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가진 네 남자, 그들의 ‘연애’를 말하다
본문
수다는 누구나 한다.
그러나 진정한 수다는 아무나 하고 못한다.
통할 수 있어야 한다. 코드가 맞아야 된다.
안 그러면 계속 삑사리가 난다. 축난 건 시간이고, 돌아오는 것은 허한 기분 뿐이다.
무엇보다도 인정해주고 지지해 줄 수 있어야 진정한 수다다.
이런 수다를 위해 네 남자가 뭉쳤다.
젊은 그들이 설렘과 눈물로 가슴에 품었을 사랑에 관한 수다를 풀어놨따.
**수다방에 입장한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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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이 주특기라는 노바. 현재도 작업중이라나 |

모든 사람은 다 첫사랑이라는 찐빵.
| 자칭 겁없는 찐따라는 씨없는 수박. 사랑에는 언제나 올인한단다 |
꼴리는대로 연애한다는 대마왕.
보랏빛 콩깍지 씌워줄 사람 구하는 중
사회 : 오호, 그야말로 연애의 고수들을 모신 자리에 함께 하게 되서 영광입니다. 〈함께걸음〉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연애 얘기 한번 들어보자고 기획한 이유는‘장애우들의 연애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장애 때문에 비장애우들의 연애와 좀 다른 상황들은 있을 것이다. 어떤 것들일까?’라는 얘기를 풀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오늘 참석한 네 분은 모두 남성인데요, 자리를 마련하면서 여성과 남성을 같이 초대할까했지만, (참석자들이 모두 이성애자여서)얘기가 잘 안 풀릴 것이라는 의견도 있어서, 먼저 남성들을 초대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네 분이 공교롭게도(?) 모두 뇌병변 장애우지만, 장애 정도가 모두 다르고, 서로 친한 사이니만큼 진솔한 얘기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연애 중인 분들도 있고, 잠시 숨을 고르고 계신 분들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자기 얘기부터 해볼까요?
대마왕 : 저는 같은 일 하는 사람이랑은 사귀어 본 적이 없어요. 서로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이 좋아요. 간섭 않고,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 좋죠. 그래서 ‘아~예쁜데!’부터 사귀자까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씨 없는 수박 : 저는 지금까지 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작년에 만났죠. 보자마자 시쳇말로 ‘뻑’ 갔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우히히, 미친 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만난지 한 시간도 채 안돼서 좋아한다고 그랬어요.
언어장애가 있어서 문자로 보냈는데, 의외로 금방 답장이 오더라고요. 예쁘게 봐줘서 고마운데, 만난지 얼마 안됐으니까, 앞으로 좀 만나보고 결정하자고.
대마왕 : 뭐야, 이건 올인으로 배팅한 거잖아. 크흐흐.
씨 없는 수박 : 몇 달 후에 사귀자고 했더니, 좋은 감정은 있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고,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자고 하더군요.
대마왕 : 음~아주 상투적인 반응이네. 대부분 그렇게들 말하죠.
씨 없는 수박 : 그래도 아직까지는 진행중이예요. 솔직히 그 사이에 몇 번을 더 물어봤어요. 나의 장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녀는 아무 문제없다고 그래요. 장애우라서 피하는 마음은 없는데,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다고. 그 친구는 자신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내가 상처받을까 고민 된대요. 당사자인 나는 별로 개의치 않는데… 내 장애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해도 말이에요. 어차피 이제까지 ‘찐따’로 살아왔는데요 뭘.
노바 : 전, 막상 얘기를 할려니까, 말이 잘 안나오네요. 최근에 깨진 연애를 말해볼까…
모두 : 누구지? 최근이면?
대마왕 : 아~ 코에 점난 애?
모두 : 푸하하~
찐빵 : 아니래잖아.
대마왕 : 아~그럼 볼에 점난 애?
