지범죄"는 끊이지 않고 되풀이 되고 있다.

돈벌고 싶은 자여, 복지시설을 운영하라?

 

어쨌거나 도저히 "복지"시설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이 성실정양원은, 이씨의 제보를 시작으로 장애우단체와 인권단체들이 모여 "조건부신고복지시설 생활자 인권확보를 위한 공대위(준, 이하 "시설공대위")를 만들었고, 성실정양원을 긴급방문 조사하여, 조사결과를 발표함으로써 미신고시설(특히나 조건부신고시설로 등록되어 있는 시설)내 인권문제를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미신고시설내 인권침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딱히 미신고시설만 인권침해가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최근 벌어진 성람재단이나 청암재단 사건을 보면 인권침해는 신고-미신고를 넘나드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인권단체들이 몇십년 동안이나 복지시설내 인권침해를 폭로하고, 고발하고, 형사처벌 했지만, 저들은 또 복지시설을 운영한다. 여성생활인을 성폭행한 원장이 다시 시설원장을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되는가? 그러나 현실은 그렇다. 이상하게도 현실은 그렇다. 몇 년동안 생각해보니, 그도 그럴것이 옆에서 조사한 나조차도 어떻게 하면 돈이 모이고, 그 돈을 꿍칠 수 있는지 수법을 알 것 같다.

사실 너무 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데다 소위 좋은 일 한다는 명예까지도 생기는데, 일부의 시설장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돈벌이 사업이었으리라.   

형기없는 감옥에 던지는 돌

현재 성실정양원은 실제 운영자였던 부원장이 형사처벌을 받았으며, 시설을 폐쇄하고 순수한 종교시설로만 운영하겠다는 서약서를 쓴 상황이다.

그러나 이 과정도 단순하지 않다. 2003년 11월, 문제가 폭로된 직후 시설측에서는 바로 폐쇄하겠다고 약속했고 감독기관인 양평군보건소에서도 당장 조치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2004년이 다가도록 시설은 그대로였다. 할수 없이 2004년 8월 열린우리당 장향숙의원실과 다시한번 시설조사를 갔고, 2004년말까지는 전원조치 시키겠다는 약속을 재차 확인 받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안타깝게도 2003년 11월, 첫 방문조사를 갔을 당시부터 여전히 그곳에 계시는 여러명의 생활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약간의 원망의 눈빛으로 우리를 주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03년 11월, 바로 당장 자신들이 자유의 몸이 될 줄 알았던 이들은 그 다음해 8월에도 여전히 그곳에 갇혀 있었으니, 어떻게 우리를 원망하지 않겠는가. “감옥은 형기라도 있어서 나갈 희망이라도 있는데, 여긴 언제 나갈지도 모르고, 죽으면 그때야 나가겠거니 한다”던 시설생활인의 말이 다시 한번 머리를 쳤다. 그러나 그날 식당에서 만난 한 생활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 당신들이 왔을 때, 잔잔한 호수에 돌 던지는 격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신들 와봤자, 이 시설이 문닫기는 커녕 괜히 우리들만 더 곤욕스럽고 살기 팍팍해진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지금은 당신들이 괜히 왔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아요. 비록 잔잔한 호수에 돌 하나 던진 격이라고 해도, 그 던진 돌은 굉장히 의미 있었어요. 그렇게 잔잔한 호수에 자꾸 돌을 던지다보면, 이곳도 바뀌지 않겠어요?"

조사를 마치고 무거운 마음으로 가려는 우리에게 이 분의 한마디는 우리 활동에 대해 힘내라는 격려였고, 여전히 갇혀있는 당신들을 잊지 말라는 당부였다.

또다시 자행된 복지라는 이름의 감금

그러다가 2005년 1월, 경기도와 양평군은 아주 자랑스러워하며 시설공대위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보내왔다. 그 내용인즉, 성실정양원은 완전 폐쇄되었으며, 현재 가족들과 단1명만 기거할 뿐 아무도 없고, 철조망과 쇠창살도 없앴다는 내용의 사진도 첨부했다. 한편 다행이기도 했고, 한편 화가 나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꾸준히 시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결과, 형식적으로든 어쨌든 시설이 폐쇄되고 더 이상 그곳은 복지시설을 하지 못하도록 한점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문제제기를 한 2003년 11월부터 장장 1년이 넘어서야 전원조치가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우리가 요구한 것은 생활인들을 무조건 시설에서 내쫓으라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주장한 것은 생활인들을 각각 의학적, 사회복지적 판단하에 가족에게 돌아가서 치료받을 사람, 지역사회내 생활이 가능하므로 주거지원만 필요한 사람, 병원등 허가된 정신요양시설에 갈 사람들을 구분하여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으로 조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도나 양평군은 그들의 삶이 어떻게 되든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감사에 걸리지 않도록, 혹은 자기네들이 질책당하지 않도록 시설안에서 사람들이 나가면 되는 것, 그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시설공대위는 생활인들의 집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실제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조사해봤으나, 가족에게 돌아간 사람들은 채 10명도 되지 않았다. 아예 집으로는 가보지도 못하고, 129 응급이송단을 통해 바로 다른 시설로 불법적으로 이송된 사람들도 꽤 있었다.

