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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르포]광화문, 반전(反戰)의 함성 그리고 촛불의 노래

1960년 광장에서 2003년 광장으로

본문

 

 


사람들이 모여든다. 낙엽이 한잎 두잎 쌓이며 길 표면을 뒤덮는 가을 보도(步道)가 연상된다. 아기를 안고 걸어오는 젊은 부부, 다정한 연인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 인솔자를 따라온 어린이들, 삼삼오오 짝을 지은 청소년들, 또한 혼자 찾아온 얼굴들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봄이라지만 아직 쌀쌀한 저녁 바람은 만만치가 않다. 그런데도 그들은 모이고 또 모여서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앉는다. 누가 시킨 것도, 강제력에 동원된 것도 아닌데 주말만 되면 그렇게 사람들이 이 거리에 모여든다. 주위를 산책하듯 서성대던 발길들도 시계를 보며 그들 곁으로 향해 간다. 그렇게 광화문의 주말은 불을 밝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통칭 "투사"라는 면면들은 보이지 않는다. 일부 언론에서 떠드는 것처럼, 집회를 주도한다는 빨갱이나 날라리나 부랑아나 사회 불만 세력처럼 보이는 이들은 없다. 깔깔대며 웃음 짓는 저 여중생들이 빨갱이인가?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초롱한 저 어린 눈동자들이 날라리인가? 다정하게 손을 맞잡은 연인들이 부랑아인가? 아기를 품에 안고 자리 잡은 저 젊은 부부들이 사회 불만 세력들이란 말인가?
나누는 얘기를 들어 봐도, 그들의 대화는 일상의 그것이며 그들의 행동 또한 이웃의 모습과 똑같다. 제각각의 자유로움으로 저녁 시간을 기다리던 사람들, 그들은 하나의 행동을 똑같이 행함으로써 일순간에 거대한 집단으로 변모된다. 촛불을 밝히는 것이다. 종이컵으로 바람막이를 한 촛불은 손과 손을 오가며, 거리의 새로운 조명으로 익숙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마이크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행사는 그렇게 약속 없는 약속으로 매 주말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왜 나왔지?" "효순이 미선이가 너무 불쌍해요." "미군들 정말 나빠요." "누가 나오자고 했어?" "누가 시키나요? 우리가 오고 싶고 좋아서 나오는 거죠, 뭐." 발랄한 여중생들의 대답은 묻는 이의 질문을 오히려 머쓱하게 한다. "어떻게 나오시게 됐습니까?" "참여해야죠. 촛불 하나라도 더 밝혀야 되니까요." 그렇게 답하는 두 연인의 목소리는 하나의 화음으로 합쳐진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건 힘들지 않으신가요?" "아이한테 세상을 보여 줄 이만한 기회가 있겠습니까? 책상에 앉아 공부하라고 하는 것보다 백 배 나은 일이죠." 세 살짜리 아이를 안은 삼십 대 아빠는 "참세상을 보여 준다."는 말을 한번 더 반복한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확인시키는 듯이.
"마음이 아프잖아요. 왜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얘기 못하죠? 수십 년 간 그랬으니까, 앞으로도 그래야만 하나요?" "이젠 자존심을 되찾아야 합니다. 내 땅에서 내 나라의 자존심을 외치는 게 뭐가 잘못입니까?" "뜻을 모아야죠. 우리의 역량, 힘을 보여 줘야 돼요." "정통성이 없었던 과거 권력들은 저들이 던져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지만, 이젠 우리 스스로가 떳떳함을 확실히 아는데 왜 고개를 숙여야 하죠?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선 더 많이 참여하고 더 강하게 주장해야 돼요." 모여 앉은 대학생들의 목소리엔 진지함이 넘쳐흐른다.
월드컵 열기에 묻혀 있던 두 소녀의 죽음은 2003년 봄에도 통한의 눈물을 촛불에 밝히고 있다. "살아 있다"는 기쁨이 미안함으로, 분노로, 숙연함으로 그 옷을 갈아입는다. 다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붕괴되고, 여객선이 침몰하고, 비행기가 추락하고, 지하철 공사 현장이 폭발하고, 어린이들이 화재로 떼죽음을 당했던 일들을 너무나 쉽게 잊은 채로 무덤덤하게 지내던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죽음에도 가중치가 있을까? 그건 절대 아니다. 말도 안 되는 가정(假定)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두 여중생의 죽음 앞에 촛불을 계속 밝히고 있는 것일까. 처음 본 사람들끼리도 스스럼없이 어깨를 맞대고 함성 지르며, 우리의 권리를 목청껏 외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파업이나 폭력 시위도 아닌 평화의 촛불 집회가 왜 마무리 될 조짐도 없이 들불처럼 이어지는 것일까.
언젠가 저들의 군사령관이란 인물이 한국 국민을 "들쥐" 같은 민족이라고 표현한 게 밝혀져 파문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렇다. 우리를 바라보는 저들의 시선은 그랬다. 우리가 진정 "들불" 같이 타오르는 민족임을 깨우치지 못한 탓이다. "들쥐" 정도로 치부하니까 장갑차에 깔아도 아무 느낌이 없다. 우리의 항의를 투정부리는 정도로 넘겨버리고, 분노에 찬 규탄 집회를 구경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깔깔대며 웃었던 게 아닌가.
