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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이슈추적-미국의 에이즈 신약 임상시험과 줄기세포 연구

다수를 위한 과학의 발전, 발전을 위한 소수자 인권침해

본문

과학 맹신과 생명 윤리 불감증


 

AIDS 바이러스 감염자와 보유자 전문 요양시설로 미국의 뉴욕에 위치한 ‘인카네이션 어린이 센터(Incarnation Children"s Centre)’가 1989년 설립 이후 2002년까지 영·유아 100여 명을 대상으로 주로 AIDS 치료제의 독성과 안전성, 내성 등을 검증하는 임상 시험을 실시했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어떤 단체도 일언반구 말이 없다.
또한 국내에서 황우석 교수는 체세포 이식을 통해 배아를 복제하고 이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자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네이쳐 표지모델’로 나오기도 했고, 그를 노벨상 후보로 지지하는 노벨상추진위원회가 과학기술부에 의해 구상되기도 했

 

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는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며 심지어 연구 중단까지도 요구했다. 그런데, 인터넷 게시판은 시민단체를 비난하는 목소리 일색이었다. 시민단체는 난치병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황 교수의 업적을 폄하하려고만 하며, 노벨상이 얼마나 영예로운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연구의 위대성을 찬양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윤리문제를 거론하며 심각한 대립을 이루고 있다.
이 두 사건을 보면서 다수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다수의 인간을 조금 더 편하게 살게 하려는 과학의 발전과 발전을 이루기 위한 과정 중에 발생하는 소수의 인간에 대한 탄압 또는 소수 인간에 대한 도구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 볼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면1 : 1995년 6월 낙마사고로
척수장애우가 된 <수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리브가 인간배아를 복제해
만든 줄기세포를 손상된 척수에 이식하여
다시 슈퍼맨이 되는 장면

 
     

▲장면2 : 인간배아복제를 위한 난자 제공을 위해 수 많은 여성들이 순과 발이 묶인 채 침대에 일렬로 누워있는 장면

 

 
▲장면3 : 한번만 먹으면 완쾌되는
에이즈 치료약을 먹고 에이즈 환자
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장면

 

   

 
 
▲장면4 : 에이즈 약 개발을 위해 장애우 시설이나 고아원 아이들에게 임상실험 중인 약을 투여하고, 약을 거부하는 아이들에게 입을 벌려 약을 밀어 넣고, 그래도 안되면 배에서 위로 바로 연결한 관을 통해 약을 투여하는 장면

<장면 1>과 <장면 3>의 최대 수혜자는 아마 장애우가 아닐까. 척추장애우, 절단 장애우, 내부 질환 장애우 등에게는 <장면 1>이 언제나 꿈속에 나타나는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꿈을 꾸고 환상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나도 그러니까…. 소아마비 장애우인 나도 소아마비 바이러스(polio virus)에 의해 손상된 신경-근육조직을 싱싱하고 제대로 된 조직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것도 내 체세포를 이용해 만들어 이식을 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내가 뛰어다닐 수만 있다면…. 솔직히 나도 이런 꿈을 꾸게 된다. 특히 황 박사의 연구결과를 바라보면, ‘언젠가 내가 뛸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하는 부푼 기대와 꿈을 꾸게 된다. 그런데 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행복을 짓밟을 수 있을까? 특히 타인에 의해 일상적으로 차별받고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는 장애우들이 자신이 그 차별과 인권침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한다면 정당화될 수 있을까? 또 장애를 벗어날 수 있다고 하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장면 2>와 <장면 4>가 눈앞에 어른거려 <장면 1>의 환상이 싹 가시는 순간이다. <장면 1>이 있기 위해서는 수많은 <장면 2>가 있어야 하며, 마찬가지로 <장면 3>을 위해서는 수많은 <장면 4>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 1개의 성공을 위해 사용한 난자 수는 242개였다. 242명의 여성들에게 일시에 난자를 제공받았거나, 적어도 50명의 여성에게서 5개월 간 제공받아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하나의 <장면 1>을 위해서는 수많은 <장면 2>가 필요한 것이다.

