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절차상 장애인권 침해사례와 형사소송법 개정방향에 관한 토론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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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2일 국가인권위에서는ꡐ형사절차상 장애인권 침해사례와 형사소송법 개정 방향ꡑ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다.
ꡐ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한 장애인 인권확보 공동행동ꡑ이 주최한 이 날 토론회에서는 형사절차상 장애우의 실질적 권리보장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제안하는 자리였다.
이날 토론회는 서울시 그룹홈지원센터 유병주 소장, 한국농아인협회 이정자 사무처장,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 김주현 정책교육팀장이 인권침해 사례를 발표했고, 고영신 변호사의 주제 발제, 천주교인권위원회 김형태 변호사,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성폭력상담소 장명숙 소장,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박숙경 인권센터팀장의 토론이 이어졌다.
합의나 하지 그래
성남 수정구 한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던 한 씨(23세, 정신지체 2급)는 다가온 경찰관의 몇 가지 질문에 무슨 뜻인지 모른 체 네네 하고 대답을 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한씨는 총 5차례 절도를 저지른 범죄인이 되었다. 피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절도 신고를 한 적조차 없다고 했으나 오히려 경찰에게 위증하면 처벌받는다고 협박을 받았다. 한 씨 부모는 97년도에 받은 장애진단서를 보이며 항의했으나 검찰에 송치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가족 모두가 정신지체 장애우인 안씨 가족의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이 개농장의 개가 귀여워 만지다가 개도둑으로 오해받아 턱뼈가 부러지도록 주인에게 맞았다. 부모가 항의하러 경찰서에 갔지만 오히려 쌍둥이 형제 모두가 절도 미수로 몰렸다.
한 시각 장애우 여성은 경찰에게 성희롱을 호소했지만 ꡒ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아느냐ꡓ며 무시당했다. 그리고 어떤 시각 장애우는 조서를 꾸미는 과정에서 대독 대필 서비스 요구를 묵살 당했고, 청각 장애우의 경우 법률용어를 잘 알지 못하는 수화통역사로부터 통역을 받거나 매번 다른 수화통역사가 오는 바람에 도대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위 사례들은 모두 경․검찰에서 장애우에게 일어나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이번 토론회는 수사나 재판과정에 있어서 이렇게 장애우들이 억울하게 인권침해를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제안하는 자리였다.
서울시 그룹홈 지원센터 유병주 소장은 정신지체장애우와 관련된 성폭행이나 폭행 사건 등을 화간이나 합의로 처리하는 수사기관들의 태도에 분노하면서 ꡒ사건에 있어서 장애가 몇 급이냐, 장애 유형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장애 특성조차 이해하지 못하면서 정식절차도 밟지 않고 화간으로 처리하거나, 처벌을 원하는데도 불구하고 합의를 종용하는 수사관의 태도가 문제다.ꡓ라고 지적했다. 또한 정신지체장애우는 사건의 충격을 쉽게 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ꡒ심리적 좌절은 이상행동, 폭력 등으로 나타나며 그동안 아무리 재활교육을 잘 받아왔더라고 하더라도 그 사건으로 인해서 그룹홈이나 직장 등에 부적응하는 경우가 많다.ꡓ고 덧붙였다.
그리고 장애 당사자로서 사례를 발표했던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 김주현 정책기획팀장은 ꡒ뇌성마비 장애로 인한 언어 장애는 조금만 천천히 주의 깊게 들으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런데 바쁘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 또한 조서 작성 후 확인절차도 밟지 않고 무조건 도장부터 찍으라고 강요했다. 조서에는 내가 대답하지 않은 내용도 있었고 심지어 임의로 대답을 기입한 것도 있었다. 뇌성마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장애를 가졌다고 아예는 문맹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결국 내가 직접 조서를 작성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ꡓ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법적 보조인,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까지 확대해야
ꡐ형사절차상 장애인 기본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제안ꡑ을 주제발제 한 고영신 변호사는 ꡒ최근 일련의 장애우 인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 사례들을 봤을 때 아직 우리 사회는 국가 공권력의 최후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형벌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진술능력이 미흡한 장애우에 대해서 홀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강한 의문이 든다ꡓ며 장애우 인권의 실질적 기초가 되는 평등의 의미는 ꡐ능력에 따른 평등ꡑ만이 아니라 장애우의 ꡐ필요(need)ꡑ에 따른 평등을 포함하는 것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변호사는 현행 형사소송법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ꡐ법적 보조인이 가족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ꡑ이라고 지적했다. 보조인 제도는 변호인 제도를 보충하는 제도지만, 변호사 수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현재 사문화된 상태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사람, 특히 진술능력이 완전치 못한 사람들에게는 인권보호 측면에서 꼭 필요하다. 특히 검찰이 경찰조서에 거의 의존하다시피 하는 현행 수사관례상, 초등수사과정에서 상황을 정확히 알려낼 수 있는 보조인은 그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고 변호사는 법적 보조인을 그와 신뢰가 있는 사람까지 범위를 확대하고, 또한 보조인 제도가 있다는 것을 미란다 고지처럼 알려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정토론에 참여했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박숙경 인권센터 팀장은 ꡒ법무부나 검․경찰이 ꡐ인권보호ꡑ를 내세우고 있지만 어느 곳 하나 장애우 문제를 전담하는 직원은 한 명도 없다. 물론 법무부 차원에서 형사절차상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인권침해 실태는 어떤지에 관한 실태조사도 없다. 따라서 전문위원회 설치, 전담인력 배치, 장애우 인권교육 등 제도를 통해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ꡓ고 역설했다.
4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반드시
법무부는 지난해부터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해 오고 있다. 그리고 올 4월에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ꡐ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한 장애인 인권확보 공동행동ꡑ은 이 개정안에 장애우 인권확보를 위한 내용을 포함시키기 위해 제시할 개정안을 준비중이다.
어떤 사건으로 수사나 재판에 돌입하게 되면 당사자는 생소한 절차와 과정, 위압적인 공권력 등으로 인해서 당황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장애가 있는 사람은 이렇게 장애 특성에 거의 무지한 수사관계자 때문에 오해를 받거나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정신지체나 언어, 시․청각 장애우의 경우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밝힐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변호사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러한 수사관행은 장애를 가진 한 개인에게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수 있다.
이렇게 형사절차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상황들은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번 토론회에서 제안된 개정안을 법무부가 어디까지 받아 안을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법무부가 그간 보여줬던 인권의식 수준을 또 한 번 각인시켜주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글 최희정 기자 / 사진 홍여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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