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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창을 닫으며]노동자와 임금노예는 무엇이 다른가?

매너리즘 극복?

본문

변호사라는 직업을 택하여 활동을 한 지 어언 4년이 다 되어 간다. 어떤 일을 하든 위와 같은 기간 정도 일을 하게 되면 다소간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변호사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의 열정은 점점 줄고 대신 기계적이고 수동적으로 일을 처리하려는 요령만 느는 것 같다.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진작부터 두려워하여 변호사 활동 초기에 사무실 벽에 ‘처음처럼’이라는 글자가 적힌 족자를 부적처럼 걸어 놓고 나만은 그러지 않으리라 결의를 다졌었는데 쑥스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요즘 다시 나의 ‘열정’을 자극하는 사건들이 내 주위에서 잇달아 생기고 있다.

사건 하나.

얼마 전에 있은 철도노조의 파업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정부안대로 될 경우 철도노조원들은 공무원에서 공사 직원으로 신분이 바뀔 뿐만 아니라 퇴직연금 중단으로 수 천 만원의 손실을 보게 되는데 철도노조로서는 그에 반대하기 위해 헌법상 보장된 ‘파업’도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지 않았겠는가? 더구나 철도노조원들은 지난 2년간 줄기차게 철도의 공공성 확보를 외쳤는데 갑자기 경제적 논리가 주도적으로 관철되는 ‘철도 개혁’을 손놓고 쳐다볼 수만은 없지 않았겠는가? 이에 철도노조는 파업을 단행하였다. 그런데 철도노조는 정부의 막무가내식 강경 대처 방침과 언론의 공세에 밀려 파업을 철회했다. 내가 맡은 사건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얼마 전부터 철도청은 1주일에 두 번씩 징계위원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나는 노조측 변호인으로 이 징계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다. 이 자리의 분위기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투항한 적군 포로의 생사 여부를 결정하는 군법재판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위 파업이 잘못된 것이고 이후에는 노조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고해성사하지 않으면 파면과 해임을 면치 못한다. 7. 25. 현재 징계대상자 80명 중 파면된 자는 45명, 해임된 자는 15명이다. 75%에 달하는 수준이다. 앞으로 계속 징계 위원회가 예정되어 있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직장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 이들이 무슨 부정부패에 연루된 비위 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에 대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집단적으로 낸 것일 뿐인데 이토록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노동자는 자신들의 사업장 및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든 정부와 사업주의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만 하고 그에 저항하였을 경우 ‘진압’ 수준의 대가를 치루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노동자와 "임금 노예"는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친노동자 정부라고 일컬어지는 현 정부 하에서 이런 생각들을 해야 하는 현실이 착잡할 뿐이다.
사건 둘. 청구성심병원 사건을 언론에서 접했을 것이다. 건강한 병원 노동자들이 다른 사업장도 아니고 병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일을 하다가 집단적으로 ‘적응장애’라는 병을 앓게 되었다. 실태를 조사해 보니 병원측이 노조 탈퇴 공작을 진행하면서 노조 총회 장소에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식칼을 휘두르게 하고 똥물을 투척하는 등의 극단적 행위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노조원들에 대해 일상적 업무 수행 과정에서부터 집요하게 감시하고 왕따를 시키고 불이익을 주어 노조원들이 정신적 충격을 받아 위와 같은 병을 집단적으로 앓게 된 것이다. 위 병원의 노조원은 1998년 당시에는 180여명이었다 그런데 위 병원이 위와 같이 노조를 탄압한 결과 현재는 20명만이 남았다.
그 중 위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9명에 이른다. 위 질병이 그리 쉽게 발병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 위 장애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상식적으로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위 노동자들은 위 장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요양 승인을 하였다. 그에 대한 심사를 하기 위해 개최된 자문의사협의회에 위 노동자들이 참여하였고 나도 변호인으로서 거기에 참여하였는데 이들이 직접 쏟아내는 말들은 군대에서 졸병 때 실컷 울어본 이후 거의 울어본 적이 없는 나를 기어코 울리고야 말았다.
참 슬픈 현실 아닌가? 단지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위와 같은 질병에까지 걸려야 한다는 것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위 사건들로 인해 나의 매너리즘이 다소간 극복된 것은 다행한 일이기는 하나 나는 그냥 내가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좋은 현실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글 강문대(변호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법률위원)

※민주노총 산하 법률원 ‘여는 합동법률사무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약간의 사투리가 섞인 말투가 처음엔 딱딱하기도 하지만 열린 그의 마음을 접하다보면 어느새 정겨운 그이만의 색깔을 느끼게 된다. 


 

작성자강문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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