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청계천 하류를 찾아서-여전히 방치되고 있는 축제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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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벌어지면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본다. 더 기쁘고 화려한 것, 더욱 자극적인 것을 기대하며 노랫소리 요란한 축제의 한마당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무언가 더 볼 게 있을 거라고, 더 얻을 만한 게 남아 있을 거라며 저마다 기대감을 높인다.
해체공사가 진행 중인 청계고가도로를 바라보며, 축제의 주인공이어야 할 청계천이 오히려 외면되고 있다는 생각은 왜 떠올랐을까. 청계천은 이미 처음부터 그 자리에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가 흐르고 있었음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축제의 뒷마당엔 언제나 소외된 무언가가 있는 법 - 복원되는 청계천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광교에서 시작된 청계고가도로는 성동구청과 동대문구청을 양쪽으로 바라보며 지상과 다시 하나가 된다. 그 만남이 자연스러워야 할 텐데,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노후한 탓인지 지치고 힘겨운 모습으로만 보인다. 가까스로 버티며 견뎌온 것처럼, 어떻게 저런 시설을 이용하며 살았던가 싶을 만큼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시멘트와 콘크리트에 덮여 신음하던 청계천 - 역사적으로 서울 지역의 젖줄이었던 그 물길은 그 인근 지점부터 비로소 햇살을 받게 된다.
모두의 시선이 시내 중심가에 모여 있는 동안, 고가도로의 한쪽 끝 지점은 항상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지금까지 그랬고 당분간, 아니 공사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잊혀진 채 존재할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모습으로 흐르고 있었지만, 복개공사 이후 아예 천(川) 자체가 사라진 것으로 간주될 만큼 청계천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희미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 자리를 직접 찾아가 봤다. 성동구청 맞은편으로 걷자마자 습진 냄새가 전해졌다. 정화되지 않은 하천 특유의 악취가 점점 강해지면서 청계천은 그 모습을 무성한 잡초 너머로 드러냈다. 저렇게 많은 지지대로 지탱했구나 싶을 만큼 거대한 구조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어둠을 빨아들이는 듯 아득히 어두워지는 복개물은 짐짓 다가서기 두려운 느낌마저 전하는 침묵 그 자체였다. 신답철교를 오가는 전철의 소음이 잠시의 정적을 깰 뿐, 모든 게 정지된 화면처럼 아무런 생명의 흔적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햇살을 받기 시작한 지점부터 하천을 따라 반대편으로 걸어가다 보면, 여러 종류의 새들과 물고기들을 쉽게 찾아보게 된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다기 보단 방치됐다는 생각이 앞서는 무성한 잡초들, 젤(gel) 상태처럼 발이 빠지는 모래와 흙바닥, 천을 따라 엄청난 규모로 나란히 선 내부순환로의 그늘 아래 청계천은 천천히 흐른다. 점점 폭이 넓어지다가, 중랑천과 만나는 지점부터는 본격적으로 한강과 합류할 준비를 하듯 물살이 거세진다. 그렇게 살곶이다리와 성동교를 거쳐 용비교에 이른 지점에서 청계천은 "한강"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바꾼다.
신답철교부터 한양대학교를 휘어 감고 강변북로로 이어지는 터전은 시원한 자전거도로가 중심이 된다. 하지만 시대의 추세가 그렇듯이, 자전거보다는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는 이들이 연이어 곁을 스쳐간다. 한양대 부근에는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 보이지만, 청계천이 첫 햇살을 받는 신답철교 인근 지역엔 드문드문 어르신들만 앉아 계신다.
"딱히 갈 데가 없으니까 나오는 거지, 뭐. 저녁 때 모기들만 참으면 돼."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옛 추억을 나누시는 어르신 두 분은 이 지역에서 인생을 살아오셨단다. 천변(川邊)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소주로 시간을 보내는 게 이젠 유일한 소일거리로 자리 잡았다고 하신다. "다른 데서 오는 사람들은 하천의 냄새를 악취라고 하지만, 우리들한테는 그냥 생활의 향기야. 하긴 그것 때문에 집값이 다른 데보다는 싸다고 하지. 그게 뭔 상관이야. 재벌이나 장차관들이 이런 데 와서 살겠어?" 스쳐가는 단순한 언급 같지만, 그 말씀에는 낙후된 관리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 숨어 있다는 게 읽혀진다.
