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장려금 축소파동, 무엇이 문제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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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동부는 고용장려금 지급 수준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어 있다며, 부담기초액에 근거한 산정방식이 아니라 정액제로 하향 조정해 지급하겠다고 고시했다. 올 1월부터 이 장려금 지급방식을 적용하면, 1인당 47만 5천원에서 30만원(경증남성장애우)으로 크게 줄어든다. 사업주들은 벌써부터 ‘장애우 고용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서는데…
높게 책정한 고용장려금, 기금 고갈 주범?
노동부는‘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기금(이하 기금)’고갈 위기가 현실적으로 닥쳐오자, 가장 쉽게 피해갈 수 있는 방법으로 고용장려금 축소를 선택했다. 지난 해 2003년 11월 기준의 자료를 살펴보면, 기금 재원의 대부분이 되고 있는 고용부담금은 1천 74억원인데 반해, 지출되는 고용장려금은 1천 116억원. 2002년까지만 해도 고용부담금 증가에 비해 고용장려금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는 뚜렷했지만 (2002년 부담금은 888억원, 고용장려금은 818억원으로 그나마 부담금이 많은 수준이었음) 그래도 지출보다 수입이 많은 탄탄한 재정구조였다. 그러나 상황은 1년 사이 역전되고 말았다. 이제 거두어들이는 돈보다 쓸 돈이 많아진 셈이니 다른 방식의 재원 구조를 만들지 않는 한 장애우직업정책 시행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장려금지급현황
노동부, 구멍은 놔두고 금간 곳만 살짝 가려90년 「장애인고용촉진등에관한법률」을 시행하면서 거두어들이기 시작한 기금은 2002년까지 총 9천 232억원, 1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기금은 의무고용업체가 장애우를 고용하지 않아 낸 고용부담금을 주 수입구조로 하고 있다. 기금이 많이 쌓였다는 것은 낮은 의무고용률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에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금은 장애우들이 직업능력을 쌓고 직업환경을 개선하고 지원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기금이 많이 적립되어 있다는 것은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그 무엇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 돈을 적절하게 제대로 사용해 장애우의 일반 고용률이 높아지고 다양한 방식의 직업활동을 통한 생존권이 보장된다면 문제는 없는 것.
하지만 핵심은 기금이 고갈될 만큼 돈을 많이 써서 과연 ‘장애우들이 원하는 바대로 되었는가’와 ‘국가책임이라는 것이 실천되어 왔는가’ 하는 점이다. 수요자인 장애우 입장에서 보면, 그 지점은 여전히 개운치 않다는 평가다. 물론 장애우 고용은 교육과 의료, 사회적 환경 개선과 인식의 성숙 등 종합적인 접근과 거시적 관점이 필요하다. 그래서 길게 내다보고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하지만,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느냐는 것이 장애계의 반응이다.
그 이유는 노동부가 기금 고갈의 원인분석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한 고용장려금 탓으로만 돌리고 있기 때문. 애초 그렇게 정책을 결정한 주체는 노동부이고, 99년부터 기금 고갈 위기를 예상했던 장애계에서 많은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했지만 철저한 분석과 자기반성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경영계 역시 일반회계 예산 확보 없이 장애우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을 위한 비용을 절대적으로 기업의 고용부담금에 의지하고 있어, 누적기금은 매년 감소하는 추세를 보일 수밖에 없고 기금 고갈의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었다. 국가가 나몰라라 하는 정책을 왜 기업만 책임져야 하는가란 제기는 설득력 있는 주장 아닐까.
한신대 재활학과 오길승 교수 역시 “기금 활용과 정책 개선방안을 5년 전부터 지적해왔지만 국가책임은 고사하고, 기금은 명확히 잘못 사용되었다. 장려금 축소 자체보다 기금이 왜 고갈되었는지에 원인 분석을 명확히 짚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며 비판할 때 귀담아 듣지 않고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은 정부에 실망감을 표시했다.
