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 있는 한 ‘저항’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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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이 있는 한 ‘저항’은 계속된다 Ⅰ
물러설 줄 모르고 두려워하지 않는 중증장애우들
“저항은 계속되어야 한다”
최근 장애우들이 주도하는 집회 현장을 가보면, 과거와는 다른 모습들이 눈에 띈다.
가장 큰 변화는 중증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전동스쿠터나 전동휠체어를 타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
게다가 이들의 싸움은 지칠 줄 모를 뿐 아니라 물러섬이 없다.
거의 몇 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상태를 갖다가 잡혀가곤 하는데, 아무도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음 날이 되어도 어김없이 거리로 나와 꼭 같은 방식으로 투쟁한다.
“차별 철폐 그 날까지 저항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중증장애우들을 만나보자.
‘저항’은 선택의 여지 없는 투쟁 방식
4·20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40여 개의 장애, 민중단체들은 ‘4·20차별철폐단’을 결성, ‘기만적인 시혜와 동정을 거부한다’며 4·20을 ‘장애차별철폐의 날’로 정하고, 지난 3월 27일부터 4월 19일까지 거의 한 달여 동안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매일 집회와 노숙투쟁을 동시에 전개했다.
그러나 첫 날 투쟁부터 만만치 않았다. 3월 27일 2시부터 시작된 최옥란 열사 2주기 추모문화제는 ‘촛불’을 들지 않아 문화행사로 볼 수 없다며, 불허하겠다는 경찰과 내내 실랑이가 끊이지 않았고, 또 시간이 지나 해가 졌을 때는 개정된 집시법에 따라 야간 집회는 불허하겠다는 경찰의 강경 태도에 부딪쳐 420차별철폐단 출범식은 경찰들에 에워 쌓여,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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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노들야학의 이규철 사무국장은 “모든 동지들이 다 연행되었어도 노숙투쟁을 하기로 결의한 만큼 혼자서라도 하겠다”며 매서운 봄바람을 맞으며 노숙투쟁 첫 날을 혼자서 지켜냈다.
산산이 부서지도록
그래도 420차별철폐단의 투쟁은 계속 이어졌다. 매일 7시면 세종문화회관에 모여 교육권, 노동권, 시설문제, IL운동 등을 주제로 시민들에게 장애문제의 심각성을 알려냈다. 노숙투쟁 또한 각 단위별로 조를 짜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 달여 동안 진행됐다. 그동안 장애계에서는 보기 드문 운동방식이다. 천막을 치고 단식을 하고 삭발을 하고…, 종종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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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있었던 420차별철폐단 마지막 집회에서 민주노동당 당원이라 밝힌 40대 여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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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팔 혹은 경직된 팔을 올리고, 언어장애 때문에 뭐라고 외치는 지 잘 모르겠어도 소리 높여 ‘장애차별철폐’를 주장하는 그들에게서 치열한 ‘저항의식’을 느낀다는 것이다.
차별이 있는 한 저항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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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실업자지원센터의 양영희 소장 또한 “투쟁의 주체가 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중증의 장애 때문에 성인이 되기까지 몇 십 년간 집안에만 있어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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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소장은 이어 “이제 중증장애우들은 방안에서 TV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영화, 연극, 콘서트 다 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사회적·물리적 환경, 인식이 뒷받침되어주지 못한다. 개인의 의식 수준은 높아가고 있는데, 사회는 아직도 7-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고 주장하며, “개인의 욕구와 사회적 인식, 환경이 충돌되고 있는데, 이것이 곧 ‘차별’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아니겠느냐. 밖으로 나온 그들은 이제 차별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적 부당함을 인식하고 있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이제, 역사의 부름에 화답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외출하면 “쯧쯧 불쌍해라, 집에나 있지, 왜 돌아다녀, 그 불편한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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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우들은 그래서 거리를 선택했다. 직접 자신들의 모습을 보이고, 어떤 부당함이 있는지 몸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밖으로 나오는 자체가 힘들었지만, 같은 처지에 놓여진 한 두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나보다 더 중한 장애가 있어도 밖으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당한 그 모습은 서로에게 긍정적 자극이 되었고 연대활동을 통해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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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1 노동절, 한국뇌성마비연합회는 중증장애우의 노동권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를 작성한 김주현 정책교육팀장은 중증장애우들이 새롭게 투쟁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역사는 항상 투쟁하는 민중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토대가 어느 정도 구축된 상황 속에서 투쟁의 중심도 점차 사회적 약자에게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 중증장애우들이 역사의 부름에 화답해야 할 차례다. ’