청계천 복원에 대해선 걱정이 앞선다고 하신다. "시내 쪽만 번지르르하게 꾸밀 게 뻔하겠지. 이 지역도 청계천이긴 마찬가진데 여기까지 신경을 쓰겠어? 여긴 잘 안 보이는 지역이잖아." 이때 마주 앉아 소주잔을 비우던 어르신께서 거드셨다. "청계천을 복원해도 홍수나 장마 피해가 없을 거라고 했지? 허허, 천만의 말씀. 해마다 물난리로 난리를 치는데, 똑같은 하천이 시내 쪽만 멀쩡하다는 게 말이 돼? 자연의 이치를 그렇게 쉽게 예단하면 안 되는 거야. 천벌을 받을 일이지. 직접적인 피해는 누가 보는데 그렇게 막말을 함부로 해?" 일순간 어르신들의 자리가 노기어린 성토의 장으로 돌변했다. 질문을 던진 입장이 난처해지는 순간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청계천은 한양대학교의 남동쪽 방향에서 중랑천과 합쳐진다. 경기도 양주군에서 발원해서 의정부를 지나 남쪽으로 흘러온 중랑천은 서울의 대표적인 침수 피해 하천이기도 하다. 매년 여름마다 방송에 등장하는 중랑교, 장안교 등의 다리 인근 지역은 똑같은 침수 피해를 반복하면서도 근본적인 대책 없이 새로운 여름을 맞이한다. 수위가 급격히 높아지면 한강의 불어난 물이 청계천 하류로 역류하는 경우가 잦고, 중랑천과 만나는 지점엔 언제나 순식간에 불어나는 물로 홍역을 치른다. 복원공사로 30cm의 수심을 유지하겠다고 하지만, 자체적으로 불어나는 물과 하류에서 역류하는 물길을 어떻게 처리할지 걱정과 함께 의구심이 앞서는 까닭이 그것이다.
청계천 하류 지역을 걷는 길 내내 가장 눈에 거슬렸던 건 역시 고가(高架)로 설치된 내부순환로였다. 청계고가도로보다 훨씬 육중한 규모로 청계천을 가리고 있는 내부순환로는 서대문구 홍제천의 하늘을 가리고 있듯이 하천의 일조권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완공 5년차에 이른 내부순환로를 보며 청계고가도로의 운명을 자꾸 떠올리는 건 무슨 까닭일까? 도시의 미래가 친환경지향으로 갈지, 첨단의 성장지상주의로 향할지는 알 수 없지만, 복원과 재개발을 반복할 때마다 기존의 건축물과의 부조화로 몸살을 앓는 악순환을 떠올린다면, 내부순환로가 청계천에 어울리는 구조물이라 할 순 없을 듯하다.
"청계천과 한강이 시민들에게 정말 가까운 쉼터가 되려면, 우선 접근성을 쉽게 만들어야 합니다. 누구나 집 가까운 곳에서 강변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진입로의 숫자가 너무 적고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어요. 또한 차도를 건너야 접근할 수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하도 같은 별도의 통로를 설치해서, 주거지역에서 직접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매점이나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도 대폭 늘려야 하고, 장애우와 노약자들의 보행권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할 겁니다."