힘없는 자들의 ‘죽임’을 딛고 선 과학기술
이제 <장면 4>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걸린 어린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설립된 미국 뉴욕의 ‘인카네이션 어린이 센터(Incarnation Children"s Centre)’에 수용된 아동을 대상으로 AIDS 치료제의 임상실험을 강제 실시했단다(영국 일간 <가디언>의 일요판인 <옵저버> 4월 4일 자 참조). ‘인카네이션 어린이 센터’는 AIDS 바이러스에 감염됐거나, AIDS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을 수용하는 시설이다. 1989년 설립 이후 2002년

 
까지 3개월에서 5살 사이의 영·유아 100여 명이 AIDS 치료제의 독성, 안전성, 내성 등 효과성을 검증하는 임상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에 대한 임상 실험은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보호원에 수용된 영·유아들은 뉴욕시의 아동보호청이 승인의 주체다. 부모 대신 보호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그들이 실험을 승인했다. 이번 실험에 동원된 영?유아들의 대부분은 흑인, 라틴 아메리카계 고아들이었다.
임상 실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더 끔찍하다. <옵저버> 보도에 따르면, 이들 영·유아들에게는 부작용이 큰 것으로 알려진 AZT 등 AIDS 치료제와 단백질분해효소억제제 등 시험용 약품이 대량으로 투여됐다. 특히 영·유아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7가지 약품을 혼합한 칵테일 요법‥이 4세 된 어린이들에게 실험됐다. 또 6개월 된 아기에게 허용량보다 배나 많은 양의 홍역 백신을 투여한 뒤 반응을 지켜보는 실험도 이뤄졌다. 약을 먹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위벽을 뚫어 직접 위에 약물을 투여할 수 있는 튜브 시술이 이뤄졌고, 상당수 어린이들은 이런 약물 투여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으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약품은 대부분 동물실험도 거치지 않은 약품들로 알려지고 있다.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고 임상실험을 한 것은 법적·도덕적 중대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과거 전쟁 포로에게 자행했던 ‘마루타’ 만행이 영유아에게, 그것도 힘없고 돈 없고 갈 곳 없는 고아 아이들에게 자행된 것은 그 어떤 합리적 이유나 명분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비인간적 처사임에 분명하다.