글사진 홍여준민 기자
차별이 있는 한 ‘저항’은 계속된다 2
삶 자체가 투쟁일 수밖에 없는 ‘그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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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6개월 간 삼육재활원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어린 나이였지만, 본인의 장애를 인정하지 못해, 왜 자신이 그렇게 방안에서만 생활할 수밖에 없는 중증의 장애우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지 속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 장애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자신이 밖에 나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으면서, 그녀는 가족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학교는커녕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것조차 그녀에게는 녹록치 않던 상황이었는데, 1년에 한 번 등에 업혀 택시 타고 쭉 도는 게 외출의 전부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학력은 무학이다. 공교육의 혜택을 받을래야 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수동휠체어를 타게 된 것도 16살이 되면서였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부모님 등에 업혀 다녔죠. 그래야 외출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 학교 문에 들어서는 게 가능이나 했겠어요?” 부모님이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늘 집에 혼자 있어야 했다는 그녀.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부모님들은 항상 돈 때문에 걱정했어요. 형제들은 잘 모르겠지만, 전 내내 집안에만 있다보니, 부모님의 걱정, 근심 같은 걸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죠. 그래서 모든 걸 내색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고 했어요. 아파도 끙끙 앓기만 하고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죠”
그러다가 그녀는 컴퓨터를 익히게 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91년부터 외부와의 소통을 시작한다. TV가 유일한 친구였다는 그녀는 중국어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서서히 사람들과 ‘관계맺기’시작했다. 하지만 99년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하는 형편에 놓여졌다. 그러나 갑자기 닥친 위기는 그녀에게 또 다른 기회로 작용했다. 목욕서비스를 받기 위해 안양복지관에 나갔다가 재가복지모임을 알게되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인식하게 된 것. 그녀는 미국의 자립생활운동 비디오를 보면서 국가에 의해 자신의 권리가 박탈당한 것이며, 장애는 더 이상 개인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매주 일요일 정립회관에서 진행되었던 자립생활 세미나 참석을 위해 안양에서 구의동까지 왕복 5시간이 걸려도 꼬박꼬박 출석했던 그녀. “IL운동의 이념을 접하면서 나는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왜 장애 때문에 주눅들고 집안에만 있어야 합니까. 왜 누군가가 도와주길 바래야 합니까.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전 제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는데, 내 삶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죠.”라며 살포시 웃는 얼굴에는 이제 여유가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과 자신을 큰 눈으로 보고 활동을 실천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바로 전동휠체어를 지급 받으면서인데, 전동휠체어는 일상에서뿐만 아니라 투쟁의 주체로 나서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현실적 수급권 확보’를 위해 고 최옥란 열사가 제기한 헌법소원을 이어받았다. 가족 모두 수입이 없지만 아들(남동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월 25만원의 수급액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관심사는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다. 처음 IL운동에서 자신과 사회와의 관계를 인식하게 되었지만 이동권 투쟁에서 사회적 부당함, 차별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으며, 이제는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심이 이동되고 있다고 한다. 서른을 갓 넘긴 나이이기에 이성문제와 결혼 등의 문제도 현실적 고민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실은 차별철폐를 위한 싸움을 하면 할수록 비애를 많이 느껴요. 어떻게 살 것인가, 난 항상 투쟁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장애해방은 언제 올까, 그런 생각을 하면 말이죠.”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뭘까. 하나의 성과를 얻으면, 또 하나의 싸움 대상이 나타나서가 아니다. 자주적 인간으로 살기 위해, 해결할 과제가 너무 산적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는 “요즘, 이성문제로 약간 고민하고 있어요”라며 살짝 귀뜸했다. 그런데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왠지 그녀는 빨리 마음 정리를 하려는 것 같았다. 결혼 적령기에 놓여진 성인으로서 당연한 고민이지만 마치 사치처럼 느껴지는 가보다. 투쟁의 주체로 나선 중증장애우들에겐 소중한 감정도 애써 거부해야 하는 그 무엇으로 다가오는 게 오늘을 살아가는 중증장애우들의 모습이다.
