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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20여년 동안 승진 차별 당한 어느 여성장애우의 이야기

무지와 편견이 관행으로 이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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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7급 공무원

 
 
 
부산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는 김미영 씨(가명, 53세, 뇌병변장애3급)
그녀는 공무원 생활 20년 동안 7급이었다. 자신과 함께 입사했던 많은 동료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그녀만 같은 자리를 ‘맴맴’하고 있었다. 평균 승진 연수로 치자면 6년 동안 승진에서 배제된 것이다. 그녀는 궁금했다. ‘왜 승진을 못하는 거지? 뭐가 문제가 있나? 내가 남들보다 부족한가? 다른 건 있지, 장애가 있지. 그런데 그게 뭐? 내가 신체적 장애는 있어도 불성실하지도 업무능력이 남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왜? 장애가 있으면 일을 못하나? 그렇게 판단하고 있나?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조금만 더 기다리자, 나에게도 기회가 오겠지. 그런데 언제까지? 이제 정년 퇴직까지 5년 남았는데 이렇게 이유도 모르고 차별 당하면서도 가만히 있어야 할까? 아냐, 뭔지 알아야겠어. 내가 도대체 왜! 왜! 왜!’
그래서, 그녀는 2004년 2월 16일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나의 장애 때문에 승진에서 의도적 배제를 당하고 있다”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조사 9개월만에 차별 인정, 인권위 시정조치 권고
진정을 받고 조사에 착수한 인권위는 지난 11월 16일, 조사 9개월만에 이 사건이 명백한 장애우 차별임을 결정했다.
우선 인권위는 “김미영 씨가 3급 뇌성마비 장애우로 2급 정 사서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1977년 부산대학교 도서관에 9급 공무원으로 신규 임용되어 열람과와 정리과에서 일서·중서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도서 분류·정리·수정 일을 하였으며, 1984년 7급 공무원으로 승진된 후 현재까지 7급 공무원으로 근무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부산대학교 도서관의 승진 사례를 살펴본 결과, 2004년 3월 현재 부산대 도서관 사서직원 총 34명 중 6급은 11명으로, 7급 임용 후 6급 승진 소요연수는 각 6년 8개월부터 13년에 이르고(평균 9년 반의 기간 소요), 14명 중 김미영 씨를 제외한 13명이 현 직급인 6급에 임용된 지는 4년에서 10년에 이르는데, 유독 김미영 씨만 7급에 임용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승진되지 않아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인권위는 “김미영 씨가 장기간의 근무경력을 갖추고 있고, 일·중서 정리업무에 필요한 언어능력 등을 갖추고 있으며, 함께 근무하는 직원의 다수가 김미영 씨의 업무능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지적하며, “1999년부터 2003년까지 근무평정을 하였던 평정자 역시 김미영 씨의 업무능력에 대해 특별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이고 예외적으로 하위의 평정점수를 준 것은 장애우 차별”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이로써 인권위 최초의 진정사건이었던 제천시 보건소장 승진 차별 사건 이후, 인권위가 결정한 두 번째 ‘승진에서의 장애우 차별’사건이 되었다. 하지만 제2의 제천시 보건소장 사건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인권위가 차별을 결정했음에도 시정조치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아, 결국 제천시의 사과만 받아냈지 원상회복 조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당사자였던 이희원 씨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또다시 길고 긴 법정 싸움으로 이 문제를 끌고 갔다. (물론 3,300여 만원의 위자료를 받는 것으로 일단 제천시의 무지와 무례함에 타격을 주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당사자의 권리회복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때문에 부산대학교가 향후 취할 자세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인권위는 결정문을 통해 “차별행위의 중단(원상회복 조치)과 재발방지를 위해 대학의 근무성적평정지침 등에 실효성 있는 장애인차별금지조항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는데, 과연 부산대학교 스스로가 과거의 무지와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차별 결정과 이 두 가지 권고가 있은지 두 달이 되어 가는 1월 초순경까지 당사자인 김미영 씨는 “기다려보자”고 오히려 차분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가 기뻐할 수 만은 없는 이유
우선 결과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겠다. 기쁘고 감격스럽게도, 아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다. 부산대학교는 지난 1월 13일 김미영 씨를 6급으로 승진시켰다. 임명장을 주며 총장은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했고, 주변의 직원들은 “축하한다”며 그이가 오랜 차별에서 벗어난 것을 모두 함께 기뻐했다.
김미영 씨는 “네, 잘된 것 같아요.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사건 때문에 항상 노심초사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쓸데없는 짓 했다고 질타하는 분도 있어,  심적 고통이 무척 컸죠. 이 사건으로 세상이 너무 힘들다는 걸 알았지만 이만큼이라도 만족합니다. 조용히 살다 이제 남은 4년을 잘 보내고 싶어요.”약간 들떠 보이긴 했지만 그간의 상황을 주마등처럼 떠올리며 말하는 그이의 목소리에 회한이 느껴졌다.
그는 이어 “이 과정에서 얼마 전 만들어진 노조에서도 학교에 압력을 행사했고, 주변 동료들도 많은 힘을 주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100% 만족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본인이 인권위 진정서에서도 밝혔지만, 그가 원했던 것은 자신이 무능력한 게 아니라 장애 때문에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원상회복 조치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이나 월급의 차이를 계산해 지급하라는 금전적 요구는 없었다. 아마 몇 천 만원의 차이가 있을 것이고, 정년 후의 퇴직금 계산에서도 손해를 볼 것이 분명했지만 이에 대한 요구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런 것까지 하면 너무 힘들죠. 사안이 복잡해지고 학교도 고민이 많아질테니까요. 당연한 것이긴 해도 ‘돈’이 들어가면 사람들은 오해하기 십상이고 본말이 전도될 수 있죠. 이건 내가 감수해야 하는 몫인 것 같아요.” 당연한 요구임에도 불구하고 요구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다. 하지만 김미영 씨가 이번 결정에 대한 기쁨을 마냥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무엇이었을까?

