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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리포트]

장애인의 날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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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0일. 한 구청이 주최하는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하는 마라톤 대회가 있었다. 대회에 앞서 장애우들은 한 시간여 동안 각 단체의 축사를 들으며 추위와 빗속에 떨어야 했다. 장애우들은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궁금해하며 씁쓸한 표정일 지었다.


<장애인의 날에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

▲장애인의 날

해마다 4월이면 장애우들은 바빠진다. 여기저기에서 행사에 참여해 달라는 전화가 걸려오고 각종 행사나 기념식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방송에서도 오랜만에 장애우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4월은 장애인의 날과 장애인 주간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애인의 날을 맞는 장애우들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매년 비슷비슷하게 반복되는 장애인의 날을 지켜보면서 자신들이 생색용 이벤트의 들러리가 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그것은 장애인의 날 스물세돌을 맞는 동안 장애우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게다.
“장애인의 날이요? 기념식하고 상 받고 그게 끝입니다. 전시효과를 위한 행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4월 20일이 장애우에게 선물로 주어진 날 인양 비춰지는 게 싫습니다. 이 날만 되면 방송에선 장애인의 날 특집이니 뭐니 호들갑을 떨고, 평소에 관심도 없었던 단체들은 후원행사라며 불러댑니다. 이것을 고마워해야 합니까?”
“장애인의 날이 오히려 세상이 나에가 ‘너 장애인이지, 넌 우리와 달라’ 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장애우와 비장애우를 분리하는 장애우만의 특별한 날로 변질된 것 같아 착잡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어떠냐는 기자의 철없는 질문에 장애우들은 불편함을 드러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장애인의 날의 장애우는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라 한다. 정부의 도덕성을 홍보하고 성공스토리라는 이름으로 장애우의 편견을 조장하는 언론을 위한 조연일 뿐이라고.
장애체험행사에 참가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 장애우는 말했다.
“비장애우들이 휠체어를 타고 길을 걸으면서 무척 힘들어하더군요. 물론 장애우의 입장에서 불편을 함께 느껴보고 그래서 그 고충을 이해해 보자는 의도는 좋았지만 한 두시간의 체험으로 무엇을 알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매번 비슷한 행사가 반복됨에도 장애우의 이동권을 제약하는 사회적 환경들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는 것을 보면 이것이 일과성 행사임을 느끼게 됩니다.” 

어린이날에는 어린이들의 꿈을 얘기한다. 어버이날에는 부모님의 은혜를 얘기하고, 스승의 날에는 스승의 고마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날에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지구촌 곳곳에서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인권의 날’이 소중하듯 장애우에게도 장애인의날이 소중할 것인데 지금 우리의 장애인의날이 장애우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물론 장애인의날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겠지만 매번 비슷한 행가 반복됨에도 장애우를 차별하는 각종 사회의 환경들은 나아지지 않고 있음을 정부와 사회는 각성해야 할 것이다.
장애우들이 바라는 것은 때를 맞춰 분주히 떠드는 행사가 아니다. 장애우들의 바람이란 평범한 이웃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평범한 사람이 누리는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누리면서 사는 소박한 삶이다.  
그래서 장애우들은 장애인의 날이‘장애우 차별철폐의 날’로 변모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장애우가 동원되는 것이 아닌 중심이 되어 시민과 함께 장애우 사회차별 문제를 고민하고 그 해결에 뜻을 모으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4월 20일은 장애우차별철폐의 날입니다>

하루종일 비가 내렸던 4월 20일. 서울 대학로에서는 이러한 장애우들의 뜻을 담은 의미 있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전쟁반대 차별반대 420 장애해방을 선포하라’는 슬로건의 420장애인차별철폐결의대회(이하 결의대회)가 약 500여명이 장애우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결의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모인 장애우들은 대학로 거리를 가득 메웠다.
참가자들은 한 목소리로 “시혜와 동정으로 치장된 정부와 각종 관변단체 행사에 장애우가 동원되는 것을 거부한다”며 4월20일은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의 날로 거듭나야할 것이라고 외쳤다.
단상에 오른 박영희 장애여성공감대표는
“장애인의 날이 장애인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지만 이 날에 우리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새로운 투쟁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고 말했다.
이 날 참가자들은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을 위한 기틀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정부에 촉구했으며 노동권과 이동권 보장, 장애학생의 의무교육 실시, 편의증진법 개정등 10가지 사항을 정부에 요구했다.
결의대회의 집행위원장인 박경석 노들야학 교장은
“나는 일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일하고 싶습니까? 나는 이동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이동하고 싶습니까? 밖에 나와서 여러분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고 말해 좌중을 숙연케 했다.
결의대회를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지켜 본 한 시민은 “장애인의 날이 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다”며 미안한 듯 어색한 웃음 지으면서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자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어요, 그래서 더 무관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라는 의미 있는 말을 덧붙였다.
결의대회를 주최한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공동기획단(이하 공동기획단)은 장애우를 차별하는 사회구조를 철폐하고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 구성된 연대단체이다. 장애우를 중심으로 장애, 시민, 사회, 학생 등 66개의 다양한 단체들이 뜻을 같이 했다. 이는 다양한 투쟁 운동의 공감대를 확대하고 그 연대를 강화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동기획단은 지난 3월 26일 혜화동에서 열린 최옥란 열사 1주기 추모제를 시작으로 인권영화제, 문화제, 거리선전전 및 서명운동, 토론회 등  다양한 방식의 투쟁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4월 20일 전국의 장애우들과 함께 하는 결의대회를 대미로 장애우당사자 목소리 중심의 진정한 장애인의 날의 의미를 생산하고자 한다.
이들은 장애인의 날이 시민들에게 장애우가 차별 받는 현실을 올곧게 알리는 날, 장애우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날이 되길 희망한다. 이는 이 땅의 모든 장애우들의 한결 같은 마음일 것이다.
 
올해 장애인의 날 주간에는 계속 비가 왔다. 누군가 곡우(穀雨)라 했다. 울 곡(哭)자가 아닌 곡식 곡(穀)자라 했다. 곡우란 이십사절기에 하나로 4월 20일 즈음이며 이 무렵에 곡식이 자라는 이로운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그 시기를 일컬어 곡우라 한다. 곡우가 가을의 풍성한 수확의 토대를 마련해 주듯이 우리 장애우들의 외침이, 움직임이 결실을 맺어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그 날을, 4월 20일이 장애우와 비장애우의 구분없이 모두 함께 어울리고 즐기는 축제의 장이 될 그 날을 꿈꿔본다. 장애인의 날이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넘어 장애우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의 날로 거듭나길 희망한다.

취재 함은혜 기자 / 사진 윤정은 기자
 

작성자함은혜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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