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글러브 화재 사건
본문
![]() |
이 화재는 발생 2시간만에 불길이 잡혔으나, 삽시간에 번진 불로 인명피해와 함께 이미 2층짜리 공장 건물이 전소되고 기계, 차량 등이 불에 타 5억여원의 재산피해를 낸 뒤였다.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언론은 일제히 이 화재사건을 보도하며 안타까움을 표명했고, 열흘이 넘도록 이 사건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언론과 사회의 관심은 여느 화재사건과는 다른 곳에 집중됐다.
보통 인명피해를 동반한 화재사건이 발생하면 사회의 관심은 사고피해자와 사고원인, 안전시설문제 등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언론의 관심이 ‘시온글러브가 어떤 회사인가’에 집중되었다. 사고가 나고 10일까지 계속된 이러한 관심은 피해자 보상문제에 이르자 11일부터 일제히 ‘장애우보험차별’ 문제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직권조사에 나서는 등의 반응을 보이자 이러한 사회의 관심은 한층 심화되었다.
결국 화재의 원인과 노동환경의 문제, 화재로 인해 귀중한 목숨을 잃은 장애우 노동자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에, 대구지역 7개 시민단체는 ‘시온글러브 화재참사 진상조사단’(이하 진상조사단)을 조직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장애우노동자들이 사망하게 된 정황을 철저하게 조사할 것을 촉구하고 장애우노동자들의 노동여건 생활여건이 어떠했는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재정지원과 사후관리는 철저히 했는지의 문제를 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서는 안 그래도 어려운 장애우 고용이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냐며 회사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도대체 사람이 죽었는데도 죽은 사람이 아니라 그 주변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함께걸음이 그 문제를 파고들면서 깨달은 것은 장애우고용정책의 중심에 장애우가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시온글러브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장애우 고용정책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생명보다 취업이 먼저인 고용현실
![]() |
||||
|
사고 당시 지적된 것처럼, 기숙사에는 평소 30명가량의 장애우가 생활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기숙사를 관리할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혹자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성인이고 이미 취업을 한 사람들인데 이들이 장애우라는 이유만으로 감독할 누군가가 있어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숙사는 일반적 생활환경이 아니라 다양한 장애유형을 가진 사람들 다수가 생활하는 기숙사이다. 이들은 제각기 다른 욕구를 지니고 있고 비장애우와는 다른 지원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이러한 욕구와 필요를 조정할 사람이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은 장애우에게 적합하도록 노동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문제로 볼 수 있으며, 심한 경우 방치로까지 해석할 수 있는 문제다.
실제 이 기숙사에서는 장애우 사이에 폭력이 발생한 적도 있고 핸드폰, 현금카드 등을 빼앗아 사용하는 형태의 갈취의 문제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측이 이 문제에 대해 알고 있었고 개입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사망한 장애우 노동자의 부모들은 상담원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지속되었다며 기숙사 운영에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결국 진상조사단에 참여한 대구DPI 윤삼호 정책국장의 말처럼 “회사 측은 장애우를 마구잡이식으로 고용, 방치한 셈이고, 장애우고용촉진공단 역시 이러한 문제를 방관한 셈”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지점이다.
공단, 노동조건과 관련된 문제는 근로감독과에 신고해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애우의 취업을 알선하고 고용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는 공단측이 장애우의 노동환경까지 관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 대해 장애인고용촉진공단 대구지사 김창규 고용지원부장은 “공단이 개별 사업장의 장애우 노동환경까지 전부 신경 쓸 수는 없다. 대구지역에 장애우가 고용된 사업장만 해도 5~6백개에 달한다. 취업과 관련된 업무만 해도 연간 몇 천명이 찾아오는데 5명이 그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사업장까지 일일이 조사하기엔 여력이 안 된다.”고 항변했다.
대구지사 류정진 고용촉진부장 역시 “노동환경에 관한 것은 규정상 공단의 관리감독이 의무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권고나 설득은 가능하지만 그 밖의 권한은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노동환경의 문제는 노동부나 산업안전관리공단의 일이 아니냐?”며 장애우 노동과 관련해서 사고만 나면 사람들이 아무 권한도 없는 공단을 질책하는데 억울하다고 말했다.
