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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와 소통하기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병역거부자가 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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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속에서 나의 성적 지향을 긍정하고 자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대학 2학년부터 였다.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한 자긍심(긍정+자부심)을 갖지 못하듯, 나 또한 여느 다른 동성애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왜냐하면 동성애에 대한 왜곡된 교육과 정보, 편견에 사로잡혀 벌레 보듯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과 인식은 나를 당당한 인간이 아닌 항상 숨어있어야 하는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이런 점은 장애우 차별 문제와도 일맥상통 할 것이다. 장애는 동성애와 마찬가지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긍심을 가져야 할 존재로서 인식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자기를 부정하고 산다는 것은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힘겨움이 뒤따른다. 그래서 당시 나는 동성애자로서의 수치심이나 자기혐오를 갖지 않기로 결심하고, 동성애자의 삶과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공부의 주 교재는 ‘동성애 억압의 사회사’‘동성애자 해방운동과 마르크스주의’(이 서적들을 출판한 사장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현재까지 두 책은 이적 표현물로 등록되어 있다. 어쩌면 국가보안법으로 먼저 감옥에 갔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것들이었다. 최근 민주노동당 이용대 후보는 “동성애는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오는 병리현상”이라 주장했는데, 그 무식함을 이 책을 읽고 털어 내길 바라며(이적표현물을 보라고 권하는 건 너무 했나?) 맑스와 레닌이 무덤에서 놀라 벌떡 일어날 소리를 제발 더 이상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또 포켓북 형태의 번역서도 동성애자 인권단체에서 주요 세미나 자료로 많이 활용되었는데, 나 또한 세미나를 통해 이 서적들을 접하였다. 이 책들의 내용 중에 단연 나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단락은 나치에 의한 동성애자 집단학살이다. 한 때 역사학도가 꿈이었기 때문에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의 좁은 지식은 유태인들만 피해자로 인지하고 있었다. 잘못된 지식과 상식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동성애자, 집시, 여호와의 증인, 공산주의자, 이주노동자, 장애우 등 이 모든 집단이 나치의 박멸 대상이었다. 이들의 박멸이론은 아주 단순했다. 우수한 혈통 지키기. 당시 수천 명의 동성애자가 나치의 야만과 광기 때문에 비참하게 살육 당했고,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동성애자는 고작 4천 명이 지나지 않았다.(얼마나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끌려가 죽임을 당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전쟁이란 것이 사회적 소수자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똑똑히 보여준 역사적 교훈이며, 이것은 나로 하여금 병역 거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 하나의 병역 거부 이유, 성적 선호도 장애와 성 주체성 장애
국방부령 징병신체검사 규칙은 ‘동성애’를 ‘성적 선호도 장애’, ‘성 전환자’를 ‘성 주체성 장애’로 분류하며, 동성애자와 성전환자의 군입대를 철저히 봉쇄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몇몇 게이(남성동성애자)들은 정신과 진단서 발부를 통해 군을 면제받았다. 한 때 나도 그들과 같은 방법으로 면제를 받아볼까 하는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성애자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로서의 양심 때문에 그 달콤한 유혹은 접어야 했다. 당시 내가 대표로 활동하고 있던 동성애자인권연대와 이석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현 민변 회장), 진선미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현재 내 변론을 담당하고 있다)는 동성애를 왜곡하는 국정교과서 문제를 놓고 대응방안을 연구 중이었고, 1999년 7월말 경 교육부를 상대로 동성애를 정신질환, 성도착증, 에이즈의 주범으로 기술하고 있는 현행 교과서를 수정하라는 신청서를 교육부 장관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미정신의학회와 WHO(세계보건기구)는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보지 않으며, 규정 자체도 삭제하였고, 한국정신의학회도 이 기준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내가 병역을 거부할 또 하나의 사유로 합당하지 않을까.

모든 소수자가 함께 하는 걸음
나는 병역거부를 선언하기 훨씬 전부터 에이즈 환자들과 간병인으로서, 친구로서 함께 어울리며 지내왔다. 나에게 자그마한 소망이 있다면, 그건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대체 복무’를 하는 것이다. 가족들로부터 버림받고, 빈곤에 허덕이는 그들과 말이다.
종교적 신념 때문에,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20대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연간 1,600여 명이 자진해서 감옥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이 소중한 인력들이 다양한 사회복지시설에서 자기자신과 다른 사람, 아니 우리 모두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란다. 그리고 그 꿈이 하루빨리 실현되어 사회구성원으로서 당당해지려는 장애 가진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비록 감옥 안에 갇혀 있다고 해도 그러한 신념과 ‘희망’으로 나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글 임태훈(전 동성애자인권연대 대표)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을 수료했고,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을 위한 입법운동과 홍석천 커밍아웃 지지운동 등 우리 사회 소수자와 인권을 위한 활동을 벌여왔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지난 2월 26일에 구속되어 1심에서 1년 6월을 선고받고 항소중이며,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이다. 국제사면위원회는 2월 27일자 성명을 통해 그의 구금을 비난했고, 조건 없는 석방을 한국 정부에 촉구했다. 3월 중순경 양심수로 지정하여 전 세계에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긴급구명 활동을 진행하였다.
그에게 힘을 주실 분들은 <437-702>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 산18-1 서울구치소 3318 임태훈 또는 http://www.moj.go.kr/corrections/seoul (서울구치소 홈페이지를 통해 전자서신함을 이용할 수도 있다.)

**박스기사

임태훈을 석방시키자

지난 4. 7일 문화평론가 서동진씨는 한겨레신문 ‘왜냐면’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애자 임태훈을 석방하라’는 글을 통해 임태훈 씨의 감옥투쟁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임태훈씨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동성애자들의 권리와 부당한 사회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전제한 후, 임태훈씨의 결단이 “군복무가 한국사회에서 성인 남성으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고 통합되는 중요한 통로임을 주지하면서, 동시에 성적 소수자를 차별하는 사회제도임을 고발하는 것”이라며, 평화를 사랑하고 동성애자 인권을 확보하려는 활동가로서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서동진씨는 또한 “군복무에 적합한 적성을 확인하고 검증한다는 명분에서 이뤄지는 설문에서 성전환자를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이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군복무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동성애=정신질환’이란 등식이라며, 이러한 부당한 제도와 편견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애자가 있으면 동성애자도 있듯, ‘다름’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한 인간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틀린’‘잘못된’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무지와 오해, 편견은 결국 차별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서동진씨는 ‘커밍아웃’은 동성애자들이 침묵에서 벗어나 서로를 지원하고 결속시키는 중요한 사회적 활동의 출발”이라며, “프라이버시권의 침해를 들어 커밍아웃을 반대하는 기류가 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것이 한 명의 개인적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 권리라면, 비겁하고 또한 옹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며, 그것은 “자기가 속한 사회에 차이를 일깨우고 변화를 촉구하는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국가와 사회가 소수적 성정체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이 차별과 모욕을 받지 않은 채 병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복무기준과 교육이 이뤄질 것을 요구한다”며, 동성애자로서, 평화주의자로서 임태훈씨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작성자임태훈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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