▲2004년1월부터적용되는고용장려금및 조정방안
기금 고갈, 철저한 원인 분석 선행돼야장애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기금 고갈의 원인은 높은 장려금 지급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하나의 원인이야 되겠지만, 더 큰 근원적 문제를 제쳐두고 어떻게 고용장려금 탓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선 전문가들은 공단의 방만한 운영을 문제삼았다. 매번 국정감사에서 “사업주들이 장애우를 고용을 하지 않아 낸 부
담금은 이렇게 기금으로 쌓이고 있는데, 왜 제대로 쓰질 않느냐”며 질책을 받기 일쑤였는데, 그 때 당시 급하게 결정한 것이 ‘대규모 직업전문학교 건립’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장총의 남세현 기획팀장은 “기금 중에서 뭉터기 돈이 들어간 부분은 바로 직업훈련학교 건립이었다. 그러나 직업훈련학교가 환영받는 시스템인가? 조사결과에서도 나왔지만 훈련받고 나와 취업을 해도 1-6개월 사이에 대부분 다 그만둔다. 일반 직업훈련원 등은 각 지역마다 있다. 새로 건립하지 않아도 편의시설을 마련하고 필요한 소프트웨어 등을 지원하면서 지역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안을 세웠더라면 오히려 사회통합 이념에 더 부합하고 예산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며 쓸데없는 것에 예산을 낭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책임 선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대책을 마련한다면, 모두들 또 털어먹으면 어떻게 하지? 라는 불신만 가져올 것”이라며 정책형성과 결정에 책임이 있는 주무부서의 자기혁신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공단의 한 관계자는 “제대로 된 훈련이 되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전문적이고 소규모화, 다양화해야 한다. 노동환경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직업변동이 너무 빨라 적응하면 또 다른 것으로 넘어가는 실정이다. 직업훈련 환경을 만드는 것만도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데,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비판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공단의 운영과 관련해서는 13개 지사 운영비, 전국 7개 직업전문학교를 건립 비용 2천여 억원, 또 매년 그 운영비만 200억원 정도가 고정적으로 지출되고 있어 장애계에서는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기본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있어 국가가 일반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고 기금으로 사용하는 것은, 음식을 ‘이가 아니면 잇몸으로 씹으라’는 게 아니라 ‘잇몸도 없는데 이로만 해라’는 격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동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국민연금관리공단, 건강보험관리공단 등 타 공단과 관리운영비를 비교해보아도 기금에서 전액을 충당하는 건 장애인고용촉진공단밖에는 없다.
눈앞의 실적에 급급한, 엎치락 뒤치락 정책
90년부터 99년까지 0.5%내에 머물렀던 장애우 고용률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정부의 크나큰 과제 중 하나였다. 2001년 8월 국정감사에서 오세훈 의원은 ‘이대로 가면 2003년에 기금 고갈’이란 보도자료를 냈는데, 산재장해인과 국가유공자를 장려금 지급대상에 포함했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노동부는 1999년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산재장해인과 국가유공자를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장애우 기준에 포함했는데, 이 영향을 받아 고용률은 2002. 12월 현재, 1.12%라는 획기적 증가 추세를 나타냈다. 근 10년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다가 장애우 범주가 확대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증가한 측면이 있다해도, 수치상으로는 2배의 증가추세를 보인 것은 대단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2002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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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장해인 포함은 노동부와 경영계의 합작품?
장려금 지급대상 기준에 산재장해인을 포함시킨 것을 장애계에서는 경영계와 노동부의 합작품(?)으로 보고 있다. 상승 기미를 보이지 않던 고용률은 2배로 뛰었고 고용부담금을 내던 기업은 고용장려금을 받는 처지로 바뀌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 아니었냐”는 항간의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한국산재장해인단체연합회의 박기화사무국장 역시 “우린 이 법의 적용을 받도록 주장한 적이 없다. 민간에서는 산재장해인을 50만명으로 추정하는데, 대부분 노사단협을 통해 산재노동자는 원직 복직을 관철시키고 있다. 산재장해인을 포함했다고 하지만 이 법의 수혜를 받았다는 것은 아주 미미하다”며 그 역시 의미를 축소했다.