“어떻게 살 거냐구요? 평생 장애운동만 해야할 것 같은데요?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쟎아요. 우리 스스로가 목소리 높이지 않으면 아무도 듣지 않아요. 잡혀가도 달라질 것 없어요. 어차피 직업을 갖기도 어렵기 때문에 빨간 줄도 의미 없어요. 갈 때까지 가야 그래도 뭔가 변화하지 않겠어요?”
‘저항’은 그녀에게 끝없는 차별의 장막을 거둬내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글 홍여준민 기자 / 자료사진 윤정은
차별이 있는 한 ‘저항’은 계속된다 3
좌담 : 장애운동이 달라지고 있다
장애운동이 달라지고 있다.
요즘 장애계에서 들려오는 공통된 평가다.
그러나 과거에는 어떠했고, 현재는 어떠한 지, 장애계에서의 합의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함께걸음>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장애운동의 흐름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의 장을 기획했다. 그러나 현 장애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이동권연대의 박경석 대표가 그 전날 버스타기 투쟁에서 심하게 다치는 바람에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좌담회가 반쪽이라는 실망감을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자리를 함께 해, 과거와 현재의 변화된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 한국장총의 김동범 사무처장과 한국DPI의 김대성 정책실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함께걸음>은 앞으로도 계속 변화되는 장애운동의 현황과 쟁점을 짚어볼 예정이다.
독자들의 많은 이해와 관심을 바란다.
김정열: 반갑습니다. 이렇게 이런 주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인데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것들을 종종 느낍니다. 이번 1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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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열 |
총선에서 각 당 모두 차별금지법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4년 전으로 기억을 거슬러 보면, 수당 10만원씩 주겠다는 게 공통으로 내놓는 정책이었거든요. 그 때 연금이란 단어는 아예 언급도 되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은 장애우 정책에서의 핵심을‘차별’문제로 접근하고 있어요. 사회 전체가 빨리 변하고 있다지만 장애계도 예외는 아닌 모양입니다.
근래 3~4년 동안의 변화라는 평가가 지배적인데, 과거 운동의 주체가 비장애우거나 경증의 장애를 가진 소수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일정한 사회적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운동 지형의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건데, 특히 운동의 주제를 선정하는 방식과 투쟁 형태의 다양화 등 긍정적 변화가 일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과거 운동을 되짚어 보고 현실 인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의 공적 기능을 담당하는 장애운동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우선 오늘 참석하신 분들은 10년 넘게 장애계에서 활동을 하셨던 분들이고, 속해 있는 처지가 다르니까 그런 배경을 종합적으로 풀어갔으면 합니다. 참, 오늘 이 자리에는 이동권연대의 박경석 대표도 참석하실 예정이었는데, 어제 버스타기 투쟁에서 몸싸움이 심했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다리 등이 온통 붓고 상처 나서 너무 힘든 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집에서 나오지도 못하시는데, 오늘 이 자리에 함께 계셨으면 더 충분한 논의가 되었을텐데, 우선 아쉬움을 전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장애운동의 변화 등을 진보적 관점에서 함께 논의했으면 합니다. 그럼 이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김대성: 서울 DPI회장을 하다가 강등된(?), 하하, 한국 DPI의 정책실장입니다. 글쎄요. 어려운 주제고 또 제가 평가할 수 있을까 우려스러운데, 전 꾸준히 운동은 지속되어 왔지만, 힘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의 변화는 제가 개인적으로 활동했던 거점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전지대연(전국지체부자유대학생연합회)→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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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성 |
(장애인운동청년연합)→전장협(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 그리고 최근 98년에 다시 DPI까지 특별히 다른 이념과 방향을 설정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조직 형태 모양들이 변화되기는 했어도 ?장애대중의 자각된 힘?으로 풀어가지 않으면 의미없다는 기조는 같습니다. 우선 과거 활동을 보면, 우리 내부 역량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노동권 확보를 위한 걷기대회 등 전국을 순회하면서 우리 문제를 알려내기는 했지만, 사회적 파장은 극히 미비했죠. 법?제도를 변화시키는 활동 또한 전문 역량 부족으로 녹록치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또 당시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노동운동과 궤를 같이 하는 운동은 장애 대중의 정서가 받기 힘든 무엇이었습니다. DPI로 전환된 것은 이 모든 주, 객관적 상황을 인식하고 큰 외피를 쓸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였죠. 실은 근래 이동권 연대의 과격하고 진보적 성향들의 방식으로 오히려 DPI는 약간의 부담을 덜 수 있었습니다. 장애운동의 사회적 역량이 그만큼 다양하게 커졌다는 거죠.