가족과 함께 나왔다는 회사원 한아무개 씨(39)의 의견은 정부 당국이 경청해야 할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실상 고수부지에 들어가려 해도 어디에서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는 시민들이 대부분이다. 강변로를 차량으로 이동할 때는 군데군데 진입로 표지가 보이지만, 일반적인 생활공간에서 찾아갈 수 있으려면 더 많은 곳에 연결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누구나 뛰어놀고 쉬고 즐겨야 할 터전인데도,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만 찾고 이용하는 한계를 갖는다면 분명히 제구실을 못하는 것이다. 열린 공간은 모두에게 똑같은 혜택이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물을 마실 시설이 있으면 좋겠어요." "땀을 씻을 수 있게 수도가 많이 설치됐으면 좋겠어요." "그늘이 부족해요. 계속 햇살을 받고 있어야 하거든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왔다가 바닥에 앉아 쉬고 있는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편의 시설물 부족을 호소한다. "밤에도 안심하고 나올 수 있게 조명이 좀더 밝아졌으면 좋겠어요." "경찰이 적재적소에 제대로 배치되어야 해요.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보이지 않아요." "음주행위를 금지했으면 좋겠어요. 어린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패싸움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어른들도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일이 자주 있고요. 우리 아이들이 안심하고 찾을 여건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당연한 일이다. 자녀를 데리고 나온 엄마 아빠들의 요구는 거의 비슷하다. 편안한 휴식을 보장할 만한 안전과 질서를 확보해 달라는 것이다.
청계천이 진정한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태어나려면, 전체적으로 "양지(陽地)"의 개념을 채택해야 한다. 저녁뿐 아니라 새벽까지 여유로울 충분한 조명 시설을 확보해야 하고, 어느 한 구석도 어둠이 존재할 "음지(陰地)"가 생겨나면 안 된다. 즉, 일부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로 제공될 만한 가려진 곳이 없어야 하고, 노숙자가 상주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시민 모두가 자기 마을의 정원을 거니는 가치로써 청계천을 복원해야지, 낮과 밤의 문화가 다른 두 얼굴을 지니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확실한 치안과 편의시설이 제공되는 시민들의, 아니 국민 전체의 휴식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밤에는 일반 공원에 못 가잖아요. 집에 있지 왜 나오느냐고 반문하면 안 되는 거예요. 시민들의 휴식 공간을 낮과 밤으로 구분한다는 건 너무나도 관치(官治)적인 이분법입니다. 낮의 활력이 있다면 밤의 안식도 있어야 하는 법이죠. 밤의 안식이 일부의 탈선과 범죄로 인해 방해 받는다면, 그건 진정한 의미의 시민공원이 될 수 없을 거예요. 청계천을 관장하는 관련부서는 밤에도 자유로운 열린 공간을 책임지고 만들어야 합니다. 이건 부탁하고 건의할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조성되어야 할 당위성인 거예요."
시민단체에 근무한다는 황아무개 씨(33)의 의견에 동감한다. 휴식의 시간제한이 주어진다면 그건 잘못된 일이다. 고궁이나 놀이공원 같은 공공 또는 사유시설에는 당연히 마감 시간이 있어야겠지만,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자리하는 청계천이 밤 시간에 찾지 못할 기피시설이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건 상징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연하천으로써 재탄생하는 청계천의 의미를 상기한다면, 분명 시민들의 자유로운 접근성은 24시간 내내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켜져야 할 일이다.
신답철교에서 첫 햇살을 받고 한강으로 흘러가는 지금의 청계천은 앞으로 복원될 신(新)청계천의 미래를 추측하게 만든다. 그 하천 하류의 존재를 시민들 대부분이 관심조차 두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요란한 홍보 문구와 장밋빛 청사진을 내건 시내 중심가에 비해 초라해져 있는 건 사실이다. 용두사미(龍頭蛇尾)로 평가되거나, 조삼모사(朝三暮四)라고 비난받을 일이 생겨서도 안 된다. 청계천은 특정 구역만 빛을 발하는 게 아니라, 전체의 흐름으로써 그 생명력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2년 남짓 걸릴 거라는 청계천 복원공사가 최종적으로 완공되면, 개인적으로 청계천 하류 지역을 다시 찾아 똑같은 구도로 사진을 촬영할 계획이 세워져 있다. 바뀐 게 무엇이고 복원된 게 뭔지를 살펴보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굳어진다. 그리고 지금의 사진과 그때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정리할 것이다. 글쎄……, 아마도 같은 사진이 두 장씩 나열되는 건 아닐지 벌써부터 염려스러워지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 글·사진 채지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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