결국 장애우는 고용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는 셈이었다. 류정진 고용촉진부장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도 “노동조건과 관련해 문제가 생기면 장애우가 근로감독과에 신고하면 되는 일”이라며 장애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대답해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정신지체장애우의 경우 말이 고용이지 착취를 당하고 있는 사례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사업주가 11년이 넘도록 월급을 한번도 지급하지 않고도 “장애우가 일을 하면 얼마나 하냐. 아무데서도 받아주지 않는 장애우를 데려다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일자리도 줬으면 월급을 지급한 셈”이라며 떳떳하게 말하는 경우는 흔하다. 그리고 대개 그러한 사업주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장애우를 데려다 돌보는 착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어 주변 사람들을 통한 신고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장애우 노동문제가 공단과 무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도 많다. 장애우를 고용해 일을 시키고 몇 만원씩 쥐어주고는 공단에는 장애우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한 것으로 부정수급을 하는 사례 역시 흔하기 때문. 이것은 정신지체장애우의 경우 돈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데다가 주변사람들의 의견을 자신의 생각으로 잘 받아들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따라서 이들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노동권 보장의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한데, 월급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어도 “여기서 일하니까 좋아요?”하고 물으면 “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에게, 공단 측은 고용에 문제가 생기면 노동부 근로감독과에 직접 신고하면 될 일이니 문제가 없다고 대답한 꼴이다.
공단의 대외협력과 김대유 대리는 “현재도 고용조건이 까다로워서 장애우를 고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에게는 고용확대가 목표이다. 공단에서 고용환경개선, 고용안정까지 신경은 쓰고 있지만 취업이 가장 최우선이다.”라고 말해 공단에서 무엇을 중요시하는지를 분명히 했다.
결국 모두 ‘공단의 책임은 단지 장애우의 고용까지’라고 말한 셈이다. 그 이상은 예산도 없고 인력도 없어서 할 수 없단다.
“우리의 책임 범위는 고용까지다”
공단을 관리 감독하는 기관인 노동부 고용평등국 장애인고용과 나영돈 과장 역시 “우리의 책임의 범위는 고용까지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한 “장애우 노동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가 맡아주기를 바라는 데, 심정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조직구조상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장애우 고용촉진 및 유지를 주업무로 하고 다른 문제는 그 문제와 주로 관계가 있는 부처와 협력해서 풀어야 하는 문제이다. 해당 과에서 담당을 하고 다만 그 사람들이 장애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우리가 협조를 하는 것이다.”라고 말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생각은 없음을 밝혔다. 그러면서 “만약 우리더러 다 맡으라고 한다면 맡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방법보다는 협력이 더 좋다. 복지부가 장애우와 관련된 거 다 맡고 있어서 좋은가? 내 생각은 기능별로 부처가 나눠 맡아야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 이상은 노동부의 여러 부서가 있으니 그들 부서의 몫이라는 이야기인데, 결국 장애우의 고용과 고용유지만 공단의 책임이고 현재 장애우의 노동환경 문제를 담당하는 부서 및 규정이 없다. 공단측과 노동부는 규정만을 들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고용평등국의 여성고용과의 경우에는 여성의 고용확대 이외에 조정업무를 두어 여성에게 적합한 노동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으며 고용평등국 평등정책과에서도 직장내 성희롱 예방 및 지도라든가 연소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및 개선에 관한 업무를 진행하고 있기도 해 관심만 있다면 불가능 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왜곡되어가는 장애우 노동정책
|
||||||||
그렇게만 생각하고 넘어가기에는 이러한 정책이 장애우 노동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
우선, 이렇게 고용의 질적 측면 즉, 장애우의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계획 없이 장애우 몇 명이 고용되었는가에만 관심을 갖고 장애우고용촉진 정책을 추진하다보니, 공단과 노동부가 알선하고 만들어내는 일자리라는 것들이 전부 사회에서 기피하는 농업이나 단순노무직에 치중될 수밖에 없는 것. 이러한 직종의 경우 임금이 낮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직종보다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고용이 불안하다.
