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역거부자의 편지> 대체복무는 의무의 다른 모습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어느 병역거부자의 편지> 대체복무는 의무의 다른 모습

눈물을 감추고 묵묵히 지켜봐주시는 어머니에게

본문

  작년에 병역을 거부하겠다던 저를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고 눈물을 흘리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끝내 저의 결심을 받아주시며 죄송해 하는 저의 마음을 일부러 덜어주려 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평생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겠다는 자식의 당돌한 말도 이해해 주시고, 좋은 사회가 오기를 이제는 저보다도 더 바라시는 어머니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릴뿐입니다.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고 군대 이야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불안을 덜어드리고 싶지만, 대체복무의 기회를 갖기엔 좀 더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얼마 전 독일이 징병제를 폐지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에는 징병제 폐지에 대한 독일 국민의 우려가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개인의 신념을 더욱 존중해 주고 평화를 향한 또 한 걸음의 진전이 될 수도 있는 징병제 폐지가 독일 사회복지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ꡐ대체복무제(민간봉사역) 폐지ꡑ로 이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독일 국민은 사회복지에 구멍이 생기지 않을까, 복지비용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까 심각히 염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만 하면 국방 위기를 들먹이는 한국에서 이러한 일들이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여전히 겨울의 쌀쌀한 바람이 불던 지난 1월 29일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서울북부지방법원 영장판사는 병역을 거부한 저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그리고 36일 동안 감옥에 갇힌 상태로 조사를 받았고 재판을 받았습니다. 감옥은 참으로 낯선 사회였습니다. 두 걸음만 내딛으면 모든 것이 손에 잡히는 3평의 철골 콘크리트 감옥 방에서 6~7명이 하루종일 공동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리 봐도 벽이고 저리 봐도 벽인 사각의 공간에서 우리들은 순번과 규칙에 따라 먹고, 자고, 씻고, 빨래하고, 책보고, 글쓰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재판 중인 사람들이라 강제노동은 없었지만 한 사람당 겨우 0.5평 생활 공간을 유지하며 지내는 것 자체가 끊임없는 답답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수감의 고통이 어떠하든지 간에 군사 훈련을 받기보다 차라리 감옥을 선택하는 병역거부자들은 매년 5백명이나 됩니다. 이들은 ꡐ파렴치한 인간ꡑ으로 일관되게 낙인찍히는 것을 감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감옥에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나서도 전과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차라리 내가 죽으면 죽었지 다른 사람을 해칠 수는 없어 군사훈련을 거부한 것뿐인데, 우리사회 지도층은 이들을 철저히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사람을 죽여도 고의로 살인한 것이 아니라면, 또 폭력사용을 직업으로 삼는 조직폭력배라 할지라도 징역 1년은 매우 무거운 형벌로 간주하는 우리 사회가, 사람 죽이는 일은 연습조차 할 수 없다는 병역거부자들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3년 최고형에 처했습니다. 병역거부 수감자들은 우리나라 모든 교도소에서 온갖 잡무를 도맡아 하는 1급 모범수여서 이들이 없으면 교도소 행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이지만 이들의 인권은 고려되지 않습니다. 교도소 안의 보안과, 영치과, 교무과 등 중요한 부서에는 병역거부 수감자들만 출입하여 잡일을 다할 정도로 이들은 정직하고 성실한 젊은이들이라고 인정받고 있지만 범죄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소중한 젊은 시절을 희생해 가며 고된 훈련을 받는 군 장병들의 마음과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도 우리사회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다만 군사적 방식만 인정할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반전 평화의 소신 때문에, 살인은 커녕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는 서약 때문에 사격 훈련과 총칼 훈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왜 인정될 수 없는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감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도 저를 위축시킬 수 없습니다. 병역 거부를 고민할 때부터 내게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지는 뻔히 알고 있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 훈련에 동참할 수 없다고 마음먹었기에 수감의 고통쯤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잘못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죄인이 되었지만, 저는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처넣어지는 처사에도 주눅들 이유가 없습니다.

제 내면에 ꡐ평화ꡑ라는 것을 들여다 놓는 바람에 감옥을 가게 되었지만, 왜 굳이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내야 하는지 답답합니다. 어차피 감옥에서 세월을 낭비시킬 바에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대체복무를 시켜 사회복지와 국가효율에 도움되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별것 아닌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면 더 잘 하지 않을까요?

군 복무만이 우리사회를 위한 희생의 유일한 길은 아닐 것이며 국경선보다 더 애타게 젊은이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회의 음지들도 많을 것인데, 우리 사회는 군인이 되어야만 인간으로 취급하려고 합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보듬는 것도 국가 안정에 필수적인 일이며 ꡐ국민을 보호한다ꡑ는 ꡐ국방ꡑ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많은 나라에서는 사회봉사로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는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가 1,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대체복무를 시행했습니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유럽식 사회복지가 유럽 젊은이들의 대체복무 덕분이라는 사실은 애써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진실입니다. 또 군사대국 중국과 대결하고 있어 우리랑 처지가 비슷하다고 말해지는 대만에서는 국가가 먼저 대체복무를 시행하였고, 지금은 오히려 사회봉사 대체복무(사회역)가 너무 힘들어서 신청자가 매년 미달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체복무제는 복지 수준 향상에 기여하는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체복무제도가 시행되면 병역 이행의 선택이 2종이 되기 때문에 두 제도간에 경쟁이 생겨 결국 군 복무 환경도 개선될 것입니다. 한국의 군 복무가 감옥살이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군인 인권과 처우가 재고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대체복무제 시행으로 우리의 후손들은 군에서 덜 힘들게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것을 생각해서라도 군 복무로 인한 피해의식을 비복무자에게 돌리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뿐만 아니라 대체복무제 도입은 남북 긴장 완화에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무기 경쟁을 줄여나가게 할 것이며 서로간 적대적 안보관도 점차 전환하게 하여 한반도 평화문화를 형성하는데 기여할 것입니다. 그동안 첨예한 군사 대립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까? 고질적인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교육과 복지 분야의 질을 선진화시킬 수 없는 이유가 그 엄청난 국방비 때문이지 않습니까? 남북 군사 대립 때문에 우리사회 전반에 위계적인 군대 문화가 팽배해졌고, 여성과 장애우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은 차별받아 왔습니다. 대체복무제도는 극단적 군사 대립 상황에 평화적 안보관을 불어넣어 다양함을 인정하는 공존의 문화 정착에 기여하지 않을까요?


어머니.

낙관주의자일 수밖에 없는 병역거부자들이라고 해서 군대 거부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전쟁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꿈꿀지라도 온 국가가 군비경쟁을 하는 현실을 부인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그래도 아일랜드나 코스타리카 같은 군대없는 나라가 있는 사실이, 스위스나 노르웨이 국민들이 군대해체를 논의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반갑습니다. 그리고 우리 현실에서는 대체복무제가, 개인과 국가가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 제도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군 복무 대신에 이라크에서 민간인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정부에 요청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왜 전쟁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이라크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는 저의 생각은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무시되고 있다는 편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또 다른 전쟁으로 보복된다는 것을 인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폭력의 중단과 고통의 나눔만이 적개심과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젊은이들이 총을 내리고 자기의 꿈을 향해 땀흘리며, 군인으로가 아니라 자원활동가로 만날 수 있는 사회가 꿈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소망해봅니다.


 

작성자염창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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