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방]여성장애우들의 명절에 관한 수다
본문
한반도에 또 한번 대형 폭풍이 휘몰아치고 지나갔다. ‘추석’이라는 초대형 폭풍이 바로 그것이다. 이 폭풍은 온 국민을 ‘가족’과 ‘고향’을 찾아 우왕좌왕하게 만들었고, 만나지 않던 사람들을 새삼스레 헤쳐 모이게 했다.
그런데 유독 이 폭풍은 이 땅에서 ‘며느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 폐해가 심하다. 오죽하면 증후군까지 있겠는가.
그렇다면 ‘여성’에다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비장애 여성과 또 다른 고충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에 이번 호 수다방에서는 장애를 가진 여성들이 뭉쳤다.
경험으로 전하는 여성장애우들의 수다.
이는 수다가 아닌 우리 사회 여성장애우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수다 떤 사람들
*함께 수다 떤 사람들
▲머풍(32) :비혼. 지체장애 3급. 결혼은 또 다른 현실일 뿐이란다.
그녀는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해
그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말한다.
▶ 송경아(38) :이혼. 지체장애 2급.
그녀는 이혼 덕택에 진통제를 먹으며 견디던 명절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아픔을 감내했기 때문에 되찾은 행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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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선(44) : 결혼. 지체장애 3급. 결혼 한지 10년이넘도록 명절 때마다 시집에 음식을 보내시려는
친정엄마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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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병윤(50): 비혼. 지체장애 4급. 결혼은 너무 복잡해 보이다고 말하는 그녀. 결혼과 비혼은 단지 삶을 살아가는 , 서로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함께걸음(이하 함께) : 안녕하세요?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이번 추석, 잘들 치루고 오셨나요?
양윤선(이하 양) : 끌려가다시피 갔다 왔죠. 시집의 친척들까지 오고… 어휴 정말 힘에 겨웠어요. 저는 동서 때문에 맘고생이 더 해요. 제가 둘째 며느리인데, 저를 제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손윗동서예요. 동서는 저에게 선입견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함께 : 이해는 갈 것 같은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양 : 시부모님 부양에 대한 책임을 암암리에 우리 부부에게 떠밀고 있어요. 어떤 느낌이냐면… 너는 결혼 할 때 우리가 봐준 것이다라는 거죠. 장애 있는 여자가 멀쩡한 남자랑 사니까 그 정도 감수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식이예요. 그래서 아주 껄끄러워요. 물론 대 놓고 말하지는 못해요. 암암리에 내가 느끼는 거지.
한정현(이하 한) : 명절은 특히 결혼한 여성들에게 정말 스트레스예요. 그런데 우리는 장애가 있으니 더 한 것 같아요. 윤선씨는 손윗동서가 눈치를 준다고 했는데, 저는 강박관념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시집에서 뭐라고 하지 않더라도 내가 장애가 있으니 알아서 더하게 돼요. 예를 들어 빈 손으로 가면 안되겠구나,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자주 만나는 시집 친척들은 그래도 괜찮지만, 어쩌다 한 번씩 보거나 나를 처음 보는 시집 친척들이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시집에 무슨 소리를 할까, 지레 겁먹죠. 그러다보니 지체장애가 있는 저로써는 그들 앞에서 걷는 모습을 최대한 안 보이려는 노력을 하게 되요. 내가 이래가지고 시집에게 잘못보이거나 실수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강박관념이 강화되는 것 같아요.
양 : 갑자기 한 친구가 생각이 나네요. 그 친구는 양 쪽 다리를 거의 끌다시피 하는 중증이에요. 비장애 남성과 결혼했는데, 명절만 되면 며칠 전부터 끙끙 앓아요. 왜냐면 명절 때 시집에서 다른 형제들보다 더 요구를 한대요. 갈비 사와라, 뭐 사와라 하면서. 이 친구는 깩 소리도 못하고 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털어놓더라고요. 그렇게 바리바리 싸가지고 가보면, 다른 형제들은 전혀 안 사왔대요. 시어머니가 이 친구한테만 요구하는 거죠. 그런데 이 친구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함께 : 장애가 있는 며느리한테 모든 부담을 떠넘기고 있는 거군요. 그래도 아들 형편이 어떤지 알면 안 그럴 것 같은데…
민병윤(이하 민) : 신랑도 장애여성을 데리고 사는 대신, 시집에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한 : 시집에 대한 자격지심 같은 것이 남자들도 작용을 하나봐요. 남자들도 장애가 있는 여성과 결혼했기 때문에, 내가 이런 사람과 살면 시집에 더 잘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있는 것 같아요.