공단 대외협력과 김대유 대리 역시 “이번 사건에서 임금체불이나 안전시설 등 노동환경에 대한 지적이 많은데, 이것은 시온글러브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중소기업 노동자 대부분이 겪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변화시키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것이 장애우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결국 고용이 된 장애우조차 불안한 고용상태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노동을 하고 있고, 따라서 만족스런 노동의 권리를 누리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장애우의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2000년 장애우 실태조사에 따르면, 오히려 고용된 장애우노동자의 29.9%가 단순노무직으로 오히려 5년전 보다 약 7%가 상승했으며, 전문직 사무직은 2%가 상승한 반면에 기능직은 오히려 7%가 감소해, 장애우노동자의 비숙련화·저기능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장애우 고용의 질적인 측면이 양적인 확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묻혀버리지 않았는지 의심하기 충분한 자료다.
노동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장애우였다.
무엇보다도 장애우 노동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는 것은 장애우고용정책이 단지 양적확장에만 치중하면서 장애우 노동에 대한 시혜적 접근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그것에 기대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온글러브에서 가장 명백하게 나타난 문제점은 바로 이러한 시혜적 태도였다. 기자가 업체에 방문해 취재하는 동안 장애우들의 생활상담을 했다던 직원 문상순씨는 끊임없이 사장의 노력을 치하했다. “똥오줌도 제대로 못 가리는 아이들을 사장이 전부 뒤처리까지 했다니까요.”라는 말부터 “갈 데 없는 장애우들이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 시온글러브예요.”까지.
김원환 사장 역시 동일한 입장이었다. “고용한 장애우 중에는 하루 밥은 벌어먹고 사나 싶은 장애우도 있다. 종교적인 측면도 있고 회사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차원에서 장애우를 고용하고 있다.”는 것.
그 어디에서도 이들이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읽을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장애우였을 뿐이었다.
결국 고용촉진공단은 장애우를 취업시킬 때 한사람의 노동자가 아니라 그냥 장애우를 취업시킨 셈이다. 그러니 그 장애우의 취업을 받아준 회사 역시 그들을 노동자가 아니라 장애우로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리고 노동자가 아닌 장애우를 취업시킨 사장은 장애우들에 대한 시혜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관점은 이번에 사망한 장애우 노동자들의 보상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시온글러브 김원환 사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명백하게 말했다.
“저희가 뭘 잘못했기 때문에 보상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사람이 죽었으니까 도의적 차원에서 보상하는 것뿐입니다. 저희가 애초에 생각한 보상금을 가지고 협상할 생각은 없습니다.”
회사 측은 사망한 장애우 노동자 일인당 2400만원의 보상금을 2년에 걸쳐 다달이 10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보상조건은 사망한 장애우 노동자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보상 액수의 문제를 넘어 잊고 싶은 자식의 죽음을 다달이 확인해야 하는 아픔이다. 이러한 보상조건에 항의하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회사 측에서 돌아온 대답은 “합의 봐서 집을 살 생각이냐”이었단다.
노들야학 박경석 교장은 “실제로 장애우 노동에서 시혜적 접근은 장애우의 노동문제를 노동이 아닌 자선활동으로 여겨, 노동의 성격을 개인 차원에서의 은혜적이고 자기만족적 성격의 활동으로 비하시키는 경향의 근간이 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장애우 노동의 영역에서 우리가 지적해야 할 자본의 모순 관계는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고 이러한 시혜성이 노동자인 장애우 노동자의 권리와 요구를 억압하는 정치적 성격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이 그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시혜성은 장애 운동의 실천의 영역에서 극복되어야 할 이데올로기적 전제임에도 불구하고 공단이 장애우 고용의 양적 확대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전제는 사라져버린 것이다.
장애우의 죽음, 막을 수 없던 불행인가?
