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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연대]장애인 자가운전권 확보를 위한 사람들의 모임

운전도, 안전도 내가 알아서 할꺼야

본문

 이런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다. 도로에 나가면, 여성 운전자에게는 다짜고짜"집에서 밥이나 할 것이지, 왜 차는 끌고 다녀서 더 막히게 하냐"는 남성 운전자들의 모욕이 쏟아진다고. 한 여성 운전자는 참다못해, 뒷좌석에 아예 "나, 밥해놓고 나왔음!!"이라고 붙이고 다닌다나.
운전을 해보면 그 사회가 어떤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얘기는 사회적 약자에게는 무조건 힘으로 밀어부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2001년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장애우 운전면허 소지자는 전제 운전면허 소지자의 0.5%라고 한다. 이 씁쓸한 얘기도, 소외계층인 장애우의 입장에서 보면, 운전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황당함일지도 모른다. 자료에 비춰 보면 이 얘기가 억지만은 아닐 것이다.
장애우 운전자의 수가 적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일 장애우의 운전면허 취득을 사실상 가로막는 제도가 있다면?
그리고 이 제도와 싸움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면?
"장애인 자가운전권 확보를 위한 사람들의 모임(대표 안형진, 이하 장자모)"이 바로 그들이다. 올 2월에 시작된 이 모임의 회원들은 "운전능력측정검사"에 합격해 면허를 땄거나, 혹은 떨어진 당사자들이다. 운전능력측정검사는 장애우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는, 그들을 만났다.

