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운동과 노동운동, 연대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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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후반 홀트아동복지회 노동조합을 시작으로 사회복지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되자, 단위 사업장이라 할 수 있는 개별 사회복지 시설과 기관에 노동조합이 하나 둘씩 건설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십 수년이 지난 지금 사회복지영역에서의 노조 건설이나 활동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큰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근 정립회관 사태로 사회복지노동조합이 또다시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지만 유독 장애계와 사회복지계는 침묵하고 있다. 오히려 노조활동이 과도하다며 인정할 수 없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과연 장애운동과 노동운동은 연대할 수 없는 것일까? 함께걸음이 진단했다.
부메랑으로 되돌아올까 우려 때문에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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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정립회관 사태는 사회복지노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
정립회관 사태에 대해 장애계와 사회복지계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유는 정립회관 사태를 시설 민주화 투쟁이 아닌 노-사 갈등의 문제로 국한해 해석하기 때문이다. 노-사의 문제는 당사자간의 합의가 중요하다는 통념이 작용한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3자가 개입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런 일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시설민주화 투쟁’이라는 입장을 가질 경우, 개혁의 대상은 현재의 정립회관 측이 될 것이고, 그건 자신들에게 화살을 쏘는 자살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부메랑으로 되돌아올까 우려가 앞서기 때문 아니냐?”는 것인데, 이유인즉슨 규모가 큰 법인체 장애우 단체들의 경우, 그들이 시설과 장애인복지관의 운영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립회관 사태에서 노조와 이용자들이 요구하는 정립회관 민주화가 받아들여지게 되면, 시설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시스템 구축 등의 요구는 각 단위에서 급물살을 탈 것이고, 따라서 정립회관 사태에 대해 목소리를 낼 경우, 어느 한쪽의 입장을 지지하는 모습이 될 것이기에, 어찌됐건 부담스런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즉 장애계와 사회복지계는 정립회관 사태에 대해 노-사갈등이라며 침묵하고 있지만, 사실은‘전략적으로’ 방관 혹은 본질 흐리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노사갈등이면 외면해도 된다는 말인가? 왜 종사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 싸우면 안된다는 것인가?”라고 말하며, “노동운동이라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낡은 관습에서 장애계가 여전히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노동운동의 현실적 문제는 사회복지노동조합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덧붙이며,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아직 이러한 경험조차 없는 처지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장애계는 노조의 존재를 어디까지 인정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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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한 노-사 갈등으로 해석되고 있는 정립회관 사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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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계 및 사회복지계가 침묵하고 있는 이유는 시설 민주화 투쟁이라는 입장을 가질 경우, 개혁의 대상이 운영자가 되기 때문이다 |
정립회관 문제로 다시금 사회복지종사자들의 노동자성 인정 여부가 관심의 집중이 되고 있지만, 이 꿈틀거림은 사실 몇 년 전부터 있어왔다. 부천장애인종합복지관과 장애인 콜택시 노조, 광주장애인종합복지관, 장애우 중심의 사회적 기업으로 알려진 오픈에스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 성람재단, 정립회관의 노조활동이 그것이다.
특히 지난 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노동조합의 경우, 장기 파업과 관련, 노조 지도부 해고와 민주노총 본부 항의방문 사건은 장애를 가진 이용자들을 앞세워 사태를 장애우와 노조직원들과의 갈등인 것처럼 표면화시키고 폭력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한시련 노조는 이미 알려졌다시피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 등 자신들의 처우와 관련된 사안으로 파업한 것이 아니었다. 운영과정에서 관리자의 비리를 발견하고 책임을 촉구하면서 사태가 불거진 것이었다.
그러나 연합회 측은 회원들로 구성된 ‘노조설립반대 비상대책위’를 앞세워 ‘당사자주의’운운하며, 노조가 장애 당사자의 요구에 반하는 것처럼 사태의 본질을 흐려놓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노조는 속수무책이었고, 결국 연합회장이 관장직을 내놓고 관련자가 문책을 당하는 것과 위원장 해고로 일단 상황은 고요해졌다. 하지만 사태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싸움으로 남아 있다.