노바 : 너~우이씨! 지금 직장에 입사한 이유는 그녀 때문이죠. 대마왕은 일과 연애는 따로라고 했지만, 저는 일도 공감할 수 있고,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좋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귀게 되기까지 기간이 길더라고요. 그녀에게 한 2년 정도 공들였는데, 3개월만에 깨졌어요. 하지만 아직도 헤어지게 된 명백한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찐빵 : 나도 석 달만에 깨졌는데…
가자, 그녀의 마음 속으로!!
사회 : 2년을 공들였는데, 그렇게 금방 끝났다니 가슴이 아프네요. 그런데 혹시 노바의 그녀는 장애가 있나요? 아니면 혹시 노바의 장애가 걸림돌이지는 않았을까요?
노바 : 그녀는 비장애우고, 장애 관련 일을 하는 활동가였어요. 몇 번을 물어봤지만, 그런 것은 극구 아니라고 했어요.
사회 : 일과 연애는 다를 수 있지 않을까요?
노바 : 우리가 헤어진 원인이 내 장애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하지만 내가 장애 때문에 해줄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그녀의 무의식적인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 같기는 해요. 사실 그 석달동안에도 헤어지자는 말을 세 번이나 들었죠. 첫 번째는 얼렁뚱땅 그냥 넘겼고. 두 번째는 창피하지만, 울면서 너 아니면 끝이라고 매달렸어요.
(잠시 침묵) 그렇지만 계속 이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거는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죠. 세 번째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 어쩔 수 없다고 단념했습니다.
씨 없는 수박 : 으! 가슴이 찢어진다.
사회 : 찐빵은 세 분과는 달리 시설에서 생활하신 경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얘기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찐빵 : 저는 18세부터 많은 시간을 시설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을 다 사귀어봤고요. 저는 시설에 들어가기 전에도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람 자체가 무척이나 그리웠죠. 어쨌든 18살 되던 겨울에 재활원에 들어갔는데, 다음 해 초에 여자 보육사가 새로 들어왔어요. 그 보육사는 당시 나보다 한살 많았죠. 그러니까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재활원에 온 거죠. 그녀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죠. 그녀가 저의 첫사랑이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너무 성급했던 것 같아요. 복도에서 우연을 가장해 기다리다가 그녀와 함께 별을 바라보면서 몇 마디 나눴죠. 그리고는 그래, 가자고 마음먹었어요.
씨 없는 수박 : 어디로 ?
찐빵 : 어디긴 어디야, 그녀의 마음 속으로지.
모두 : 크아, 멋진데~~
찐빵 : 하여튼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얘기하기로 마음먹고 날을 잡았죠. 밤에 놀이터로 나오라고.
대마왕 : 음~~80년대 연애의 전형적인 공간이지.
찐빵 : 그런가. 뭐 어쨌든. 고백할까, 말까, 많이 고민했죠. 시설이라는 맹점 때문에 고백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어떻게 시설 생활자가 감히 선생한테 사귀자고 하냐는 통념도 있었고, 소문이 나면 같이 시설에 있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고, 어쨌든, 그래도 고백했죠. 물론, 결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어차피 ‘찐따’로 살아온 인생인데요. 뭐.
사회 : 그녀가 찐빵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요?
찐빵 : 그녀는 미안하다며 제게 많은 변명을 했죠. 고등학교까지 장애를 접해보지도 못해서 장애를 잘 모른다고. 아직 적응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도 했죠.
사회 : 찐빵에 대해서 모른다가 아니고 장애를 모른다고요? 그랬군요. 찐빵은 장애 여성도 사귀었던 경험이 있다고 했는데, 비장애 여성을 사귈 때와 다른 점이 있나요?
찐빵 :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저의 경우 장애여성 사귈 때는 쉽게 갔어요. 제 경우는 그 쪽에서 주파수를 던져 왔거든요. 물론, 나도 싫지 않았고. 비장애 여성을 사귈 때는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날 받아줄까, 아닐까에 더 골몰하게 되요. 비장애 여성이 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장애’를 가졌다는 그 자체, 그것을 바라보는 인식, 선입견, 외모까지 포함해서. 뭐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 같아요.
