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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교통만 있고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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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이동’은 가장 기본이다. 교육을 받고, 일터에 나가고, 친구들과 모임을 하기 위해, 움직임이란 전제가 되어야 하는 필수적인 행위다.
특히 몸이 불편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나 어르신 등 이동약자들에게는 가까운 거리라도 이동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늘 힘겹게 ‘겨우겨우’ 다닐 수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어느새 ‘이동’은 이들의 투쟁으로 ‘권리’로 자리매김 하였고, 이러한 이동약자를 위해 육교나 지하보도 대신 횡단보도를 설치하는 것은 기본권이라는 측면에서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어느 한 구청이 횡단보도 대신 육교가 설치된 곳에 계단 대신 경사로를 설치했다고 이동권을 보장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스스로 다니기에 위험 천만인 각도를 갖고 있는 그 경사로는 이동권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다며, 그 육교가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시정조치를 권고한 바도 있다.
이렇듯 자유롭고 안정하게 보행할 수 있는 거리환경은 이제 배려에서 벗어나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는 당위성을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서울의 5호선 군자역 사거리에 가면 이동약자를 무시하는 황당한 보행환경을 만나게 된다. 먼저 사거리가 한쪽은 8차선, 한쪽은 6차선인 사거리인데 6차선 쪽에는 횡단보도가 설치되어 있지만, 8차선 쪽에는 없다. 그래서 8차선 쪽 도로를 건너려면 100 여 미터 이상 떨어진 횡단보도를 이용하거나 지하철 역사의 수많은 계단을 힘겹게 오르내려야 한다. 장애우나 어르신들은 한쪽 편에 한대씩 설치 되어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하는데, 이를 이용하려면 6차선 쪽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사거리에서 십 여 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 되어있는 엘리베이터까지 가서   지하역사로 내려간 다음   지하역사를 가로질러 반대편에 있는 엘리베이터까지 수 십 미터를 이동하여   엘리베이터를 타야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아직 한 쪽 엘리베이터는 완공이 되지 않아서 장애우들은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해야만 겨우 길을 건널 수 있었다. 지금 가동중인 엘리베이터도 올 해 초에야 겨우 완공되어 가동하기 시작 한 것이다.

군자역사가 만들어진 이후 10 여 년 동안 장애우들은 길을 건너기 위해 느리고 불편한 리프트를 두 번씩이나 이용해야 했고 어르신들은 힘겹게 힘겹게 계단을 오르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하철이 끊기는 밤 12시나 1시 이후에는 지하철 입구의 문을 모두 닫고 엘리베이터의 운행도 정지하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이나 장애우나 모두 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100 여 미터 이상 떨어진 횡단보도까지 가야 한다. 아니면 목숨을 담보로 무단횡단 감행해 불법을 저지르는 수밖에 없다.
사거리에 횡단보도가 고루 설치되어 있다면 수평으로, 한 두 번의 도로를 가로질러 간단하게 길을 건널 수 있다. 그러나 원활한 교통소통이란 미명아래 장애우와 어르신 등 가뜩이나 힘겹게 이동을 하며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10 여 년 간 힘든 고통을 주어 왔다. 그들은 시민이 아니었다. 건강한 사람들이 자가용을 몰고 질주할 때 그들에게 방해물이 되지 않도록, 수평이동이 아닌 지하로, 지상으로, 길가로 몰아냈다. 도로의 역사가 그러하듯, 처음에는 사람들이 길의 주변으로 밀려나더니, 이제는 약자들이 위로 아래로 밀려나고 있다. 자동차 중심, 도로 중심의 도시는 인간과 공생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보다.
이제 곧 반대편 엘리베이터가 완공되더라도 한번 건너기 위해 이쪽 저쪽으로 수 십 미터를 왔다갔다 해야한다. 엘리베이터를 두 번이나 타고 내려야 하는 불편 또한 여전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토록 건너기 불편한 군자역 사거리에서 100 여 미터 정도를 올라가면 더 황당한 경우를 만나게 된다. 이곳은 중앙 차로에 버스정류소가 있는데 인도와 연결 해주는 횡단보도가 없고 육교가 대신 서 있다. 그래서 버스를 타려면 육교를 건너가서 육교 중간에 있는 계단을 내려 와야만 버스를 탈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육교를 오르내리려면 번거롭고 힘들 것이다. 특히 어르신들이나 장애우, 유모차를 이용하는 사람들, 무거운 짐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버스 이용을 포기하거나 위험 천만한 무단횡단을 감행하는 길 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다 만약 사고라도 난다면? 그렇다면 당연코 육교 밑이라 보상받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이걸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곳에 한 10분만 서 있어도 목숨을 걸고 무단횡단하는 무법자(?)들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게 군자역을 둘러싼 교통환경의 현실이다.
이런 군자역사 주변의 황당한 보행체계는 사람 차별을 당연시하는 권위주의 시절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경제발전에만 초점을 맞추어 차량의 원활한 통행을 최우선으로 두고 사람은 지하나 육교로 다니게 했던 권위주의 시절. 그때는 강북에서는 육교가 많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었고, 경제발전의 대표적인 상징처럼 여겼었다. 또 강남에서는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육교보다 깔끔한 지하보도가 많다고 자랑스러워했었다. 땅 값 비싼 그곳이기에 지하 상가가 늘어나는 상황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동약자의 이동권 운동, 보행자들의 자기권리 찾기 운동 등이 벌어지면서 횡단보도 설치 운동이 각 도시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상권을 형성한 지하상가 주민들의 반발로 오히려, 시민 대 시민의 싸움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정부나 지자체는 교묘히 빠져있다. 장애우나 어르신 등 이동약자의 불편과 힘겨움은 고려하지 않는 잔인한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 잔인한 시절의 소산이 아직 버젓이 남아 있는 곳이 이곳 군자역사 주변이라 볼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걸어다니는 소시민들을 차별하고 장애우나 어르신 등 이동약자를 무시하는 권위주의를 버리고 하루속히 군자역 사거리에 고루 횡단보도를 설치해야 한다. 버스정류소에는 육교 대신 횡단보도를 설치해 장애우나 어르신 등 이동약자들이 언제든지 쉽게 길을 건너고 버스를 이용 할 수 있게 보행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제발 인간적인, 보다 인간적인 도시가 무엇인지 근본적인 실천을 횡단보도에서 찾길 바란다.


글 심승보(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문화센터 기자단 ‘엎어’)
사진 조은영기자


 

작성자심승보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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