그래서 장애계는 2001년 산재장해인을 장애우 기준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했었다. 장애우 고용률만 높이기 위한 범주 확대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면피용 제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계에서는 산재보험법상의 적용을 받는 산재장해인이 약 20만명(1-9급: 약 6천명/10-14등급: 약 14만명)일 것이라고 추산하며, “이를 제외하는 규정은 기업이 채용할 수 있는 장애우 대상자를 대폭 축소하는 조치로서 장애우 채용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본 법의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경영계는 “국가도 의무고용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데다 부담금도 내지 않는 등 어떠한 책임도 함께 하고 있지 않은데, 왜 기업만 책임을 전가하는가”라며 ‘말뿐인 국가책임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반반의 입장을 받아들여 노동부는 2003년 3월부터 10-14등급의 경증 산재장해인을 의무고용인원산정에서 제외토록 시행령을 개정했다.
그러나 노동부 산재보험과 또한 지난 2003년 7월부터 산재장해인이 재취업해 1년 이상 근속하면 사업주에게 1인당 69만원 가량을 지급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중복 수혜는 피하고 있다지만 넉넉한 재원을 확보하고 있는 산재보험에서 산재장해인의 고용을 적극 지원하라는 대안도 제시되고 있고 노동부 또한 장기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혀, 앞으로 1-9등급 산재장해인 고용 지원금이 다른 재원을 통해 나갈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종합적 검토와 대안 마련 시급
지난 2003년 12월 30일, 노동부가 고용장려금 액수를 하향 조정해 일방적으로 고시하자, 장애우단체 활동가들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실에서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그들은 집에도 가지 못한 채 2004년 새해를 투쟁현장에서 맞이했다. 그리고 1월 6일, 만족스런 타결은 아니지만 그나마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고 농성을 풀었다. 한국장애인연맹 등 약 21개 단체로 구성된 「장애인고용장려금축소저지를위한범국민대책위원회」는 ▲장려금 인하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노동부, 복지부, 장애계, 기획예산처 등 직업정책의 주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안을 논의할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하며 ▲기금 외 일반회계나 고용보험, 산재보험에서 재원을 확보하는 다각적인 방안을 노동부가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노동부는 재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방안과 장려금 인하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보완 조치를 시급히 마련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공대위 측은 전달했다. 이를 위해 조만간 민간 참여가 보장되는 위원회 형식의 구조를 마련할 것이라는 것이 노동부의 계획이란 것이다. 그러나 최근 기획예산처에서 나오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와 복지부, 노동부, 장애계 3자의 테이블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애우 직업정책에 대해 ‘사회연대책임론’만을 강조했지 국가는 의무고용과 예산 투여 부분에서 쏙 빠져 있었는데, 여전히 그러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근 10년간 단 한 푼도 내놓지 않고, 올 해 겨우 일반회계에서 30억원 산출한 것으로 생색이나 내려는 무책임한 국가의 태도는 법 제정 이후 끊임없이 지적되어 왔던 문제의 핵심이다. ‘국가책임’을 가장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칼자루는 기획예산처가 얼마나 예산을 배정하여 국가책임론을 실제적으로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그러나 정부는 또다시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고 있다. 고용장려금 축소 파동이‘국가책임’이라는 문제의 핵심까지 접근되어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 발휘해야
일각에서는 고용장려금 축소 파동을 ‘오히려 기회’라고 보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예산을 일반 회계로 하고 정책 전반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는 것이다. 노동부와 공단이 그동안 비판을 외면했던 것은 돈이 쌓여있는, 즉 ‘배부른 돼지’였기 때문이란 것. 따라서 노동부와 공단이 지금의 위기를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반성이 전제가 되어야 하고, 장애계와 함께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관계자들은 또 다시 형식적이고 단기적 수습성 정책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장애계의 관심과 집중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은다. 장애계가 반성할 부분도 적지 않다는 것인데, 노동부 장애인고용과의 장미혜 사무관은 이번 장려금 축소 고시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실은 예상했던 것보다 장애계의 반발이 심하지 않아 놀랐다. 장려금 축소가 고시되면 대규모 집회 등 심한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쉽게 해결된 것 같다” 고. 그러면서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는데, 장애계는 무기력함에서 나오는 한숨을 내쉬어야 하는 것 아닐까.
“장애우단체는 당장의 이익에만 급급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강화할 생각만 한다. 기금이 있을 때 돈 쓰기 위해 돈에만 관심을 보인다”는 장애계 관계자의 가시 돋힌 말을 새겨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글 홍여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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