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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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은 이번 3월호부터 김진우의 ‘지금 영국에선’이란 코너를 통해 영국의 장애 관련 소식들을 전달합니다. 김진우씨는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등에서 오랫동안 실무를 경험한 현직 공무원이기도 하지만 대학원에서 장애우 정책을 공부하고, 현재 영국 버밍엄대학 박사과정에서‘법과 제도에서의 장애우 차별’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장애우 정책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에서 정책과 제도를 생산하던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사회정책과 차별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 장애관련 단체 등에 관심이 많아, 현재 한국방송(KBS) 제 1라디오에서 한 달에 한번 영국의 장애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함께걸음>에서는 그 달에 소개된 내용을 좀 더 보완하여 실을 예정입니다.
복지국가 개념을 처음 선보인 영국. 그곳의 장애 시민들의 삶, 그리고 다양한 정책과 이슈가 되고 있는 이야기꺼리들 속에서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들을 반추해보고 정책적 방향에 대해 더 큰 그림을 고민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영국 비롯한 유럽 각국 장애우 단체, 장애인차별금지법(Disablility Discrimination Bill) 제정 요구 한 목소리
노무현 정부 출범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 관련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 관련 소식이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이와 관련된 소식을 모아 보았습니다.
먼저 지난 2003년 9월 25~26일 양일간 영국 리즈(Leeds) 지역에서 열린 「유럽에서의 장애인권」이란 컨퍼런스가 열려 참여했는데, 네덜란드, 벨기에 등 17개국에서 100여명이 참석한 이 토론회에서는 장애 인권과 교육·고용·서비스 분야에서의 차별금지와 관련된 여러 논의가 활발하게 토론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유럽장애포럼」의 의장인 스테판 트롬엘(Stefan Tromel)씨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목소리와 이에 대응하는 논리에 대해 3가지로 요약해 설명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첫째는 법안이 도입됨에 따라 발생되는 비용문제입니다. 추가적인 비용발생을 핑계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는 것은 정부가 이 법안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지 그 비용 자체가 부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환경보호정책은 추가적인 사회부담이 있더라도 추진하지 않습니까?
둘째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한 비장애우의 인식과 태도에 대한 것인데 이 또한 법이 제정·시행되면 시행에 따른 여러 일반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장애우도 한 사람으로서의 존엄한 인권을 가진다는 것이 헌법을 비롯한 여러 법령에서 아무리 규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실제 생활 속에서 장애우들을 사회의 주류에 통합시키려는 노력을 연습해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일부 유럽 국가들이 자국의 정치적 상황이 냉담하다고 하면서 미루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까지 상황호전을 위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인지를 되물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테판씨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으면 기존의 고용체계에서 장애우에 대해 벌어지는 차별적 양태가 지속적으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유럽의회의 권고안 제정을 통해 각 국을 압박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결국 장애 자체가 사회통합에 문제가 되는지, 아니면 오히려 사회가 장애우의 사회통합에 걸림돌로 작용하는지에 대하여 진지한 사회적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참, 유럽 컨퍼런스였기 때문에 동양인은 저 혼자였습니다. 식사 때마다 원탁에 앉아 주제 발표 관련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그 내용이 생활영어의 수준을 넘어서 앉아 있는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녁 만찬 때 바로 옆자리에 영국 장애인권위원회(DRC)의 한 직원이 앉아 있어서 현재까지 56건의 차별금지 관련 소송이 제기되었다는 사실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정부와 민간이 10년간 준비해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나라도 법 제정 자체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실 있는 법안을 만들기 위해 차근차근히 무엇이 조사되어야 하고, 무엇이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면밀히 검토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현재 정부에서는 차별금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해 놓고 있지만, 민간단체에서는 「장애 시민들의 권리확보에 관한 법」을 새롭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이 소극적 혹은 제한적 정책이라는 것인데,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법안의 필요성을 민간에서는 제안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여전히 접근 어려운 일반 상가, 장애우 욕구 충족 못해
그러나 정부가 나서 차별금지법 홍보, 접근권 확보 추동
영국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1995년에 제정되었는데, 1998년 1차 개정을 해서 내년 10월1일부터 전면적으로 시행합니다. 즉, 영국의 약 2백만 사업장들은 장애우 소비자가 소비활동을 하는데 전혀 접근성에 문제가 없도록 건물을 내년 9월말까지 개조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 영국 장애인권위원회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각 도시의 주요 거리에서 장애우가 가게에 들어가는데 아직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또 ‘2003년 시장조사’에서 응답자의 48%가 전혀 사업장을 개조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한편 런던 시내 선술집인 펍(Pub)에 대해 조사를 나선 Camden Group 소속 장애우 직원의 3/4이 그들의 욕구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합니다.
결국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정한 접근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법원에 기소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개조 또는 직원에 대한 교육이 오히려 판매액 증진에 호재가 될 수 있음을 정부에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노동부에 해당하는 영국 노동연금부에서는 장애우의 구매소비력이 540억 파운드에 달한다고 하는데, 그 장애우와 함께 쇼핑을 하는 가족이나 보호자까지 합치면 그 배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법이 변하고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깨어나라”고 장애우 장관인 마리아 이글은 충고하고 있습니다.
결국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사업에 대한 또 하나의 부담이라기보다는 통합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으로 간주되어 한다는 것입니다.