함께 : 그런 얘기를 남편과 해본 적 있으세요?
양 : 안하죠. 어떻게 해요. 자존심 상하게.
한 : 아뇨. 저는 해본 적 있어요. 남편은 “장애를 모르고 결혼한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뭘 그러느냐, 아니다”라고 하지만, 말 그대로인 것 같지는 않아요. 그리고 또 이런 마음도 있어요. 이 남자가 시집에서 나 때문에 혹시 책 잡히는 거 아닐까. 더 조바심 나서 열심히 하는 지도 모르겠어요. 혹시라도 남편이 잡힌 약점을 내가 잘해서 커버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거예요.
양 : 그런데 여기 멤버가 하나 모자란다. 우리는 다 비장애 남성과 결혼한 경우잖아요. 아마 장애가 있는 사람끼리 결혼한 경우는 아마 얘기가 또 다를텐데… 아쉽네요.
송경아(이하 송) : 아까 정현 언니가, 장애 때문에 시집 친척 어른 앞에 다니기가 쉽지 않더라했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거기다가 상이라도 하나 들면 최악의 상황이죠. 저는 형님이 있지만, 일은 제가 다 했어요. 형님은 약국한다는 핑계로 맨 몸으로 와서 밥만 먹고 금방 갔거든요. 그렇게 지내다가 동서를 봤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동서한테 부엌에서 하는 일은 내가 다 할테니 들고 옮기는 것만 하라고 그럴 정도였어요. 당시 저도 직장 다녔는데 어머님은 저에게 밑반찬 한번 해 주신 적 없었지만, 형님한테는 마치 파출부처럼 온갖 살림 도맡아 해주셨어요. 그리고 결혼할 때도 형님은 그 전부터 학비며 생활비도 대주고, 약국도 차려줘 놓고, 저에게는 아파트 사오라고 하시더군요. 사실 남편 집도 별 볼일 없거든요, 뭐 잘났다고. 단순히 사지하나 멀쩡한 것 밖에 더 있나 뭐. 아유, 이거 너무 다 나오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그런데 얘기 하다보니 열 받네. 어휴 더워라.
양 : 소주라도 한 잔 마시면서 할까요?
함께 : 경아 씨께서는 현재 이혼하신 상태인데요, 어때요. 다시 혼자서 맞는 명절의 느낌이 궁금하네요.
송 : 좋죠. 너무 좋아요. 예전에는 명절날 가면 잠도 못자고 일했는걸요. 진통제도 서너알 씩 먹으면서 일 했어요. 어른들 있으니까 다리 쭉 뻗고 할 수도 없고. 오그렸다 일어나고 하다보면 다리가 무진장 아프거든요. 아프면 더 절잖아요. 그러니까 더 안 걸어다니게 되고, 그러니 더 아프게 되고. 진통제로 버티는 수 밖에요. 하여튼 2박 3일 그러고 오면 며칠은 앓아누워요. 그런 명절이라서 증후군이라는 것은 정말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죠. 그런데 혼자가 되고 나서는, 사실 처음에는 친정 가기가 쉽지는 않더군요. 왜냐면 친정의 친척 어른들이 왜 이혼해서 어쩌구, 이런 얘기 하니까. 그치만 이혼하고 나니 좀 외롭기는 해도 맘은 정말, 너무 편해요. 이젠 명절이 두렵지 않아요.
한 : 저는 시아주버님과도 문제가 있었어요. 뭐냐면 자기 마누라가 저런 동서를 얻어서 더 고생한다는 거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솔직히 다리 저는 것 보이기 싫어서 부엌에서 안나오기 때문에 일을 더 많이 해요. 눈 앞에 왔다갔다하는 것이 안보여서 그렇지. 그런데어느 날 시아주버님이 술을 드시고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우리 집사람은 장애를 가진 동서를 둬서 일을 더하니까 너네는 돈이라도 더 내라고요. 정말 속상했어요.