2차 세계대전 때 동맹을 이루었던 독일과 이탈리아와 일본 중에서,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된 여러 이유 가운데 한 가지가 밝혀진 바 있었다.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아무리 적대관계에 있다 해도, 백인은 보호해야 한다는 그들만의 논리였다고 한다. 포탄의 바다 속에서 유색인종은 그 존재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서,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백인이 아닌 민족이라면 보호 받을 자격도 없다. 그들의 입맛대로 팔 다리가 잘려나가거나 죽거나 말거나 관심거리가 안 된다. 그들의 눈 밖에 놓인 인종과 민족들은 버튼 몇 개를 눌러 초토화시켜 버리면 되는 것이다. 다시는 자기들 앞에서 까불지 못하게끔 말이다.
전쟁은 국토만 황폐해지는 게 아니다. 무너지고 부서진 건 다시 세우고 지으면 된다. 하지만 죽어간 사람을 되살릴 순 없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자들에게 온전했던 육신을 되돌려 줄 방법은 없다. 전쟁은 말 그대로 장애우를 대량으로 양산하는 무력수단이다. 그것은 합법을 가장한 반인륜적 범죄행위이며, 정의를 핑계로 삼은 인류말살의 무책임한 폭거일 뿐이다.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생명은 대체가능한 소모품일 수 없다. 육신은 비록 다친 데 없이 멀쩡하다 해도, 정신의 충격과 그 후유증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차라리 죽는 게 속편할 만큼의 부상을 당한 이들에게는 남겨진 삶 그 자체가 죽음보다 쓰라린 상처로 일생을 따라다닐 것이다.
"처음 나와 봤어요. 뉴스로만 보다가 우리도 한번 참가해 보고 싶어서 같이 나왔죠." 24개월 된 아기를 안고 있던 젊은 부부를 행사 진행자가 단상으로 부르자, 쑥스러운 듯 엄마의 말꼬리가 흐려진다. 아기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선 것이 어리둥절한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신 주위를 둘러본다. 효순이와 미선이 또래인 여중생 몇 명도 단상에 올라가서 참가 이유를 얘기한다. 주연과 조연이 없는 무대와 같다. 모두가 주인공일 테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반대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야, 이 미친 새끼들아! 미국이 우리나라를 이만큼 먹여 주고 지켜 주고 살려 줬는데, 알지도 못하는 새끼들이 여기서 뭘 하는 거야? 야, 전부 꺼져. 미친 새끼들!" 나이 지긋한 어른 몇몇이 지나가면서, 반전 행사에 참가한 이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른다. 그의 욕설과 비난은 골목길 끝으로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된다.
"야, 미군이 철수하면 너희들 다 죽어. 모조리 다 죽는다고!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 손에 피도 묻혀 보지 않은 것들이 이게 무슨 쓸데없는 짓거리야!" "아저씨, 그러니까 전쟁을 반대하는 거잖아요.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반대한다고 모인 사람들인 거 모르세요?" "시끄러, 이게 어디다 대고 눈을 부라려? 너희 다 죽을래?"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어른 몇몇이 행사에 참가한 이들을 한참 동안 비난하자, 듣다 못한 여성 참가자 몇몇이 반박을 하고 항의를 잇는다. 그 모든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무리들은 아무 말이 없다. 겹겹이 둘러싼 전경들의 줄지어 선 모습, 그 대열은 우리의 현실과 자화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듯하다. 누가 누구를 보호하고, 누가 누구를 지켜 줄 것인가. 문득 80년대의 거리 풍경이 머릿속을 스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때보다 더 나아진 건지, 아니면 그 상태 그대로 머무는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계속 반복되어야 할 전철처럼 2010년이나 2020년이 되어도 이런 모습들을 여전히 바라봐야만 하는 것인지…….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의 다음 목표는 북한입니다. 아니, 한반도입니다. 남한에서만 백만 명 이상 사망한다는 예측 자료가 나왔는데도, 저들은 자신들의 야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 땅을 폭격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땅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전쟁광(狂)의 전쟁놀음에 우리 한반도가, 우리 민족이 파멸되는 겁니다. 누가 막아야 합니까? 누가 이 땅을 지켜야 합니까? 누가 우리의 자존과 생명을 책임질 수 있습니까? 바로 우리입니다. 여러분입니다. 우리가 전쟁 반대를 확고하게 주장하고 관철시켜야 합니다. 이건 취사선택이 아니라 생존권 그 자체의 문제인 겁니다."