〈"다른 방법으로 운전하기"의 진수를 보여주마〉
혹시 기억하는가. 1980년대 초반에 TV로 방영됐던 "전격Z작전"의 키트(KITT) 자동차. 마치 키트를 탄 것 같았다. 그의 양팔은 운전에 관련된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데, 원하는 방향으로 차가 간다. 신기하여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왼발로는 자전거 페달처럼 생긴 페달을 돌려 핸들조작을 대신한다. 엑셀레이터와 브레이크는 오른발로 누른다. 방향지시등을 켜야 할 때는 어떻게 하냐고? 무릎으로 툭툭 치면서 키고 끈다. 이른바"족(足)동차"다. 그리고 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뇌성마비 양팔장애우인 백재현씨.
"장자모"의 회원인 그는 우리나라 양발운전자 1호다. 그는 "양팔꿈치 관절 이상이 정상적인 기능을 해야 운전할 수 있다"는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에"다만, 본인의 신체장애 정도에 적합하게 제작된 자동차를 이용하여 정상적인 운전을 할 수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는 조항을 삽입시킨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는 2001년 1월에 면허를 땄다. (백재현씨에 대한 자세한 기사는 함께걸음 2001년 2월호에서 볼 수 있다.)
운전하기 전과 후, 백재현씨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재현씨는"운전하기 전에는 집 주변 반경 400∼500m정도만 다녔죠. 그 이상은 대중교통을 타야되는데... 아시겠지만, 너무 위험해서 별로 내키지 않아요. 지금요? 생각이 넓어질 정도예요. 활동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거잖아요"라고 답했다.
기자가 "보조석에 앉은 사람들 반응은 어때요?"라고 묻자, "공포스러워하지예∼ 농담이구요"라며 말을 이었다. "한 70%는 "비장애우가 운전할 때랑 똑같네"라고 말하죠. 보조석 손잡이를 잡거나,"다른 차들이 뭐라고 하지 않니?"라든가 "운전하기 힘들지?"라고 묻는 사람들은 떨고 있는 사람들이고요. 하하"라고 웃었다.
기자는 "그럴 땐 어떻게 대답해요?"라고 물었다. "운전하면 당연히 피곤하죠, 왜 안 피곤하겠습니꺼"깔끔한 대답이다.
안형진씨의 권유로 "장자모"에 가입했다는 백재현씨는 운전능력측정검사에 대해서 "80년도 초반, 운전면허에 도전하는 소아마비 장애우들에게 적용하기 위해 일본에서 수입한 제도에요. 지금은 소아마비 장애는 줄어드는 반면, 뇌성마비나 중도장애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추셉니다. 특히 뇌성마비는 그 정도나 영역이 정말 다양하죠. 그런데 20여년 동안 내용을 바꾸지 않고 여지껏 운영하고 있으니, 정말 한심하죠. 이건 기회를 박탈하는 문제입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한 장애우가 운전을 한다는 것은 날개 없는 새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삶이 180도 바뀌는 날개 말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장자모"의 회원인 김범준씨(뇌성마비 1급). 그는 운전경력 8년째인 베테랑. 휠체어 장애우인 범준씨는 운전석을 뒤로 휙-젖혀서 누운 후, 휠체어를 번쩍 들어 뒷좌석에 날렵하게 앉힌다.
그가 운전면허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의외로 가족과 친구들의 반대였다고. 범준씨는 "장애를 가진 제가 운전하면 여러 사람 다친다며 반대하더라구요. 아예 시험에 응시할 수 없도록 제 신분증을 감추기도 하셨죠"라고 담담히 말했다.
통일돼서 자동차로 유럽까지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김범준씨. 그는 "장자모"가 운전하려는 장애우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주고, 자신감까지 보태줄 수 있는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애우들에게만 적용되는 "다른 절차"〉
우리나라에서 운전면허를 가지려면 신체검사를 한 뒤에 필기와 실기, 도로주행 시험에 통과하면 된다. 그런데 면허를 따고자 하는 사람이 장애우면 얘기가 좀 다르다. 시험을 하나 더 본다. 바로"운전능력측정검사"다.
문제는 이 검사에서 떨어지면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한 모든 과정에 접근할 기회가 아예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면허를 따려는 장애우의 대부분은 이 검사에서 탈락한다.
운전능력이야 면허 시험 과정에서 가려내면 될텐데, 왜 장애우들은  사전에 걸러내겠다는 걸까. 도대체 "운전능력측정검사"가 무엇이길래?
현행법은 장애우의 경우 신체검사로는 운전적성을 판단할 수 없다고 여겨, 별도로 "운전능력측정검사"를 받게 하고 있다. 이 검사에서는 핸들과 클러치 조작, 발 브레이크와 수동식 브레이크 및 사이드 브레이크 조작, 엑셀레이터와 수동식 엑셀레이터 조작, 기어 변속 조작, 총 8개 항목을 평가한다. 물론 8개 다 통과해야 한다.
평가의 근거를 대라고? 글쎄다.
이 검사의 항목은 물론, 판정기준의 근거가 명확히 나와있는 문서는 없다. 다만 일본의 것을 참고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있다.
운전능력측정검사 중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은 핸들조작시험이다. 시험용 핸들의 무게는 4.8㎏. 그런데 현재 시판되는 장애인 자동차는 모두 파워핸들이고, 무게는 약 2.5∼3㎏정도다. 시험 볼 때는 4.8㎏무게의 핸들을 2.5초내 580도로 돌려서 24초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비장애우 여성도 쉽게 통과하기 어려운 시험이다. 핸들조작에서 불합격하면 이 검사의 다른 항목 시험은 볼 수도 없다.
미국의 경우 운전면허의 취득 여부 및 적절한 제한은 기능시험 과정에서 결정된다. 장애우의 운전면허 시험 내용과 방법은 비장애우와 동일하다고 한다. 즉, 어떤 운전보조장치를 사용하는지 보다는 해당 응시자가 주어진 과제(예: 회전, 주차 등)를 안전하게 수행하는지를 평가한다. (출처 : 장애인 운전면허제도 개선 기본방향, 2003, 명묘희) 
장애를 가진 응시자라면 사전에 면담이 있기는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험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 응시자에게 어떤 보조장치가 필요한지, 어떤 교육을 지원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기 위한 만남이다.
일본에서도 장애우는 모의운전장치로 별도의 시험을 치른다. 이 시험에서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은, 면허 시험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장애에 맞게 개조한 자동차로 다시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장애우는 죽으려고 운전한답니까>
현재 장애우의 자가운전에 대한 논점들은 다음과 같다. ▲장애우의 운전면허 취득을 사실상 막고 있는 운전능력측정검사의 존폐여부 ▲운전능력측정검사를 계속 유지할 경우 측정항목과 내용 및 기준 마련 등에 대한 논의 ▲장애에 맞게 개조된 자동차로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 ▲국가차원에서 장애우의 운전을 지원할 수 있는 관련 기관 및 시설 마련 할 것 등이다.