함께 : 비장애 여성들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네요. 그런데 남자들 눈에 안보이니 일을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평가를 받는군요. 와, 이렇게 복장 터질 때가 또 있을까요. 자기들은 아무 것도 안하면서 감히 누가 일하고 안하고를 평가한다는 말이죠? 너무들 하네요. 정말.
송 : 저는 이런 것도 힘들었어요. 제가 다리 수술을 두 번 했거든요. 다리를 기브스했을 때도, 시장 가는 것만 못했지, 빨래 돌리고, 청소기 땡기고, 아침에 밥해서 애 챙겨서 먹이고, 저 혼자 다했어요. 그랬는데 집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신랑한테 “와이프가 저래서 너 힘들어서 어떻게 하냐”고 그러대요. 저는 기브스를 했을 때나 안했을 때나, 평소와 다름없이, 아니 두 배의 고통을 참아가면서, 제 역할을 다 했거든요. 그런데 그저 그냥 옆에 있는 신랑이 더 위안을 받더라고요. 그게 너무너무 싫었어요. 성격 탓도 있겠지만… 자격지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양 : 장애 때문이지 뭐.
민병윤(이하 민) : 아냐. 장애 때문이 아니야. 봐봐. 이걸 바꿔야 한다니까. 그렇게 된 동기는 남편은 아무 것도 안하고 불편도 없는데, 남편한테만 너 얼마나 힘들겠니라고 얘기하는 그 사람들이 주범인거야. 우리들 자신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니까.
함께 : 비혼이신 분들도 명절에 나름대로 또 다른 고충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민 : 명절 때가 가까이 오면 비혼이라도 나이에 따라 스트레스가 좀 다르죠. 저는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명절 때 큰 오빠 집을 가야하는데, 갈까 말까를 그 한참 전부터 고민해요. 무슨 소리냐면 오빠와 조카 세대까지 있을 때는 이런 고민 안했죠. 오빠랑 조카들이야 내 살붙이 같죠. 언니들도 마찬가지고. 그 때야 내 맘대로 거리낌 없이 이집 저집 순회를 했는데, 이제는 조카들이 결혼을 해서 다른 식구들이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큰 오빠네는 사위가 명절에 오기 시작하는 거죠. 그 때부터 갑자기 내가 군더더기 같은 느낌이 탁 들더라고요. 아까 말했던 분은 눈에 안 띄려고 더 애썼다고 했잖아요. 저는 반대로 일부러 내 자리 찾아서 눈에 띄게 앉아 있게 되더군요. 형제들 생각하면 큰 오빠네 집에는 가야 되겠지만, 내 생각을 하면 안 가는 게 편하고. 그런데 이게 말이에요, 내가 안 나타나면 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까지 헤아리려니까 더 복잡해져요. 그러니 스트레스 안받게 생겼냐고요.
한 : 그럼, 세미나 있다고 하세요.
양 : 아니, 추석 때 무슨 세미나야, 핑계라는 거 금방 알겠네.
송 : 언니, 그러지 말고 우리끼리 놀러가자. 얼마나 좋아? 누구는 시집에서 힘들게 일하지만, 우리는 룰루랄라 할 수 있는데. 부럽지?
양, 한 : 야, 정말 너무한다! 너무해.
양 : 명절 때 싫은 것이 또 하나 있는데, 저는 친정 엄마 때문에 속상해요. 딸이 시집가서 잘 사는데도 명절만 되면 친정엄마가 죄지은 사람마냥 음식을 해서 시집에 보내려고 하세요. 처음에는 좋다고 들고 갔죠. 생각 없이. 이게 어느 순간 시집에서 습관이 들어버린 거야. 으레 너는 친정에서는 해서 보내려니 하고. 동서요? 물론 안 가져오죠. 나중에는 그게 아픔이더라고요. 엄마가 이 음식들 하시면서 얼마나 아플까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요. 우리 엄마가 그렇게 시집 식구들이 좋아서 음식 해다 바치겠어요? 다 시집 식구들 입막음을하려고 그러시는 거지.