![]() |
||
|
그러나 이곳에서 장애우 노동자 4명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을 때 장애우고용모범업체라는 사실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어느 누구도 책임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사회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이 사건을 단지 불쌍한 장애우의 불행한 죽음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이 화재참사 후 장애우 노동자들의 사망이 뒷전으로 밀려버린 건, 모든 문제 앞에 재차 강조하지만 ‘장애우 고용율 확대’라는 잘못된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구DPI 윤삼호 정책부장은 “진상조사단이 이번 화재참사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들고 나섰을 때, 언론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여기서 이런 문제를 들고 나오면 안 그래도 어려운 장애우 고용에 문제가 생긴다’며 침묵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덮는다고 이제까지 미약했던 장애우 고용이 갑자기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고용이 위축되지 않기 위해서 장애우는 계속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근무를 해야 하는 것이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박옥순 정책팀장 역시 “현재처럼 장애우 고용을 양적으로만 확대하고 인력과 예산의 부족을 이유로 장애우가 고용된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공단에서 고용을 알선해준 장애우가 사업주에 의해 사육, 갈취, 착취가 일어나는 형태로 노동의 왜곡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렇게 되면 고용을 알선하지 않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우 고용의 문제는 결코 단선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이제 시온글러브 사건을 계기로 장애우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재조명 될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가 말하는 장애우 노동자 권리 수준은 생산에 참여할 권리까지였다면 이제는 그 수준을 뛰어넘을 때가 된 것이다.
게다가 이제까지 경증장애우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장애우고용정책이 조금씩 중증장애우에게로 전환되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더더욱 장애우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글·사진 조은영 기자
박스기사
사업주 중심의 고용정책이 키워낸 회사
- 시온글러브 어떤 회사인가
![]() |
콘테이너 박스에서 시작한 회사 , 장애우고용 7년만에 ‘5백만불 수출탑’ 수상
92년 경산 하양의 조그만 콘테이너 박스에서 5~6명의 직원이 함께 면장갑을 만들면서 시작 되었다는 시온글러브.
그 시온글러브가 급성장한 시점은 공교롭게도 98년 외환위기 여파로 인건비라도 줄여보겠다는 생각에 정신지체장애우를 고용하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다.
시온글러브는 장애우를 고용했던 98년 바로 ‘장애우 1인당 3천만원 한도’라는 규정을 정확하게 지켜 공단으로부터 1억5천만원가량의 시설융자를 받았다. 연리 3%의 조건은 금리가 내려간 지금에는 별로 큰 매력을 지니지 않지만 외환위기 직후 고금리를 유지하던 당시에는 사정이 달랐다. 그렇게 받은 융자금을 업체는 장갑편직기 90대를 구입하는데 사용했다.
이를 토대로 99년 미국으로 장갑을 수출하기 시작한 시온글러브에는 장애우 5명을 포함해 19명이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회사에는 23명의 장애우를 포함해 40명의 노동자가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기술경쟁력 우수 기업으로 표창을 받기 시작해 여러 가지 표창을 받는 기업이 되었다.
2001년이 되자 회사는 장애우 51명을 포함해 무려 81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중견그룹의 면모를 다져갔다. 그리고 장애우를 51명이나 고용한 중견그룹으로서의 면모에 맞게 그해 회사는 공단으로부터 11억에 가까운 시설융자를 받았으며 이 돈으로 표백기 등 13종의 기계 26점을 구입하고 법인으로 전환했다.
2002년 회사는 보다 규모가 커져서 61명의 장애우를 포함해 117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커다란 회사가 되었고, 각종 표창이 이어졌다. 경북도지사로부터 2월과 4월 두 번이나 표창을 받았고, 장애우 고용에 크게 이바지한 점을 인정받아 노동부 장관상도 받았다. 그리고 무역협회로부터 ‘백만불 수출의탑’을 수상하고 중소기업은행으로부터는 기술개발 시범기업으로 지정받았다. 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그러한 성장에 걸맞게 새로운 공장을 지었다.그리고 그곳에 장애우 노동자를 위해 2대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서 다시 공단으로부터 4천만원을 무상으로 지원 받았다.