상대방은 제게 동정어린 마음으로 사귀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죠. 그건 나도 원하는 바예요. 그런데 내 장애가 뭐가 문제냐 이거지. 그렇게 둘러대는 말들… 다른 단어들로 길게 늘여서 하는 얘기들. 핵심이 뭐냐는 거죠. ‘장애’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에요. 상대편이지. 나는 이미 벌써 뛰어넘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지나왔으니까. 아까 씨 없는 수박이 말한 ‘찐따로 살아온 것이 얼만데’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나는 그런 거 다 받아들일 수 있는데, 상대방이 뛰어넘질 못해요.
씨 없는 수박 : 장애 관련 일을 하는 비장애 여성들이라고 해도 장애우와 연애할 때는 선뜻 결정을 못하는 것 같아요. 일에서는 장애를 장애로 보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 보지만, 연애에서는 아닌가봐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찐빵 : 저는 그녀가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이니만큼 그래도 장애에 대해 거리낌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저의 ‘편견’이었던 거죠.
대마왕 : 제가 내 장애 때문에 느끼는 분노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을 장애 관련 일을 한다고 해서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죠. 착각이고.
찐빵 : 결혼 대상을 고르는 것은 선택이니 뭐라고 할말은 없죠. 나름대로의 기준과 처한 상황이 다르니까. 저는 십여년을 시설, 특수학교 등을 거치면서 장애우들과만 지냈어요. 그러면서 나보다 장애가 훨씬 심한 여성도 많이 봤고. 사회에 나와서 비장애우들과 같이 활동해보니, 아무래도 활동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가 나더라고요.
돌이켜보니, 저에게도 선입견이 있는 것 같네요. 저도 장애우와 사귀면, 연애 할 때는 고려하지 않지만, 결혼을 생각한다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네요. 예를 들어서 결혼해서 어디를 가려고 해도 휠체어를 이용하는 저보다 더 심한 장애가 있다면, 우리 둘이서는 절대 어디를 갈 수 없어요. 제가 운전을 해도 휠체어도 내려줘야 하는데… 우리의 사생활에 누군가가 꼭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겁니다. 그게 싫어요. 저는. 그래서 최소한 나보다는 장애가 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게 솔직한 심정이죠.
씨 없는 수박 : 형, 아까 내가 원인을 잘 모르겠다고 한 거 생각나? 형 말을 들으면서 갑자기 생각났는데, 장애우인 우리도 자기보다 장애가 심한 상대편을 만나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비장애 여성들도 그런 생각하겠다 싶은 생각이 어렴풋이 스쳐가는데?
대마왕 : 여기서의 포인트는 ‘스쳐지나갔다’예요. 인정할 수는 없지만, 맞는 말일 것 같기도 하다는 거죠.
씨 없는 수박 : 저는 아직까지 끌리는 장애여성을 만나지 못했어요. 만일 만난다면 불편하고 싸울지라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막말로 활동보조인이랑 데이트 하는 한이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번에 어떤 변호사하고 어디를 하는데, 그 변호사도 장애우거든요.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장애우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 외롭게 자라서 조금만 잘해주면 마음을 확 주고, 홀딱 빠진다고.
찐빵 : 정말 동감이야, 동감.
노바 : 저를 좋아했던 장애여성이 몇몇 있었어요. 그 중에서 사귀기 직전까지 갔던 그녀는, 언어장애가 저와 비슷했어요. 그러다보니 둘이서는 의사소통이 그럭저럭 되는데, 어딜 가서 무엇을 사거나 물어봐도 우리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러다보니 짜증만 나고. 그래서 제가 정말 나쁜 놈인데, 헤어지자는 말을 차마 못하고, 저를 포기하도록 만들었어요. 저처럼 장애가 심하면 상대방을 만날 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점을 생각할 수 밖에 없어요. 찐빵 형은 전동휠체어 타고, 나는 언어장애도 심하니까. 그래도 씨 없는 수박과 대마왕은 상대방의 장애정도에 그다지 큰 영향을 받을 필요는 없잖아요. 이거는 비장애우들이 장애우를 사귈 때 장애에 영향을 받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아닐까싶어요.