송 : 언니가 안 가져오면 되잖아요.
양 : 엄마가 이거로라도 잘 보이시려고 싸주시는 마음도 있는데, 어떻게 말리냐. 그 안타까운 마음 내가 잘 아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어휴-
함께 : 머풍 씨는 오늘 참석한 여성 중에서 유일하게 친정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네요. 비혼이면서 부모님과 함께 명절을 보내도 또 다른 스트레스가 있을 것 같은데, 어때요?
머풍 : 엄마는 제가 스무살 때 돌아가셨어요. 그 이후 명절 때는 지금까지 제가 집안 일 다해왔어요. 제가 딸이고 장애가 있다 보니까 엄마는 제가 집안 일을 혼자서도 하게끔 어렸을 때부터 혹독하게 시키셨어요. 그래서 저는 중학교 때부터 밥하기는 물론 연탄갈기, 빨래 등도 다 했어요. 그 때는 하기 싫어서 맞기도 많이 맞았죠. 그랬지만 지금은 고맙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만일 내가 집안일을 엄마에게 그렇게 혹독하게 배우지 못했더라면 지금은 식구들한테도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을 거예요. 명절 전날 새벽부터 저녁 12시까지 저 혼자해요. 지지고 볶고… 힘들면 못하겠지만, 힘들지는 않아요. 음식하고 나서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 보면 저는 참 행복하거든요.
함께 : 지금 머풍 씨가 내 집에서 힘들면 맘대로 쉬고, 또 하고 싶을 때 내 속도대로 해서 덜 힘든 것이 아닐까요. 만일 시집 부엌이라면, 시집이 요구하는 속도대로 일해야 한다면, 쉬는 것조차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지금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요?
머풍 : 고부갈등이 없을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저를 받아준다면, 저는 참 기꺼운 마음으로 잘 할 것 같아요.
양 : 그래요. 첨엔 다 진심으로, 저런 마음이라니까요.
함께 : 하지만 비장애 여성인 올케도 있는데 혼자 다하는 것이 너무 힘들지 않나요?
머풍 : 아뇨. 저 혼자 하는 것이 편해요. 올케들이 오면 뒤죽박죽 돼요. 그들은 장애가 없으니 나와 일하는 속도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같이 하면 불편해요.
함께 : 이 자리에는 결혼이 진행형인 분들도 있고, 과거의 일이 된 분도 있고, 또 비혼이신 분들도 있는데요,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나눠봤으면 합니다.
송 : 저는 20대 초반에 결혼했어요. 그 때는 결혼이 뭔지 정말 모르고 결혼했어요. 그런데 이혼해보고 나니까 결혼은 정말 ‘대단한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은 저에게 한 번 실패(?)했으니까 다음에 하면 더 잘 하겠네라고 쉽게 말해요. 그 세계가 얼마나 힘들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을 주워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거든요. 저는 겁이 나요, 두려워요.
함께 : 두려운 대상이 구체적으로 뭔가요?
송 : (망설임 없이) 시집요.
모두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양 : 저는 스물 아홉에 결혼했는데, 집에서 나오고 싶어서 결혼했어요. 적은 나이가 아닌데, 부모님은 내가 장애가 있으니 과보호 했죠. 너무 답답했어요. 그게 너무 짜증스럽지 않았다면 결혼을 그렇게 쉽게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에라, 나 좋대니까하고 결혼해버린 거죠. 그렇지만 제게 결혼은 자아실현의 기반이 됐어요. 새끼 잘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잘하고.
민 : 어머나, 새끼가 본인의 자아실현란다. 이보세요. 엄마의 성화가 싫어서 집을 뛰쳐나왔다고 해놓고선.
양 : 글쎄 말이네. 그런데, 그게 또 그렇게 되더라니까요. 호호호.
