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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관련 성폭력특별법 항거불능 조항 삭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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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상담접수 된 성폭력 실 사례 가운데 68%가 정신지체여성장애우에 대한 성폭력 피해사건이다.
성폭력 가해자의 72%가 아는 사람으로 근친, 친인척, 이웃, 교사, 직장, 시설종사자 등이며 평소 여성장애우의 장애특성과 취약성을 잘 알고 있고 막강한 위계관계에서 힘과 친분을 이용하여 손쉽게 성폭력을 저지른다. 
이와 같이 장애우는 신체장애, 정신상의 장애로 인하여 더더욱 성폭력의 위기상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으며 피해정도가 극단적이고 피해기간도 지속적이다.
여성장애우에 대한 성폭력을 처벌하기 위한 법률로는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8조(장애인에 대한 간음)와 일반 형법 제302조(심신미약자에 대한 간음)가 있다.
여기서 성폭력특별법 제8조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한 자는 형법 제297조(강간)또는 제298조(강제추행)에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는 장애우 간음조항이 현실에서 적용될 때는 ‘항거불능 상태’가 문제가 된다.
최근 부산고등법원 제2형사부는 동거하는 여성의 딸인 정신지체2급 장애우 A양(99년 피해당시 14세)을 5년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52세)에 대해 무죄선고 한 원심을 유지했고, 지난해 9월에도 부산고법은 한마을에 사는 미성년 장애우 B양(17세)을 98년 9월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69세)에 대한 대법원 환송심에서 징역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피해자가 모두 정신지체장애 1급과 2급으로 지적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미성년이며 가해자가 한 집에 거주하거나 이웃에 사는 평소 잘 알고 있는 어른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여성장애우 성폭력의 특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에 대하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판결의 요지는 피해자가 ‘항거불능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성폭력특별법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항거불능상태였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입증돼야 하는데(이는 정신적으로 신체적 사정으로 인하여 성적인 자기방어를 전혀 할 수 없는 심신상실의 상태로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의미함) 두 사건 모두 구성요건이 성립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관이나 재판부에서는 피해자가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상태 이전에 미성년자임을 감안하여 속임이나 심리적 억압으로 간음, 추행이 가능한 존재이므로 형법302조 ‘미성년자등에 대한 간음’조항을 적용했어야 한다.
이는 피해자의 장애유형, 장애정도, 나이 등 피해자가 안고 있는 현실적 상황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이 장애우면 무조건 성폭력특별법을 적용하다 보니 이와 같은 오류가 발생한 여지가 있다 하겠다. 

현재 법원에서는 피해자가 신체장애우 경우에는 신체장애는 있으나 지적판단력과 의사표현능력이 있으므로 항거불능상태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정신지체우 경우에는 지적능력은 떨어지나 신체가 건강하므로 항거불능상태로 보지 않아 이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재판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즉 검사나 판사의 시각에 따라 ‘항거불능’이 얼마든지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독소조항인 것이다. 따라서 장애우의 경우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가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항거불능상태이며 성폭력에 대한 인지능력과 대처능력이 현저히 미약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항거불능’이란 용어를 삭제해야 한다.
이 법률용어 때문에 지금 이 시각에도 한 법정에서는 발달장애3급의 피해아동에게 조차 극단적인 공포와 위압적인 피해상황에서 아동이 소리를 얼마나 크게 질렀는지를 입증하게 하거나 계속해서 적극적인 저항의 흔적들을 구체적인 증거자료로 제시하도록 하는 등 끝나지 않는 공방을 벌이고 있다.
장애 때문에 위험과 폭력으로부터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약자에 대한 권익보호를 위해 재정된 법률이 어처구니없게도 장애의 취약성을 악용하여 손쉽게 성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에게 엄중가중처벌은 커녕 무죄판결을 내리는 근거조항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나 법원에서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비장애 남성 중심의 시각을 가지고 문리적인 법리해석을 하는 무지함과 오류에서 벗어나 피해자가 지닌 장애에 대한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장애자체가 성폭력의 위기상황에서 항거불능상태일 수밖에 없는 피해자의 정황을 고려하여 수사나 재판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글 신 희 원(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장)

작성자신희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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