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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기획 2] 복지패러다임 바꾸는 "의료생활협동조합"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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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중심의 한계를 넘어〉
몇 해전의 일이다. 지금은 삶의 버거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인데, 그이와 처음 대면했던 것은 우연찮은 전화 한 통이었다. 그는 대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죠? 장애우 인권 문제는 거기서 다루죠? 내 문제 좀 풀어주쇼. 아파는 죽겠는데 돈도 없고 가족도 없다고 병원에서 나가랍디다. 난 산소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몇 분도 못 가서 죽어요. 근데 나보고 돈 없다고 나가라니..그럼 난 어떻게 합니까? 그냥 이대로 죽으란 말입니까?”
당시 병원을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는데, 병원에서도 악다구니만 쓰는 그이를 이기지 못했는지 결국 다른 병원을 알아보지 않아도 되었다.
다분히 의료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건강권이라는 말이 생겼듯이 건강한 삶,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건 당연한 권리임에도 당시에는 현실적 조건이 미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의식의 부재와 체념, 한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아픈 사람들,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을 한 두 번 본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가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이는 큰 산소통을 매고 다녀야 했고, 휠체어에 의지했고, 혼자였다. 그이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건강권의 문제는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오래된 질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다. 아프다는 것은 단순히 병이 난 상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서, 내 몸에 대해 무관심하고 전문가의 일이라고만 치부해서, 누군가 함께 해주지 않아서..그렇게 존재와 관계에 대한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해서 아닐까.
건강과 의료의 문제는 단순한 치료 행위로 그치지 않는다.

〈‘자치를 통한 건강한 삶’실천의 장〉
건강 문제를 의사, 간호사, 약사 등 전문가에게만 맡기지 말고, 거대 병원과 첨단 의료 장비만 쫒지 말고 ‘나’가 주체가 되어 지역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건강한 삶, 건강한 마을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낮지만 옹골차게 들려오고 있다. 바로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 운동.
지역 주민이 건강과 의료의 문제에 있어 주체가 되어 서로의 보살핌으로 생활상의 문제를 해결해가자는 자발적 협동조직을 건설하자는 운동이다.
우리 머릿속의 의료는 큰 병, 불치병, 암, 종합병원, 첨단의료장비, 거덜나는 살림, 많은 보험료 등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치료’와 ‘전문가’가 중심이 된다. 그러나 의료생협 운동에서의 ‘건강’은 가족과 이웃 서로간의 보살핌, 돌봄, 그리고 언제든지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전문가’가 중심과 변방의 관계가 아닌 상호 협력적인 존재로서의 자리매김을 추구한다. 때문에 의료를 매개로 건강한 마을 만들기를 꿈꾸는 생활공동체의 성격이 강하다. 출자를 한 조합원과 임직원,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이 함께 세운 병원(혹은 의원)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에서의 건강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건강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와 실천의 장이다.

〈일본 의료생협 연수를 통한 교훈 〉
지난 6월 28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강당에서는 10년의 역사를 지닌 안성의료생협을 비롯해 현재 준비중인 단위까지 모두 10여 개의 의료생협이 모여 「의료생협연대」출범식을 가졌다. 2000년 들어 의료계의 주목을 받으며 원주, 서울, 대전지역 등으로 확대되었으며,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10여년의 의료생협 활동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데 뜻을 모은 것이다.
의료생협연대는 생협간 정보교류 및 연대, 타 시민사회조직간의 연대, 의료생협의 연구 및 교육, 사회정책개발, 신규 의료생협 지원활동, 국제교류활동 등을 펼칠 계획이다.
그 중에서도 한일간 의료생협 조합원들의 교류는 그 동안 개별적으로 진행되어 오기도 했는데, 현재 준비중인 함께걸음의료생협(준: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의료센터 중심) 전주의료생협(준), 신천연합병원은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4일까지 일본 오이타현을 방문하여 의료생협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구체적 경험을 공유했다. 현재 일본 약 230만명의 조합원이 119개 의료생협에 가입되어 있는데, 오이타현은 중소도시의 규모에 20여년의 의료생협 역사를 갖고 있다.
함께걸음 의료생협의 이일영준비위원장(아주대 재활의학과 교수)은 “재활의학이란 것을 공부를 할 때부터 지역사회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재활이란 치료와 더불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환경이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역의 주민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수조건인 케어(care)가 일본사회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장애우에게 의료생협이 주는 의미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며 이번 일본연수 참여의 목적을 설명했다. 또한 지역의 빈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의사들이 십시일반 출자를 해 설립한 시흥시 신천연합병원 내과 권선옥 과장은 “병원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변화하는 의료환경 즉 의약분업, 의료수가 인하, 인건비 상승, 의료소송 증가, 의료공급의 변화, 의료소비자의 선택 기준의 변화들로 중소병원은 생존의 기로에 놓여있다. 특화된 병원(예 노인전문병원)이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는데, 과연 비슷한 일본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가가 궁금했다. 그러나 우문이었다. 의료생협은 처음 출발부터 지역주민의 병원으로 수익발생보다 조합원의 건강과 혜택의 환원이 중심이다.”라고 연수 소감을 간단히 밝히며, “장애우, 노인, 이주노동자, 여성 등 사회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질병에 잘 걸리는데 이들에게 단순한 의료행위의 제공으로는 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의료외적인 지원을 어떤 자원으로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사회복지와 재활의 차원에서 의료인을 포함한 전 지역 공동체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다. 일본 의료생협 조합원의 자발적 참여와 병원의 투명하고 민주적 운영을 보며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로 의료생협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실제 오이타 의료생협은 고령자를 위한 데이케어센터 운영, 가정방문사업소, 가정도우미 교육 등 건강을 위한 지역주민과 조합원 참여 구조를 갖고 있었으며, 지역의 장애우 시설과는 사회연대 차원에서 건강검진을 해주거나 비상시 병원과 연결 시스템을 갖고 있는 등 지역복지를 위한 장으로 자리매김 해 있었다.