한 : 저는 두 살 터울 언니가 있어요. 언니의 혼담이 무르익을 무렵 갑자기 깨진 적이 있었어요. 남자 쪽에서 우리 동네에 와서, 우리 집이 어떤가 묻고 다녔나봐요. 그런데 동네 사람들 중에 누군가 우리 집에 유전병이 있다고 한거예요. 저는 그 때는 몰랐어요. 그 혼담이 왜 깨졌는지. 이건 언니가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난 후 몇 년 뒤에 우연히 옆 집 할머니한테 들은 얘기거든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아 내가 우리 집에서 있으면 나 때문에 형제들이 결혼을 못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 지금의 신랑을 사귀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이 사람과 결혼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그냥 이 사람과 결혼했어요.
함께 : 정현 씨의 결혼은 가족에 도움이 되고자하는 의미가 컸네요.
민 : 저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일찍 결정했기 때문에 결혼에 대해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여성들은 흔히 “에이 좋은 사람 있으면 시집이나 가버릴까”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결혼하면 누군가가 내 짐을 덜어주지 않을까 싶은 거죠. 실은 그렇지 않은데. 오히려 상대방의 짐까지 둘러메야 할 상황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저는 결혼이나 비혼은 단지 인생을 사는 방법일 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삶에 있어서 혼자 사는 것도 방법이고, 둘이 사는 것도 방법인데, 대개의 사람들이 둘이 사는 방법을 택하고, 사회에서도 그것을 강요하니까 더 많이 선택하고 있는 것 뿐이죠.
함께 : 머풍 씨는 어때요?
머풍 : 저는 어렸을 때부터 결혼은 또 다른 나의 현실이라고 생각해왔어요.
함께 : 와, 조숙했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에요?
머풍 :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예전에는 방 한 칸에 엄마, 나, 오빠 둘, 아빠 이렇게 잤었어요. 상상되죠? 방 한 칸에서 모든 식구들이 지지고 볶고 사는 것을 늘 보고 자랐어요. 그래서 결혼은 현실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는 사랑해서 결혼하지는 않을 거예요.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이에요. 저는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그 사람을 사랑하겠어요.
한 : 장애를 가진 여성 중에서 결혼은 하고 싶은데, 장애 때문에 포기하려는 여성이 있다면, 저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장애가 있어도 결혼에는 아무 지장이 없어요. 내가 장애 때문에 왼쪽을 쓸 수 없으면 가족이 채워줘요. 그렇게 살다보면 가족들과 나는 서로 적응이 되서 장애를 인식하고 살지는 않거든요. 그러니 장애 때문에 미리 포기하지는 마세요. 결혼해서 살면 장애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물론 어려움은 있겠죠. 시집과도 마찰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이것은 장애가 있는 여성들에게만 생기는 일은 아닙니다. 장애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해지는 일은 있겠지만. 그래도 부딪히는 쪽을 선택하세요.
민 : 일단은 자기가 어떤 삶을 선택하는 것에는 책임이 뒤따르겠죠. 저는 결혼을 전제로 해서 현재를 망치지 마라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난 뭐 결혼할 거니까’하는 생각에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는 여성이 많아요. 결혼 하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지금부터 하면 결혼 후에는 더 잘할 수 있잖아요. 결혼해서 한다? 더 못하죠. 현실적으로. 결혼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부터 하세요.
송 : 저는 만약 좀더 일찍 이런 모임에 나와서 장애가 있는 다른 여성들과 이런 얘기를 나눴더라면 제 상황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무조건 참고 내가 다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거예요. 예전에는 내가 장애가 있으니까 내가 더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이런 수다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장애가 있는 다른 여성들과도 서로의 경험을 나누면서 더 좋은 방법들은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당장은 두려워서 실천해볼 수 없을지라도, 언젠가는 시도해 볼 수는 있잖아요. 내가 알고만 있다면.
이번 호 수다방에 참여한 다섯 명의 여성장애우가 털어놓았던 경험들은 제각기 다른 삶이었다. 그러나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의 고통을 가진 여성장애우로써 서로가 너무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이 얘기들이 이 땅의 모든 여성장애우들의 상황은 아니다. 경증의 지체장애를 가진 여성들만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비장애우거나, 다른 종류의 장애를 가진 이거나, 혹은 남성이라면, ‘여성’과 ‘장애’라는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가정에서 어떻게 이중의 고통을 짊어지고 있으며, 그 고통이 당사자들의 일상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행 정리 최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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