지난 6월 18일, 국립재활원에서는 "운전면허제도 개선을 위한 장애인 단체 전문가 초청 간담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장애인 운전면허에 대한 개선방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명묘희(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연구원은 "현재의 운동능력측정검사를 존치하되, 현실에 맞게 내용을 수정하는 것이 좋겠다. 즉 중증 장애우는 자동차를 개조해서 시험을 보게 하고, 경증 장애우는 이 검사를 통해서 시험장에 비치된 장애우 차량으로 시험을 보면 될 것이다. 이 검사는 장애우가 면허 취득에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기 위한 내용으로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또한 경찰청의 윤소식 면허계장은 "이 검사에 일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경찰 입장에서는"사회적 안전망"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까 장애우 측에서도 너무 자기 입장만 얘기하지 말고, 중간적인 입장을 가지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배융호 실장(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은 "장애를 경증, 중증으로 나누는 것부터가 차별이다. 제시된 차량으로 운전할 수 있으면 경증이고, 그 차량으로 운전하지 못하면 중증이라는 말이냐. 그리고 장애우가 사회적 안전을 해치는 존재냐"고 지적했다.
김정렬 소장(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운전면허와 관련해서 비장애우는 하지 않는 "다른 절차"를 장애우에게만 요구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다. 운전능력측정검사는 개선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적 개념이 없는 개선은 그 후에도 차별과 반인권적인 소지가 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검사는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장애우의 운전은 면허시험과정에서 선별하고 선택할 수 있으면 된다"라고 주장했다.
장애 당사자로써 운전경험을 말하던 최 민이사장(open SE)은 "운전하면서 죽으려고 운전하는 사람은 없다. "장애우가 운전하면 마치 목숨 걸고 마구 돌아다닐 사람"처럼 이야기되 는 것에 화가 난다. 누가 운전하느냐 보다는 도로에서 서로 보호하려는 운전 풍토가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애우니까, 위험하니까, 하지말라고 막을 권리는 없다〉 
"장자모" 회원인 유기용씨(뇌성마비 1급)는 2000년도에 운동능력측정검사에서 떨어졌다. 기용씨는 이 검사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학원에 접수하고 나서야 직원이 "장애우는 따로 시험 보는 것이 있으니까 보고 와라"고 알려줬다나.
기용씨는 "핸들조작에서 떨어지고 하도 화가 나서 경찰관에게 막 따졌죠. 장애 유형이 얼마나 많은데 이 기준만 제시하는 거냐고요"고 털어놨다. 이어서 "제가 장애를 가졌으니까 무언가 다른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했죠. 하지만 검사에서 떨어졌다고 시험 자체를 아예 못보게 하는 경우도 있답니까. 비장애우가 만든 틀만 강요하고, 그것에 미달하면 시험보기도 전에 탈락이라니요"고 분개했다.
"장자모"를 만든 안형진씨. 그도 운전능력측정검사에서 떨어졌다. 형진씨는"핸들조작에서 떨어졌죠. 9번인가 시도했는데 안되더라구요. 게다가 핸들 돌릴 때 의자에서 몸이 떨어지거나, 팔꿈치를 굽혀서 돌리거나 하면 실격이예요"라며 경험담을 들려줬다.
주위에 장애우들이 운전능력측정검사에서 떨어져 면허시험을 보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면서 이 제도랑 싸워야겠다고 생각했다는 형진씨. 그래서 올 2월에 "장자모"를 만들었다.
"장자모"는 ▲운전능력측정검사는 폐지 ▲장애우 운전면허 관련 정책 연구에 장애 당사자를 개입시킬 것 ▲차량개조의 정부지원을 주장하고 있다.
형진씨는 "장애우들도 필기, 실기, 주행 시험을 보므로, 능력 미달자는 이 과정에서 선별하면 됩니다. 이 검사에서 떨어지면 시험의 과정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죠. 그리고 장애우마다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한 자기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당사자가 아닌 재활전문가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들만 모여서 연구할 것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당사자들과 함께 정책을 만들어야 올바른 제도와 정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차량개조를 전부 장애우의 부담으로 돌리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형진씨는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점은 "몸도 불편한데, 어떻게 운전을 하겠냐"라는 사회적 편견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덧붙여서"음주 운전이 위험하니까, 시험보기도 전에 제도적으로 막는다면 비장애우들은 거기에 순응할 겁니까? 장애우니까,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고 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라고 못박았다.

기자는 취재를 마치면서 문득 작년에 상영됐던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사회적으로 위험할 인물을, 미래로 공간 이동해서, 미리 처단해 그 위험을 방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결론은 미래의 일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으며, 그럴 권리 또한 없다는 거였다.
장애우는 "사회적으로 폐(?)를 끼칠, 위험할 소지를 다분히 갖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사회적 편견은 운동능력측정검사가 시작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장애우가 운전하면 위험할 것이다"라는 편견. 사실 누가 위험할 것이라는 건지도 자세히 들여다 봐야겠지만, 그 편견만으로 그들의 운전할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다. 장애를 가진 이들도 공정한 조건에서 면허를 취득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은, 장애여부와 상관없이, 누군가 미리 걱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운전하는 당사자가 판단하면 되니까.


글 사진/  최희정 기자

작성자최희정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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