〈지역 주민 참여의 장「반 모임」〉
연수팀원들이 하나같이 가장 좋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바로 「반모임」이다. 1년에 3-4차례 진행되는 조합원들의 모임으로 의사와 함께 서로의 건강을 체크하고 건강교육을 받는 것이다. 10여명 정도가 조합원의 집에 모여 염분검사나 골밀도검사, 혈당체크 등 소소해 보이지만 일상의 건강함을 되짚어보고 스스로 자기 건강을 체크, 설명 또한 자세히 들을 수 있고, 이 시간에는 서로가 만든 음식을 갖고 와 그간의 생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지역사회 공동체의 이웃이라는 친숙함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생협이 지향하는 치료 집중에서 벗어나 서로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기 몸에 관심을 갖고, 교육을 통해 환자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반모임」이다. 일본 의료생협은 이런 반모임 활동을 토대로 환자와 의사간의 대등함으로 신뢰를 구축하고 있었다. 권선옥과장은 이를 두고 “우리들의 의견이 존중되고 우리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우리의 병원”이라고 의료생협의 의미를 단적으로 표현했다.

〈의료생협, 건강한 삶 지속가능 〉
얼마 전 우리 나라 협동조합 운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원주지역에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가 결성되었다. 공동육아협동조합, 생협, 의료생협, 자활후견기관, 성공회 나눔의 집 등 서로의 성격이 다른 협동조합이 ‘지역’을 화두로 모인 것이다. 최혁진 의료생협 기획실장은 녹색평론 71호(2003. 7-8월호) <협동과 자치, 생명의 도시를 향하여>란 제목의  글을 통해 “원주라는 지역에 사는 즐거움을 협동조합운동을 통해 실현하기 위해 협의회가 결성되었다며, ▲지역자립의 경제 구축 ▲완전한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 ▲생태적이고 인간적인 도시를 만들어가기 위해 자발적인 참여와 자치를 위한 협동조합운동은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생협을 포함해 모든 협동조합운동이 거대 자본이 앞세운 개발과 성장논리에서 벗어나 지역의 살림과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현대 사회는 상품과 자본으로 인간의 관계가 설정되고 있는 구조로 가속화되어 가고 있는데, 스스로의 힘과 지혜를 믿으며 이를 벗어날 대안을 실천할 때에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인격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며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을 철저히 격리시키고 수용하는 차원에서 그치고 있는 현재의 복지시스템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협동조합운동이 서로 상생하는 진정한 의미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며,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통해 자연과 인간, 사람과 사람의 조화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생협은 건강권 실현과 사회복지의 의미를 다른 패러다임에서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큰 병원과 첨단 의료장비에만 의존하고, 국가나 자치단체의 역할만을 요구하고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실제 내 몸에 대한 관심과 건강한 실천 생활, 내가 살아가는 터에 발 딛고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 때라야만 바로 건강한 삶이 지속가능 하다는 것이다.
의료생협은 사회복지사와와 대상자, 의료진과 환자, 공급자와 수요자의 단순 구도를 넘어 모두가 주인, 주체가 될 수 있는 실천의 장이다.

글·사진 홍여준민기자

▶ 의료생협의 환자권리장전

환자의 권리와 책임
환자에게는 투병의 주체자로서 아래와 같은 권리와 책임이 있다.

알권리: 병명, 병상,(검사결과를 포함함), 병의 진전 예측, 진료계획, 치료와 수술(선택의 자  유, 그 내용), 약의 이름과 작용, 부작용, 필요한 비용 등에 대해 납득될 때까지 설          명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자기결정권: 납득될 때까지 설명을 들은 뒤 의료 종사자가 제안하는 진료 경과 등을 스스   로 결정할 권리
개인신상 비밀을 보호받을 권리: 개인의 비밀이 지켜질 권리 및 사적인 일에 간섭받지 않을 권리
배울 권리: 병과 그 요양방법 및 보건, 예방 등에 대해 학습할 권리
진료받을 권리: 언제든지 필요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사람으로서 알맞는 방법으로 받을 권리, 의료 보장의 개선을 나라와 자치단체에 요구할 권리
참가와 협동: 환자 스스로가 의료종사자와 함께 힘을 합쳐 이들 권리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갈 권리

[출처 http://www.medcoop.or.kr]

▶ 「의료생활협동조합연대」회원단체

의료생협연대 http://medcoop.or.kr
안성의료생협 http://medcoop.or.kr/ansung
인천평화의료생협 http://medcoop.or.kr/inchon
안산의료생협 http://medcoop.or.kr/ansan
원주의료생협 http://medcoop.or.kr/wonju
대전의료생협 http://www.mindlle.org
서울의료생협 http://medcoop.urm.or.kr
전주의료생협(준) http://medcoop.wo.to
함께걸음 의료생협(준) http://.cowalk.or.kr/medical_cowalk/main.asp
청주의료생협(준) http://medcoop.or.kr/cheong

▶그 밖에 의료생협을 고민하는 곳
의료생협을 고민하는 학생 모임 http://www.freechal.com/medcoop
새실로 하늘 짜기(원주 의료생협을 고민하는 학생모임) dreamcrane@hanmail.net
도봉시민회 dhc@dhc.or.kr


 

 

작성자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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