그렇게 신축공장은 이듬해인 2003년 4월에 완공되었고 공장의 규모에 걸맞게 업체는 전년도 두 배에 달하는 212명의 노동자를 고용했다. 이때 장애우 노동자는 81명. 그리고 회사는 다시 2억7천만원 상당의 시설융자를 받아 반코팅기 2대를 구입했다.
그리고 노동부가 발표한 장애인고용장려금 축소 정책이 적용되는 2004년. 아주 공교롭게 이제까지 한번도 감소해 본적이 없던 장애우 노동자 수가 역시 아주 조금이지만 감소해 79명이 되었다. 이때 총 노동자수가 209명이니, 전년도에 회사를 나간 4사람 중 3명이 장애우이었던 셈이다. 직원은 줄었으나 어쨌든 회사는 성장해서 한국무역협회로부터 ‘5백만불 수출의탑’을 수상했다.
그리고 올해 최소 2억5천에서 최대 10억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힌 장애우중심기업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을 계획이다.
장애우 5명 고용에 종잣돈 1억5천, 공단으로부터 총 30억원 지원 받아
이렇게 공단의 지원을 받은 이 업체는 2001년에 50만불을 수출에서 2005년 5백만불 4년만에 10배가 넘게 성장했으며, 99년 19명이던 직원 역시 2005년에는 209명으로 10배가 넘게 증가했다. 이렇게 살펴보니 이 업체의 성장과 공단의 지원은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공단은 회사에 시설융자 최대한도인 15억에서 4백40만원 모자란 14억9천5백6십만원을 융자해줬고, 2004년까지 고용장려금으로 총 11억6천6백여만원을 지원했다. 올해 고용장려금으로 4억 가량의 돈을 받을 예정이니 벌써 공단이 융자금을 포함해 이 업체에 지원한 금액만 30억이 된다. 여기에 장애우중심기업 선정에 따른 지원금을 더하면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한동안 유행하고 있는 10억 모으기 프로젝트를 기억할 것이다. 거기에 따르면 10억을 모으기 위한 첫 출발은 종잣돈을 모으는 일이다. 그리고 일단 종잣돈이 마련되면 그다음에는 자본이 자본을 불려가게 되어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업체는 장애우 5명을 고용해 1억5천에 해당하는 종잣돈을 쉽게 얻었고 이것으로 장갑편직기 90대를 마련해 기업 성장의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이렇게 보니 더더욱 공단의 지원이 업체의 성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성장한 시온글러브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시온글러브는 장애우에 대한 편견을 깨고 현행 제도를 최대한 활용했을 뿐이며, 고용촉진공단 역시 규정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오히려 일반 장애우단체에서 운영하는 사업장의 경우 동일한 법제도 아래에서 운영하면서도 최저임금을 지급하기도 빠듯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시온글러브는 뛰어난 사업수완을 가진 우수한 업체이다.
그러나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회사가 이렇게 급속도로 성장하고 공단은 자랑할만한 작품으로서 우수사례를 남기는 동안 장애우 노동자들에게는 무엇이 남았는가? 여전히 장애우 노동자들은 이 회사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이곳을 떠나면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신세다. 업체가 저금리로 융자한 15억은 고스란히 업체의 설비투자를 위해 사용되었다. 사실상 시온글러브만이 아니라 자본투자의 개념에서 빗겨서 있는 장애우 편의시설을 위해 돈을 빌릴 업체는 거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장애우 노동자를 위한 융자항목은 유명무실하다. 융자제도는 장애우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고용의 열쇠를 쥐고 있는 업체 유인 성격만 갖게 된 셈이다.
이번 화재 사건이 발생하고 공단을 처음 찾았을 때, 공단의 첫 반응이 “업체 회생을 도울 방법을 여러 가지로 고민 중이지만 행정적 지원 이외에 특별히 해줄 것이 없습니다.”였던 것은 이러한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업체의 화재로 그들이 직업을 알선해준 장애우 노동자들이 사망했는데, 공단의 첫 관심이 장애우 노동자가 아니라 업체였다면 뭔가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글·사진 조은영 기자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