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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일본 장애여성강제불임 다큐멘터리 주인공 사사키 씨

우생사상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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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열렸던 제7회 서울여성영화제에는 일본 장애여성강제불임에 관한 다큐멘터리 「감추어진 진실 (원제: I don’t want you to forget)」이 상영되었다.
제목만으로는 주인공이 비장하고 암울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사사키 지즈꼬(57)씨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18세 소녀 노파 소피를 닮았다. 빨간색을 기본으로 다양한 색을 물들인 머리카락이나 그의 소원대로 꽃미남이 운전하는 스포츠카를 타고 마냥 좋아하는 다큐멘터리의 엔딩 장면을 보면 57세라는 그의 나이는 소피처럼 마법 때문인 듯한 착각이 든다.
눈만 마주치면 웃는 수줍은 웃음 뒤에 장난끼와 발랄함이 느껴지고 그 너머엔 아픈 기억과 상처를 뛰어넘는 확고한 자기주장과 적극성이 엿보이는 여자, 뇌성마비 장애여성 사사키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스무 살, 불임수술을 받다.

▲사사키 씨
사사키 씨는 이 다큐멘터리 상영 날짜에 맞춰 감독 시모노보 슈코, 우생사상을 묻는 네트워크 나까노 후유미 대표, 그리고 자신의 활동보조인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다큐멘터리 상영 날 만난 사사키 씨는 이것이 그의 첫 해외여행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아무리 당차고 발랄하다고 해도 자신의 아픈 기억과 상처를 드러내는 자리였기에 그랬는지 다소 피곤하고 긴장된 모습이었다. 잠시 깊은 숨을 들이쉬고, 그는 스무 살 자신이 불임수술을 받던 때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불임수술을 받던 스무 살까지 사사키 씨는 장애우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로 교육은 물론 밖에 나가지도 못한 채 집안에 갇혀 지냈다고  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의 장애가 ‘유전’일지도 모른다는 편견 때문에 친언니 혼담이 깨졌다는 것. 그것은 결국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집을 나갈 결심을 하게된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그러나 당시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수용시설 뿐. 그나마도 수용시설에서는 월경처리를 스스로 하지 못하면 입소가 불가능하다고 거절했고, 그녀는 결국 입소를 위해 불임수술을 받았다.
그는 수술을 받을 때까지 이 수술이 단지 월경을 멈추게 하는 수술이며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은 수술’이라는 말만 들었을 뿐, 누구도 그녀에게 이 수술이 불임수술이라는 정보는 주지 않았단다.
아프지 않다던 코발트 방사선 시술은 일주일간 계속되었다. 텔레비전에서 방사선으로 항암치료를 받는 장면을 봤다면 잘 알겠지만, 방사선을 난소에 쏘여 난자를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 시술은 부작용이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토할 것만 같고, 위가 아파서 약을 한 움큼씩 먹는 고통을 겪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열등한 자손의 출생 방지를 위한 법
일본에서는 최근까지 우생보호법이 존재했다.
패전 직후 만들어진 이 법은 유전적 우생학적으로 열등한 자손이 태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러한 위험이 있는 경우 낙태를 허용하고 본인의 동의 없이 불임수술을 할 수 있도록 명시한 법이다.
이 법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49년부터 94년까지 간질, 혈우병 등의 유전성 질병을 가진 사람과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우, 한센병 환자 1만6천여 명이 본인의 동의 없이 지방자치단체 우생보호심사회의 승인만으로 불임수술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중 여성이 1만1천3백56명이었다.
사실, 이 법에 의해 불임수술을 시행하더라도 정관이나 난관을 묶는 정도의 시술이 가능하고 정소나 난소의 기능을 떨어뜨리거나 자궁적출 등의 방법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사사키 씨의 경우처럼 암암리에 이루어진 불임수술은 이러한 조항과 관계없이 시행되었다.
당시 이러한 사실이 폭로되자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한 사죄 및 보상을 하고 피해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촉구하는 성명서를 후생장관에게 제출하고 나섰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아직까지도 강제불임수술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든 불법적으로 이루어졌든 민간의료기관에서 시행된 것이라서 조사할 수 없으며, 자료도 남아있지 않다고 발뺌하고 있을 뿐 아무런 보상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이 법이 폐지되기까지 ‘우생사상을 묻는 네트워크’ 사람들은 우생보호법을 폐지를 위해 집회를 열었고 대중을 상대로 교육을 실시했단다. 그리고 이 우생보호법은 지난 96년 폐지되었다.
이 법을 폐지시키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카이로 인구개발국제회의’였다.
이 회의를 통해 소위 선진국으로 불리던 스웨덴, 뉴질랜드,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이 모두 정신지체장애우를 대상으로 한 불임수술을 시행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이 자리에 일본 장애여성이 참석해 일본 내에서 발생한 불임수술 문제를 고발했던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압력에 약한 측면이 있는 일본정부는 그렇게 국외에서 비난의 여론이 들끓자 96년 관련조항을 폐지하고 우생보호법을 모체보호법으로 개정하게 된 것이다.