사회 : 혹시 대마왕은 연애하면서 자신이 장애우라는 것을 느꼈던 적이 있나요?
대마왕 : 없어요. (조금 망설이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눈치를 줘도 무시했어요. 고민한다고 장애가 없어지나요? 경직되고, 절름거리고, 언어 안 되고, 뻔히 보이는 건데, 눈치주면 어쩔 껀데?
씨 없는 수박 : 혹시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지 않을까요? 장애우와 결혼하면 막말로 먹고 살기 힘들고, 앞으로 고생할 것이 뻔한데, 아무리 그 사람의 장애를 넘는다고 해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망설이는 것 아닐까. 인간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장애 해방’이 무슨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산적한 장애우의 문제와 권리보장에 대한 것들이 풀려야 하기 때문이죠. 장애우도 웬만큼 먹고 살고,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 이런 문제도 잘 풀리지 않을까요?
대마왕 : 물질적 풍요가 또다른 자신감을 만드는 것을 사실이지만, 그럼 연애는 마음이고 그럼, 결혼은 물질이라는 뜻인가요?
씨 없는 수박 :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현실이 어려우면 힘들지 않을까요?
대마왕 : 아무리 마음이 있으면, 물질 같은 건 안보이죠. 사랑하는데 현실을 보라니. 그럼 이 때까지 사랑한 건 현실이 아니고 가상이냐고!!
나를 행복하게 했던 그녀
사회 : 분위기가 좀 가라앉은 것 같네요. 얘기를 바꿔서 연애하면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볼까요?
씨 없는 수박 : 밤에 영화를 보러 갔던 적이 있어요. 그 때 마침 시사회를 했나봐요. 시사회에 온 배우 중 한 명이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이었죠. 배우들이 나오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와르르 그곳으로 모여들었어요, 그녀도 그 배우를 몹시 보고 싶어하는 눈치였어요. 그런데, 제가 사람들을 헤치고 빨리 이동할 수 없잖아요. 많이 창피했을 텐데, 그녀가 아주 큰 소리로 “비켜요, 비켜.”하면서 내 손을 잡고 사람들을 헤치며 갔죠. 그리고 우리는 그 배우를 볼 수 있었죠. 겨우 스물두 살이던 어린 친구가 그런 모습을 내게 보여줬다는 것이 감동이었어요. 저는 아직도 가끔 그 장면을 생각합니다.
대마왕 : 그건 너를 배려한 것이 아니라 그냥 막 끌고 간 거야. 눈에 콩깍지가 씌었네 뭐.
씨 없는 수박 : (병뚜껑을 던지며) 너~~이 병도 날라간다!!
대마왕 : 저도 극장 얘기 있는데. 그것도 비오는 날…
찐빵 : 오~ 분위기 좋았겠네.
대마왕 : 아냐, 아냐. 전 여자 만날 때 비오는 거 무지 싫어해요. 우산 들어줘야 하는데, 난 힘들잖어. 아무튼 그 날 ‘뽀네뜨’를 봤는데, 여자랑 본다고 봤지, 평소엔 절대로 그런 영화 안보죠. 눈물샘 자극하는 최루영화잖아. 얘가 막 울더니, 갑자기 뛰쳐나가는 거예요. 나는 그냥 얘가 이런 거에 약하구나하고 말았죠. 그런데, 이건 나중에 알게 된 건데…일상에서 무엇을 누구와 같이 나누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에이 말 안할래. 얘기하면 왕자병이라고 다들 뭐라고 할 것 같아.
모두 : 어? 그러는게 어딨어. 마무리를 해야지, 궁금하잖아. 뭔데 그래?
