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1]용산초등학교 부지 시각장애우 직업교육 시설 거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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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장애시설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용산초등학교 교문에는 시각장애우 500여명이 교문 밖에서 어색하게 서 있었다. 이날은 원래 용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서울맹학교 이전 기공식’이 열리기로 한 날. 들뜬 마음으로 하나둘씩 지팡이를 짚고 느린 걸음으로 교문 앞에 도착한 이들 장애우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용산초등학교 학부모와 지역주민 그리고, 초등학생 70여명이 교문을 걸어 잠그고 이들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주민들은 굳은 표정으로 ‘우리운동장을 살려주세요’‘맹아초등학교 통합 환영’‘교육인적자원부는 3년 앞도 못 보는가’등의 피켓을 들고 있었다.
계획대로 운동장에 들어가 기공식을 치르려던 장애우들은 이들의 거센 반발에 결국 교문 밖에서 천막을 치고 초라하게 행사를 치르고 말았다.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주민들은 주변을 소란스럽게 만들거나, 초등학생들로 하여금 합창을 부르게 하는 방식으로 행사를 ‘무던히도’방해했다.
이 모든 상황의 발단은 지난해말 교육부가 서울맹학교의 일부 시설을 용산초등학교로 이전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국립 서울맹학교는 애초 120명의 학생 수용을 기준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현재 300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 안마나 침술 등을 가르치는 직업교육 과정 시설을 옮길 부지를 찾게 됐다. 한편, 3,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용산초등학교는 최근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200여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는데다 용산초등학교 땅은 교육부 소유이기 때문에 별도 부지 구입 예산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용산초등학교를 관할 서울시교육청의 협조를 받아 이전 부지로 낙점 했다. 그래서 5,000여 평 부지 중 2,000여 평에 서울맹학교 시설을 옮기고, 초등학교와는 담도 쌓고 교문도 따로 만들 계획이었다. 이런 결정 사항에 대해 용산구청장에게 검토 문건을 보내자마자, 용산구청과 용산구의회, 용산구발전위원회 등은 일제히 ‘반대’ 공문을 보냈다.
이들은 ‘나날이 눈부신 개발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용산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용산초등학교는 향후 2~3년 내에 시설 부족이라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용산초등학교 주변 지역에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이 신축 예정이어서 앞으로 2∼3년 안에 1만2500여세대가 들어서기 때문에 용산초등학교 규모를 줄인다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논리에 대해 교육부는 서울시교육청의 자료를 토대로 ‘오는 2007년까지 증가 예상되는 학생 수는 400명이며, 이는 용산초등학교 시설을 계획대로 축소하더라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반박했다.
이러한 물밑 논란과 갈등은 지난 7월14일 용산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등교 거부시키면서 가시화 됐다. 지난 14일 이 학교 200명 중 121명 학생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등 등교거부는 3일 동안 지속되다 방학을 맞았다. 이런 갈등이 가시적으로 표출되자 대부분의 언론이 이 사건에 대해 ‘장애우 시설이 들어서면 땅값이 떨어질까 우려한 지역 이기주의(님비) 현상’으로 보도하거나, 기계적인 중립을 지켰다. 하지만, 어떤 보도도 이들 지역 주민 입장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를 의식한 것일까? 등교거부 마지막날 교육부-주민-구청 등 관계자 협의회에서 일부 주민들은 ‘초등학교 장애우 시설은 괜챦으나 성인 장애우 시설은 안 된다’는 새로운 논리를 들고 나왔다. 초등학교 장애우 시설이 들어오면, 이들 장애 초등학생들이 현재 비어있는 교실을 쓰면서 운동장도 같이 쓰면 되니까, 담을 쌓고 운동장을 떼어내는 일이 없으니까 괜챦다는 것이었다. 즉, 성인 시설이면 운동장을 떼어내 담을 쌓고 하면서 아이들이 뛰어놀 운동장이 줄어들기 때문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공식 날에도 다양한 종류의 피켓이 등장한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3년 앞도 못 보는가’부터 ‘맹아초등학교 통합 환영’이라는 피켓까지.
또 이들은 비우호적인 언론보도 이후 자신들의 반대가 ‘님비’가 아니라는 논리를 집중적으로 담은 보도자료를 내고 있다.
하지만, 서울맹학교와 교육부쪽은 이들의 행태를 전형적인 님비 현상으로 보고 있다. 지역 이기주역을 숨기기 위해 계속 그럴 듯한 논리로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학생 수 증가를 이유로 삼다가, 갑자기 초등학교 장애우 시설은 괜챦다고 바뀌는 것이나, 현실적으로 갑자기 계획에 없던 초등학교 장애우 시설을 어떻게 만들라는 것인지.
우리 나라에서 장애우 시설을 두고 이런 종류의 반발과 논란은 새로운 게 아니다. 예전에는 대놓고 ‘장애우 시설이 웬말이냐’는 구호로 반발하다, 요즘 NGO(엔지오)나 시민사회가 발달하면서 이렇게 직설적인 문구로 반발하지는 않는다는 게 새로운 현상이긴 하다. 즉 다소 반대 세력의 구호나 논리가 세련되어 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장애우, 동성애자, 여성에 대한 인권 수준과 인식 수준은 그 사회의 합리성과 진보성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지다.
이날 인상적인 장면은 기공식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들뜬 마음으로 축가를 부르기 위해 참석했다 상처받은 시각장애 청소년들과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고 이들의 기공식을 방해하도록 동원돼 노래를 부르던 초등학생들이 교문을 경계로 마주보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창화 서울맹학교 총동문회장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장면에 크게 상심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주민들이 설마 우리 시설을 싫어하겠어요?”라며 “아마 몇몇 개발을 앞두고 있는 그곳의 개발업자들이 땅값 하락을 우려해 주민들을 부추기는 게 아닌가 싶다”며 주민들에 대한 비판을 애써 피하고 있었다.
글 강김아리 (한겨레신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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