즉 성실정양원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자유와 진정한 복지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일부에게는 또다시 ‘복지라는 이름의 감금과 수용’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가족들은 오히려 감췄고, 경기도는 알려고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눈에만 보이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폭력의 싹을 도려내지 않은 대가로 찾아온 교묘한 폭력

시설공대위는 올 2월말, 다시 성실정양원을 찾았다. 경기도가 보내온 사진처럼, 철조망과 쇠창살은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문에는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그 사람은 뭘하고 있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그냥 햇볕에 쬐고 있다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전기는 그냥 장난감일 뿐이라고 우겼다. 1명밖에 없다던 시설안에는 여전히 30여명이 살고 있었으며, 이제 이들은 자발적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이제는 집에 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갔다올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여전히 눈치를 보고 있어서 진실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단 눈에 보이는 노골적 폭력은 이제 사용하지 않는 듯 했다. 그러나 결국, 경기도와 양평군이 말하는 시설폐쇄는 이행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폭력이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교묘해질 뿐이었다.

예전에는 말을 안 들으면 때리고 감금했다면 우리가 다녀간 이후로는 말 안 들으면 이제는 밥을 굶긴다는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교묘해졌을 뿐이다.
우리가 완벽하게 그 폭력을 싹을 도려내지 않은 대가로 폭력은 자기가 살아남는 법을 이미 터득한 것이다. 

시설조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시설에서 한발만 밖에 나와도 다른 세상인데 저들과 우리를 가르는 장벽의 실체를 나는 도대체 모르겠다. 저들은 단지 이 자본주의 사회가 좋아하지 않는 경쟁력이 없는 사람이거나, 경쟁력을 가질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람들일 뿐인데, 그것이 결국 이 사회에서 저들을 내몬 이유란 말인가?

성실정양원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알콜중독으로 가정폭력을 휘두른 사람도 있다. 가족간의 불화로 이곳에 갇힌 사람들도 있다. 정신질환을 가진 딸을 도저히 감당치 못해 보낸 노모도 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감옥과 같은 감금시설이 아니라, 복지라는 이름의 국가적 보호였고,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대우였다.

성실정양원 폐쇄, 그가 남긴 교훈

성실정양원을 문제제기하고 지금까지 약 1년반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이 세월동안 시설공대위가 성실정양원을 시설폐쇄까지 이르게 한데는 분명 의미가 있다. 또한 그동안 사회적으로 잘 알지 못했던 정부의 "미신고시설 양성화지침"의 문제를 성실정양원이나 은혜사랑의집의 경험을 통해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문제제기 했다는데 활동의 의미가 있다.

또한 그동안의 시설운동이 한개 시설의 문제해결에만 그쳤던 것을, 이제는 ‘미신고시설내 인권침해’라는 화두를 가지고 공대위를 구성, 활동을 펼쳤다는 데에도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 과제로 남는 것은, 성실정양원과 같은 문제시설이 전국에 몇 개, 혹은 몇 백 개가 있는지 정부조차 모르고 있는 우리의 현 인권수준이요, 이를 정부가 또는 사법부가 나서지 않는다는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몇 번에 걸쳐 복지부와의 만남을 가졌지만, 복지부는 우리가 주장하는 “궁극적 탈시설화, 시설의 지역화, 개방화, 시설내 인권보장”이라는 당연한 명제를 분홍빛 청사진 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복지부가 뭐라 해도 상관없다.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권의식이 성장하는 만큼, 그동안 나 몰라라 했던 사회복지시설내 인권문제를 우리 사회가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현재 우리의 시설정책이 수용중심의 복지에서 자립생활중심의 복지로 나아가고 있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명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설운동(글쓴이의 편의에 의해 "사회복지시설내 생활인 인권확보, 민주화운동 등"의 줄임말이라 하자)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이용시설은 이용 당사자들이 운영구조에의 참여를 통한 민주화를 이야기하고 있고, 생활시설들은 사회복지사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조직적으로 민주적 운영과 생활인들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미신고시설들에서 벌어지는 각종 범죄들도 속속들이 밝혀지고 법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는 추세여서, 기대해 볼만 하다.

여전히 성실정양원은 기도원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여 그 구조를 유지시키고 있지만, 성실정양원 폐쇄과정에서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어느 누구도 반인권적 환경에서 살아서는 안되며, 존엄한 인간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시설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자행된 반인권적 행태는 어떠한 현실론으로도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작성자김정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국)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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