끝나지 않은 우생사상

 
그러나 아직 우생사상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의학의 발달로 인해 이러한 우생사상은 다른 방법을 통해 표출되기 시작했다. 바로 출산 전 장애진단 검사를 통해서 말이다. 일본도 한국처럼 낙태를 금지하고 있지만 출산 전 장애진단 검사를 통해 태아가 장애를 갖고 있다고 판정되면 대부분의 경우 임신중절수술을 받는다.
“국가는 장애아에 대한 낙태문제를 개인이 결정할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장애우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우생사상이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장애아의 낙태는 사실상 여성의 자기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강요에 의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나까노 대표의 말이다.
우리사회도 이러한 면에서 다르지 않다. 출산 전 장애진단을 통해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판정이 되면 대부분의 여성이 임신중절 수술을 받는다. 주변사람 대부분은 물론 가장 가까운 가족까지도 장애가 있는 줄 알면서도 아이를 낳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말리는 형편이지, 지지해 주는 사람은 드문 게 현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또한 우생사상을 넘어 장애아동을 키울 만한 환경이 조성되어있지 않다는 현실적 조건과도 연관되어 있다.

슬픔의 힘을 장애우 인권운동으로
사사키 씨는 이 일로 엄마에 대한 원망이 남았다. 수용시설 입소 이전에도 그의 엄마는 그녀에게 불임수술을 계속 권유해왔던 데다가 자신이 수술을 받을 때 그것이 어떤 수술인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를 이해하는 것과 그에 대한 원망까지 씻어내는 것은 조금은 다른 문제인 것 같았다.
사사키 씨는 다시 원래대로 몸을 원상복구하고 싶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는 현재 불임수술로 인해 받고 있는 육체적인 고통에 외로움과 상실감이라는 정신적인 고통도 겪어내고 있다.
나중에 사사키 씨는 그가 불임수술을 받은 히로시마 병원에 강제불임과 관련된 조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히로시마 병원 역시 조사는 했으나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왔을 뿐이다.
이렇게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그가 불임수술로 인한 고통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만 같다. 그러나 그에겐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불임수술로 인한 고통에만 빠져있을 겨를이 없는 듯 보였다. 스무 살 이후 20년간을 시설에서 보내고 17년 전에야 다시 지역사회로 나와 독립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그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그리고 그가 겪은 슬픔의 힘을 그는 장애우 인권운동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장애우권익옹호단체인 아오이시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얼마 전엔 히로시마 교외에 자신처럼 코발트 방사선 시술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한 가지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는 6개월 전에 결혼해 신혼을 즐기는 중이다. 꽃미남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게 생각이 나서 남편도 꽃미남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남편을 ‘동지’라고 소개했다. 원래 알고 있었고 함께 있던 사람이었기에 남편은 현재 그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동지란다.

한국의 강제불임수술
장애우 강제불임시술에 대한 문제는 우리나라 역시 빗겨가지 않는다.
한국에도 73년 공포 시행된 모자보건법 9조에 강제불임 관련조항이 있었다. 이 조항에는 의사가 유전 또는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 불임시술을 행하는 것이 공익에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보사부장관이 불임시술을 명령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당시 이 법이 정한 유전성 질환에는 유전성 정신분열증, 조울증, 간질, 정신지체, 운동신경원질환, 혈우병, 현저한 유전성 범죄경향이 있는 정신장애, 기타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게 미치는 발생빈도가 10%이상의 위험이 있는 질환 등이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강제불임문제가 불거지자 이듬해인 98년 복건복지부는 슬그머니 모자보건법에서 강제불임관련 조항을 삭제했다. 삭제 이유는 이 조항에 의거해 시행된 강제불임이 단 한건도 없다는 것.
이렇게 묻혀버릴 뻔 했던 장애우 강제불임사건은 99년 당시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이 ‘장애우 불법, 강제 불임수술 실태와 대책에 관한 조사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대대적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1차 조사를 통해 확인된 경우만 8개 사회복지시설에서 남자 48명, 여자 27명 총 75명의 정신지체 장애우가 83년부터 98년까지 15년에 걸쳐 불임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제불임수술 과정에 행정기관의 협의가 있었고, 그 시술이 보건소와 가족계획협회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준 바 있다.
그 이후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그리고 아직도 시설의 강제불임수술 의혹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어 다시 한번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글·사진 조은영 기자

 

작성자조은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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