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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장애우들이여, 이제 성적 권리를 주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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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9일 거의 모든 국내 일간지들은 스위스의 한 복지단체가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장애우에게 섹스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시범계획을 갖고 있다는 연합뉴스의 기사를 일제히 보도했다. 신문 한 켠을 장식한 단신보도였지만, 성적 권리를 보장받기 어려운 장애우에게까지 사회적 관심이 미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논란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아니 일부 장애우들은 ‘우리 나라는 언제 저런 걸 시행할까’부러운 생각마저 들었다는 솔직함을 감추지 않는다. 성적 권리를 보장하라는 장애우들의 조용하지만 거침없는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섹스는 나의 소원〉
지방에 살고 있는 한 40대의 중증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남성이 무작정 돈 30만원을 들고 청량리 성매매업소를 찾아갔다. 전동스쿠터에 잔뜩 긴장된 몸을 싣고 붉은 빛으로 물든 유리창 뒤로 서 있는 여성들을 힐긋힐긋 보다가 한 업소로 들어갔다. 그러나 “당신 같은 사람은 돈을 아무리 줘도 싫다. 가라”는 성매매여성들의 매몰찬 거부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야 했다. 장애가 심해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그의 소원은 바로 ‘섹스’한번 해보는 것이었다.

〈정상화개념에서의 성적 권리〉
중증장애우가 겪는 성(性)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Y씨(남성, 지체1급).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Y씨는 요즘 남성장애우들끼리 모이면 온통 성(性)과 관련된 이야기뿐이라며 여러 사례를 들려준다. 오늘날 성인 남녀들에게 성과 관련된 이야기는 당연히 씹어(?) 마땅한 일상적인 주제다. 장애우도 예외는 아니다. Y씨는 “너희도 성적 욕구가 있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 자체가 다름 아닌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성적 욕구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갖고 있는 기본 욕구라면, 욕구는 그 즉시 해결 해야지만  의미 있는 것 아닙니까? 나이 들면서 결혼 자체가 힘겹거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마지막 선택은 성매매업소 밖에 없습니다.”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그이지만, 남성의 입장에서 성매매를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상황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드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에는 가차없이 응수한다. “왜 장애우에게만 도덕적인 것을 요구하죠? 장애우는 천사가 아닙니다. 그리고 욕구도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상대가 없쟎아요. 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사회적으로 차단되어 있는데 어쩌란 말입니까?”그는 이어 “이 문제는 정상화(Nomalization)개념에서 봐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장애우들에게 착하고 순수하게 살라고 강요하죠. 실제로 자기들은 할 짓 다하면서...사회적으로 용인된 것을 나쁘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 것 또한 차별 아닌가요?”

〈장애우전용 성매매업소 필요하다?〉
Y씨에 의하면 함께 활동하는 비장애우가 장애우들의 성에 대한 고민을 풀어주기 위해 정기적으로 성매매 현장을 동행해 주는 경우도 있다고 귀뜸 한다. 거부하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웃돈을 얹어주면 잘 받아주는 단골(?)이 있는 경우도 있단다. 또 편의시설 문제 때문에 약 5배의 돈을 주어 성매매 여성이 출장을 나오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 번 관계하는데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장애우전용 성매매업소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적 비난이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물론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할 말 없지만 그래도 중증장애우가 처해있는 현실적 상황과 구조도 이해해달라”며 하소연한다.
타당한 주장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비록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해도 말이다.
아무튼 외출할 수 없을 정도의 중증장애를 갖고 있어 장애우의 성적 억압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가능한 한 건강한 방법으로 해소하는 수단이 끝내 마련되지 못한다면 이는 중증장애우의 기본적 인권이 무시되는 사태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장애우에게 있어서도 섹스는 먹고 숨쉬고 자는 것처럼 자연스런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성(性)을 상품화하는 성매매는 또 다른 억압구조 양산하는 것〉
그런데 시설에서 생활하는 성인들을 상대로 성에 대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는 배임숙일회장(인천여성의전화)은 “장애우의 성적 권리를 인정하라는 요구 자체는 자력에 의한 해결이 가능하지 않은 중증의 장애우나 외부로부터 고립될 수밖에 없는 장애우들에게 전적으로 정당하다. 문제는 성적 권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면, 과연 무엇이 어떻게 마련되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일 것이다. 공창제도를 인정한다는 것은 또 다른 반인권적 억압구조를 생산하고 폭력을 통해 경제·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피해자로 만든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 난제를 유럽에서는 지금 ‘성의 정상화’란 개념으로 극복하려 한다. 자위행위를 권하거나 성교가 어려운 장애우를 가능하게 해 주거나 적절한 방법을 지도해주고, 또는 장애우 사이의 성행위가 이루어지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대체로 직접 성교를 하기 보다는 다른 방식들로 욕구를 해소하도록 하는 추세다.

〈“나는 섹스를 원한다”고 주장하라〉
우리는 억압된 성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장애가 심해 집안에서 TV나 책,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A씨(남성, 25세, 지체1급)는 우연히 장애우단체 활동가와 친해졌다. 그 활동가는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에 성적 욕구를 어떻게 해소하고 있는지, 그에 대한 고민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처지라 그의 장애와 성격을 보면, 속으로 끙끙 앓고 있을 거란 것이 눈에 선했다는 것이다. 그 25세의 청년은 케이블 방송에서 여성 란제리 광고만 보아도 기분이 이상해지지만 어머니가 들어오시면 얼른 채널을 돌린다고 한다. 성(性)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리지만 어머니가 항상 성경만 읽어주시며 “넌 착한 아이다”라고 말씀하시니 성적 관심과 행동이란 하면 안되는 ‘나쁜 것’으로 생각된단다. 
일본의 경우, 최근 몇 년 사이 중증장애우의 성적 권리에 대한 관심 유도를 위해 당사자들이 솔직하게 섹스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 1994년 근육디스트로피로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겨웠던 중증의 한 남성 장애우는 인터넷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손이 닿지 않아서 태어나서 한번도 자위행위를 해 보지 못했습니다.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 후 한 중년의 여성이 방법을 조언하고, “즐겁고 인간으로서의 생명력을 새롭게 느끼게 하는 섹스 혹은 성적 권리가 장애로 침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장애우의 섹스와 관련한 자원봉사자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그후 점차 중증의 장애우들은 당당하게 성(性)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회의 김주현정책교육팀장은 “장애우가 성적 주체성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그리고 당사자는 자신의 성욕이 원천적으로 거세된 것이 아니라 단지 사회적으로 억압되어 있을 뿐임을 인식해야 합니다”라며, 장애우의 성(性)이 일반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모든 장애우가 “나는 섹스를 원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스위스 등 유럽의 섹스서비스 봉사가 단순한 부러움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섹스는 즐거울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숨겨진 또 다른 깨달음을 전해줍니다”
뇌성마비 여성장애우 sheryl(쉐릴)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다.

글 여준민기자

 

작성자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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