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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후손을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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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손발이 곱아옵니다. 추운 날씨에 몇 시간 서 있으니 그런 모양입니다. 예전 겨울엔 늘 이랬는데, 밖은 물론 집안에서도 내복과 양말에 외투까지 껴입고 지내곤 했는데, 요즘은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아파트에서 내복은커녕 양말도 신지 않습니다. 겨울이 여름답고 여름이 겨울다운 요즘, 아이들은 감기를 달며 살고, 대기와 물과 땅은 오염되고, 생태계는 상처를 아물지 못합니다.
지율스님의 단식 80일을 맞는 1월 14일부터 광화문 교보문고 앞뜰은 촛불 들고 문화행사하는 많지 않은 시민들이 저녁마다 모여듭니다. 십여 명에서 이제 백여 명. 탄핵반대 수만 명 무리에 비하면 보잘것없습니다만, 천성산 터널 반대를 통해 지율스님을 살려보겠다는 마음으로 모인 인파는 곱은 손을 녹이며 격려와 신념으로 환경과 평화를 함께 노래하고 다짐합니다.
한 청년이 마이크를 잡습니다. 어떤 북미원주민 추장의 말을 인용하며, 그들은 7대 후손의 처지에서 의사결정한다고 말하고, 이어 서툰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가 서툰 건 아마 노래방 기계 때문일 겁니다. 기계에 의존하는 삶, 자신도 모르게 주어진 편의에 길들고 만 세상, 이반 일리치가 강조하듯 학교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배울 능력을 잃었고, 자동차 때문에 이동능력을 버렸으며 병원 때문에 치유능력을 박탈당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 청년의 북미원주민 이야기는 듣는 이들에게 각성의 시간을 마련해주었지요.
남아시아의 쓰나미 참상은 결코 천재지변이 아니겠습니다. 해저 지진에 이은 해일이야 늘 있어온 자연현상이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순전히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야생동물과 지역 원주민들은 미리 알고 대피했다고 하지요. 산호초를 부수고 나무를 잘라 바닷물이 오가는 해안에 건물을 지어 자연의 흐름을 가로막은 탐욕이 수십만 인명과 재산을 잃게 만든 것이겠습니다. 그렇다면 새만금은 어떨까요.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올라가는데 인천신공항은 언제까지 안전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3개의 단층대가 지나가면서 이루어진 수많은 파쇄대, 산 정상부에 십 수 군데의 늪지가 아롱진 곳, 천명의 성인이 탄생해 천성이라 칭하는 산에 기다란 터널을 뚫으면 자연은 당장 상처를 받겠지요. 그 피해는 고스란히 후손에게 전달되겠지요. 한 세대가 30년에 불과한 사람은 자연의 이치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사람의 서푼짜리 기술로 자연을 정복하고 극복 가능할까요. 참으로 오만하고 불손한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놓아 천성의 생명을 살리겠다는, 그렇게 해서라도 인간의 못된 업을 대신하겠다는 지율스님. 그이는 우리를 대신해 자연에게 용서를 빕니다. 스스로 곡기를 끊은 지 90일이 되어가는 그이의 생명이 지금 위태롭습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겨우 촛불 하나 들고 모이는 행동 밖에 할 수 없다는데 분노가 일지만, 오늘도 광화문에 나가보렵니다. 오랜만에 내복을 꺼내 입고서.

글 박병상(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장,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공동대표)

작성자박병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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