김동범: 80년 후반 이후 우리 사회는 20여 년 동안 급격한 변화를 보여왔습니다. 장애 문제도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인데요, 그렇다고 단순히 시간 흐름에 따른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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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범 |
화로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2000년대 들어서 이동권 투쟁은 장애운동의 획기적 변화를 가져오는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과 이후의 다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이동권 투쟁 전 사회적 분위기는 장애우 다수가 부당한 대접을 받고 불편을 겪고 있어도 “안됐다, 불쌍해”로 그쳤죠. 하지만 ‘이동권’이라는 구체적 사안으로 끈질기고 절박한 투쟁이 지속되자 사회는 동의하기 시작했어요. 두루뭉실, 또 막연하게 인식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라 명확한 한 가지를 중심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것이 결국 전체 장애문제를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이죠. 중증장애우 당사자의 직접 참여가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김정열: 객관적 상황이 장애운동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는 공통된 지점인 것 같습니다. 또 중증의 장애우들이 중심이 되어 각을 세우는 치열한 싸움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또 장애운동 뿐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전체 장애운동의 형태를 보면, 시설, 자립생활, 교육, 의료, 노동,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이 있지 않습니까? 경, 중을 따질 수 없는 부분일텐데요, 전체적인 변화의 흐름을 좀 이야기 해주시죠.
김대성: 장애 가진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8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전엔 없었냐? 그건 아니죠. 미비했을 뿐이죠. 과거 시각장애우들이 안마업과 관련해 대정부 투쟁을 하면 그걸 인권운동이라 보지 않았습니다. 근래의 투쟁은 전 장애계의 이해와 요구에 해당되는 것들을 전면에 내세운, 명분이 너무나 분명한 투쟁이라 인권측면에서 이해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게 가능했을까요? 80년대 김순석씨의 자살도 있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를 거쳐 민주화투쟁까지, 그런 시대적 상황은 영향을 주는 거죠.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소모임 활동을 하고 그러면서 점차 조직을 만들어간 것입니다. 그 후 각 영역별 구체적 요구안들은 그 때 다 언급되고 요구 안으로 정리된 것들이죠. 지금 주장하는 것들은 갑자기 불쑥 나온 것이 아닙니다.
김동범: 그래도 지금 이동권연대의 투쟁은 구체적 사안을 지속적으로 일관되었기 때문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 보여집니다. 과거에 자각하지 못한 장애우와 함께하자, 깨어나자, 그래서 결성된 조직, 단체들은 정부가 지원하길 바라고 단체 육성에만 급급했죠. 그런데 최근 연금, IL(자립생활운동), 이동권 투쟁에서 보면 당사자주의를 전면에 표방하고 있어요. 장애우의 힘이 극대화되었다고 하는데, 더욱 공고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죠. 배타적 당사자우의를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투쟁의 주체들은 당사자주의 속에서도 전문가, 타 조직과도 연대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해가면서 싸우고 있기 때문에 명분도 살리고 힘있게 진행되는 거 아닐까요. 진정한 당사자주의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김정열: 여전히 계몽적으로 우매한 장애우를 깨우쳐야 한다, 가르쳐서 주체로 내세우려는 것은 작위적이라는 것 같은데요, 이게 이동권 투쟁의 주체들과 본질적으로 틀리다는 거죠? 주체 스스로가 느끼고 인식하면서 투쟁을 하니까 힘이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김대성: 세 가지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요. 재활→인권, 경증장애→중증장애, 전문가→당사자로 말이지요. 전에는 ‘지체’ 하나의 개념이었는데, 이제는 지체 중에도 절단, 척수, 근육디스트로피, 뇌성마비 등으로 세분화되고 있어요 또 경증이 집에서 나올 수 없고 시설에만 있는 중증 장애우의 목소리를 대신했는데,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죠. 가장 억압과 고통 속에서 피해받는 집단이 중심에서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하지만 다른 사람이 대신 내는 목소리는 한계가 분명했죠. 내 권리, 내 고통에 대해서는 당당히 내가 이야기하겠다는 거죠. 그동안 차분히 준비하고 또 사회적 분위기도 점차 변하니까 운동세력의 역량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이동권도 단순한 소아마비 장애우보다 휠체어 탄 사람이 설득력 있는 거 아닙니까. 모든 것이 맞물려 앞으로 경증장애우는 뒤로 물러서고 중증장애우의 활동력은 더욱 왕성해질 것입니다.
