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라크 여성, 수아드 알 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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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가고 공포와 상실감만을 남겨놓았지만 진정한 역사의 힘을 믿으며, 평화에 대한 한 줄기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라크 여성 수아드 알 카림(49세)
운동가도 아니며 평소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에 저항에 온 사람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아이들의 어머니이며, 10여명의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일 뿐이다. 한국의 이라크 반전평화팀의 통역과 안내를 해주었던 인연으로 한 달간 한국을 방문해 평화의 이름으로 연대를 모색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이라크인의 눈으로 본 미국의 전쟁범죄
지난 7월 22일 프레스센터 12층에서는 한국 이라크 반전평화팀의 통역을 맡아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해준 이라크 여성 수아드 알 카림씨와 한국의 젊은 평화운동가들의 만남이 있었다. 전쟁 전 직업이 여행 가이드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누구보다도 조국 이라크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갖고 있는 듯 했다. 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임영신씨는 “통역원들이 많은 돈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수아드는 어려운 지역에 들어가면 먼저 눈물을 보이며 그 돈을 남김없이 지역주민에게 주고 왔다”며 그이의 마음속에 진정한 평화의 씨앗이 녹아있음을 이야기했다. 수십 년 간 사담 독재정권 하에서 모든 것이 통제되었던 상황이라 4-500만의 엘리트들이 이라크를 떠났고 NGO라 불릴 만한 조직 하나 없는 이라크. 때문에 평범한 시민의 눈으로 본 전쟁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전쟁은 무엇이었으며, 미국은 무엇이었을까?
전쟁범죄국, 미국
withness from lraq(이라크의 증인)라는 표현이 적혀있는 작은 플래카드 앞에 통역자와 함께 나란히 앉은 수아드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동안 연일 이어졌던 강연과 인터뷰,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피곤한 기색이 더 역력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또 다시 사람들 앞에서 아픈 기억과 상처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했으리라. 순간 반전평화팀의 박기범씨(동화작가)가 지난 달 한국에서 있었던 강연회에서 고통스런 몸짓으로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고 울먹였다는 누군가의 글이 떠올랐다. ‘전쟁 그리고 평화’라는 단어 속에 녹아 있는 현실의 무게감과 무기력함의 공존이 ‘말’을 통한 진실의 전달에 의문을 던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깊은 숨을 내쉰 후 그녀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이라크는 정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언론에서 약탈과 범죄가 끊이지 않는 무질서한 모습이 보도되고, 그래서 미국의 통제, 누군가의 개입이 필요한 것처럼 보여지지만 그건 이라크의 진실이 아닙니다.” 그녀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언론에서 부정적인 모습만 보도함으로써 미국의 전쟁범죄와 지속적인 주둔을 정당화한다고 말한다. “미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챙기면 언제든지 떠날 것입니다. 이라크인들을 자유롭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해가 지면 바그다드는 미군들의 도시입니다. 이라크는 석유 산유 2위지만 미군들의 금지로 이라크인들에게는 석유가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미군이 통제하고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 일상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이라크의 첫 이야기를 미국을 중심으로 포문을 열었다. 사담 독재정권을 물리친 해방군처럼 행사하지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대신전에 성조기를 걸고 고압적인 자세로 이라크 민중들에게 일관하는 태도에서 미국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독재, 복종하는 문화를 만들다
수아드는 이번 전쟁을 통해 쉽게 복종하는 시민들의 무기력함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고 솔직히 말한다. 큰 길가에 살고 있어 미사일이 집중됨에 따라 여성으로, 10여명이 넘는 가족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아있길 원하는 젊은 네 명의 남자아이들만 두고 그녀는 나머지 가족과 잠시 지역에 있는 언니의 집으로 피난을 갔다. 그리고 바그다드 함락 이틀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미국의 일방적 폭력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사람들 사이에 상처만 남겨진 ‘바그다드’(아이러니 하게도 그 폐허의 도시는 ‘평화의 도시’란 뜻을 갖고 있다)를 지키기 위한 시민의 저항이 없었다는 것이 놀라웠다는 것이다.
“사담이 싫어서 그랬겠지만 군인들만 싸웠습니다. 시민들의 저항은 거의 없었죠. 수십 년의 사담 독재정권에 길들여져 어느 누구도 싸울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아요.”라며 국가 테러와 독재가 저항정신을 말살하고 복종의 문화를 만든 것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스스로 일구어내는 일상의 희망
그러면서도 수아드는 희망을 말한다. “현재 이라크의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총을 들고 환자와 병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아원에는 이웃들이 가져다주는 음식과 물건으로 썩어 남아돌 정도입니다. 약탈도 있지만 그게 이라크 전체의 모습이 아닙니다. 희망을 쌓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대다수의 이라크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예전의 이라크를 만들기 위해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쉬라드 극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라크에 희망을 심고 있어요. 전쟁이 끝난 2주일 후부터 그들은 전기 하나 들어오지 않고 극장의 반이 폭격으로 날아가 버렸지만 아이들을 위한 연극을 다시 준비하며 희망은 자기가 하던 일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스스로 일어나려는 움직임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죠.” 전쟁의 폐허 속에서 ‘평화’는 거창한 것도 아니고 실현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라크는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운동(movemont)이라든지, NGO라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각자의 활동 속에서 싸울 수밖에 없고, 그것이 일상에서 필요한 평화운동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갔다가 다시 오겠다는 임영신씨(반전평화팀)에게 “너에게는 너의 아이들이 중요하다. 돌아가라. 네가 얼마나, 어느 만큼 이라크인의 입장과 자격으로 현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네가 나의 입장이 될 수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내가 평화의 증인이 될테니, 너는 그걸 전해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도 너의 눈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각자의 처지와 입장에서의 운동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임영신씨 또한 그것을 받아들였고, 수아드 초청 목적이 「관심에서 관계로…」인 것처럼, 각자 처해진 환경에서 연대의 지점을 확인해야 할 때이다.
이라크 민중들이 갖고 있는 힘과 저력을 믿고 있는 수아드, 그녀는 전쟁을 통해 인간이 서로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고 아이들에게 지혜와 용기가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주었다고 한다. 또 여전히 이라크인들은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지만 신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며 특유의 종교적 신념을 나타내기도 했다. ‘평화 만들기’가 ‘희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수아드는 이라크로 돌아간 후 이라크민중지원연대와 함께 작은 평화도서관을 만드는 활동에 참여할 예정이다. 평화의 작은 씨앗 하나를 심기 위해.
글·사진 여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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