대마왕 :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그 친구가 왜 울었냐하면, 나랑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이 너무 좋아서 울었다고 하더라고.
모두 : (비명과 절규)크아아… 정말 중증이다. 중증!!!
대마왕 : 가만 있어봐. 진짜라니까. 나는 그 말 무덤 속까지 가지고 갈 거라고!
모두 : 어유~~어유!!
찐빵 : 그녀가 나보다 먼저 재활원을 그만두었거든요. 그 하루 전날, 나를 교회에서 보자고 했죠. 그 전까지도 나는 그녀가 그만두는지 몰랐어요. 적막한 교회의 어둠 속에서 그녀가 그만두게 됐다고 흐느끼더라고. 나는 말 한마디도 못했어요. 어둠 속에서 그녀의 흐느낌만 들렸지.
씨 없는 수박 : 영화네, 영화...
찐빵 : 시설에서 가슴앓이 많이 하면서 견디기 쉽지 않았지만, 그 때 감동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어요. 지금은 그 때와는 딴판이죠. 지금은 경제력도 되고, 어디든 맘대로 갈 수도 있고. 그렇지만,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데이트 할 때도 휠체어 이동이 쉽고, 화장실 사용도 고려해야 하고, 등등 따져야 할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갔던 곳만 찾게 돼요.
다시 내게 사랑이 온다면
사회 : 지금까지 연애 때문에 가슴 아팠던 얘기, 행복했던 추억들, 이런 저런 얘기를 했는데요, ‘다시 내게 사랑이 온다면’에 대한 얘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찐빵 : 제게는 첫사랑 모습이 많이 남아서, 나도 모르게 그녀와 비슷한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때 저는 정말 급했던 것 같아요. 이젠, 내가 굳이 애써서, 매달려서 가고 싶지 않아요. 떳떳하게 얘기하고, 아니면 거기에 상처받지 않을 거예요. 한번만 더 생각해달라고 매달렸는데, 그러지 않을 거예요. 이젠
노바 : 말이 쉽지…
씨 없는 수박 : 저도 너무 빨리 마음 주고, 금새 빠졌던 것 같아요. 너무 급해서 사귀고 싶어지면 하루에 몇 번씩 전화 계속하고, 만나자고 하고… 그러니 상대방도 부담스러웠겠지.
찐빵 : 그게 마음대로 되냐, 임마.
대마왕 : 저의 현 상태를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예요. 철들어가는 것이 양보하고 타협하는 거라면 저는 절대로 철들지 않을 겁니다. 전 아직 첫눈에 반하길 원하고, 보랏빛 사랑이 왔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연애가 실패라고 생각 안해요, 그냥 과정인 거죠.
노바 : 요 며칠 사이, 저는 본의 아니게 고백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 챈 것 같았거든요.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듣는 것 보다는 내가 직접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했는데… 그래서 고백 아닌, 고백이 돼버렸죠. 앞으로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감정이 이끄는 대로 할 거예요. 감정이란 게 갑자기 다가올 수도 있는 거고, 또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젠 제 감정 숨기지 않을 겁니다.
대마왕 : 그래, 우리 꼴리는대로 하자.
사회 : 세 시간 넘는 긴 시간을 이렇게 솔직하게,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털어놔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네 분께도 지나간 사랑을, 또한 다가올 사랑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말 마음 맞는 짝을 찾으시길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네 남자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또다시 사랑을 나누고, 자신의 장애를 인정해줄 누군가를 찾을 것이다. 혹은 상대의 장애를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든지 이들이 가슴 속에 품은 ‘사랑’은 언젠가 빛을 발할 것이다.
사랑이 다시 오면 이제는 그렇게 휘둘리지 않고
놀라지 않고 아프지 말아야지
깊은 한숨과 함께하는 일이란 걸 인정해야지
외로웠지만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도 사랑은 허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딸기밭, 신경숙
진행 정리 최희정 기자 / 아바타 강도영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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