김정열: 김동범 처장의 말씀은 배타적 당사자주의가 운동의 폐해라는 지적이신가요?
김대성: 전 좀 다른데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 학생, 시민, 봉사단체 구분없이 함께 활동했습니다. 당사자들만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죠. 그래서 비장애우들의 결합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외부와 함께 하는 것 자체가 힘이었습니다. 든든했죠. 역량이 절대 부족이었어요. 당사자들끼리 집회 한 번 제대로 못했으니까요. 90년대 후반에 당사자주의가 본격적으로 표방되었는데, 배타적 당사자주의는 올바른 당사자주의가 아닙니다. 장애를 가졌더라도 경증이 중증을 대신할 수 없고, 지체가 시각장애우를 대별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김정열: 이 지점에서 왜 배타적 당사자주의가 위험한 지에 대해서만 좀 간추려 주시죠.
김동범: 지금까지 정책을 누가 요구하고, 결정, 평가했습니까? 과거에는 재활전문가, 지금은 당사자가 하고 있죠. 그런데 간혹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내가 주체고 넌 대상이야 라는 식으로 거부합니다. 모든 걸 내가 쥐고 하겠다는 모습으로 비장애우들에게 비춰지는 면도 있구요. 무대가 있다면, 주연은 장애우가 조연은 비장애우나 경증장애우가 할 수도 있고, 연출도 다른 사람이 맡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역할에 따라 적절하게 인정하면 되는 문제죠.
김정열: 그렇다면 왜 그렇게 당사자주의가 위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에는 왜 그 목소리가 나오지 못한 거죠?
김대성: 이동권 연대의 투쟁을 봐도 중증장애우가 직접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 내려가는 거 하나가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죠. 최근 중증장애우들이 이렇게 밖에 나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다른 큰 목소리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사자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책 입안, 형성, 평가하는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겁니다.
김정열: 패러다임의 변화를 실천하는 조직이 있다고 보십니까? 여전히 과거의 방식과 태도로 일관하는 조직들도 있을텐데요.
김대성: ‘유사 당사자주의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정말 당사자주의를 이해하고 있는가하는 점인데요, 자신들의 영역만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지, 기준은 나름대로 본다면 조직의 내부 민주주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의사결정 구조가 민주적인지, 조직의 가장 첨예한 부분에 있는 여성과 중증 장애우가 의사결정구조에 참여하는 걸 보장하는 구조 등이죠.
김정열: 거의 대부분의 조직이 그렇지 않나요?
김대성: 그렇게 보기는 힘들죠.
김동범: 완벽한 민주주의는 어렵죠. 기본적으로 그런 구조가 있는가, 진입이 가능한가, 지도자를 민주적 방식으로 선출하는가 일테고, 또 하나는 지도자가 독재를 하는 형태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성과 중증장애우 참여를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사결정 구조가 열려있고 절차와 운영에 있어 민주적으로 합의하는 구조라야 진정한 당사자주의 조직일 것입니다.
또 진정한 장애운동은 어쩌면 지금부터가 시작 아닌가 싶어요. 경증장애우 문제는 이제 인식의 변화로 금새 해소할 수 있어요, 최근 정책의 중심은 중증장애우입니다. 그 차이는 엄청난 것 같아요. 이제야 선진국 장애운동과 비슷한 유형으로 들어섰다고 보여지는데 한 가지, 부모들의 목소리가 결여되었다는 점이 좀 안타깝습니다.
김대성: 근데요, 부모 또한 당사자가 될 수 있을까요? 물론 당사자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건 극히 일부 영역입니다. 정신지체 자조모임도 생겨나고 있어요. 그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또 내려고 합니다. ?내 자식이니까 내가 더 잘 안다?는 것으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빼앗아서는 안됩니다.
김정열: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획일적으로 중증장애우만이 장애운동의 주체라고 보는 것은 위험할 수 있겠죠. 운동의 주체들은 다양한 형태로 포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동권투쟁에서 최악의 상황에 처해진 중증장애우들이 운동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죠. 그렇다면, 운동의 내용보다 방식과 형태만이 변한 것이란 말인가요? 물론 비타협적 운동만이 공식은 아닐테지만, 실은 기존단체들과 새롭게 꿈틀대는 작은 중증장애우 조직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것은 끝까지 저항해야 하는 문제에 기존 거대 조직들이 너무 쉽게 협조하고 합의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이번 복지부 공문 사건에서도 그렇지 않은가요? 결코 쉽게 넘어갈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한국 DPI에서 성명서를 낸 것 말고는 장애계가 이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예산을 빌미로….
