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며 수행하며]마음5-우리는 흙을 떠서 정성껏 파묻고는 축원을 했습니다.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요리하며 수행하며]마음5-우리는 흙을 떠서 정성껏 파묻고는 축원을 했습니다.

"영가위설 지심제청 지심제수 나무동방 해탈주세계 ..... 여래아라하 삼먁삼불타"

본문

지난 6월 22일 토요일 4차 천일기도 두 번째 입재식에 공양책임자로 문경 수련원을 내려갔습니다. 약 700명으로 예상되는 밥을 준비하기 위하여 이것 저것을 알아보곤 서울과 지방, 문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각각 확인했습니다. 문경에서는 비빔밥을 위한 상추와 김치를 사용하기로 했지요. 그래서 이틀 전에 도착한 우리들은 21일 행사 전날 김칫독이 있는 곳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이미 심상치 않은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항아리에 들어있는 김치 4봉지 중 첫 하나를 꺼내자.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습니다. 김치라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문드러져 있었습니다. 옆에 계신 법성행보살님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 정도일줄 몰랐던 거지요. 다음 봉지를 꺼내니까, 처음 것보다는 나았지만, 정말 괴로운 냄새에 끈적이는 물이 밖으로 새어나왔습니다. 보살 님이나 나나 낙담을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입재식행사를 하는데 큰일났다는 생각에 가슴이 덜컥했습니다.
그래서 김치를 모두 빼서 하나하나 들쳐보기 시작했습니다. 한 봉지의 것은 완전히 문드러져 있었습니다. 총 6봉지 중에 다행히 2봉지의 것이 조금 심하고 나머지는 그래도 먹을만했고 몇몇개는 빨아서 먹으면 괜찮은 정도여서 한숨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보살님이나 나나 침연한 분위기였습니다. 보살님이 문경을 맡으신게 불과 3개월밖에 안되어서 작년 12월에 묻은 김치에 대해 소상히 알 리가 없었습니다.
사찰에서의 음식은 절대 버리는 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한순간 마음을 놓치거나 게으르면 공양간에서 상하거나 썩게됩니다. 어떻게 할까하다가 판단력이 빠르고 과감하신 법성행보살님은 퇴비장의 땅에 뭍는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퇴비로 다시 태어나서 다른 채소를 기르는 양분이 되는게 낫다고 하더군요. 두 개의 봉지를 들고 퇴비장으로 가서 땅을 팠습니다. 그리곤 김치를 파묻었습니다.
저는 집안의 장손이며 장남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모두 내가 상주가 되어 선산에 묻었습니다. 그 생각이 났습니다. 삽을 떠서 흙을 던지면서 그때와 똑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 ! 이것도 죽는 것이로구나, 김치가 죽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죽음은 김치가 수명을 다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인 것이다. ‘죽음’이 아니라 ‘죽임’인 거지요. 사람은 수명을 다하면 죽어 흙으로 물로, 불로 바람으로 분해되어 흩어집니다. 그래서 다른 새로운 생명을 구성하는 새로운 구성물질이 되는 거지요. ‘죽음’은 문제될 것이 없지요, 자연적인 현상이니까, 그러나 ‘죽임’은 무엇인가에 의해 강제로 살해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날 우리의 부주의로 결국 김치를 죽인 것입니다. 관계없는 것이 없고 모든 것과 연관 맺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일, 모든 문제에 나는 분명히 책임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참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김치를 위한 천도제를 지냈습니다. 왕생극락을 간절히 빌었지요. 해탈주를 하고 ‘왕생극락하소서’ 삼배를 드렸습니다.

김치를 살리는 것은 김치본연의 목적인 인간에게 잘 먹히는 것입니다. 너무 짜지 않게, 맛있고 싱싱하게 유지시켜서 상하기전에 사람들에게 맛있게 먹히는 것 일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몸 속에서 분해되어 힘으로 에너지로 변하여 중생구제를 위한 힘과 에너지가 되는 거지요. 김치의 ‘죽음’은(죽임이 아닌) 인간 속에 들어가서 새로운 가치로 살아나는 겁니다.
내가 사는 것은 많은 생명들의 ‘죽음’ 덕분임을 깨닫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배추가 죽어야 하고, 고추가 죽어야 하고 감자가 죽어야 하고 쌀과 보리가 죽어야 내가 살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생명이 사는 것은 결국 다른 생명의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 그래서 이들의 죽음을 보답하기 위해서는 나도 다른 생명을 위해서 잘 죽는 것입니다. 다른 중생들을 위해 보살이 되어 이 몸을 다바치는 것이지요.
벼가 익기 위해서는 한여름 태양이 필요하고, 비가 내려야하고, 벌레도 있어야 하고 달빛도 필요하고 바람도 불어야 하고 볕도 들어야 합니다. 또한 농부도 있어야 하고 기계가 있어야 하고 기계를 발명한 조상들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쌀이 가을에 익어 고개를 숙이는 일은, 실은 우주적인 사건이지요. 우주의 모든 기운이 벼를 익게 만드는데 크게 그리고 아주 작게 모두 관계되어 있는 겁니다. 그것을 먹는 나는 우주의 에너지는 먹는 거지요. 정말 소중한 것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물건은 공경 받아야 하고 거룩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김치도 섬겨야 하고, 밥도 공경해야 하는 것이지요.
쌀과 보리, 배추와 고추의 죽음은 결국 다른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렇게 볼 때 그들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살림인 거지요. 살린다는 것, 살림이라는 것은 본연의 목적을 충분히 다하게 하는 것, 태어난 이유를 충분히 실현하는 것이며 모든 서로서로 의존하는 하나의 연결고리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덧대는 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입재식이 보름이나 지난 뒤입니다. 그런데 지난주 금요일(7월5일) 백중법회때 사람계산을 잘못하여 밥이 남아서 목요일 금요일 비빔밥으로 먹었는데 결국 조금 남아서 냉장고에 식혀서 넣는다는 걸 깜밖 잊어 바람에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아휴... 정말 공양간에서 쌓은 공덕 다 까먹는군요. 정말 저는 혼이 나야 합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토요일에 참회로 일천배를 했습니다. 여름이라 더욱더 긴장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앞으로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 주먹을 쥐고 다짐을 했답니다.

 

작성자함께걸음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