한반도에 또다시 포연이 자욱해지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최소 백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거란다. 그건 전쟁을 준비하는 측에서 제시한 자료니까, 정말로 그 정도의 사망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더 나오면 더 나오지, 덜 나올 리 없는 참상이 미리부터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죽는 생명만 백만에 이른다면, 목숨을 구하는 대신 부상당하게 될 인원수는 또한 얼마나 될까. 사망자의 몇 배수가 되리란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을까? 찰과상 정도로 아물 부상이 아니라 포격에 의해, 붕괴되는 건물 더미에 의해, 직접적인 전투에 의해,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영원한 장애를 갖게 될 이 또한 얼마나 많을 것인가.
"전쟁 절대 안 돼요. 명분 없는 전쟁은 죄악이에요. 그건 하느님의 뜻이 아니에요." 여기저기 모여 있던 외국인들 중에서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이들도 보인다. 직업을 물어 보니까 어느 나라 대사관의 직원이란다. 서툰 우리 말 발음으로 말하는 그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게 됐는데, 금발의 중년 여성은 말끝마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 "전쟁 절대 안 돼요!" 그러던 중 행사 진행자의 선창에 따라 크게 외치는 순서가 되자, 그들은 모두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힘차게 부르짖는다. "노 워(No War)!"
전쟁을 일으킨 이들의 국토는 온전하다. 아마도 온전할 것이다. 명분도 없이 힘이 세다는 이유로 남의 집에 가서 집안을 박살내는 것이니까, 자기 집안은 평온하고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을 것이다. 평온한 그 집안에서는 감미로운 음악 선율이 흐르고, 사랑의 대화가 오고 갈 것이며, 화목한 가정의 유대감이 넘쳐흐를 것이다. 자신들이 박살낸 집안의 처참한 울부짖음 따위는 음악 소리를 조금 더 크게 하면 들리지도 않을 테니까 별다른 관심도 없을 게 뻔하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총탄에, 미사일 폭격에, 시설 붕괴로, 이름도 모를 최신형 무기들에 의해 사람들이 이미 죽었고, 죽어가고 있고, 계속해서 죽어가게 된다. 땅 위로 줄지어 이동하는 개미떼를 무심히 짓밟아 몰살시키는 것처럼, 인공위성과 레이더를 이용해서 쉴 틈도 없이 첨단 무기들은 발사된다. 도발하는 쪽에서는 그 동안 갈고 닦은 첨단 무기의 성능을 실험할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더 확실하게, 더욱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대량 학살할 방법이 개발되고 실험되고 실행되는 것이다.
죽어가는 자들은 무력하다. 죽을 만하니까 죽음을 당하는 거라 치부되면 그만이다. 그것이 도발하는 자들의 속성이고 본성일 테니까, 억울하게 죽지 않으려면 까불지 말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전쟁광의 스트레스는 화끈한 전쟁을 통해 해소될 것이다. 파괴되는 도시와 살육의 현장을 보며 와인 잔을 기울일지도 모른다. 컴퓨터 게임 화면을 바라보듯 실시간 중계 내용을 음미하며, 와인으로는 부족한 희열을 만끽하기 위해 커다란 위스키 병을 대신 꺼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쟁광의 살육과 그 포만감은 배가 꺼지면 그만이다. 다시 허기가 진다. 다시 먹잇감을 찾아야 하는 법이다. 그 먹잇감이 누구이고 무엇인지는 벌써부터 공공연히 떠벌려 왔다. 소리 죽여 웃어대며 시간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황색인종 중에서 몇백만 정도가 말끔히 사라져도, 세계 질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믿을 것이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필수적인 사항이니까, 다음 살육도 멋지게 마무리해서 지구 전체를 꼼짝 못하게 호령하려 들 것이다.
누가 범죄자이고 누가 의인인가. 그들이 말하는 하느님은 어디 있는가. 그 하느님은 누구 편인가. 하느님마저도 인정하는 학살과 살육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행사에 참가한 아이들의 손마다 똑같은 말이 적힌 종이깃발이 쥐어져 있다. 그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의 눈망울은 반짝이지만, 그 눈망울에 상처와 슬픔을 안겨 주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로 종이깃발의 그 말을 소리 높여 외쳐야겠다. 의례적인 언어가 아니다. 그 한마디에 수천만의 피울음이 깃들여 있는 것이다.
들어라, 침략의 주역들이여! 우리는 분명히 말했고 확실하게 밝혔다. "No War!"라고.

 글·사진 / 채지민 (소설가)


 

작성자채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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