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맺는 소송운동(3)
본문
“장애차별, 정신적 피해 인정하다”
제천시 사건. 2001년 11월경에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후 지금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장애우 단체와 인의협 등이 함께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이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접수, 충청북도 도청 앞 집회, 시위, 아무런 권리구제 조치도 취하지 못한 인권위 차별 결정에 대한 기자회견, 행정소송과 민사소송, 2002년 6. 13 지방선거에서 권희필 시장을 낙선시키기 위한 제천시청 앞 1인 시위 그리고 콘서트까지. 참으로 다양한 활동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의 성과로 얼마 전 “위자료 3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2년이 넘는 기간.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이 진행 과정 속에서 제일 힘겨웠던 사람은 아마도 당사자인 이희원 선생이 아니었을까.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10년 넘게 살아 온 제천시를 떠나게 된 것은 물론 지역 보건소 근무를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자기 계발을 해 왔던 이희원 선생이기에 그 상처가 더 크게 남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사건 진행이 길어지면서 보건소에서 충실하게 근무하던 능력 있는 의사선생님은 온데간데없고, 단지 장애우, 거기에다 무능력하고 불성실하기까지 한 장애우, 장애우란 이름으로 보건소장 자리나 탐내는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려지게 되고, 결국 이러한 제천시 분위기로 인해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이희원 선생을 두 번 죽이는 결과도 낳았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인해 이런 말도 안 되는 분위기에 일침을 가할 수 있었기에, 담당변호사로서 감사할 따름이다.
헷갈리는 판결들
이 위자료 판결이 난 뒤,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얼마 전에 관련 소송(헹정소송)에서 패소했는데, 어떻게 위자료는 받게 되었냐는 것이다. 고개를 갸우뚱 독자들을 위해 약간 전문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차별로 인정하였음에도 피해자를 위한 어떠한 구제조치도 마련하지 않아서 우리는 두 가지 소송을 진행하였다. 그 중 하나는 행정소송으로서 제천시장의 임용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는 처분무효확인소송이었고, 나머지는 제천시장의 위법한 처분으로 인해 이희원씨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이었다.
작년 11월에 패소했던 것이 바로 행정소송이었는데, 해당 법원은 제천시장의 임용처분은 장애차별로서 위법하고 중대하기는 하지만, 명백할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하였다. 보통 행정처분이 위법하다고 다툴 경우에는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위법성만 인정되면 해당 처분이 취소되는 취소소송의 경우에는 법질서 안정이라는 목적 때문에 제소기간 및 전심절차 등의 제한들이 따르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이희원 선생이 사임한데다가 내부에서 거쳐야 할 소청심사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취소소송이 아닌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고, 무효확인소송에서는 해당 처분이 위법한 것은 물론 그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할 정도에 이르러야 그 청구가 받아들여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행정소송에서 패소하였지만, 제천시장의 임용처분이 위법하다는 것을 인정하였다는 점에는 민사소송과 별반 차이가 없고, 결국 양 판결이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라 하겠다.
우리가 희망을 갖는 이유는
이 판결을 가지고 우리가 이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다음의 세 가지 점 때문이다.
첫째는 재량행위에 있어서 ‘장애차별’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대개 장애차별을 문제 삼을 때, 좌절하는 것은 상대방의 자율성 존중과 맞닥뜨려질 때이다. 사적자치가 적용된다는 이유로 또는 재량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장애차별로서 인정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런데 제천시장이 누구를 보건소장으로 임용할 것인 지가 바로 임용권자의 재량행위에 속하는 사항이고, 이러한 임용권자의 자율성이 인정되는 영역에서 ‘장애차별’로서 위법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 것이다. 만일 이 사건이 장애우라는 이유로 판사 임용조차 거부되었던 1980년대에 소송이 제기되었다면 어찌되었을까. 만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애 차별’결정이 없었다면… 그리고 공동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그 많은 활동들을 하지 않았다면, 과연 ‘장애차별’이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따라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올 수 있었을까.
둘째로는 결과적으로 ‘장애차별’에 대한 입증책임의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및 조사 내용 덕분에 보다 수월하게 ‘장애 차별’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반면 제천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번복하기 위해서는 장애차별이 아니었다는 점에 대하여 보다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했어야 했는데, 이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물론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사전 조사 및 결정의 도움으로 인해 간접적으로나마 장애로 인한 차별이 아니었음을 상대방에게 증명토록 하는 입증책임의 전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으로 ‘장애차별’에 대한 위자료가 어느 정도 현실성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장애차별과 관련된 사안에 있어서 인정된 위자료는 2백~3백만원을 넘지 않았다. 차별을 받은 당사자가 입은 정신적 손해는커녕 실제 소요된 소송비용보다도 낮은 금액만이 인정되어 왔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여러 사정들을 고려한 위자료 금액이 3,천만원인 것이다. 물론 이희원 선생이 받은 상처를 생각해 보면 1억원 전부가 인정된다 할지라도, 회복되지 않겠지만, 그 동안의 경과에 비추어 그나마 현실성이 반영된 위자료로 평가하고 싶다.
정리하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원고청탁을 한 기자로부터 부탁받은 내용에 한정해서 정리를 해 보았다. 제천시 사건은 초짜 변호사인 필자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사건이다. 또한 변호사로서보다는 오히려 활동가로서 이 사건을 다루었기 때문에 보다 냉철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 또한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필자가 이 사건을 진행하면서 한 가지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장애차별’은 위법한 것이고, 이는 어떤 식으로든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길 바랄 뿐이다.
글 안선영(변호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볍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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