부산대 전 도서관장의 구차한 변명, ‘그녀는 정신지체 장애우다’

 
인권위는 조사 과정에서 학교로부터 대학 내 사서직원의 현황, 근무성적 평정표, 승진후보자 명부, 보통승진심사위원회 회의자료 등을 받았다. 실무자였던 인권위 이진순 조사관(차별조사1과)은 꼼꼼히 검토하고 총무과 직원과 평정자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의문은 더 커지기만 했단다. “김미영 씨는 지속적으로 거의 꼴찌의 평정점수를 받았어요. 다른 직원의 경우 7급이 된 지 평균 9년 반이 지나면 6급으로 승진했는데 김미영 씨만 20년 간 7급 직에 고정돼 있었던 거죠. 7급 직에 가장 오래 근무한 직원의 경력이 10년인데 말입니다.”이것으로 본인만 승진하지 못했다는 김미영 씨가 진정서에서 주장한 것은 일단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가 뭘까? 이진순 조사관은 관계자들에게 이러한 상황 벌어진 것에 대해 물었단다. 그러나 학교 관계자 그 누구도 적절한 설명을 하지 못했고, 최하위의 평정점수를 준 평정자도 “진정인의 업무능력이 특별히 떨어진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증언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승진 여부는 자신이 판단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비껴갔고, 이진순 조사관은 ‘장애우란 이미 그 장애로 인해 예외성을 인정받은 존재일까’라는 씁쓸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승진심사위원회의 1999년 회의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발견됐다. 당시 도서관장이 보통승진심사위원회 위원장에게 말한 부분이다. 정동현 전도서관장(부산대 경제학과 교수)이 “김미영 씨는 정신지체 장애우기 때문에 7급의 업무는 할 수 있어도 6급의 업무는 수행하기 힘들다”는 발언 내용이었다. 또한 2000년에는 “김미영 씨가 승진 후보자 1순위였는데도 참석한 위원 전원이 도서관의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해 승진에서 배제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로써 인권위는 그가 가진 업무수행능력과 무관한 장애를 이유로 승진에 직접적이고도 중대한 불이익을 끼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유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지와 편견 속에서 관행으로 자리잡은 장애우 차별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이유에 대해 김미영 씨는 인권위가 조사결과를 발표할 때 알았다고 한다. 그 전에는 그저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있었겠지’하며 막연히만 생각해왔지, 이렇게 정신지체와 뇌병변 장애도 구분하지 못하고, 장애를 무능력으로 연결시켜, 철저히 한 사람을 벼랑으로 끝으로 몰아세웠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김미영 씨는 인권위로부터 이 소식을 전달받고 현 도서관장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정말 자신이 정신지체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떨리는 목소리고 따져 물었다. 비록 당사자에게 달려가 한 말은 아니었지만 김미영 씨는 “사과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다짐했고, 또 현재의 관계자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협박(?)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도서관 과장은 그를 붙들어 앉혀놓고 “당신 고소한다고 했다며? 짤려도 좋아?”라고 말하며 “그만 이쯤에서 조용히 해결하자”고 한 것이다. 어이없고 말문이 막혔지만, 상식 이하의 수준을 갖고 있는 사람과 더 이야기하는 건 그만 피곤할 뿐이다. 그녀는 뒤돌아 나오며 ‘세상이 이렇구나’하는 절망감에 휩싸였다고 한다. 그래서 별다른 기대도 없단다.
부산대학교가 뒤늦게 나마 승진 결정을 내려 명예는 회복되었으니 다행이지만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장애에 대한 사회의 무지와 편견이 얼마나 뿌리깊은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는지에 대한 재확인뿐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장애우에게는 혹독한 차별의 시선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한 김미영 씨, 그래서 그이에게 기쁨보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더 크게 자리하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권위가 전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차별금지 조항을 인사평정지침에 명시하도록 권고했으니, 만일 장애우 차별금지가 제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이후 부산대학교에서 장애 때문에 차별 받는 상황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한줄기 기대다.
본인은 너무 낯설고 힘겨운 1년을 보냈지만, 용기 있는 그의 행동으로 인해 ‘차별’이란 단어는 우리와 더 멀어질 수 있게 되었다.

글 홍여준민 객원기자

 

작성자홍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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