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정부의 무관심에 신음하는 원폭 2세 환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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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정부의무관심에신음하는원폭2세환우들 |
올해는 미국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핵병기인 원자폭탄을 일본에 떨어뜨린지 58년째 된다. 이에 지난 8월 5일, 9개 인권사회단체들은 ‘원폭 2세 환우(患友)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원폭2세 환우 공대위)’를 꾸려 국가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한국 원폭 피해자와 원폭 2세 환우들에 대한 생존권 보장 한국 원폭 피해자와 원폭 2세들에 대한 실태조사 일본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피폭 2세 건강 영향 조사’에 같은 원폭 피해자인 한국 원폭 2세들도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전쟁과 핵’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원폭 2세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원폭 2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함께걸음이 취재했다.
〈우리는 버림받았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상공에서 폭발한 원자폭탄은 중심지를 섭씨 수천만도로, 수십만 기압으로 만들며 폭풍과 열선, 방사능으로 변해 도시를 덮쳤다. 반경 1킬로미터 안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소사(燒死) 혹은 압사(壓死) 당했다. 3.5킬로미터에 있던 사람까지도 화상을 입었다. 그 곳에 조선인이 있었다. 왜 그들은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었을까.
한국의 원폭 피해자는 식민 역사와 전후의 시대적 상황을 빼놓고는 이해할 수 없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대륙 침략 근거지였다. 많은 군수공장과 탄광이 있던 도시. 일본의 극심한 식민지 탄압과 농촌 수탈 때문에 살 길이 막막해진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중국이나 일본으로 이주했고, 패전까지 수많은 조선인들은 이 곳에 강제로 끌려와 죽도록 일했다.
1945년 피폭 후 약 7만 여명으로 추정되는 조선인 피폭 피해자 중에서 4만명이 폭사(爆死)당했다. 살아남아 귀국한 조선인은 2만 3천여명.(한국피해자현황.1985) 그러나 모진 시간을 견디고 돌아온 그들을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반세기동안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정부는‘한국 정부의 과실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라며 아무런 대책도 보상도 안했다. 일본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청구권을 더 이상 행사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일본에게 8억불을 원조 받았음)을 근거로 전후 피해보상은 ‘완전히 최종적으로 끝난 상태’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내외 여론에 밀려 1990년에 원폭 피해자들에게 40억원을 ‘인도적 입장’이라는 강조 하에 지원한 적은 있다. 그러나 이 ‘인도적(人道的)’에는 피폭자 치료 및 원호는 전후보상과 밀접한 문제이므로 이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뜻이 숨어 있다.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미국의 입장? ‘승전국이 보상하는 거 봤냐’는 식이다. 엄연히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책임지겠다는 가해자가 없다.
이에 대해 김은식(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사무국장)은 “한마디로 ‘무관심’이죠. 일본에서 원조 받은 돈, 사실 전쟁 피해자들은 거의 만져보지도 못했습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누르고 상당 부분을 경제 개발에만 쏟아부었죠. 1980년대 후반에 민주화 열기가 분출됐지만, 이 또한 당시의 정치적인 민주화나 노동문제에 집중됐지요.
과거의 불행했던 역사 문제, 그러니까 원폭 피해자 문제, 일제에 의한 강제 동원, 한국전쟁 중의 민중학살, 월남전 고엽제 피해, 정신대 문제 등은 이미 지나간 문제로 치부된 겁니다. 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하다보니까 정책에서도 밀리고 있는 거죠. 피해자들은 어떻게 보면 한국 역사에서 이들은 사회적인 희생자였습니다.”고 설명했다.
그럼 지금까지 살아있는 피해자는 얼마나 될까.
한국원폭피해자협회(1967년 결성)에 따르면 협회에 등록된 원폭피해자 1세대는 2천 2백여명. 그러나 미등록 생존자까지 합치면 1만 3천여명에 이를 것 정도로 추측했다. 그리고 2세는 8만명, 이 중 질병을 앓고 있는 2세들은 2천 3백여명에 이를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원폭 피해자들은 어떻게 죽었고, 또 어떻게 살아왔을까.
현재 이들에 관한 공식적인 통계나 자료는 거의 없다. 여북해야 12년 전 보건사회연구원에서 원폭 피해자 1천 9백 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건강관련조사 자료를 인용해야 할 판이다. 조사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이 없다는 반증이다.
〈원폭 후유증, 유전되는 것인가〉
원폭 후유증이 유전되는냐 그렇지 않느냐의 논란은 매우 중요한 지점을 가지고 있다.
만일 ‘유전된다’라고 증명되면 한미일 세 나라의 전후보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다시 말해 전후세대의 원폭 피해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유전되지 않는다’라고 인정되면 원폭 2세, 3세 등은 국가로부터 보상받을 길이 요원해진다. 하지만 계속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느 쪽인지 결론 내지 못하고 있다.
