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닫으며]모든 생명과 아픔을 함께하는 지율스님의 소리없는 저항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창을 닫으며]모든 생명과 아픔을 함께하는 지율스님의 소리없는 저항

본문

나날이 악화되는 기상환경 탓인지 올 여름은 무척이나 더운 날씨다.
내가 일하는 작업현장의 디지털 온도계는 40도를 웃돌고,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은 “에어콘이라도 설치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불만과 짜증을 내 뱉는다.
이런 날씨 탓에 더운 바람만 일으키는 선풍기조차 부담스럽게 이 무더위를 보냈다.
왜냐하면, 청와대 앞에서 근 두달 가까이 단식을 하며 참회의 기도를 올리고 계시는 한 스님 때문이다.
스님께서는, 고속철의 기찻길이 천성산의 내장을 뚫고 지나가게 되어 있어 천성산에 깃들어 사는 수많은 뭇 생명들이 ‘살려 달라’고 절규하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스님은 몇 년간을 고행과 기도로 고군분투하며 뭇 생명들의 아픔을 함께 하시고 계신다
사람이 사람의 말귀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불소통의 시대에 천성산의 도롱뇽을 비롯한 생명들의 애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맑은 영혼의 수행자, 지율 스님께서 57일 동안 곡기를 끊고 권력자에게, 개발론자들에게, 속도에 미친 사람들한테, 세상 사람들한테 알리고자했던 절절한 마음은 무엇일까?
개발과 발전을 당연히 추구해야 할 최선의 가치로 여기는 이 시대에, 모든 산·하·해(山·河·海)가 도륙(屠戮) 당하는(잡혀 죽임을 당하는)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들판을 짓뭉개고 산허리를 파헤치고 터널을 뚫으면서 건설되는 고속철도, 시속 300키로의 쾌감질주로 광고하는 그 막바지에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향이라도 있단 말인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자연의 풍경을 감상할 여유와 공간조차 없이 방음벽으로 둘려 쌓이고, 어두운 터널로 이어진 그 철길 위에서 어떤 철도 여행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단 말인가!
길은 도(道)이다. 노자가 이르길,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 했다. 길은 산의 흐름을 따르고 물줄기를 따라서 이어져야 한다. 강을 건너뛰고, 산을 뚫고 건설되는 길 아닌 길, 이제 그만 두면 안 되겠는가?
천성산의 어두컴컴한 터널 안에서 차창에 비친 자신의 창백한 영혼의 모습을 느끼기보다는, 차창 밖으로 농사짓는 농민의 모습을, 석양빛 받으며 날아가는 철새의 무리를, 그리고 눈 비 오고 낙엽 날리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덜 빠르게 여행할 수도 있지 않은가?
터널을 지날 때마다 나는 공포를 느낀다. 터널을 빠져나가기 전에 무너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과 함께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빈번하게 바람과 홍수로 가뭄과 추위로 남기는 자연의 메시지를 느끼지 못하는 공포감 말이다.
제발, 생명이 위독하도록 굶기 전에 무욕한 사람들이 애절하게 외치는 목소리를 차분하게 들어 주는 정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 김만희

 

작성자김만희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