거대 제약회사, 윤리는 없고 자본만이 있을 뿐
 한편 보호원에 수용된 영·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실험은 뉴욕 아동보호청 외에도 미국 정부 기관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거대 제약회사들이 후원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이번 임상실험은 컬럼비아 대학 병원인 ∼프레스비테리언 병원(Presbyterian Hospital)‘이 주관하고, 미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 알레르기 및 감염병 연구소’와 국립아동보건연구소가 후원하는 등 정부 기관들이 대거 관여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그락소스미스클라인, 파이저, 지넨테크 등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이 약품과 재정지원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인권운동가 리엄 셰프가 1월에 ‘생체 실험’에 대한 A4 8쪽 분량의 탐사보도를 인터넷에 올려 폭로한 데 이어, 지방지인 <뉴욕포스트>가 2월말 기사화하면서 표면화됐다. 이에 보건단체들은 어린이들이 마치 실험용 동물처럼 취급되고 있다며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이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으며, 현재 뉴욕시 보건당국은 4월부터 진상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역시 고아원 상대 임상실험 실행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일이 미국에서만 있었을까? 아니다. 우리도 이미 1998년에 이와 같은 사례가 폭로되어, 관련 법령의 개정까지 이른 좋지 않은(?) 경험이 있다.
임상실험 부족을 이유로 조건부 수입허가를 받은 B제약회사는 뇌염 생백신의 임상시험을 위해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승인아래 연세대 영동세브란스병원 주관으로 3개 영아원 어린이 84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했다. 해당 영아원은 서울 상도동의 성로원, 서울 왕십리의 화성영아원, 경기도 평택시 야곱의 집 등 3곳으로 미혼모의 아이들과 부모가 버린 아이들이 있는 시설이었다. 보건복지부 확인 결과, 임상실험 대상자 84명 중 32명은 부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었다. 또한 N제약회사의 ‘수두백신’에 대한 임상실험은 지난 94년 4월부터 8월까지 서울지역 17개 보육원에서 1백 77명을 상대로 실시됐으며, 또 다른 백신에 대해서도 95년 9월부터 서울, 경기, 강원지역의 6개 보육원에서 임상실험이 실시되었다. 제약회사의 지원으로 임상실험을 실시하는 병원은, 아이들을 쉽게 접할 수 있고, 문제가 생겨도 별 탈이 없을 것 같은(?) 고아원을 집중 대상으로 한 것이다. 영아원 원장의 입장에서는 예방접종하기에 빠듯한 예산 지원 하에서 아이들의 1년 예방 접종을 책임진다고 하니 환영할 수밖에 없는 입장. 문제는 부모가 있음에도 부모 동의 없이, 그리고 아이들의 의지에 상관없이 임상실험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자본 앞에 ‘주체적 인간’은 없다
이렇듯 사회복지시설의 영유아 또는 정신질환자 등은 의사표현능력이나 판단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임상실험의 대상이 되기 쉽다. 더구나 원장에게 조금의 인센티브만 주면 쉽게 임상실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임상실험을 주관하는 측에서는 아주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원장의 자식이었다면, 의사의 아이였다면 그렇게 쉽게 임상실험을 할 수 있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볼만하다.
당시 이런 사건을 계기로 약사법 개정이 있었다. 영아원 등 사회복지시설 수용자에 대한 임상실험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임상실험의 특성상 사회복지시설의 수용자를 피험자로 하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이를 위반 시에는 형사 처벌하도록 되었다.

환자, 장애우는 의료와 과학기술 발전의 당사자
사람들은 생명을 연장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과학기술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또 별 문제인식 없이 받아들인다. 자동차, 비행기, 고속철도의 발명은 인간의 행동반경을  넓혀 놓았고, 항생제의 발명은 인간의 수명을 최소 20년은 늘려 놓았으니까. 또 핸드폰, PDA의 발명은 비장애우는 물론 장애우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어주기도 했으니까. 이렇듯 과학기술의 발전이 삶의 질을 높여주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특히 과학의 발전으로 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아니고, 난치병 환자에게 새 생명을 전해준다면, 과학의 목적과 가치, 순수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숭고하다고 모든 수단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인범을 잡기 위해 불법 도청을 하거나 고문을 해선 안 되듯이, 아픈 사람 10명을 살리기 위해 단 한 사람이라도 희생해서도 안 되며, 장기를 매매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일반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더욱 편안한 삶을 위한 과학의 발전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런 발전을 이루기 위해 소수 인간에 대한 탄압 또는 소수 인간에 대한 도구화는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특히 그 소수자가 다수에 항거할 능력이 없는 시설 수용자이거나 아동이라면 어떤 숭고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하더라도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과거 한국의 보육원에서 있었던 간염백신 임상실험과 최근 미국에서 고아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행된 AIDS 생체실험을 보면서 드는 생각 하나. 그 사람들의 명분은 언제나 ‘소외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병 든 사람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볼모가 되지 않기 위해 장애 가진 우리들은 더욱 더 민감하고 지혜롭게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문제를 감시하는 시스템은 시민사회단체 뿐 아니라 장애우 당사자와 장애우 단체 모두의 역할이어야 할 것 같다.

글 이동석(대학에서 약학 전공.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전공.
성공회대, 한신대 강사, 지체장애2급)
기사 참조,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 ‘미국-다국적제약사, 어린 고아들에게 ‘마루타 실험’만행, 흑인-라틴계 고아들이 주대상, 실험중 사망하기도’

작성자이동석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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