영국 또한 예산 탓하며 시설 해체 정책 답보
영국에는 다양한 장애우단체와 조직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중의 최근 터닝포인트(Turning Point)라는 사회보호단체가 정신지체장애우를 장기 수용보호하고 있는 시설이나 병원을 하루라도 빨리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영국 정부의 시설정책을 전면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영국정부는 지난 1971년부터 지역사회보호정책의 일환으로 대규모 수용시설과 병동을 없애는 한편, 지역사회 내에서 가정생활 형태의 주거시설을 제공하여 이들의 독립생활을 지원해 주는 정책을 꾸준히 펴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2년 전인 2001년, 이러한 장기보호시설을 2004년 4월까지 모두 없애겠다고 발표한 바도 있습니다.
그러나 터닝포인트 단체에 따르면, 16개 장기보호시설에 보호되어 있는 750여명이 관련 예산 부족으로 인해 내년 4월 이후에도 여전히 이 곳에 보호되게 되고 심지어 그 중의 일부는 2006년까지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결국 영국 의료보장제도의 재정부담 경감대책 때문에 생기는 긴 대기자 수(Long Waiting List)의 폐해를 정신지체장애우가 가장 크게 겪는 셈이 되고 말았다고 보여집니다.
“정신지체 장애우는 의료적 환경 속에 가두어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가 30년전에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이러한 장기보호시설이나 병동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복지국가의 원조인 영국으로서는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런던 거주 50%의 장애우, 욕설과 따돌림으로 고통 받고 있어
지금 현재 런던의 시장은 켄 리빙스톤입니다. 그는 최근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욕설과 따돌림으로 고통받고 있는 장애우가 50%나 된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충격적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이는 런던에서 열린 장애관련 컨퍼런스와 때를 같이 하여 발간된 런던거주 장애우 설문조사에서 밝혀진 것입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공공기관이나, 병원, 사회복지사들로부터 멸시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서도 가끔씩 잔돈을 받지 못하거나 아예 장애우 자신의 돈을 훔쳐가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이에 대해 런던 시장 리빙스톤은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 전에 흑인이 거리를 걸어 갈 때 그들을 깜둥이(nigger) 라고 부르고 침을 뱉으면서 명예를 손상시켰던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지요. 그냥 장애우는 상당히 불편할 것이라는 정도로 생각해 왔는데 실상은 이를 훨씬 뛰어넘어 폭행을 당하거나 멸시 당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충격적인 것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문제의 심각성과 정도가 이제 확인된 만큼, 앞으로 런던시는 무슬림 또는 유대인에 대한 공격을 다루는 경찰의 노력만큼 장애우에 대한 폭력성도 함께 심각하게 다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 컨퍼런스에 참석한 장애우 장관 마리아 이글도 “이러한 문제를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곳이 다름 아닌 런던시고, 장애시민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관내 시설물들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개선해 나가는 모습이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하면서 “훌륭한 실천은 또한 보기에도 좋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결국 복지 선진국 영국에서도 세계 전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장애우 차별이 예외일 수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행정기관이 정면으로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설계해 나가는 모습은 정말 인상에 남습니다.
장애 이유로 학교생활에서의 의도적 배제는 차별
우리 부모들도 시스템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풀 수 있어야
흔히 영국 초등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예수 탄생과 관련한 성극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런던 동쪽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는 이러한 성극의 리허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른 학생들은 크건 작건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모두 참여 했는데, 유독 장애우 학생만 그 과정에서 소외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교육 행태에 대해 법원은 “학교에서는 그에게 행한 차별적인 교육행태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여섯 살 된 리부니아크(Lee Buniak)라는 이 친구는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그가 유일하게 장식을 하거나 가족들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제외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학교 디스코 파티 - 학교 강당에 조명과 무대를 설치해서 아이들끼리 춤을 추는 행사 - 에도 초대가 되지 않은 유일한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장애인권위원회(DRC)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매우 경악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논평을 하였습니다. 법원은 학교 이사진들에게 글로서 해당 학생과 부모에게 사과토록 하고 취약아동을 돌보는 전체 시스템을 총괄 조사토록 명령했습니다. 아울러 그들은 장애우와 관련된 교육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수강하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 졌습니다.
원래 리(Lee)는 학교를 다니기 전에는 늘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즐거운 아이였는데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교내생활에서 제공하는 도움의 부족으로 화를 내고 좌절을 많이 경험하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지금 리(Lee)는 어머니의 의사에 따라 다른 학교를 찾아 전학을 갔는데, 거기서는 아주 잘 정착하여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아울러 문제가 된 그 학교 제니 하몬드 초등학교의 이사장인 샐리 래번은 법원의 명령에 따라 사안을 종합적으로 조사중에 있고 새로운 전기를 맞아 학생능력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에게 교육평등권을 부여해 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살펴보면서 정신지체 장애우를 자녀로 둔 우리 어머니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제 여러 복지관이나 단체에서 부모모임이 만들어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여전히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를 토해 내기 보다는 사회적인 억압을 내면화하는 모습이 눈에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이제 부모님들이 자신이 죽은 후에 남겨진 자녀들의 삶에 대해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자녀들을 위해 보다 훌륭한 사회시스템을 남겨주기 위해 삶의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는 차별의 실태를 사회에 알리고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들을 모아보는 작업이 이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글 김진우(영국 버밍엄대 박사과정) / 삽화 강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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