김동범: 실은 그건, 다른 단체와 연대해서 강력하게 대처할까도 생각했었는데, 너무 유치하고 어이가 없어서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총련)은 어떻게 서로 협력하고 연대할까를 고민중인데, 이건 단체의 몫이지 결코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성질의 것은 아니지요. 너무나 어처구니 없어 오히려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김대성: 장총련 운영위원회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되었는데, 직접 가서 강력하게 항의하자고 했더니 이미 몇 몇 실무대표진이 복지부에 가서 항의하고 왔다해서 더 이상 대책을 마련하지는 않았어요.
김정열: 그래도 이 두 그룹에 속해 있지 않은 장애우 조직들은 자존심에 상처도 받고 이런 것들 때문에 기성단체들이 타협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절박함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김대성: 한 면만 보고 일반화시키는 오류는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들은 것이 전부인 양 생각하고 비판하는 건 무리가 있죠. 조정하기 위해 운영위 등의 구조화된 형태가 있는 것이고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있어서 서로 논의하고 결정되어지는 거죠. 협상이니 타협이니 하는 방식이 절대 아닙니다. 만일 장총과 장총련이 복지단체협의회(가칭) 같은 걸 만든다면 논의해야 할 것들은 산적해 있죠.
김정열: 여전히 일각에서는 태도가 매우 타협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비판 같은데요.
김동범: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고 하면 안돼죠. 한국장총 뿐만 아니라 기존단체들은 반성하고 각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 대변한다는 조직들은 진정 대중과 교류하고 참여하면서 통로로서 역할하고 있는가를 되새길 필요가 있어요. 실은 모두 준복지관화되고 있어요. 거의 프로그램식으로 활동을 진행하고 있죠. 사안에 역동적이지도 못하고 중증장애우들의 문제제기에 분명히 반성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세요. 이번 총선에서도 50년 민주당 무너지죠, 자민련은 몰락했죠. 거대 조직이라는 거…이제는 잘 못하면, 대중들의 정서와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면 하루 아침에 함몰합니다. 50년 역사의 재활협회라는 것도 말로만 하는 건 의미 없습니다. 인정받지 못해요. 깊이 고민하고 영역을 나누어 전문성을 더 키워가야겠죠. 백화점식의 활동은 아마 갈수록 버거울 것입니다.
김정열: 무조건 비난보다는 자기반성이 앞서야 할텐데요, 운동방식이 다를 수는 있겠죠. 신생조직들과 기존 조직들 사이에요. 그래서 다름을 인정하면서 연대의식을 갖는 게 필요할텐데,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장추련) 같은 게 그런 노력의 일환이겠죠. 하지만 전에 비해 노골적인 배제나 대립은 점차 줄고 있다고 해도 과연 장애운동진영 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어도 진정성을 갖고 연대하는가 하는 점들이 궁금한데요.
김대성: 역사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습니다. 지나쳐도 안돼죠. 발전하는 건 맞는데, 당사자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확 나오면 평형을 이루기 어렵죠. 한 쪽에서 전문가들의 역량도 강화되어지고 인정되어야 합니다. 다른 것들의 부정이 아니란 거죠. 할 일이 더 많은데 오히려 다 죽어버리는 꼴입니다. 피해버리는 거죠. 그게 안타까워요. 군형이 하루 아침에 무너진 것 같아 누군가 그 역할을 해야 하고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과도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김동범: 전 가끔 운동을 하려면 이동권연대나 편의연대처럼 해라는 말을 합니다. 기존 조직들이 정부 예산을 받으며 활동하니 한계가 분명히 있어요. 예산을 받지 않고 자생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이 틀을 바꾸지 않으면 비판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열: 오늘의 좌담회는 과거와 현재의 변화된 지점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장애운동이 발전적 모습을 가질 수 있는 건지,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오류들을 범했는지 살펴보면서 앞으로의 방향과 과제를 논해보고자 하는 자리였죠. 앞으로 <함께걸음>은 장애계가 더 발전적 모습으로 진정성을 갖고 연대하며, 많은 현안들을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해 이러한 자리를 계속 만들어갈 것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바쁜 일정 중에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정리 홍여준민기자 / 사진 최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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