또 장애우를 대거 고용해 사회적 기업으로 널리 알려진 오픈에스이. 회사설립 당시부터 과거 운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사장이란 이유만으로 사회적 주목과 기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장애우 노동자들의 실상은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하지 않았다. 말로 포장된 것과는 다르게 장애우 노동자를 위한 회사의 노력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하루 종일 컴퓨터 입력 작업을 해야 하는 탓에 장애우 직원 대부분이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려야 했는데, 산재신청을 했으나 1년 미만의 계약직으로 되어 있어 인정받기 어려웠고, 그래서 장애우 직원들은 노조를 만들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사측은 사회적 기업임을 강조하며, “직업훈련 개념으로 설립된 회사다. 빨리 일을 배워 나가서 다른 곳에 취업하라.”고 대응할 뿐이었다. 언론을 통해 사회적 기업이라고 홍보는 되었으나 실제 노동자들은 경증 중심에 입력이나 복사, 스캔받기 등 단순노무에 투입됐을 뿐이다. 오픈에스이 전노조 위원장인 김만수 씨(청각장애2급, 현 장애인사이버노동상담소 활동가)는 “능력을 길렀으면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기회를 제공하라며, 분위기상 나가도록 했다. 또 노조 설립 후에는 계약기간을 단축하거나 사업장을 분산, 배치시키면서 노조를 무력화시키기도 했다”고 주장하면서 사측은 말로는 “노조를 인정한다”고 했지만 힘을 모으는 것에 불안해했으며, 절대 파업은 안된다고 말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애인 콜택시 노조에 대해서도 장애계는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콜택시 노조 문제에 대해 콜택시노조공대위에서 활동 중인 조현민 씨(정립회관 노조 소속, 서울경인사회복지노동조합 부위원장)는 “콜택시 이용자인 장애우들도 운전기사들이 봉사자라는 인식을 싫어했다.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콜택시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 장애우는 고객이 아니다. 봉사를 받는 대상이다.”라며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장애우 스스로도 정당한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박탈당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콜택시 노조 문제와 관련해 장애계 한 관계자는 “이용자인 장애우가 함께 싸워야 하는데, 힘이 몰아지지 않아 서울시가 아직도 콜택시 노조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복지 현장에서 노조가 움직일 기미가 보이면, 늘 그 반대논리의 중심에는 ‘사측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용자’가 있었다”며 “노조의 요구를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용자인 장애우가 사태를 제대로 보고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내부 문제로 치부되는 노동조합 문제
사회복지 현장에서 노조는 대체로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이라는 노조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출발 배경은 비민주적 운영구조와 비리문제, 인권침해 문제를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제기의 통로나 주체로써 노조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외로운 싸움을 해야만 했다. 내용이 어떻든 ‘노동조합’은 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고, 내부의 문제라고만 치부되어져 지역사회나 이용자들과의 연대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사회복지 종사자 스스로도 사랑과 봉사, 희생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그것만을 강요당할 뿐, 운영의 주체로 참여할 권리, 요구를 주장할 권리가 있는 노동자임을 자각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평균 20여명 남짓의 소규모에, 스스로 노동자임을 자각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 ‘한정된 파이를 나눠야 하고, 그렇다면 서비스를 받는 당사자들에게 피해가 온다’고 사측과 인식을 같이 하는 이용자들의 반대는 노조의 주장을 왜곡시키기에 충분했고, 결국 승리를 경험을 갖지 못하는 원인중의 하나로 파악되고 있다.
그렇다면 노조를 인정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심재옥(민주노동당, 보사위소속) 서울시 의원은 “이데올로기 문제가 크다. 노동운동은 시장과 자본과의 싸움인데, 자신이 어디에 서있는지 분명히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 노동운동은 여전히 생존게임 수준인데, 사회복지 종사자들은 착한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자각하고 주체로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가능할 것”이라며, 사회복지 노조가 대립만을 조장하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의 이인영 대리는 “공무원 노동권도 공론화되는 현실에서 유독 사회복지 영역만 절대 불가라는 식의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제한 후, “전교조 등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교사이외에도 학생, 부모가 함께 ‘참교육’이란 틀 안에서 교사들의 지위를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100% 국가예산으로 운영되는 사회복지영역은 공공의 영역이다. 명분이 별로 없다.
사측이 종사자를 주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이용자들이 자신의 편이라는 강한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여하튼 또 하나의 주체인 이용자들로부터 ‘이유 있다’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며 사회복지노동운동이 명분과 실익,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장애우 조직과의 연대가 중요함을 역설했다.
“좋은 일 하시네요”란 빗장을 풀고 상식적인 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외침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노동운동과 장애운동이 연대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7월 정립회관 게시판에 ‘지킴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한 글을 보면, 장애운동과 노동운동은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글의 요지를 살펴보면, ‘이미 노동운동은 국회에 진입한 인정된 하나의 부분으로 소수가 아니다. 많은 단위의 노조와 사업장에서 장애차별을 방관하고 있으며, 단협에서 조차 장애우 고용을 제일의 화두로 내놓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 내 많은 사무실의 편의시설을 살펴보더라도 노동운동 진영이 실제로 장애운동을 내실있게 연대하고 지원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이다.
이는 심심찮게 장애운동가들 사이에서도 나온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에 대해 조현민 씨는 “그동안 민중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는 많지 않았다. 구체적이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사회복지노조가 산별노조를 지향하며, 전임자를 배치하는 등 조직적으로 힘으로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근래 민주노총 각 단위에서는 정립회관 농성장에 직접 와서 보고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또 최근 단위별로 9시부터 참여해서 활동보조인도 하고 공대위 소속 장애우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며 실제적인 현실을 알아가고 있다.
구체적인 살아있는 투쟁공간에서 소외계층 문제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대립적인 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는지 대안을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후 권리가 상충되는 지점이 있을지 몰라도 현재 노조는 ‘고질적인 시설의 비민주성과 개혁’을 이야기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란다.
결국 사회복지 현장에서 노조의 결성과 인정은 기존에 모든 권한을 갖고 있던 사람들과 형식적인 관리감독의 책임을 갖고 있는 정부와의 싸움이 아닐까. 그들에게 노조는 운영에 간섭을 하는 귀찮은 존재임과 동시에 자신들의 권한을 내주어야 하는 경계와 감시의 대상이라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장애운동을 이야기하며 당사자인 장애우가 주체적인 힘으로 자주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대해 조현민 씨는 “힘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그 안에는 운동도 없고 단지 당사자주의만 있을 뿐이다.”고 단호히 말한다. 그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우리 스스로가 포기하고 이기지 못할 것이 라 생각하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제대로 된 승리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회복지노동조합. 그렇지만 이제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 정립회관 사태로 하나로 힘으로 모으고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노조가 ‘사회복지 노동자’들의 거점이 될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시험대 위에 올려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좋은 일 하시네요’란 빗장을 풀고 ‘상식적인 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그들이 우리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동료라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건, 장애차별과 마찬가지로 오해와 편견,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난한 싸움의 과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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