‘원폭 2세’는 부모 중에 한 명 혹은 양쪽 모두가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서 1945년도에 다량의 원자폭탄에 피폭된 사람의 자녀를 가르키는 말이다. ‘원폭 2세 환우(患友)’는 원폭 2세 중에서도 어떤 특별한 질환을 가지고 있고, 그 원인이 다른 어떤 환경적인 요인보다는 부모가 당한 원폭에 의한 영향력 때문이라고 스스로가 생각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니까 원폭 2세라고 해서 모두 유전적인 결함이 있거나, 질병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논란 속에 유전될 개연성이 높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김형률(원폭2세환우회)씨는 “작년 12월에 네이쳐라는 잡지에서 이에 대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쥐를 방사능에 노출시켰을 때 그 영향이 3대까지 유전된다는 내용인데...게놈 프로젝트로 보면 쥐가 인간의 유전자와 90%이상 흡사하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전문가나 시민사회 단체에서 더 적극적으로 규명하고 활동해준다면 충분히 사회적으로 호소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새로운 돌파구가 되길 기대하고 있었다.
〈치료비와 생계비로 신음하는 원폭2세 환우들〉
원폭 2세 환우들은 그들의 부모세대가 겪었던 아픔의 연속선 상에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더 가중된 고통 속에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
김은식씨는 “원폭 피해자들은 극빈층인 경우가 많습니다. 각종 질병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직업을 잃게 되고, 따라서 자녀들을 교육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러면 2세들은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놓치면서 사회적 지위도 열악해지죠. 여기다가 질병까지 생기면 그 3대까지도 영향이 미칩니다. 때문에 원폭 피해자들에게는 특별한 관리와 사회 관심이 필요합니다.”고 강조했다. 원폭 1세대인 부모가 어려운 상태에서 태어난 2세는 이미 수십년동안 고통 속에 있어왔다는 얘기다.
지금 원폭 2세 환우들에게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것은 ‘치료비’와 ‘생계비’문제다.
강주성(건강세상네크워크 대표, 원폭2세 환우 공동위 공동집행위원장)씨는 “일단, 생계와 치료에 대한 지원이 급합니다. 원폭 문제가 정치적, 민족적인 사안으로써 풀려지는 것은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두 번째일 겁니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한국 정부가 일본을 ‘가해자’라고 생각한다면, 자국민의 고통을 대신해서 일본에 항의해서 성실히 돈을 받아다가 나눠주기라도 해야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조차 안하고 있어요. 국민들이 한국 정부를 ‘임무 방기’로 책임을 물어야합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국내에는 원폭 피해자들을 위한 전문의료기관도 없다. 물론 원폭 피해자들을 위한 정책적인
지원도 없다.
1994년 원폭 피해자인 곽기훈씨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폭자가 일본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폭자’권리를 박탈하여 현재 병상에서 5년간 인정된 건강관리수당을 취소시킨 것에 불복에 승소한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단, 피폭자 수첩을 발급받아야 함)에게도 건강검진과 건강관리수당(약 35만원정도)를 올해 9월부터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본까지 가서 받는 건강검진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이미 고령인 피해자들의 생활여건까지(피폭자 수첩을 발급 받으려면 일본까지 가야하는데 경비가 약 100만원에서 150만원이 든다고 한다)감안하면 생색만 내려는 계산임이 뻔하다. 그리고 원폭 2세의 문제는 끝내 외면당했다. 정부도 이것을 개인에게만 맡겨두고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피폭 피해자들에게 어떤 지원을 하고 있을까.
일본은 ‘원자폭탄피폭자에대한원호에관한법률(원호법)’(1994년) 등에 의해 무료건강검진과 의료비 지원, 의료특별수당, 건강관리수당, 보험수당, 개호수당, 장제비 등을 지원한다. 일본은 피폭된 국민들에게 1998년도 한해동안 약 1조 6천억원을 썼다. 하지만 원폭 2세들은 예외다. 일본에서도 2세들은 ‘전후 세대 인정’과 맞물려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원폭 1세대와 2세대들이 이제에서야 이슈가 되는 이유는 현재 사회 관심사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회적 시대적 상황, 즉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제기되고 있는 전쟁 문제와 북한이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핵문제, 이를 빌미로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주변국가 등 때문에 이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김은식씨는“정부는 현황 파악도 못하고 있어요. 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무슨 치료가 필요한지 말이예요. 정부가 특별조치법을 만들어서 전체 현황을 파악해야 종합적인 검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계속 개인 문제로 치부하고 있어요. 그러나 원폭 2세 문제는 1세대부터 3,4세대까지 계속되는 사회적인 문제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원폭2세 환우 공대위는 그동안 2세들에 대한 자료조차 없다며 먼저 실태조사를 하는 것이 공대위의 첫 번째 사업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원폭 2세들이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방사능 피폭에 대한 후유증으로써 유전적인 질병이 발명할 수 있다는 의학적인 소견이나 자료를 모아서 정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관련법규들의 개보수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 개인적인 상황까지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원폭 2세 환우들.
그들은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관심사에 따라 차별 받아왔고 또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인간적인 삶을 되돌려줄 수 있는 힘도 우리‘사회’에 있을 것이다.
글 최희정 기자/ 사진 윤정은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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